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87)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87화(387/46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387화
157. 팀 (1)
우민희가 돌아온 이후 그녀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알려진 바는 없다.
회의 내용은 철저히 비공개였고 오로지 그녀와 제주에서 온 뜨내기들만이 참석했으니.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 앞에서 썩소를 머금으며 여유를 부리던 장현진의 입가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는 것이다.
진실인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회의실을 나설 때 그는 애꿎은 벽을 주먹으로 치며 분노로 온몸을 파르르 떨었다고 한다.
이후에 공경민이 여기로 다시 찾아왔다는 소문이 들렸지만 그전에 우민희 쪽에서 우리에게 소식을 전했다.
[ 피난민 이주는 없었던 일로. ]당장이라도 새로운 서울에 떨어질 약 5만 명에 달하는 인구 폭탄을 막았다.
시간이 지나면 5만 명 그 자체가 힘이 되어 도시의 활력을 불어넣는 건 의심할 여지 없는 사실이지만 그건 미래의 이야기다.
평범한 피난민도 아니고 “제주 출신” 5만 명을 공동체에 편입한다는 건 전투를 앞둔 현재 상황에서는 모두 죽으라는 말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우민희는 좋지 않은 소식도 전했다.
[ 제주 정부의 지원은 기대하기 어려움 ]이건 모르겠다.
김병철은 오히려 희소식으로 받아들였다.
“어차피, 그 호로새끼들은 처음부터 우리를 도울 생각 따윈 하나도 없었을걸? 오히려 잘 된 게지. 되지도 않은 희망을 품는 대신 확실하게 우리끼리 뭉쳐야 하는 게 명확해졌으니.”
시간이 지나면서 제주 이민 선단의 근황이 공개됐다.
일단 그들은 인천에 남은 피난민 시설을 활용, 자체적으로 버티기로 한 모양이다.
다만 소수의 사람을 보내기로 했는데 이 부분에 관해서는 우민희도 합의했다고.
아무튼 상황은 명확해졌다.
우리는 혼자다.
우리 힘만으로 다가올 난관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하지만 과연 우리가 혼자라고 할 수 있을까.
전쟁이 지난 지 4년이 지났다.
세간의 예측과 달리 전면적인 문명의 붕괴도 인간성의 상실도 일어나지 않았다.
헤아릴 수 없는 사람들의 시체 위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생존했고 적응했다.
또 친구를 만들었고 신뢰를 쌓았다.
지난 세월이 헛되지 않았다는 걸 증명하겠다.
*
여전히 나와 김다람의 관계는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지금까지는 애써 외면했지만 이제는 다르다.
갖가지 얼룩으로 더럽혀진 우리의 관계가 예전처럼 투명하게 회복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정리는 필요하다.
그걸 위해 그녀를 불러냈다.
용건은 다가올 전투에 관한 이야기였다.
바꿔 말하자면 목숨을 걸라는.
“불가능해.”
김다람은 비관적인 반응이었다.
조건반사적인 거절은 아니다.
그녀는 나와 같은 전장에서 같은 경험을 했다.
“······선배도 알잖아? 대규모 분출이 얼마나 무서운지.”
그녀가 말하고 있는 북경 방위전이라 알려진 일련의 거대한 전투는 인간과 몬스터가 힘 대 힘으로 겨룬 최초이자 마지막 싸움이다.
중국은 그들의 심장을 지키기 위해 그들의 막대한 부와 자원을 아낌없이 투입했다.
하늘 위엔 끊임없이 공군기가 날아다니며 폭격을 가했고 후방에는 수천 문에 달하는 야포가 수만 대에 달하는 보급 트럭의 보급을 받아 가며 도시 외곽에 시커먼 호를 그릴 정도의 가공할 포격을 퍼부었다.
한국의 멍텅구리 전차의 선배 격인 대 몬스터 전차 수천 대가 도시의 경계를 지켰고 당연한 일이지만 인민군 3개 집단군과 예비군 – 약 50만 명 – 에 달하는 병력을 동원했다.
2차 대전 이후 하나의 도시에 최대의 전력이 집중됐지만 전투는 결국 인류의 패배로 끝났다.
인간은 몬스터를 이겨내지 못했다.
하늘을 장악한 공군과 대지를 장악한 포병이 아무리 원거리에서 몬스터를 격멸해도 균열은 아무렇지도 않게 다음 몬스터 무리를 분출했고 인의 장벽으로 둘러싼 방어선은 한 구역만 뚫려도 속수무책으로 무너졌다.
지금에야 장군 타입의 존재가 알려졌지만 당시만 해도 몬스터가 전술적인 움직임을 보인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로 받아들여졌다.
몬스터는 지휘 계통의 중심부로 빠르게 진출해 수뇌부를 마비시켰고 수뇌부의 마비는 곧 전군의 마비로 이어졌다.
일선에는 유능하고 사고가 열린 뛰어난 지휘관이 몇 명이나 있었지만 서로 간의 불신과 해묵은 파벌 싸움이 그들을 파멸로 길로 내몰았다.
정확한 수치는 알 방법이 없지만 전투에서 사망한 전사자의 수는 1천 명이 채 되지 않지만 전투가 끝난 직후 벌어진 인민군 간의 내전에서 3만 명에 달하는 병력이 증발했다.
그 과정에서 사망한 민간인의 숫자는 중국조차 집계를 포기했기에 굳이 언급하지 않겠다.
우리는 그 북경 방위전에서 향원(鄕園)이라 불리는 좁은 전선을 맡았다.
수뇌부가 자리 잡은 본부 동쪽과 북방 최후 방위선이었다.
중형종을 비롯한 수많은 몬스터가 쉬지 않고 전선을 덮쳤다.
기록된 숫자는 36기지만 우리 기억에 의하면 50기 이상을 격파했다.
우리는 우리에게 할당된 구역을 지켜냈지만 이웃한 망조원(望兆園) 구역이 뚫리면서 수뇌부의 핵심 인사가 몰살당했다.
망조원을 지키던 중국 헌터가 약한 게 아니라 정치적인 이유로 일부러 뚫리게 했다는 소문도 있지만 그건 중요치 않다.
망조원이 돌파당하면서 전투는 끝났다.
어떤 의미로 우리는 북경 전투라는 인류 최후의 전면적인 저항에서 가장 핵심적인 영역에 있었던 것이다.
“······베이징에 있었던 때와는 달리 모든 게 부족해. 인력도 장비도 헌터의 숫자도.”
김다람이 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무죄다.
누구도 감히 그녀의 말을 함부로 반박해서는 안 된다.
비록 그녀가 개인적으로 문제가 많은 인성을 가졌고 행동을 했다고 하나 그녀는 가장 치열한 전투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벌인 헌터니까.
여전히 그녀는 내 최고의 파트너다.
“하지만 북경과 달리, 여기 있는 사람의 수도 적어.”
당시 북경 권역에 살던 사람은 2천 만 명이었다.
안 그래도 인구가 많았지만 중국도 한국처럼 – 어쩌면 한국이 중국의 흉내를 냈을 수도 있겠지만 – 뮤테이션이나 좀비의 위협에 대처해 인근 지방 인구를 도시 권역에 꽉꽉 구겨 넣은 상태였다.
당연히 이천만 명급에 달하는 몬스터가 균열에서 분출됐다.
하지만 지금 새로운 서울에 터 잡은 사람은 최종 인구 집계 결과에 의하면 28만 명이다.
어쩌면 그보다 더 적을 수도, 많을 수도 있겠지만 당시 북경 일대에 모인 인구수에 비하면 새 발의 피다.
“그때만큼 많은 숫자가 오진 않겠지. 게다가 그때와 달리 제대로 된 방어선을 형성했어. 킬존을 만들었다는 이야기지.”
“······.”
김다람은 여전히 굳은 얼굴로 입을 열지 않는다.
그때와 달리 정규 어웨이큰이라는 막강한 전력도 있지만 여기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장군 타입이 보내는 “목소리”에 위축된 상태다.
“하아.”
김다람이 한숨을 내쉬며 지친 눈으로 날 보았다.
“우리가 이길 수 있을까?”
허투루 승리를 입에 담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그녀를 잘 안다.
지금 김다람은 진실을 요구하고 있다.
몇 번이고 서로에게 목숨을 맡긴 사이다.
과거처럼 쌍으로 펼치는 죽음의 곡예를 펼치기 위해서라도 신뢰 확보는 필요하다.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며 똑똑히 말했다.
“확률은 희박하다.”
“역시.”
“하지만 아주 불가능한 건 아니야.”
김다람이 입술을 다물고 내 눈을 뚫어지게 들여다보았다.
“······장군 타입을 격파하면 돼.”
“장군 타입.”
김다람도 그 녀석을 알고 있다.
“그 녀석은 단 한 번도 격파된 적이 없어. 그래서 선배가 명명한 이름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지.”
“이번에 격파할 것이다.”
김다람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나보다 더 현실적인 그녀는 역시 내 생각에 동의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녀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다지 사용하고 싶지 않은 방식이지만 그녀가 애써 외면하는 현실을 언급했다.
“여기 말고 갈 곳이 있냐?”
김다람이 시선을 피한다.
한동안 눈동자를 굴리던 그녀가 날 다시 보며 묻는다.
“선배 방공호?”
“중앙에 변기 있는 곳은 죽어도 가기 싫다며? 그런 데서 애 못 키운다며?”
“하.”
김다람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처음으로 보인 미소다.
“장군 타입을 격파한다면 강한민도 움직일 거야.”
이건 순전히 내 생각이다.
하지만 내 예상이 맞는다면 강한민은 반드시 움직일 것이다.
장군 타입이라는 최대의 위협이 제거된 이상, 인간이라는 그의 동족이자 자원을 포기하진 않을 테니까.
“강한민.”
김다람이 불쾌감을 담아 그 이름을 발음했다.
“강한민 본 적 있어?”
그녀가 고개를 돌리며 묻는다.
생각나는대로 대답했다.
“본 적은 있다. 하지만 녀석은.”
“어땠어?”
“······내가 알던 그 강한민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더군.”
“그래?”
김다람은 입을 다물며 입 주변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그 눈동자엔 순간이지만 숨길 수 없는 불안감이 넘실거렸다.
“넌?”
김다람에게 물었다.
“난 몰라. 마주칠 기회도 없었는걸. 하지만······.”
김다람이 잠시 망설이다 말을 이었다.
“강한민이 어웨이큰 아이를 강제로 모집하는데 영향력을 행사했다는 소문은 들은 적이 있어.”
“그랬었나.”
“우민희가 총대를 멨지만 그 뒤엔 강한민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했지. 아무리 우민희가 오버 10레벨 어웨이큰이라고 하지만 딱히 유명하지도 않은 걔한테 초법적인 권한을 준 것 자체가 말이 안 되잖아?”
김다람이 갑자기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우리 동탁이.”
고개를 숙인 채 김다람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어웨이큰이야.”
“정말이냐? 어느 정도지?”
“응. 시트지를 하얀색으로 만들 정도의······.”
처음 알았다.
김다람의 아들이 어웨이큰이라는 사실을.
아니 어쩌면 최근에 발현됐는지도 모를 일이겠지.
이 세상은 하루가 다르게 침식에 잠겨가고 있으니까.
“······강한민이 오면 틀림없이 우리 아이를 잡아가겠지.”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겠다.”
김다람이 고개를 들어 날 보았다.
수많은 풍파가 있었지만 여전히 나의 사랑스러운 후배를 내려다보며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선배.”
김다람은 알고 있다.
나에게 있어 강한민과 나혜인이 얼마나 큰 금기였는지.
하지만 이제는 다르다.
“그때는 내가 직접 녀석과 담판 짓겠다.”
이제는 녀석을 마주할 수 있다.
물론 그전에 장군 타입이라는 단 한 번도 극복된 적 없는 인류의 적을 넘어야겠지만.
녀석을 넘을 수만 있다면.
“물론 이 싸움이 끝난 후에.”
그때는 녀석과 대등하게 마주할 수 있겠지.
비록 힘은 꿀릴지언정 영혼의 크기는 뒤지지 않을 테니까.
김다람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철컥-
그녀가 나만큼이나 빠른 속도로 총기를 점검했다.
얕은 한숨과 함께 근심을 떨쳐버린 그녀가 특유의 표범 같은 날카로운 시선으로 날 노려보았다.
“이제 앞만 봐.”
“······.”
“그때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잘 부탁한다. 플로리스(flawless).”
*
헌터 팀은 4인 1조로 움직인다.
팀의 명칭은 국가마다 다르다.
미국에서는 이러한 팀을 랜스(lance)라고 부른 반면, 영국에서는 스쿼드(squad)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팀의 구성은 팀장이나 팀원의 성향에 따르나 대체로 후열에서 중화기나 고위력 라이플로 지원 사격을 하는 헤비(heavy), 중거리에서 전체적인 전장을 조율하는 스포터(spotter), 그리고 반사역장 사거리 안에서 몬스터와 결전을 벌이게 될 어설트(assault).
이 3개의 역할군에서 숫자를 배분한다.
우리 팀에서 헤비와 어설트 자리는 채워졌다.
나머지 한자리인 스포터는 언제부터인가 가장 든든한 조력자로 변신한 천영재가 맡을 것이다.
“당연히 가야지!”
내 부탁에 아무렇지도 않게 긍정적인 표정으로 수락하는 그를 보고 있자니 참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척이나 폐를 많이 끼치는 친구였다.
참는 게 능사는 아니라지만 적어도 인내는 이 새로운 팀원이라는 선물을 주었다.
그런데 이제 헌터 팀에는 새로운 역할군이 생겼다.
다름아닌 어웨이큰이다.
바로 이곳, 새로운 서울에서 내가 직접 구상하고 테스트를 하고 실전으로 검증한 새로운 역할군은 몬스터는 물론 인간 상대로 상당한 효과를 누렸다.
적대적인 인간의 기습을 정규 어웨이큰 하나를 두는 것만으로 완벽하게 차단할 수 있으니까.
중국에서 우리 헌터의 목숨을 가장 많이 앗아간 것이 적대적인 인간의 공격이라는 걸 생각한다면 장족의 발전이다.
그런데 이번 적은 어웨이큰을 사용할 수 없다.
장군 타입은 정규 어웨이큰 이상에 한하여 심리적인 위축감과 공포를 흩뿌리고 있다.
나머지 한 명에 관해서는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다.
당장 우리에게 필요한 건 산더미처럼 많으니까.
외부의 지원이 필요하다.
전쟁이 시작되고 모든 게 무너졌다고 하지만 그 잿더미에서 다시 일어선 세력이 있다는 걸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들에게 도움을 청할 생각이다.
그들이 우리를 어느 정도 지원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안 한 채 우리 힘만으로 다가올 균열의 재앙에 맞서는 것보다는 낫다고 생각한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제법 강력한 세력의 리더와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다.
“······.”
타닥타닥
SKELTON : (스켈톤 안부인사) 잘 지내나?
모처럼 킹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CrunchRoll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무슨 일이지?
답장이 바로 왔다.
그런데 어째, 느낌이 좋지 않다.
비바! 아포칼립스! 고참 네임드 유저의 감이 그리 말하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CrunchRoll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지금 새로운 서울에 있지?
내 정보를 알고 있다.
하긴 수만 명을 거느리는 대도시의 지배자인 그라면 나름의 정보망을 갖고 있겠지.
내가 은밀하게 활동한 것도 아니고.
SKELTON : 그래.
정직하게 답했다.
CrunchRoll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거기 상황이 어렵기라도 한 모양이지?
SKELTON : 솔직히 말하자면 그래.
CrunchRoll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미안한데 지금 우리도 제 코가 석 자야.
SKELTON : 그래?
CrunchRoll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미안하게 됐군.
CrunchRoll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오늘은 몸이 안 좋아서. 이만. 다음에 이야기하지.
“······.”
역시 생각대로 일이 잘 풀리지 않는다는 소린가.
예상은 했었다.
기대는 늘 엇나가는 법이지.
하지만 희망의 끈을 놓을 순 없다.
삐- 삐- 삐-
박펭귄에게 연락을 취했다.
받지 않는다.
변고라도 생긴 것일까.
아니면 내 연락을 고의적으로 받지 않는 것일까.
세간의 각박함이라는 걸 호소한다는 게 나이브한 발상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 누구도 대답하지 않는 상황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네 차례의 교신 실패 후 잠시 바깥에 나가 바람을 쐬었다.
담배 한 대가 절실히 그립긴 하지만 눌러 참았다.
담배도 없고.
내 인맥이 없다면 결국은 김병철의 인맥에 기댈 수밖에 없겠지.
군단파에서 갈라져 나왔다고 하나 그 군단파 중에서 다시 대한민국의 품 아래로 오고 싶은 친구 하나둘 정도는 있지 않을까?
그렇게 가망 없는 발걸음으로 회의실로 걸어가고 있자니 누군가 내 앞에 슬그머니 모습을 드러냈다.
“시간 좀 괜찮으세요?”
광신도.
아니, 함춘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