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79)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39화(379/466)
339화 136. 양초 (3)
갈등은 오래 이어지지 않았다.
중저음의 사내가 총기를 내려놓았다.
“무시하셔도 됩니다.”
그는 우리를 응시하는 여인을 힐끗 보고는 몸을 돌렸다.
“인간이 아닙니다. 이미 죽은 것들이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저것들은 양초라고 부릅니다.”
“양초?”
우리를 보며 미소 짓는, 명백히 살아 있는 여인을 물끄러미 보며 물었다.
사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양초처럼 다 탈 날만을 기다리는 그런 인간들이죠.”
그가 말하는 양초는 저 여인만을 이르는 건 아닌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 있는 모든, 몬스터처럼 미동도 없는 인간들 전체를 일컫는 말이다.
그 사내의 말대로 여인은 우리를 뱀의 척추 같은 구조물 너머에서 보기만 할 뿐이었다.
대화를 걸지도 않았고 위해를 가하지도 않았다.
“······.”
좁은 의미의 광신도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당연한 일이다.
중국에서 우리는 아직 인간들이 남은 주요 도시와 거점을 수비했다.
우리가 철수하거나 지키지 못한 곳이 침식 지대다.
감상은 늘 그렇듯 좋지 않다.
나는 저들이 싫다.
총기를 들어 보이는 족족 죽이고 싶다는 정도는 아니지만 인류의 적에게 굴복한 저 나약하고 미련한 인간들을 나와 같은 인류의 선상에 놓고 싶지 않다는 게 내 정직한 마음이다.
만약에 저 여자가 조금이라도 우리에게 위해를 가할 행동을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광신도를 인간으로 보지 않고 따라서 그것들에겐 내가 인간에게 베풀려는 기준 몇 가지를 생략한다.
갑자기 나타난 광신도는 사내의 말대로 그저 가만 서 있기만 했기에 우리는 다시 당면한 목적으로 시선을 옮겼다.
“교관님. 어떻게 생각하세요?”
산정 아래 펼쳐진 균열과 그 주변을 보며 송유진이 물었다.
“어렵다.”
쉽지 않다도 아니다.
어렵다.
우리 헌터 사이에서 어렵다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우리가 목적한 바를 달성하려면 균열 지근점까지 접근해야 하는데 균열 주변부에 포진한 몬스터의 등급과 수를 미루어 보아 불가능한 일이다.”
오직 두 가지 해결법만이 있다.
하나는 반사역장 사거리 밖에서 저것들을 일소할 수 있는 집중된 화력.
포병, 공군, 해안가 한정으로 군함 정도.
전쟁 전엔 늘 주변에 있던 든든한 친구들이지만 지금은 기대하기 어려운 전력이다.
다른 하나는 이 어린 친구들의 보스, 우민희다.
우민희가 있어야 한다.
우민희 정도 되는 어웨이큰이 있어야 눈앞의 몬스터를 찢어발기고 활로를 개척할 수 있다.
하지만 우민희의 성격상 나를 도우러 여기까지 오진 않겠지.
“······여기까지 안내해 줘서 고맙다. 덕분에 오랜만에 기억에 남은 파주 균열의 모습을 업데이트할 수 있었다.”
요약하면 임무 실패.
“철수하자.”
이른 포기는 무능한 리더과 유능한 리더가 동시에 가지는 특징이다.
절묘한 포기는 모든 걸 살리지만 어리석은 포기는 모든 걸 점진적으로 잃는다.
나는 어지간하면 포기를 하지 않는 편이다.
그만큼 이번 사안은 답이 보이지 않는다.
발렌타인을 보았다.
“발렌타인님. 대단히 안타깝지만 저 정도의 전력을 상대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습니다.”
“그, 그렇습니까?”
여전히 발렌타인은 충격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
많은 땀, 흔들리는 눈빛, 거친 호흡이 그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드러내주는 증표다.
“돌아가죠. 우리 계획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게 우리 목숨 아니겠습니까? 죽으면 끝입니다. 모든 게 끝입니다.”
“그렇지 않아요.”
칼날 같은 게 마음을 뚫고 나왔다.
선명한 살의다.
그 살의를 담아 우리 옆에서 망발을 지껄인 광신도를 노려보았다.
“죽여도 되나?”
주변에 대고 물었다.
중저음의 사내가 곧 내 질문에 답했다.
“무시하세요. 양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철컥
권총을 들었다.
동기는 지극히 간단하면서도 강렬하다.
광신도가 말하게 두어서는 안 된다.
그 더러운 회백색 혓바닥으로 역겨운 사상을 떠들게 해서는 안 된다.
“몬스터는 반응하지 않겠지만 이계생물종이 몰려올 수 있습니다.”
권총을 보며 사내가 말했다.
“······.”
가끔 회상한다.
그때 거기서 그 여자를 죽였어야 했나, 몇 번이고 자문하곤 한다.
“잠깐만요.”
살인을 멈춘 건 발렌타인이었다.
의아했다.
나의 어떤 결정에도 마치 NPC처럼 수락하고 따르기만 하던 그가 송유진조차 눈치를 볼 정도로 선명한 살기를 발하는 나를 제지하려 든 건.
내심 나도 그가 우리보다 못한, 우리 아래의 사람이라고 인식하고 있었나 보다.
그의 개입에 분노보다는 당혹이라는 감정을 느끼는 걸 보면.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요?”
발렌타인이 여성을 보며 말했다.
“써먹다니요?”
“이 사람들. 저렇게 몬스터 많은 곳에서도 잘만 움직이고 있잖아요?”
발렌타인의 그 생각은 우리로서는 할 수 없는 생각이다.
학교에서 그리고 전장에서 우리는 광신도를 인간이 아닌, 반드시 죽여야 할 무언가로 교육받고 또 스스로 그 생각을 굳힌다.
우리들 눈에 비친 광신도는 인간이 아니다.
그러나 평범했던 삶을 살았던 발렌타인에겐 여전히 저들이 인간으로 보이는 모양이다.
대화가 가능하고 화합이 가능한, 같은 존재로 보이는 모양이다.
새삼스러우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받으며 발렌타인의 다음 행동을 기다렸다.
“저기. 저기요. 안녕하세요!”
손수건으로 이마에 흘러내린 땀을 닦아내며 발렌타인은 우리를 멍하니 지켜보는 창백한 여인을 불렀다.
“난감하네요.”
굵직한 음성의 사내가 말했다.
송유진의 표정도 좋진 않긴 매한가지.
시종일관 말이 없던 또 하나의 사내는 어느새 얼굴 전체를 가리는 가스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지만, 이 상황을 마음에 들어하지 않는 건 분명하다.
“······.”
하지만 무턱대고 말릴 수도 없다.
발렌타인의 심정을 고려하는 것도 있겠지만 기껏 우민희의 빚까지 져가며 여기까지 와서 아무것도 못 하고 물러가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으니까.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네. 저기. 저 균열 아래에 가줄 수 있어요? 보아하니 그쪽은 몬스터가 공격하지 않는 거 같던데. 네. 이거 들고 그쪽에서 5분? 그 정도만 머물렀다가 여기로 다시 와주실 수 있나요? 어, 설탕 조금? 먹을 게 있어요. 말린 육포도 있고요. 밀가루도 한 줌 있네요.”
발렌타인은 말 없는 여인과 손짓·발짓을 동원하며 치열하게 의사소통하려 했다.
여성을 보았다.
20대 초반에서 중반 사이로 보이는 외모.
봉두난발에 제대로 씻지도 않고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사람보다는 말라비틀어진 수수깡 같은 모습이지만 잘 꾸미고 괜찮은 영양을 섭취하면 그럭저럭 봐줄 만한 인물이다.
165cm 정도 돼 보이는 신장으로 보아 북한인일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 여자가 입술을 열었다.
희미한 소리가 흘러나온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우리에게 닿진 않았다.
상당히 날카로운 청력을 가지고 또 청음을 훈련한 나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 걸 보면 어지간히 목소리가 작거나 또 희미한 모양.
그녀의 의사를 전한 건 발렌타인이었다.
“하겠다고 하네요.”
“······그렇습니까?”
“네. 합일 어쩌고저쩌고 하는데 몬스터에게 공격받지 않고 저 끔찍한 떠 있는 호수 같은 곳에 갈 수 있나 봐요.”
“······.”
진심을 이야기하자면 반대다.
해서는 안 된다.
나를 비롯한 헌터들, 특히 중국에 파견 경험이 있는 헌터들은 광신도는 일단 죽이고 봐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차분하게 생각하자면 기껏해야 장비 하나다.
“······좋습니다.”
“교신기 하나를 빌릴 수 있을까요? 아, 조작법을 좀 알려줄 필요도 있을 거 같아서.”
교신기를 내주었다.
발렌타인은 교신기를 받아 들고 광신도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의 얼굴을 보았다.
나와, 송유진 일행을 볼 때와는 또 다른 얼굴.
진지하고 열의에 차 있고 매사 최선을 다하는 평범한 사내의 얼굴이다.
새삼스럽지만 발렌타인의 과거가 궁금했다.
처음엔 큰 의심을 하지 않았다.
처음에 그의 과거를 들었을 때 발렌타인은 작은 사업체를 운영한 사업가였다.
그런데 그의 과거는 이야기할 때마다 조금씩 달라졌다.
어떨 때는 피시방 운영을 하기도 했고 어떨 때는 대기업에 소속된 엔지니어이기도 했다.
심지어 본명도 모호하다.
그는 자신의 입으로 늪에 있을 때 쓰던 이름이 가명이라고 말했다.
그가 결혼했었다는 사실도 이번에 처음 알았다.
굳이 파헤치려고 하지 않아서 그렇지, 수수께끼가 많은 인물인 건 확실하다.
그럼에도 과거를 문제 삼지 않는 발렌타인의 근면성실하고 다정다감한 성격이다.
나와 같은 사람을 추종하고 같은 뜻을 가진 건 덤.
모든 것이 쇠락하는 멸망기에 그 정도면 지기라고 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하고 딱히 발렌타인의 과거를 끄집어내진 않았다.
“네. 지금 가겠답니다.”
광신도가 움직인다.
맨발로.
치렁치렁한 옷이 바람에 휘날리며 속옷조차 걸치지 않은 둔부가 그대로 드러났지만 신경조차 쓰지 않는 점에서 저 광신도가 이미 평범한 인간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그 목소리는 달콤했다.
“그거 알아요?”
교신기를 통해 광신도가 말했다.
나긋나긋한 서울 말씨.
북한인이 아니다.
송유진과 나머지 친구들이 교신기를 벗는 게 눈에 들어왔다.
오래된 훈련과 스스로 굳힌 고정관념의 결과다.
광신도와는 말을 섞지 않는다.
그 전제 안엔 광신도의 말을 듣지 않는다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니까.
“제가 있던 병원엔 캥거루가 있었어요. 키가 크고 두 다리와 꼬리로 땅을 지탱하고 늘 병원 앞에 멍하니 서 있던 캥거루였죠. 나이는 많지 않은 것 같았어요. 두 살? 세 살? 사실 저 캥거루의 나이는 잘 몰라요.”
나도 교신기를 꺼놓을까 생각했다.
그 듣기 좋은 목소리와 숨결, 느릿한 템포 하나하나가 인류의 멸망을 부추긴 사악한 종교의 포교로 느껴졌으니까.
“와. 캥거루요? 그런 게 왜 병원에 있어요?”
발렌타인의 목소리가 교신기를 끄려는 손짓을 막았다.
“······.”
끝까지 들어보자.
나 또한 이번 사태의 공범이니까.
물론 광신도에 대한 호기심은 없다.
나는 광신도에 호기심을 가지지 않는다.
단지 내가 궁금한 건, 발렌타인이라면 친하다고 생각하지만 결코 친해질 것 같지 않은 사내의 속내다.
이어지는 막간의 침묵 속에서 사각에 가려졌던 광신도가 회백색의 평지로 맨발로 걸어가는 것이 포착됐다.
주변엔 몬스터가 있다.
소형종, 스네일 타입.
구형으로 분류된, 초기에 출현한 곤충을 닮은 배리에이션 중 하나다.
사람을 녹이는 점액을 뿌리는 그 몬스터는 광신도가 옆으로 지나가는데도 아무런 반응을 하지 않았다.
“몰라요. 병원장 지시였나 보죠.”
심지어 그녀가 교신기를 통해 떠드는 순간까지도.
“보세요. 스켈톤님. 진짜 몬스터가 아무 짓도 안 해요.”
발렌타인이 들뜬 표정으로 내게 와 표정만큼이나 미열이 느껴지는 음성으로 말을 걸어왔다.
“······그렇군요.”
불길한 주시 속에서 여성은 곧장 균열을 향해 걸어갔다.
수많은 몬스터와 이계생물종이 득실거렸지만, 그것 중 그 여자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놀랍군요.”
발렌타인이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자 이름 모를 사내가 반박했다.
“다 타버린 양초겠지.”
그가 뒤로 몸을 돌리며 중얼거렸다.
“다 타버렸으니까 관심을 안 주는 거겠지.”
송유진과 눈빛을 교환했다.
곧 송유진 패가 뒤로 살짝 물러나 우리와 거리를 두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광신도는 계속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떠들었다.
“항상 멍하니 그 병원 앞에 우두커니 서서 지평선을 바라보는 캥거루를 궁금해했죠. 질문의 내용은 조금씩 바뀌었어요. 처음엔 저 캥거루가 왜 이런 곳에 오게 된 것일까 궁금해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저 캥거루는 무슨 생각을 하며 이 닫힌 공간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라는 의문이 강해졌죠.”
거기까지 듣고 송유진을 불러냈다.
밝고 천진난만한 그녀였지만 최근 우민희에게 호되게 당한 탓인지 눈치가 빨라졌다.
“네. 쌤.”
그녀가 다가와 조용히 대답했다.
“너도 듣고 있지?”
송유진이 눈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방금 저 여자가 떠든 이야기. 매뉴얼에 나오는 이야기냐?”
아마 “우화”라고 불렀을 것이다.
광신도가 다른 사람에게 그들의 종교를 전파할 때 떠는 이야기들 말이다.
몇 가지 고정화된 우화가 있고 광신도는 그러한 이야기를 반복해서 다른 전도 대상을 향해 앵무새처럼 떠든다.
병원의 캥거루 이야기는 내가 알지 못하는 우화다.
전장을 떠난지 오래됐으니 당연한 일이겠지.
그래서 송유진을 불러냈다.
쭉 현역에 있었던 그녀라면 나보다 최신 정신 정보를 더 많이 알고 있을 테니까.
“모르는 이야기에요.”
송유진이 팔짱을 낀 채 살짝 눈썹을 찌푸린 채 답했다.
“지하철의 비둘기 이야기 패턴은 있지만 병원의 캥거루 패턴은 처음이네요.”
“그래?”
이 이야기를 물어본 건 중간에 저 망발을 끊기 위함이다.
한창 이야기가 무르익어 갈 때 먼저 결론을 말해서 입을 닫게 만드는, 다소 유지하지만 결과는 확실한 방법이라고 할까.
내가 이런 수까지 고려하고 있는 이유는 이야기를 듣는 발렌타인의 얼굴이 심상치 않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 만난 광신도를 마음에 들어하고 있었다.
무려 몇 년을 알고 지낸 나보다 더.
뭐, 상대방이 젊고 꾸미면 예쁠 여자니 호감을 가질 법도 하겠지.
실망 속에서 이야기는 이어진다.
“로비를 지나 살짝 들어가는 복도 안쪽에 캥거루의 방이 있었어요. 놀랍게도 진짜예요. 다만 방의 층고가 꽤 높아 맥주 궤짝 두 개 정도를 밝아야 올라갈 수 있는 곳인데 그 캥거루는 저녁이 되면 알아서 그 맥주 궤짝을 밟고 자신의 방에 들어가더군요.”
송유진이 피식 웃었다.
그만큼 어이없는 이야기다.
굳이 이 헛소리에 관해 논평하지 않았다.
내 시선은 시종일관 그 광신도를 주시하고 있었다.
광신도는 이제 균열 100m 앞까지 접근했다.
중형종들이 사천왕처럼 지키고 있고 그 아래 갖가지 벌레를 모방한 끔찍한 이계생물종이 득실거리는 지옥 같은 곳에서 그녀는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맨발로 사뿐사뿐 걸어 나갔다.
그 과정에 분명 노래기를 닮은 이계생물종을 밟았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전진이 거침없을수록 발렌타인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다.
“와······!!”
소리를 죽이고 있지만 그는 저 광신도의 행동이 아마도 기적처럼 보이는 모양이다.
하긴, 인류의 적이고 공존이 불가능하다고 주입받은 저 몬스터 앞에서 저런 모습을 보이면 마음이 흔들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지.
그 광신도는 몬스터와 갖가지 역겨운 것들을 지나 이제 거울의 호수처럼 잔잔한, 가끔의 일렁임을 보이는 이 모든 재앙의 근원, 균열 아래에 당도했다.
“양초야. 곧 타 없어지겠네.”
이름 모를 사내가 중얼거렸다.
송유진에게 그의 이름을 물었다.
“형택이요. 신형택. 저보다 한 살 아래예요. 옆에 방독면을 쓴 애는 감지수고.”
저마다의 생각이 교차하는 가운데 발렌타인은 진지한 얼굴로 돌아가 측정을 시작했다.
“좋아요. 그렇게 계세요. 좋아요.”
잠자코 지켜보았다.
좋은 게 좋은 거다.
과정도 중요하지만 결과도 중요하다.
특히 뒤가 없는 이런 상황에서는 결과는 과정보다 더 우선되곤 한다.
몬스터들을 주시하며 태블릿을 부릅뜬 눈으로 살피는 발렌타인도 함께 관찰했다.
곧 발렌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됐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작전 성공인가.
그런데 균열 아래에 서 있던 광신도가 갑자기 침묵을 깼다.
“저는 이제 그 캥거루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왜 그런 행동을 했는지 알고 있답니다.”
교신기를 벗어던지며 발렌타인에게 말했다.
“개소립니다.”
다시 힘주어 말했다.
“듣지 마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