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74)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80화(374/46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380화
154. 순정 (1)
잠시 서울을 비운 동안 파주 관측소에서 대규모 분출을 확인했다는 소식을 알려 왔다.
그 대규모 몬스터 집단이 서울로 오는 징후는 보이지 않지만 문제는 그 규모다.
지난 몇 년간 단 한 번도 관측되지 않았던 초대형종을 포함, 수백 기에 달하는 중대형 몬스터가 쏟아져 나왔다고 한다.
그 대부분은 균열 지대에서 자연 소멸했지만, 그 며칠간 우리는 긴장 속에서 뜬 눈을 지새워야 했다.
강한민이 강화도에서 나오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 점점 명확해지는 가운데 우리는 자체적인 전력만으로 새로운 서울의 방어선을 꾸리는 전략을 짜는데 골몰했다.
몬스터를 막는 가장 전통적이고 효과적인 방식은 자연 지형으로 강과 바다는 몬스터의 정확한 정보가 제대로 조사되기 전부터 널리 애용된 천연 방벽이다.
실제로 강과 바다에 관련한 주장이 헌터 정보 사이트에 널리 퍼진 적도 있었다.
“몬스터는 호흡을 하며 숨구멍이 막히면 보다 빠르게 소멸한다.”
이 주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개소리로 판명이 났다.
멀리는 몬스터를 향해 소방용 호스로 물을 뿌리며 저항하던 인도인이 증명했고 가까이로는 중국 전선에서 직접 강바닥을 기어 오던 몬스터가 다시 한번 확인 사살 했다.
물론 몬스터가 물가를 피하는 경향이 있는 건 사실이다.
정확히 말하자면 몬스터는 강을 통해서 이동할 수도 있지만 다른 선택지가 있는 경우에는 대단히 높은 확률로 육로를 통해 이동한다.
이 습성을 이용해 중국 방어 전선에서 꽤나 큰 재미를 보았다.
유사 킬존을 만든 것이다.
다른 다리를 모두 끊고 다리 하나만을 남겨두고 거기에 화력을 집중하는 방식으로 말이다.
안타깝게도 그 작전은 중국 상층부 높으신 분의 명령에 의해 취소됐다.
괜히 포탄 낭비하지 말고 전부 다리를 끊는 게 더 낫지 않겠냐는 일차원적인 생각이 결정권자의 마음을 움직였고 그대로 행해진 것이다.
그 결과는 강바닥을 기어 온 수십 마리의 몬스터가 반대편 기슭을 장악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때와 달리 이번 방위 계획은 온전히 내 손바닥 안에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일이 쉬워지는 건 아니다.
다리라는 것은 반드시 경제적인 이익과 연결되는 법이니까.
어떤 다리를 허무냐에 따라 그 다리를 통한 교통에 의존하는 사람들이 큰 피해를 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최근 새로운 서울에서 신흥 세력으로 떠오른 건 이른바 “양아치”들이다.
그들의 주장에 의하면 세간에서 말하는 건달 같은 양아치가 아닌, 과거에 사용하던 진정한 의미에 가깝다고 한다.
원래 양아치라는 게 한국 전쟁 이후 등에 커다란 광주리 하나 짊어 메고 집게로 길가에 보이는 걸 모두 주워가는 – 아이를 포함 – 무뢰배 도당들을 일컫는 말이라고 하는데 이들과 비슷한 일을 하기에 그런 이름을 택했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스케빈저다.
다만 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구성원이 늘어나는 새로운 서울 경제에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정부에서 푸는 물자는 한정되어 있는데 이들은 강북 쪽에서 사람들이 남기고 간 것들을 회수하여 시장에 유통하기 때문이다.
이 양아치들이 선호하는 구역이 다리에 따라 갈리다 보니 이에 따른 조율을 하는 것이 당면한 가장 큰 이슈가 되었다.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 사람 사이의 중재다.
심지어 자칭 시민 대표라는 유사 정치인마저 끼어들면서 상황이 점입가경으로 악화하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사건이 내 앞에 끼어들었다.
광신도 한 무리가 신앙을 버리고 투항했다.
*
광신도는 우리 소관이 아니다.
광신도를 담당하는 건 군대다.
현재 새로운 서울을 지키는 군대 안엔 크게 두 가지 파벌이 있다.
하나는 김병철이 원래 데리고 있던 군단파 출신 병력이고 다른 하나는 우민희가 데리고 있던 정부군 출신이다.
보다 숫자가 많고 우위를 잡은 건 정부군 출신이다.
실제로 그들은 김병철의 병사들을 은근히 군벌 잔당이라고 얕보고 형식상 지휘권자인 김병철의 명령을 수시로 무시한다고 한다.
이번에 내가 방문한 헌병 수사대도 정부군 소속이다.
“일종의 내분이죠.”
광신도 조사를 맡은 건 한 눈에도 깐깐해 보이는 관상을 가진 심원재라는 이름의 육군 대위였다.
“계급 뻥튀기”로 개나 소나 무궁화를 단 군단파의 세계에서는 초임 장교급 계급이지만 정통파 군인에겐 여전히 한 현장을 책임질 수 있는 계급이다.
그래서인지 그가 단 금속제 계급장은 지나칠 정도로 윤이 났다.
“광신도 애들이 오갈 데 없는 사람 잡아서 강제로 범죄를 저지르게 하고 공범 의식으로 잡아 두는, 갱단적인 양태를 많이 보이는데 이번 조직도 비슷하게 사람을 붙들어 맨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사람을 불려도 대한민국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대통령도 몇 번이나 갈아치운 나란데. 결국 자기들끼리 싸움이 났고 결국 교단 자체가 붕괴한 거죠. 이번에 투항한 것도 남한 출신 파벌입니다.”
조금은 의아했다.
광신도는 원래 포용의 대상이 아니다.
투항을 한다고 해도 즉결 처형이 기본이라는 이야기.
그런데 헌병 수사대가 안 그래도 바쁜 나를 부른 건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는 이야기겠지.
과연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그들의 우두머리도 교단이 해체되면서 버려졌다고 합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어웨이큰입니다. 우소장님께서 직접 작성하신 적성 어웨이큰 리스트에 의하면 오버 10레벨엔 못 미치지만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어웨이큰이라고 하더군요. 성장에 따라 2차 각성을 할 수도 있는 인재라고 합니다.”
쓸모가 있는 자는 과거를 묻지 않는다.
과거 나치의 과학자가 그랬고 일본의 생체실험자도 그러했다.
문제의 우두머리도 우민희가 관리하던 적성 어웨이큰 명부에서 꽤나 상위권에 올라와 있던 실력자란다.
그런데 어웨이큰과 별 관련이 없는 나를 왜 부른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해서 물어보았다.
“우소장이 저를 불렀나요?”
“아니오. 우리 군 수뇌부 자체적인 판단입니다.”
“제 소관은 아닌 거 같은데.”
내가 미심쩍은 태도를 보이자 심원재는 우두머리의 프로필을 내밀면서 작은 목소리로 귀띔했다.
“일단 이걸 보시죠.”
프로필을 보았다.
이름은 함춘옥.
출신지는 역시 북한이다.
그런데 프로필에 첨부된 얼굴 사진.
어째 낯이 익다.
묘한 일이다.
분명 단 한 번도 마주친 적이 없어야 하는 얼굴인데.
혹시 유명 연예인을 닮기라도 한 걸까.
예쁜 얼굴은 저마다의 이유로 비슷하다는 말도 있으니.
그런데 그것도 아니다.
곧 하나의 닉네임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아.”
ONE_FAITH라는 녀석이 있었다.
우리 성스러운 게시판에 와서 광신도 광고질을 하던 녀석.
이 엄정한 관리자 박규에게 걸려 무자비하게 글 삭제당했던 그 녀석이 갑자기 현실에서 내 앞에 나타난 것이다.
“이 여성을 잘 아는 휴민트가 있습니다.”
심원재가 손뼉을 치자 아까부터 사무실 구석에 엉거주춤하게 앉아 있던 사내가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중키에 삐쩍 마른 남성.
안경을 꼈고 왼쪽 귀 절반이 불임수술을 당한 길고양이처럼 섬뜩하게 잘려 나가 있었다.
영양 상태가 좋지 않다는 건 한눈에 알아봤지만 그럼에도 이 친구가 북한 태생이 아닐 것이라는 신비로운 믿음이 있었다.
과연 그는 한국 사람이었다.
“춘옥이는 속고 있어요! 개 같은 새끼한테 가스라이팅을 당해서 자기도 뭘 해야 할지 모르고 있다고요!”
초면부터 억울하기 짝이 없는 얼굴로 하소연을 하는 이 사내의 이름은 황민석.
부모와 함께 광신도에 붙잡혀 어쩔 수 없이 신도가 된, 흔하디흔한 불행한 인생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나이가 들었고 또 교사 출신이었던 그의 부모는 교단생활 중 석연치 않은 이유로 실종됐다고 한다.
그는 내가 잘 아는 ONE_FAITH와 모종의 인연이 있었다고 한다.
“실은 제 여자친구입니다······.”
연령대는 비슷했다.
그런데 사람을 외모로만 평가하는 건 좀 아닌 것 같지만 황민석의 매력은 우리의 천영재보다 조금 아래인 것으로 보였다.
객관적으로 말하자면 못생겼다.
뭐, 외모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여성을 사로잡을 수 있는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겠지.
해서 물어보았다.
“혹시 악기 하시나?”
“아니오. 갑자기 웬 악기죠?”
“비트박스는?”
“네?”
다시 심원재에게 고개를 돌렸다.
심원재는 기다렸다는 듯 내가 해야 할 일에 관해 설명해 주었다.
“대장님 휘하에 있는 헌터로 팀을 구성, 이 친구를 데리고 그 함춘옥의 신병을 확보해 주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이 일을 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까?”
“함춘옥 주위에는 호법이라 불리는 정규 어웨이큰이 한 명 지키고 있다고 합니다. 정찰 결과 함춘옥을 포함, 단 두 명만이 있는 것으로 판별났지만 그래도 어웨이큰 아닙니까? 반사역장을 펼치는 이들을 상대하려면 군인만으로는 상대하기가 어렵죠. 어웨이큰에는 어웨이큰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대장님에게 도움을 요청한 거죠.”
“그건 뭐, 이해가 안 가는 건 아닌데.”
황민석 쪽을 보았다.
“과연 우리가 찾아간다고 해서 그 광신도 우두머리라는 여자애가 우리를 따라올까요?”
이에 심원재 대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답했다.
“따르지 않으면 즉시 사살을 해주셨으면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이 말에 황민석은 격하게 반발했다.
“아니, 왜 죽여요? 네? 춘옥이는 제가 말하면 듣는다고요! 제 말이라면 껌뻑 죽어요! 그런 애를 왜 죽여요?”
그런데 심원재 대위.
역시, 헌병 수사관답게 보통내기는 아니다.
그가 싸늘한 눈빛을 보내자 황민석은 순식간에 고양이 앞의 쥐처럼 얼어버렸다.
아마 내가 모르는 나름의 에피소드가 있었겠지.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그럼 제가 가보겠습니다.”
그러자 심원재가 깜짝 놀라며 물었다.
“네? 대장님이?!”
놀랄 법도 하다.
현재 대 몬스터 방위선 최종 책임자를 맡는 사람이 갑자기 전투가 일어날지도 모르는 임무에 자원한다는 건.
하지만 사람이 귀한 건 이쪽도 마찬가지.
심원재는 우리 쪽 정규 어웨이큰이 가면 일이 쉽게 해결될 거라고 믿지만 그건 “호법”이라는 존재를 알지 못해서 하는 이야기다.
그 호법이 중국 교단 체제를 그대로 베껴왔다면, 아마 그들은 총보다는 냉병기를 선호할 것이다.
그것도 상대방에게 위압감과 공포를 조성할 수 있는 큰 칼을 선호할 것이다.
중거리에서 군인의 총을 튕겨내고 근접전에 돌입, 병사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했던 교단 호법은 중국군 사이에서 몬스터만큼이나 공포스러운 존재였다.
뭐, 이번 사안에서는 단 두 명만이 있다고 하니 떼로 몰려들던 중국 호법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그래도 전문가가 필요하다.
우민희가 직접 체크리스트에 올려놓은 잠재력 높은 어웨이큰을 우리 쪽에 포섭할 수만 있다면 좋은 자원이 될 수 있겠지.
솔직하게 말해서 현재 하고 있는 일 – 양아치들의 중재 – 에서 잠시 떠나고 싶은 마음도 없잖아 있다.
하지만 무엇보다 ONE_FAITH라는 조금은 귀여웠던 게시판 유입 종자에 대한 호기심이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였다.
*
이번 원정에 디펜더 일행은 포함하지 않았다.
학살의 위험이 있다.
일반 광신도라면 모르겠지만, 고준위 어웨이큰은 국가적으로 관리하던 전략 자원이다.
막연한 증오로 죽이기엔 아까운 자원이다.
대신 내 오랜 파트너, 김다람을 팀에 포함했다.
“······.”
심기가 불편한 지 우리의 김여사는 별말이 없다.
그럴 법도 하다.
우리가 하려는 게 꽤나 위험한 임무라는 걸 중국 시절 내내 함께했던 그녀가 모를 리가 없으니까.
하지만 일단 전투가 벌어지면 김다람은 누구보다 정교한 사격으로 나를 적극적으로 엄호할 것이다.
그녀는 내가 등을 맡길 수 있는 몇 안 되는 헌터 중 하나다.
그녀만큼이나 유용한 멤버도 추가했다.
“광신도 확보라. 참. 아무리 사람이 없어도 그렇지.”
디펜더만큼은 아니지만 광신도를 혐오하는 천영재를 팀에 넣었다.
그의 요긴함은 굳이 부연해서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이번 원정에서 가장 인상적인 팀원은 이하루다.
“광신도 필크럼 작가 웹툰에서 종종 봤는데 실제로 와보니 이렇게 많을 줄은 꿈에도 몰랐죠! 제주에는 단 한 명도 없었거든요.”
정규 어웨이큰 쪽에 지원 인력을 요청했는데 대뜸 그녀가 자원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처음 생각한 건 김한나였는데 김한나는 비번이라고.
설령 그녀가 손을 들었다고 해도 이 어그레시브한 아가씨 상대로 이길 확률은 그다지 높진 않았을 것이다.
“제가 다른 거 몰라도 역장 하나만은 기가 막히게 잘 쳐요!”
그녀의 존재는 이 박규가 새로운 서울에 와서 거둔 가장 큰 가시적인 성과겠지.
올드스쿨 헌터와 어웨이큰 헌터의 조합은 내가 전쟁 전부터 생각했던 그림이지만 현실로 실현된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니까.
참고로 제주에서는 올드스쿨 헌터와 어웨이큰 헌터를 다른 편성으로 묶어서 운영한다고 한다.
이른바 “고기방패”와 “메인”으로.
아무튼 이 호화로운 팀을 광신도 같은 적대적인 어웨이큰 집단 상대로도 테스트 해보는 것도 좋은 경험일 것이다.
물론 일행 중엔 전 광신도 황민석도 포함되어 있다.
어째서인지 그는 이하루를 힐끔힐끔 쳐다봤는데 제법 긴장을 한 눈치다.
뭐라고 해야 하나.
전형적인 숫기 없는 남성의 우유부단함이 교과서적인 형태로 재현되는 느낌.
이하루도 그 시선을 눈치챘는지 나에게 조용히 다가와 개인적으로 문의했다.
“저 사람. 진짜 그 광신도 대장 남자친구 맞아요?”
나도 그게 궁금했다.
일단 우리가 포획한 광신도, 조력자, 드론 정찰을 통해 입수한 정보에 의하면 우리가 목표로 하는 광신도 우두머리는 단 한 명의 남성에게 보호받고 있는 게 확실하다.
홍다정이 솜씨를 발휘, 아슬아슬하게 근접해서 촬영한 드론 영상에서 다른 매복이나 광신도의 모습은 확인되지 않았다.
젊은 남녀, 단 둘뿐이다.
그런데 그 호법이라는 남자.
상당한 미남이다.
나처럼 조각 같은, 교과서적인 미남은 아니지만 긴 속눈썹과 작은 얼굴, 하얀 피부와 맞물려 이른바 여심을 울리는 계열의 미남상을 하고 있다.
이렇게 정보의 양이 늘어나고 구체성이 늘어날수록 명확하게 보이는 게 있다.
어쩌면 저 ONE_FAITH와 저 광신도 호법은 사랑의 도피를 한 게 아닐까 하는.
빨래와 더불어 나란히 걸린 콘돔이 무엇보다 큰 증거다.
“딱 봐도 눈 맞았네.”
김다람이 한마디 했다.
그녀의 기분이 풀어진 건 우리의 임무가 생각보다 쉬울 것 같다는 계산이 섰기 때문이겠지.
아무튼 임무 자체의 내용은 평이하지만 최대의 걸림돌은 역시 우리에게 조력한 전 광신도의 증언이겠지.
개인적인 자리에서 다시 물어보았다.
“진짜 춘옥이랑 사귄 거 맞냐······?”
“맞아요.”
천연덕스럽게 대답하지만, 똑똑히 보았다.
황민석의 눈동자가 아주 잠깐 흔들리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