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90)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90화(390/46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390화
158. 벌집 (2)
“어떻게 할까요?”
조종사들이 묻는다.
“연락이나 해봅시다.”
사이가 안 좋을 뿐이지 같은 대한민국인이다.
뭔 대단한 보물을 찾으러 온 것도 아니고 생존신고를 받고 달려왔다.
저쪽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치지직–
저쪽에서 먼저 교신을 시도했다.
“안녕하세요?”
헬기 주기장 쪽을 보았다.
적어도 2기 이상의 스팅어 미사일을 든 병사들이 이쪽에 미사일을 겨누고 있다.
그건 우리를 미사일로 추락시키겠다는 게 아니라 사정이 있어서 헬기를 못 띄웠는데 문제가 생긴다면 바로 응사를 하겠다는 경고의 표시로 보인다.
조종석에 앉은 군인들에게 이 문제를 전담했다.
곧 서로의 신원이 확인됐다.
예상한대로 그들은 제주에서 온 군인들이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구난신호를 받고 여기에 출동했다고.
“저것들하고 엮여서 좋을 건 없습니다. 나가라고 하면 나가죠.”
늘 툴툴거리면 유성주다운 의견이지만 이번만큼은 전적으로 동의한다.
제주 놈들이 텃세를 부린다면 나가는 게 맞다.
굳이 상대할 필요는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안 그래도 사람이 좀 부족했는데 괜찮다면 좀 도와주시겠어요?”
목소리가 무미건조한 남성에서 활기찬 여성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얼핏 들어도 젊은 여자의 목소리다.
“실례지만 그쪽 책임자는 누구신가요?”
그녀가 물었다.
시종일관 헬기 안에서 쥐 죽은 듯 있던 군인들이 나를 응시했다.
뭐,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가 여기서 리더라는 건 인정하고 있는 모양.
마이크에 대고 대답했다.
“박규입니다.”
“박규?!”
“?”
“프로페서?!”
*
“남상희입니다. 라이트하우스 실종 사건 조사 TF 단장을 맡고 있죠.”
적절히 너저분한 차림, 헝클어진 머리, 태블릿을 향한 눈과 태블릿을 과할 정도로 조작하는 현란한 손놀림, 그에 비하여 별 깊이 없는 말들과 간혹가다 보이는 고급 시계와 장신구.
마치 나 유능한 커리어 우먼이라고 온몸을 통해 주장하는 듯한 여성이었다.
제주의 고위층이 그렇듯 그녀도 이제 20대 중반이었는데 본인은 밝히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위원이라고 부르는 걸 보니 확실해 보인다.
자기소개에서 말한 것처럼 그녀는 벌집, 그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하이브라고 불리는 이 시설에서 어웨이큰과 주류 인원의 흔적을 찾기 위해 왔다고 한다.
그간 이 문제는 제주 내에서도 늘 논란의 대상이었다고 한다.
우민희가 계속해서 조사를 하긴 했지만 그 조사 결과를 신뢰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고.
그러다가 제주 세력 일부가 강화도와 인천항에 포진한 상황에서 S.O.S 신호가 나왔고 제주 측은 제대로 된 본격적인 조사대를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막상 벌집을 탐사하려니 지나치게 구조가 복잡하고 고준위 침식이 진행된 상태에다 몬스터의 숫자가 지나치게 많아 조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캡슐은 또 어찌나 많은지. 진짜 벌집 같네요.”
잠시 생각한 후 남상희와 행동을 함께 하기로 했다.
“생존자도 없는게 굳이 저것들과 손을 잡을 필요가 있을까요?”
유성주가 또 다시 생존자에 대한 회의를 드러내지만 내 목적은 생존자가 아니다.
있으면 분명 좋겠지만 나도 근 1년 가까이 연락이 끊긴 시점에서 생존자가 남아 있다고 보지 않는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이 시설이 어떻게 파멸했느냐다.
남상희는 적어도 이 부분에 관해서는 나보다 더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교신이 끊기기 전에 우리는 정호경 씨에게 등대 시설의 폐쇄를 통보했죠. 정규 어웨이큰 숫자가 예상보다 빠르게 소모되면서 막말로 개나 소나 다 뽑아서 써야 할 상황이 왔거든요.”
남상희 옆에 서 있는 군복 입은 사내가 실실 웃으며 덧붙였다.
“군대도 그렇잖습니까? 옛날 같으면 방위로도 못 쓸 애들을 현역으로 굴렸잖아요?”
남상희에게 물었다.
“정호경씨는 어떻게 반응했나요?”
정호경이라는 남자를 어렴풋이 기억한다.
제주 특유의 권위의식을 갖고 있긴 했지만 본바탕은 나쁘지 않은 사람이었다.
소년다운 순수함이 있었고 나름의 비전을 실행하려는 의지도 있었다.
호들갑이 유난히 심하긴 하지만 아주 경우가 없는 사람은 아니었다.
“들어볼래요?”
남상희가 휴대폰을 흔들어 보였다.
고개를 끄덕이자 남상희는 휴대폰을 뒤지더니 이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정호경의 육성을 내게 들려주었다.
“이러지 마. 이게 내 전분 거 알잖아? 떠나기 전에 다 포기하고 양보했는데 이제 와서 이러기야? 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틀림없다.
이 목소리는 정호경의 것이다.
마지막에 와서야 날 헌터로 인정해 줬던.
“자폭하겠어.”
그의 마지막 육성은 전형적으로 극단에 내몰린 사람의 절박함과 자포자기를 품고 있었다.
남상희를 보았다.
“정호경이 이 시설을 파괴했다고 보고 있습니까?”
단 1초도 망설이지 않고 남상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99%요.”
글쎄다.
나는 기억한다.
아이들에 대한 정호경의 책임감은 진짜였다.
아무리 일이 안 풀려도 그렇지 그 오버액션을 하던 친구가 손바닥 뒤집듯 자신의 신념을 꺾을 것 같진 않다.
남상희가 태블릿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문제는 방식이지요.”
솔직히 말하면 이 대목에서 뭐랄까, 흥미가 빠르게 식었다.
내가 이곳에 오면서 내심 기대한 건 우리가 알지 못했던 신형 몬스터나, 아니면 장군 타입이라는 곧 상대할 주적의 지적 설계 패턴이다.
내부 붕괴설은 내가 알고 싶은 것도 아니고 보고 싶지도 않을 뿐더러, 정호경의 인간적인 일면을 눈으로 본 내겐 그다지 설득력이 없는 주장이다.
“유대위님 생각은 어떻습니까?”
조금 모양새가 빠지긴 하지만 여기서는 유성주의 도움을 빌리도록 하자.
이 친구는 헬기 타는 내내 하기 싫다고 노래를 부른 인간이니.
이왕 도망갈 거면 책임을 나눠 갖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런데 나이를 먹으면서 늘 느끼는 건, 좆같은 놈은 처음부터 끝까지 좆같다는 것이다.
“당연히 해야죠!”
유성주가 갑자기 두 눈을 반짝이며 열의를 드러냈다.
“네?”
어이가 없다는 눈으로 봤지만 눈치가 없는지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를 계속해서 해댄다.
“역시 그 인간이 뭔가 꾸몄구만.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습니다. 그 새끼. 사람 은근히 무시나 하고. 그 새끼가 여기서 어떻게 불쌍한 애들과 군인들을 죽였는지 꼭 보고 싶네요.”
그렇게 본격적인 탐사가 시작됐다.
유성주가 이곳에 10번에 걸친 탐사를 맡은 건 사실이었다.
그는 나보다 더 이 지역의 구조를 훤히 알고 있었고 캡슐이 있거나 몬스터에 장악당한 지형을 우회하는 법도 알고 있었다.
먼저 향한 곳은 통신실이다.
벌집 상층부에 설치된 큼지막한 위성 안테나를 통해 제주는 물론, 한반도 안 곳곳에 남겨진 정부 세력과 교신할 수 있는 시설이다.
깔끔했다.
폭발이나 총격전의 흔적도 없었고 아마 전 근무자가 남기고 갔을, 이제는 말라붙어 검은 테만이 남은 커피잔이 말라비틀어진 부식과 함께 탁자 한구석에 올려져 있었다.
“원래부터 이랬나요?”
남상희가 유성주에게 물었다.
유성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습니다.”
“잠깐만요.”
남상희가 통신 패널을 조작했는데 패널은 켜지지 않았다.
오랫동안 부재로 말미암아 전기 계통이 나가버린 것이다.
작정하고 준비한 사람답게 남상희는 당황하지 않고 사람을 보내 간이 발전기를 준비, 요란한 발전기 터빈 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재차 통신 패널을 가동했다.
“역시.”
남상희가 우리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누군가 고의적으로 통신을 끊은 흔적이 있네요.”
“구난 신호는 어떻게 보낸 겁니까?”
남상희가 대답했다.
“이틀 전에 이 지역에 뇌우가 기승을 부렸는데 그중 번개 한 가닥이 죽어 있던 통신 장비에 척수 반사 비슷한 걸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오랫동안 전원이 죽어 있는 상태에서 전기가 도니 아마도 비상 프로토콜로 내정됐던 구난 신호를 발신한 거죠.”
그제야 남상희의 얼굴에 기묘한 미열이 서린 걸 발견했다.
“계속해서 돌아봅시다. 유대위님.”
이유는 모르겠지만 남상희는 이 음습한 탐사에서 내가 느낄 수 없는 흥분과 희열을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다음으로 우리가 향한 곳은 시체가 발견된 곳이다.
그곳은 내가 잘 아는 곳이다.
모란동.
아이들이 살던 주거구다.
미라처럼 변한 아이들이 식당에 가지런히 손을 얹은 채 일정한 간격을 두고 누워 있었다.
구더기가 기어가며 남긴 자국이 지저분하게 널려 있는 걸 곁눈질로 보며 식당 밖으로 나왔다.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식당 안에서는 남상희와 유성주의 대화가 들려왔다.
“처음 발견할 때부터 이런 모습이었나요?”
“네. 그렇습니다.”
“김대위님. 잠깐 여기로 와 보시겠어요? 간단한 검시 부탁드릴게요. 사인이 뭔지만 알아봐 주세요.”
임무라는 건 영화처럼 긴장이나 스릴의 연속이 아니다.
임무의 대부분은 지루한 기다림, 자신과의 싸움으로 이루어진다.
목숨을 걸고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건 긴, 긴 임무 시간 중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뭐, 그 찰나의 순간에 대부분의 사상자가 발생하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말이다.
검시는 2시간을 훌쩍 넘겼다.
시체 악취를 몸에 단 채 남상희와 유성주가 식당에서 나왔다.
“독을 썼답니다.”
유성주가 보고했다.
“독요?”
“네. 애들한테 독을 먹인 겁니다. 그러니 어웨이큰 애들이 반항도 못하고 죽은 거 아니겠습니까?”
옆에 있던 김대위라는, 남상희 쪽 군의관이 옆에서 한마디 했다.
“강제로 먹인 것 같진 않습니다만.”
묻고 싶은 말은 더 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한가지 바람이 있다면 여기서 빨리 나오고 싶을 뿐이다.
남상희에겐 인간과의 대립과 갈등, 파멸이 분명 신선한 소재일지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식상하고 지루한 주제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미스터리는 역시 그거겠죠.”
우리가 다음으로 향한 곳은 “어른”들의 구역이다.
군인, 시설 기술자, 급식 담당 등이 있던.
그곳은 나도 잘 모르는 영역이다.
벌집에 있었을 때 그들을 제대로 본 적도 없거니와 그들과 딱히 어울린 적도 없었으니.
전투 흔적이 있었다.
시체는 찾을 수 없었지만 핏자국으로 보이는 시커먼 얼룩이 말라붙은 페인트처럼 벽면에 박혀 있었고 총탄 자국과 폭발한 파편이 여기저기 굴러다녔다.
“어떻게 제압한 걸까요?”
남상희는 내가 이 사건에 아무 흥미도 없다는 걸 알아차렸는지 유성주에게만 질문을 던졌다.
제삼자가 된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딱히 나서고 싶지 않은 환경이기도 하거니와 다른 사람 눈치를 보지 않고 좀 더 자유롭게 주변을 살필 수 있다는 점에서 말이다.
“······.”
뭔가 위화감이 느껴진다.
그 위화감이 뭔지는 잘 모르겠다.
인간 대 어웨이큰의 전투를 몇 차례 수행하긴 했지만 그러한 전투를 분석한 적은 거의 없었으니까.
위화감의 원인이 뭔지 생각하고 있자니 유성주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호경이 자기 따르는 어웨이큰 몇 명 데리고 가서 제압한 게 아닐까요? 아시다시피 어웨이큰 앞에서 군인들이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잖습니까?”
있을 수 있는 추측이다.
정호경은 모든 아이를 공평하게 대하지 않았지만 나름 친위대라고 할 만한 아이도 몇 명 두고 있었다.
제주에 앙심을 품은 정호경이 아이들을 속여서 꼬드기는 것도 환경상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까 정호경 위원이 자기를 따르는 어웨이큰을 이끌고 이곳을 급습, 군사 병력을 전부 처치했다는 이야기지요?”
“네. 그렇습니다. 위원님도 아실지 모르겠지만 제가 여기서 근무할 때는 정호경 씨와 별개로 연락하는 채널이 있었습니다”
아까부터 의심이 가긴 했는데 역시 유성주를 포함, 그의 팀원들은 과거 이곳에 근무한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가 이곳 지리를 잘 아는 건 비단 지난 10번의 탐사 때문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니 정호경에 대한 그의 적대감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그가 호감형은 아니라는 건 나 또한 직접 경험한 바니까.
이제 탐사의 결론은 막바지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 등대라는 시설은 정호경이라는 인물의 정치적 운명이 걸린 사업이었죠. 그것이 폐기되고 모든 게 무너질 것 같은 미래가 보이니 그 사람도 결국 다른 사람처럼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됐고 그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결과로 보여요.”
다른 병사들과 요원 앞에서 남상희가 브리핑식으로 간략하게 상황을 정리했다.
브리핑이 끝난 후 남상희가 유성주에게 물었다.
“자, 그럼 마지막 질문. 정호경은 어디에 있나요?”
그 물음엔 유성주도 잠시 주저했다.
뚜렷한 두려움이 그의 눈동자 위에 스치고 지나갔다.
그가 천천히 내게 걸어와 귀에 속삭였다.
“대, 대장님. 거긴 좀 대장님이 안내를······.”
그토록 자신만만하던 사람이 손을 경련이 일어난 것처럼 떨고 있다.
충격적인 뭔가가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정호경의 시체는 납으로 둘러싸인 방 안에 있었다.
나를 따르던 소년의 유품이 발견된 바로 그 방이다.
방 안은 칠흑처럼 어두웠다.
정호경의 시체는 그 어두운 방에, 식당에 누워 있던 아이들처럼 가지런히, 정자세로 누운 채 미라처럼 변해 있었다.
이 대목에서 누군가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겨우 시체 한 구가 누워 있는 방을 유성주 같은 베테랑이 왜 그렇게 두려워하는 거냐고.
약간의 조명을 더함으로써 의문은 해소된다.
몬스터가 있다.
방 안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몬스터가 미동도 없이 조용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다.
“······씨발.”
남상희가 처음으로 욕설을 입에 담았다.
그건 내게 딱히 중요한 건 아니다.
이미 끝난 이야기다.
내가 주목하는 건 정호경과 무수한 몬스터에 가려 보이지 않는 것들이다.
바로 벽면 곳곳에 새겨진 전투의 흔적이다.
일전에 왔을 때는 보지 못했던 것이다.
벌집 안엔 북한 시절 새겨진 총살 흔적은 있지만 이토록 치열한 전투의 흔적은 새겨진 적이 없다.
그러한 것들이 어른들이 있던 구역에서 납의 방까지 길게 이어져 있었다.
“정호경은 아이들과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거 같네요. 그게 우리의 결정에 대한 그의 항의였습니다.”
남상희가 카메라 앞에서 나름의 결론을 내놓는 동안 나는 곳곳에 남겨진 전투의 상흔을 살폈다.
납의 방으로 이어지는 거대 벽면 한쪽에 대규모 전투의 흔적이 있다.
총탄뿐만 아니라 대전차 화기, 심지어 헌터 무기까지 사용된 흔적이 있다.
전투에도 수많은 유형이 있다.
압도적인 전력으로 밀어붙이는 총공격, 팽팽한 양세력이 맞붙는 교전, 정찰을 겸한 가벼운 공세.
내 감이 맞는다면 여기서 벌어진 전투는 아마 절망적인 저항과 비슷한 유형이 아니었을까?
유성주와 남상희가 무시하는 급조되고 버려진 진지를 보면.
어웨이큰이 아무리 막강한 권능을 가졌다고 하나 그 어린아이들 상대로 이렇게까지 잘 준비되고 치열한 저항을 했을 것 같진 않다.
“······.”
탄흔이 새겨진 곳.
그 역방향을 본다.
아무것도 없다.
반사 역장의 흔적이 없다.
그렇다면 이들은 대체 무엇을 상대로 이렇게까지 치열한 전투를 벌인 것일까.
납의 방에서 서성거리는 동안 한 병사가 무전기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했다.
K-워키토키를 포함한 잡다한 전기기계는 장비 수리실에서 발견됐다고 한다.
“정호경이 단체로 압수를 한 것이겠죠. 외부로 연락을 못하게 하려고.”
K-워키토키 하나를 살펴보았다.
“저기.”
할 말이 있다.
하지만 남상희의 피로한 얼굴을 본 순간 말을 바꿨다.
“결론이 난 거 같으니 우리는 슬슬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세요.”
그녀는 싸늘한 눈으로 날 보며 차갑게 말했다.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모처럼 분위기도 좋았는데 그리 성급하게 떠날 필요가 있었습니까?”
유성주는 나름 남상희라는 실세와 접점을 찾은 게 좋았는지 아쉬움을 토로했다.
그에게 K-워키토키, 정확히는 케이스를 벗겨낸 기판을 보여주었다.
“음? 이게 뭡니까?”
그는 그 의미를 모르는 모양이다.
굳이 설명하지 않았다.
기판은 까맣게 타들어가 있었다.
마치, 몬스터가 드론을 허공에서 구워버리는 것처럼.
지나친 상상일지도 모르겠지만 상황을 재구성해보자.
정호경이 제주 정부와 다툰 건 사실이다.
그 과정에서 자폭을 언급한 것도 사실이다.
중요한 일은 그 뒤에 일어났다.
다수의 무전기가 일제히 고장을 일으킨다.
통신이 끊어졌다.
그리고 몬스터가 나타났다.
아마도 반사역장을 만들지 않는 타입의.
남겨진 사람들은 용감하게 싸웠고 죽었다.
정호경은 아이들과 함께 납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것이 내가 이해한 사건의 전말이다.
그로부터 3일 후. 남상희와의 연락이 두절됐다는 소식이 들려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