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82)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51화(382/46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351화
143. 방송
폭스게임과 장시간 이야기한 결과 우리는 우리가 본 사실을 공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오랫동안 이야기한 것에 비해서 합의는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폭스게임의 음습한 야망과 관종적인 성격조차 어안이 벙벙할 정도로 우리가 본 현실의 무게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를 품고 있었다.
단지 폭스게임은 내게 하나의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폭스게임 : 디에스이라에 말로는 실력 있는 헌터라고 하던데. 헌터로서 네 견해를 말해 줘.
폭스게임 :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답은 명확하다.
스켈톤 : 인류는 멸망하겠지.
스켈톤 : 아니, 어쩌면 극소수는 살아남을지 모르겠지만.
스켈톤 : 모르겠어. 그 안에 우리가 포함될 수 있을지는.
폭스게임 : 제주도에 남겨질 1,000명? 🙁
스켈톤 : 글쎄.
확실한 건 없다.
일각에서는 샹그릴라라 불리는 균열 간 침식이 중첩되지 않는 구역에서 인간이 제한적으로 생존이 가능하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침식이란 것이 우리 생각대로 움직여 준 적이 단 한 번도 없다는 걸 감안하면 샹그릴라라는 안전지대는 환상일지도 모른다.
섬도 마찬가지.
침식이 바다까지는 침범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침식이 강을 아무렇지도 않게 넘어 강기슭 너머의 영역을 물들이는 걸 몇 번이고 보았다.
염도와 수심, 수압의 문제를 거론한다면 전문가가 아닌지라 반박할 만한 뾰족한 답안은 없겠지만 앞에도 말했다시피 침식이란 건 예상할 수 없다.
섬에 있다고 해서 생존이 보장받을 것 같진 않다.
다만 남들보다 좀 더 오래 사는 정도겠지.
그나마 현실적인 방안을 말해보자면, 달로 가는 것이다.
이것도 대단히 SF적인 발상이긴 하지만 모조리 침식당할 운명의 지구보다는 낫지 않을까?
지구의 1/6 수준이지만 어느 정도 중력도 존재하고 말이다.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조만간에 큰일이 터질 것 같아.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여기도 지금 모두가 충격에 빠져 있거든.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조만간 정부 명의로 방송이 있을 거야.
unicorn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무튼, 이쪽도 경황이 없어서 말이야. 다음에 이야기하자.
3분, 7분, 더러는 30분이라는 텀을 두고 날아오는 유니콘의 메시지를 보면서 그녀도 매우 혼란스러운 상태에 놓인 걸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뭐, 당연한 일이겠지.
나와 폭스게임이 발견한 기밀 문서에 의하면 현재 약 1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는 제주에서 단 1,000명만을 남기고 모두 섬에서 내보낼 계획을 세우고 있다.
혹시라도 인구 수에 반응해 다시 균열이 열리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라고 하는데 지금 세상에 십만 명에 달하는 인력을 옮기는 게 그리 쉬울까?
옮긴다고 해도 어디로?
당장 그 십만 명을 어떻게 먹여 살리는 것도 궁금하지만 제주도에 터 잡은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해 다시 본토로 돌려보낼지도 상상이 안 간다.
“모두 모여 봐. 할 이야기가 있어.”
기밀 문서 해제를 위해 며칠간 방공호 안에 처박혀 있었다.
나 대신 고생한 동료들을 위해서라도 진실을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모두가 모인 자리에서 나는 나와 폭스게임이 발견한 기밀 정보를 풀었다.
처음에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에 시시껄렁한 농담도 오갔지만 점차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분위기는 눈에 띄게 무거워졌다.
“균열, 닫을 수 있는 거였구나.”
“정규 어웨이큰? 5레벨 이상 어웨이큰을 말하는 거지? 응? 2년 동안 갖가지 거짓말을 하며 긁어모은 애들을 전부 다 잃었다는 이야기지?”
“······.”
“우리는 이제 어떻게 되죠?”
다들 앞으로 좋은 날보다 안 좋은 날이 더 많은 거라고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암울한 미래가 확정되다 보니 충격을 금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다.
하긴 인간의 시대가 끝날 거라고 예전부터 생각했던 나조차 충격을 받았을 정도니 다른 사람들이 받은 충격은 오죽 할까.
“그럼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모두가 낙담하는 가운데 레베카가 생의 의지를 드러낸 건 그녀다운 행동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해야 계속 살 수 있어?”
나도 답을 모르는 질문을 답할 순 없다.
그렇다고 단칼에 희망을 끊는 것도 모양새가 좋지 않다.
해서, 내가 알고 있는 몇 가지 정보를 풀었다.
“샹그릴라라는 지역이 있다고 들었어.”
“샹그릴라.”
“응.”
샹그릴라에 관해 설명했다.
각 균열의 침식이 미치지 않는 영역의 교집합.
극히 한정된 영역에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인도와 중국, 이미 완전 침식된 국가에서 목격담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아주 허황된 현상은 아니리라 본다.
어쩌면 한반도 안에서 샹그릴라가 생길 수도 있겠지.
그러나 솔직한 의견으로 그 샹그릴라는 이름처럼 순수한 낙원은 아닐 것이다.
소수의 인구만을 부양할 수 있는 낙원을 들고 수많은 사람이 그곳을 두고 싸우지 않을까?
이를테면 레크리에이션 시간에 종종 하던 의자 앉기 게임 같은 거다.
총기를 들고 진행한다는 점에서 학교에서 하던 것과는 사뭇 양상이 다르겠지만 말이다.
“샹그릴라.”
그래도 샹그릴라라는 개념이 있다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안도를 줄 수 있다.
“어디에 있어?”
“글쎄. 아직 한국은 침식이 진행되고 있으니. 추이를 지켜봐야겠지.”
샹그릴라라는 곳을 찾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당연한 일이지만 각자의 결론은 다르다.
“제주도 애들이 여기로 온다고 들었는데.”
철컥-
하태훈이 권총을 점검하며 은은한 반감을 드러냈다.
“뻔뻔하기도 하지.”
그가 우리를 돌아보았다.
“만약에 제주도 애들이 돌아오면 난 걔들 그냥은 안 둘 거야.”
우리 영역 중에서 그나마 온건파로 분류되는 하태훈이지만 그라고 해서 증오가 없는 게 아니다.
제주에 가지 못한 여느 사람처럼 하태훈은 제주를 증오하고 있었다.
다만 하태훈의 경우엔 그 증오가 평균보다 더 깊을 뿐.
“······군대든. 어디든 다 들어가 주지. 하지만 우리를 남겨두고 비웃던 놈들이 뻔뻔하게 얼굴 들이미는 건 못 봐주겠어.”
그의 서열이 나보다 낮다고 하나 그는 우리 학교에서 가장 가장 기수가 높다.
그가 진심을 드러내자 늘 실실 웃으며 농담을 걸곤 하던 천영재도 굳은 표정을 유지한 채 토를 달지 않았다.
“나야 뭐, 그저 어머니랑 오래 살았으면 좋겠어.”
오늘따라 다리가 쑤신 지 시종일관 인상을 쓰고 있던 방재혁이 무거운 공기를 깼다.
“여기도 좋지만 그 뭐냐? 샹그릴라? 거기가 확정되면 한 번 가보려고.”
방재혁은 철저한 생존주의자다.
세상이 어떻게 되건 일단 오래 살아남자는 것이 그의 좌우명으로 보인다.
평범한 생존주의자와 다른 건 그의 생존엔 늘 자신의 어머니가 포함된다는 것.
새삼스럽지만 효자다.
요즘 세상에 보기 드문.
“난 박 선배 옆을 지켜야지.”
방재혁 덕분에 갑자기 자신의 포부를 밝히는 분위기가 되자 천영재가 내 눈치를 보며 쓴웃음을 머금은 채 입을 열었다.
“박 선배한테는 신세 진 것도 많고. 고로 이 양반이 날 필요로 하는 한······.”
“내 눈치 보지 말고 네 마음대로 해.”
천영재가 우수한 전투원이라고 하나 굳이 마음의 빚으로 묶어둘 생각은 없다.
그런 건 내 스타일도 아니고.
환경이 급변했으니 자기 살길은 자기가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건 내가 결정해 주는 것도 아니고 책임져 주는 것도 아니다.
“그래?”
의외로 내 발언이 강경하게 들렸던 모양인지 천영재는 입을 삐죽 내밀고는 의견을 정정했다.
“그럼 나는 우리 못난 아버지가 있던 방공호로 가야겠어.”
“그 산 쪽에 있는 곳?”
“시설은 좋잖아?”
하긴 시설은 내 방공호만큼 좋다고 할 순 없겠지만 내 방공호보다 돈을 더 많이 들인 건 확실하다.
뭐, 돈을 들인 만큼 좋은 방공호가 나온다는 말은 일반적으로 맞지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
열정과 관심, 지식이 깃든 방공호는 때로는 그 방공호보다 10배나 더 돈을 들인 것보다 훌륭할 수 있다.
내 방공호가 그렇다.
차례는 이제 레베카 모녀에게 돌아갔다.
“우리는 여기 있을 거야.”
레베카가 여전히 어색한 동료들을 껌뻑이는 눈으로 보며 퉁명스러운 듯한 어눌한 어조로 말했다.
“남편 기다릴 거야.”
남편이라는 말에 방재혁과 천영재는 쓴웃음을 머금었지만 레베카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지금도 찾는 중이지만 살아 있는 건 분명해. 비행기를 타고 올 거야. 멜론 마스크의 드론 비행기가 세계를 누비고 있잖아?”
누군가에겐 실현 불가능한 꿈일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레베카의 꿈을 응원한다.
사람은 희망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다.
아무튼 내 차례가 됐다.
제주에서 일어난 참사에도 불구하고 내 생각은 변함이 없다.
동료들을 둘러보며 변하지 않은 내 사고관을 말하려고 할 때였다.
삐이이이익—
K-워키토키가 갑자기 소리를 냈다.
내 것만이 아니다.
모두의 무전기가 일제히 전파를 수신했다는 효과음을 냈다.
평범한 전파가 아니다.
“이건 라디오 방송?”
대규모 방송 장비를 갖춘 방송국에서 송출한 전파다.
전파에 능통한 천영재가 곧 그 주파수를 알아 보았다.
“음? 이건 정부 주파수야?!”
치지지직—
느닷없이 찾아 온 고요 속에서 각자의 무전기가 같은 음성을 토해냈다.
“친애하는 국민 여러분. 제주 임시 정부에서 전해드립니다.”
제주에서 보낸 전파다.
제주라는 말이 울려퍼진 순간 우리들은 저마다의 감정을 담아 눈빛을 교환했다.
드디어 정부에서 입장을 발표하려는 모양이다.
잠자코 말없이 이어지는 방송을 들었다.
“구원자 강한민의 활약으로 제주의 균열을 닫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인류 최대의 위협인 균열이라는 차원의 틈새를 인류의 힘으로 봉쇄한 것입니다!”
화자가 누군지 생각해 보았다.
젊은 목소리.
내가 모르는 목소리다.
적어도 공경민, 나혜인, 강한민의 것은 아니다.
방송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러나 균열을 폐쇄한 당시, 균열에서 흘러나온 해로운 공기, 현재도 과학자들이 원인을 규명하고 이는 독성 공기가 제주 전역에 서서히 퍼지고 있습니다. 이 공기는 단순히 맡는 것만으로 인간의 신체 기능을 극도로 저하하고 치매에 걸린 것처럼 사고를 파괴하는 건 물론 우리의 목숨을 빠르게 갉아먹습니다.”
그 말을 듣던 천영재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가스?”
그가 날 보았다.
고개를 가로저어 보였다.
거짓말이다.
“균열의 폐쇄로 우리 인류는 생존의 길을 보장 받았으나 갈 길은 멉니다. 전문가의 분석에 의하면 제주 균열이 닫힌 자리에서 나온 해로운 물질은 적어도 10년 이상 제주 인근에 머물며 인간에게 피해를 끼칠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에 우리 제주 정부에서는 제주에 머무는 국민을 제주도가 아닌 안전 영역에 이주시킬 것을 고려 중에 있습니다.”
“현재 서울엔 수백만 명의 시민을 수용할 수 있는 새로운 기반 시설을 건설 중입니다. 과거의 영화에는 못 미치겠지만, 제주에서 혁혁한 승리를 거둔 구원자 강한민을 비롯한 수많은 구국의 전사들이 이른 시간 안에 서울에 도착, 파주 균열을 폐쇄할 계획입니다······.”
이쯤에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이상 들을 필요가 없는 무의미한 이야기다.
전부 거짓은 아니겠지만 거짓을 위해 진실을 섞었다.
살기 위해 제주로 모인 사람들을 이제 다시 본토로 내칠 것이다.
제주에는 이 모든 상황을 주도한, 양상길을 쫓아낸 위원회라는 녀석들과 그들을 위해 시중을 들 극소수만이 남게 되겠지.
강한민이 다시 여기 온다는 언질을 남겼는데 글쎄다.
그들에게 강한민을 이곳에 보낼 힘이 있는지.
“오늘은 내가 보초를 설게.”
총기를 들고 겨울 하우스 밖으로 나왔다.
싸늘한 바람과 눈으로 덮인 하얀 대지가 나를 반긴다.
현재 기온 영상 2도.
익숙한 순찰로를 따라 언덕의 정상을 향해 오른다.
하얀 위장막으로 가린 전망대에 서서 주변을 둘러다본다.
먼 곳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게 보인다.
“······.”
잠자코 자리를 지킨 채 주변을 경계했다.
겨울엔 사람만이 아니라 뮤테이션도 종종 돌아다니고 있으니까.
충격에 빠진 모양인지 겨울 하우스에 들어간 동료들은 꽤 오랫동안 움직임이 없다.
아마도 정부의 방송이 이어지거나, 앞으로의 계획을 논의하고 있는 모양.
전쟁이 시작된 지 4년째.
진정한 의미에서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명백하게 우리의 미래를 흔들고도 남을.
아마 지금쯤 우리 게시판과 레드 아카이브 게시판에는 분당 수백 개의 글이 올라오고 있겠지.
흥미로운 상황이긴 하지만 굳이 볼 필요는 없는 글이다.
우리는 사건의 전말을 알고 있으니까.
근무는 해질 무렵까지 이어졌다.
땅거미가 설원을 덮어올 무렵 발소리가 났다.
스우의 발소리다.
스우의 손엔 보온병이 쥐여 있었다.
“스켈톤.”
스우가 내게 보온병을 내밀었다.
“이거 먹어.”
“고마워.”
뚜껑을 열어보니 코코아다.
맛을 보았다.
쓰다.
설탕이 귀해져서인지 약간만 넣은 모양.
“어때?”
“먹을만 하네.”
스우는 쓰디 쓴 코코아를 마시는 날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내가 그녀를 응시하자 기다렸다는 듯 입을 열었다.
“이제 스켈톤은 어떻게 할 거야?”
“나?”
“응. 스켈톤은 아직 앞으로 어떻게 할지 이야기 안 했잖아?”
그러고 보니 그렇군.
내 의견은 이야기하지 않았다.
정확히는 이야기하려는 찰나에 정부 방송이 울려퍼진 거지만.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어둠에 잠긴 설원을 응시했다.
“나는 여기에 남을 거야.”
“여기에?”
“응. 여기가 내가 살 곳이야.”
“스켈톤은 고향 같은 거 없어?”
“내게도 고향은 있지만 그건 내가 정할 수 있는 게 아니잖아?”
툭툭-
전망대를 구성하는 일부분인 튀어나온 암벽을 손으로 두드려 보았다.
“여긴 내가 정한 곳이야.”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어쩌면 무덤일지도 모르겠지.”
언젠가 이 주변이 침식되어 모두가 떠난다고 해도 나는 이 영역을 지킬 것이다.
그 이후의 이야기는 굳이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말이야. 스우.”
“응.”
“죽기 전까진 최대한 즐겁게 살아보려고 해.”
중요한 건 우리가 처한 매 순간이니까.
*
치지직-
내 후배, 우민희에게 연락이 온 건 제주 정부의 방송이 있은 지 하루가 지난 뒤였다.
“새삼스럽지만 선배.”
평소보다 유독 기분이 좋은 목소리로 그녀가 말했다.
“슬슬 선배에 어울리는 자리에 오르고 싶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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