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89)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89화(389/46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389화
158. 벌집 (1)
“어때?”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육망성의 형태로 이루어진 안테나가 전파를 내뿜고 있다.
“글쎄요.”
이곳은 정규 어웨이큰을 모아놓은 생활관이다.
함춘옥의 의견에 따라 네크로폴리스 유사 전파를 대량으로 송출하는 장치를 개발했다.
급조한 장비답게 원리는 단순했다.
우선 네크로폴리스를 사용할 수 있는 단말기, 혹은 그 단말기를 대량으로 통제할 수 있는 장비를 준비하고 그 단말기를 통해 대량의 메시지를 보내고 또 수신하면서 망자의 목소리라고 불리는 네크로폴리스 전파를 송수신한다.
대량의 전파를 필요로 하기에 이 과정은 사람 손이 아닌 매크로를 통해 수행되는데 매크로 작업이라는 것이 필연적으로 타인, 특히 네크로폴리스 유저의 불쾌감을 자극한다.
이 매크로를 이용한 대규모 전파 송수신 작업이라는 것이 까놓고 말하자면 게시판에 매크로를 이용한 초당 수백 개 이상 글을 올리는 도배질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박규도 1초에 20개 이상씩 글을 올리며 게시판을 도배하는 능력을 가졌지만 매크로 프로그램 앞에서는 공자 앞에서 주름잡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당연히 네크로폴리스를 이용하는 평범한 국내 이용자에게는 민폐라고 밖에 볼 수 없는 행위긴 한데 이 박규, 인터넷 세계에서는 스켈톤으로 알려진 나는 네크로폴리스의 창조자와도 두터운 친분을 맺고 있다.
Deadman_working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메시지를 입력할 때 #11221963 라는 키워드를 치면 다른 사람 눈에 보이지 않게끔 블라인드 처리가 될 것이다.
매크로 프로그램 사용으로 인한 폐해를 미리 차단했다.
데드맨워킹으로서도 그리 나쁜 이야기는 아닌 것이 그는 자신이 네크로폴리스라는 인간의 기술적 한계를 뛰어넘은 네트워크를 만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창조물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왜냐하면 네크로폴리스는 연역적인 추론과 치열한 증명의 결과가 아닌, 나침반이나 화약 같은 우연한 발견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Deadman_working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그나저나 놀랍군. 망자의 목소리가 몬스터의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게 보호적인 효과를 줄 수 있다는 것이.
SKELTON : 자세한 건 검증을 해봐야겠지. 아직 완벽하게 효과가 입증된 건 아니니까.
Deadman_working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이건 내 생각인데 말이야. 이미 망자의 세계로 떠난 우리의 이웃과 벗, 가족들이 죽음의 세계에서 우리를 지켜주려는 응원의 노래일지도 모르겠지.
Deadman_working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만족스러운 데이터가 나오길 즐거운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겠다.
어찌 됐든 데드맨워킹의 허락은 득했다.
사실 그에겐 손해 보는 게 없다.
그는 존내논과 달리 물리적인 서버를 구축한 것도 아니고 공수가 들어가는 유지보수를 하는 것도 아니니.
좌우지간 이제 우리는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또한 방해도 하지 않으면서 네크로폴리스에 대량의 전파를 마음대로 송신할 수 있다.
“송신량을 좀 더 올려봅시다.”
“네. 좋습니다. 1.2배로 올려볼게요.”
우민희는 나의 다소 황당한 계획에 일류의 엔지니어를 붙여줬다.
큰 집단의 장점이라고 할까.
필요한 건 뭐든 있고 할 사람도 준비되어 있다.
아마 나 혼자서 그 어두운 방공호 안에서 준비하려고 했었다면 실행조차 못했을 것이다.
아무튼, 지극히 단순한 발상에서 시작된 계획인 만큼 검증도 단순하다.
정확히 말하자면 무식하다고 할까.
“느낌이 어때?”
피험자를 맡아 준 김한나에게 수시로 감상을 묻는 것이 이번 “스켈톤 웨이브” 계획의 유일한 검증 방식이다.
우민희의 우려와 달리 송수신량을 늘리자 유의미한 변화가 찾아왔다.
처음엔 아무런 효과도 못 느끼겠다며 흐린 얼굴로 파장에 고통받던 김한나의 얼굴이 점점 좋아지는 게 눈으로 확인했다.
“음. 글쎄요. 완벽하게 두통이 사라진 건 아니에요. 오히려 이거 때문에 다른 두통이 생기는 느낌이긴 한데. 그래도 아까보다는 훨씬 나은 거 같기도······.”
“그래?”
“아, 그리고.”
김한나가 한쪽 눈을 찌푸린 채 골똘하게 뭔가를 생각했다.
“자꾸 이상한 단어가 떠오르는 거 같아요.”
“이상한 단어라니.”
“스, 스펠킹 체가? 스캘튼? 아무튼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 말이죠.”
“그래?”
즉시 엔지니어를 불러 현재 우리가 매크로를 통해 대규모로 업로드하는 메시지 내용을 재확인했다.
망자103213(KOR) : #11221963 스켈톤 최고!
망자99321(KOR) : #11221963 스켈톤 최고!
망자83133(KOR) : #11221963 스켈톤 최고!
…
…
유저 아이디는 다 다르지만 똑같은 내용을 반복하고 있다.
“이거 뭔가요?”
엔지니어들에게 묻자 그들은 되레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답했다.
“대장님이 정해 준 메시지잖아요?”
“그렇습니까?”
최근 참 바쁘게 산다.
사소한 것 하나 일일이 신경 쓰는 게 어려울 정도로 말이다.
“적당히 다른 메시지로 바꿔봅시다.”
“스켈톤 최고! 말고 다른 메시지 말씀이죠?”
“네. 변화를 줘보죠.”
“어떤 내용이 좋을까요?”
“긍정적이고 공감 가는 내용으로 합시다.”
메시지의 내용 탓인지 아니면 전파 송수신량을 안정적으로 공급했는지 스켈톤 웨이브는 가시적인 성과를 나타냈다.
“애들이 그러는데 전보다 훨씬 나아진 기분이래.”
하얀 가운 대신, 잿빛의 전투복 – 강화도 헌터가 입고 있던 – 을 걸친 우민희의 집무실 한 가운데엔 스켈톤 웨이브를 축소한 듯한 모델이 놓여 있었다.
“나도 한결 기분이 나아진 것 같기도 하고.”
발렌타인의 희생은 헛되지 않았다.
네크로폴리스는 가능성을 품고 있다.
어쩌면 우리가 상상하지도 못했던 커다란 가능성을.
그 대량의 전파가 다른 곳에 영향을 미쳤는지도 모르겠다.
개성.
침식된 북한의 도시에서 구난 신호가 날아왔다.
*
등대와 마지막으로 연락이 닿은 건 6개월 전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노이즈와 연결 불량으로 제대로 된 연락을 주고받지 못했다고 한다.
당시 파주 인근에 있었던 우민희는 수시로 헬기와 드론을 보내 등대 쪽 상황을 확인했지만 안타깝게도 생존자의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등대의 불을 밝히던 수백 명의 아이가 송두리째 사라진 것이다.
그 사건은 제주 균열이 소멸하기 전까지 최대급의 어웨이큰 손실로 기록됐다.
그런데 등대는 제주 정부에서도 야심 차게 밀어준 준전략급 정부 시설이다.
직접 확인해 봐서 알지만 거기엔 어웨이큰 아이들 이외에도 잘 무장한 병력과 충분히 숫자의 장비, 북한이 만든 강력한 방호물로 보호받고 있었다.
무장 병력의 숫자는 못해도 1개 중대는 충분히 넘었을 것이다.
거기다 가까운 곳엔 언제든 헬기 등으로 지원할 수 있는 우민희의 세력이 있었다.
인간만이 아니라 몬스터의 대대적인 공격을 받더라도 지원을 하고 수비를 할 여력이 있었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등대는 아무런 전조 없이 소식이 끊겼다.
“제주 쪽에서는 정호경의 배신을 의심했어.”
정호경은 제주 위원회라는 여전히 미스테리에 싸인 조직의 구성원이었다고 한다.
위원인지 의원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튼 그는 지금도 우리에게 민폐를 끼치고 있는 제주 행정부의 고위층이었는데 내부 파벌 싸움에 밀린 탓인지 위태로운 처지에 몰렸고 그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개성 등대 계획을 입안, 실행에 옮겼다.
등대가 밝혀진 후 몇 개월 동안 등대는 제 역할을 다했다.
우민희가 밝힌 결과에 의하면 서울 일대의 침식을 꽤 늦추는데 공헌했다고.
그 등대의 연락이 갑자기 끊겼을 때 우민희를 비롯한 상층부가 내부 변절을 의심한 건 합리적인 의심이다.
앞서 말한 것처럼 등대는 외부의 충격으로는 그리 삽시간에 깨어질 수 없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군인들이 배신할 가능성도 있긴 해. 하지만 거기에도 보험이 있지.”
등대에 있는 어웨이큰 소년들의 주임무는 단체로 파동을 일으켜 분출된 몬스터를 그쪽으로 모으는 것이지만 이중에도 제주 쪽에서 은밀한 사명을 받고 잠입한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빅홀엔 더 이상 못 들어가지만 전투 자체는 가능한 아이들이 있지. 개중엔 대인 경험이 있는 아이도 있고. 그런 아이를 다른 아이와 섞어서 유사시 군인 집단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 즉각 제압할 수 있게 했지.”
그러므로 군인들의 반란도 이유가 될 순 없다.
그런데 굳이 그런 희박한 경우의 수에 대비할 것도 없이 사방이 침식된 섬 같은 지역에서 군인들이 굳이 반란을 일으킬지는 의문이다.
그 외 가능성으로 조리사가 음식에 독을 탔다든지, 아니면 지금까지 발견된 적이 없는 신형 몬스터가 저항할 틈도 없이 등대를 쓸어버렸다든지 하는 많은 가설이 제기됐지만 증명된 건 하나도 없다.
등대의 연락은 갑자기 끊겼고 82번에 달하는 드론 정찰과 10번의 직접 수색에도 불구하고 생존자의 흔적은 찾을 수 없었다.
그들이 찾은 건 어느 한 교실에 고이 누여둔, 손을 가지런하게 모은 채 썩어가고 있는 시신들이 전부였다.
시체의 숫자가 등대 명부에 등록된 인원보다 적다는 것이 확인됐지만 제주 정부도 우민희도 등대에 대한 모든 희망을 잃은 상태였기에 추가적인 정찰 활동을 하지 않았다.
시체를 발견한 시점으로 마지막 교신이 이루어진 지 3개월이 지났기 때문이다.
이미 죽을 사람은 다 죽고 살아 있던 사람도 죽을 시간이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등대에서 교신 시도가 이루어졌다.
그 교신은 연결되지 않았지만 통신 장교들은 이구동성으로 그 전파가 등대에서 왔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그래서 사람을 좀 보내보려고.”
우민희도 변했다.
내게 감사함을 느낀 걸까.
예전 같으면 나한테는 이런 사실을 하나도 이야기 하지 않고 자기 사람만을 조용히 보냈을 텐데 말이다.
그러다 잘 안되면 날 부르겠지.
그녀다운 협박을 곁들여서 말이다.
“선배가 알아야 할 거 같아서 미리 말해주는 거야.”
확실히 전보다는 신뢰받는 느낌이다.
“내가 가보지.”
“선배가?”
우민희에게 인정받는 것은 고무적인 일이긴 하지만 내가 등대에 가려는 이유는 그와는 무관하다.
우리는 몬스터의 총공세를 앞두고 있다.
지금도 실시간으로 최신 정보를 습득하고 있지만 새로운 정보를 익힐 때마다 내 공백의 깊이를 느끼고 있다.
그러므로 이용할 수 있는 건 모두 이용해 보고 싶다.
등대에서 생존 반응이 생긴 것도 흥미롭긴 하지만 그 등대라는 집단이 어떻게 괴멸했고 사라졌는지 파보는 것도 다가올 전투에 대비한 좋은 경험이 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대는 강력한 구조물과 잘 훈련된 병력, 파동을 일으킬 수 있는 어웨이큰 집단을 가지고 있다.
혹 그 등대의 전멸에 어떤 인위적인, 지적인 설계가 있다면 다가올 전투에서 비슷한 방식으로 재현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응. 부탁할게. 직접 보고 싶어.”
내 부탁에 우민희는 별 고민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 붙여줄게. 조심히 다녀와.”
엉겁결에 결정됐고 또 시급을 요하는 일이다 보니 우민희 쪽 사람들하고만 작전을 나서게 됐다.
사실 북한이라는 곳이 오랫동안 쌓인 편견으로 막연히 멀어 보인다는 인식이 있는데 북한은 대단히 가까운 곳이다.
특히 개성은 서울에서 엎어지면 코가 닿을 곳이다.
한반도가 전쟁으로 분단되기 전, 38선 안에 개성이 포함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헬기를 타고 1시간.
실제 비행시간은 30분도 채 넘기지 않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다.
“몇 번을 왔다 갔지만, 소용이 없었죠.”
좌석 건너편엔 노곤한 인상의 군인이 총기를 든 채 아래 내려다보이는 우울한 회색의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그의 이름은 유성주.
인천 시절부터 우민희 아래에 있었던 수색팀의 대장이다.
“진즉에 전부 죽었어요. 1년 넘지 않았나요? 아니 10개월인가. 1년이나 10개월이나. 똑같은 거 아닙니까? 아마 구난 신호도 기계의 오작동이겠죠.”
그는 시작부터 이번 임무가 무의미하다는 생각을 몇 번이고 바깥으로 드러냈다.
굳이 신경 쓰지 않았다.
이번 작전은 그의 생각과 무관하게 내 경험과 판단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내 옆에는 은은한 안광을 눈동자에 머금고 있는 깡마른 사내가 십자가를 든 채 성호를 긋고 있다.
그의 이름은 박종복으로 감지 어웨이큰이면서 군인이라는 특별한 지위를 갖고 있다.
유성주와 같은 팀은 아니지만 우민희가 이번 임무를 위해 특별히 붙여준 인물이다.
그는 말 수가 극단적으로 적었다.
몇 번 말을 걸어 봤지만 단답형으로만 답할 뿐, 주로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읊조리는 등의 행동만을 반복했다.
5명의 전투원이 있지만 통성명만 했다.
전투원 외에는 군의관 하나가 멤버에 포함되어 있다.
임무 성격상 생존자가 발견되면 빠른 처치를 해야 하니 자연스럽게 멤버에 포함된 모양이다.
친하지 않아서인지, 아니면 내가 특수전 군인이 아닌 헌터라는 이질적인 존재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개성으로 가는 내내 헬기 안에서는 유성주의 투덜거림만 들릴 뿐, 다른 병사의 목소리는 듣기 어려웠다.
작전을 위해 약간의 친분은 만들어 두는 게 좋다는 주의지만 억지로 관계를 만드는 것도 그리 현명한 행동은 아닌지라 휴대폰을 통해 “벌집”의 설계도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천천히 살폈다.
내부 구조를 곱씹을수록 느끼는 건데, 우민희의 말대로 개성 등대는 한 번에 휩쓸릴 정도로 허술한 집단이 아니다.
갑자기 동시다발적으로 등대 안의 모든 인원에 대한 급습이 이루어졌다면 모를까, 한쪽을 완벽한 기습으로 전멸시켰다고 해도 다른 생존 집단이 얼마든지 살아서 구난 신호를 보낼 수 있는 구조다.
게다가 보다시피 개성과의 거리가 그리 먼 것도 아니고. 천지에 널린 인터폰이나 K-워키토키만 써도 바로 전파가 닿는 지점이다.
제주 정부가 정호경의 배신을 의심하는 것도 무리는 아닌 것이다.
“기계 오작동입니다. 무조건이에요.”
유성주는 계속해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정말로 가기 싫은 모양이다.
유성주에겐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가 가기 싫은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저건 뭡니까?”
헬기 주기장에 먼저 온 손님이 와 있다.
미국산 중형 헬기다.
내 예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저 헬기는 제주 정부의 것이다.
그런 헬기가 2대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