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93)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93화(393/46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393화
159. 망향 (3)
중국인들의 목적이 드러났다.
그들은 5천 명에 달하는 병사와 그 가족을 다시 중국으로 보내려 한다.
묘한 일이다.
그 고향이라는 곳에 가봐야 기다리는 건 회백색 죽음 말고는 없을 터인데.
아까 열람한 중국 기록에서도 침식 지대에서 살아남는 방법 같은 건 찾지 못했다.
그 우민희조차 균열 내부에서 살 생각을 했다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한 이유가 뭘까?
“아, 그리고 대단히 송구스러운 이야기긴 한데.”
장수영이 갑자기 화제를 바꿨다.
“처치해야 하는 몬스터 하나가 있어요.”
그 순간 나는 오랫동안 가지고 있던 중국인에 대한 경계심이 되살아나는 걸 느꼈지만 호랑이 아가리 안에서 정신을 차린다고 해서 뭐가 달라질까?
“프로페서 만이 해결할 수 있어요.”
처음부터 프로페서, 프로페서하고 사람 띄워주더니 다 속셈이 있었던 모양이다.
과거의 나라면 자초지종도 묻지 않고 단칼에 거절했을 것이다.
지금은 다르다.
“이쪽 사령부의 공적인 요구인가요?”
“아니오. 제 개인적인 부탁이에요.”
“개인적인 부탁?”
“네.”
사람의 눈을 보고,
“그렇다면 수영씨.”
“네.”
“도와주실 거죠?”
조금은 능글맞게 웃을 수 있게 됐다.
*
사실 내가 중국인의 요청을 받아들인 배경 중 하나가 나의 숨길 수 없는 병적인 호기심 때문이라는 건 부정하진 않겠다.
과거부터 한 번쯤 써보고 싶었다.
명성이 자자한 중국산 헌터 무기를 말이다.
중국인은 그들의 헌터 무기를 수렵구(狩獵具)라고 불렀다.
그중 하나가 지금 내 손에 있다.
“이게 그 추코누라는 겁니까?”
요약하자면 시야 조준형 3연발 폭발 볼트 발사 장치.
팔목에 차는 근미래적 형태의 발사기와 안구의 움직임을 감지하는 조준경 한 세트로 구성되어 있다.
“네. 그게 추코누예요. 마지막 남은 3벌 중 하나죠.”
자세한 스펙을 들어보니 확실히 돈을 많이 들인 느낌이 난다.
1kg 남짓한 초소형 로켓 하나하나가 반유도식으로 발사 직전 자체 내장된 컴퓨터로 순간적으로 궤도를 계산, 발사 이후엔 정해진 궤도를 향해 날아가는 형식을 취했다.
기술력이 부족해서 반유도식으로 만든 게 아니라 몬스터의 알려지지 않은 특수한 능력에 대응하기 위해 이런 식의 번거로운 구조를 만들었다고.
“후반기 수렵구는 다 이런 식이죠. 어떤 의미로 가장 정직한 형태의 발사 후 망각이라고 할까요?”
고글 형태의 조준경도 테스트해 보았다.
알아볼 수 없는 중국어가 거슬리긴 하지만 사용법은 직관적이었다.
전투기 파일럿이 사용하는 헬멧처럼 안구의 움직임에 따라 타겟을 인식한다.
장수영과 천영재를 번갈아 보자 동시에 둘의 얼굴에 네모 형태의 타겟 지시기가 나타났다.
“오.”
솔직히 조금은 놀랍다.
“어떤가요?”
중국인답게 장수영이 은근한 자부심이 섞인 어조로 묻지만 사실 내 생각은 조금은 부정적이다.
이 기술.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그 잘난 대국민 감시용 안면인식 카메라에서 따온 거 아닌가?
뭐,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좋은 구경거리다.
그중엔 내가 생각하지 못한 횡재도 있었다.
“이건 뭔가요?”
청룡언월도 같은 게 있다.
그것도 끝부분에 로켓이 달린.
중국에도 장기영 같은 기인이 있었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자니 장수영이 쓴웃음을 머금으며 설명했다.
“아, 그건 안 쓰는 무기예요.”
역시.
“어떤 무기죠?”
“네. 대형종 상대로 냉병기를 써보고자 만들어 본 건대······. 잘 안 됐죠.”
“왜 청룡도죠?”
“아실지 모르겠지만 우리 중국 헌터 사이에서 한때 청룡도가 일종의 패션처럼 유행한 적도 있고, 우리가 주로 쓰는 큰 칼보다는 저런 폴암류의 무기가 추진체를 달기 더 적당하지 않을까요?”
그렇게 말한 후 장수영은 슬그머니 문제의 무기를 구석으로 밀어버렸다.
헌터 무기 병기고에 들어올 때만 해도 은근한 자부심을 드러낸 그녀지만 이 무기만큼은 부끄러운 모양이다.
하긴 제정신이라면 이런 미친 무기를 만들고 쓸 생각을 할 놈은 아무도 없겠지.
“저기 죄송한데.”
“네.”
“이번 일이 끝나면 이 무기, 받아 가도 될까요?”
“네? 갑자기 이건 왜?”
“안 되나요?”
장수영이 방긋 웃었다.
“제발 가지고 가세요.”
“감사합니다.”
“그거 말고도 마음에 드는 거 하나 골라가세요.”
“추코누도요?”
“아니오. 그건 빼고요.”
“아잉.”
“?”
기습 애교가 통하지 않는 걸 확인한 직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병기고를 빠져나갔다.
신속한 판단이라고 생각한다.
*
어떤 집단은 그 안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실체가 잘 보이지 않는 법이다.
한때 북미에서 막강한 위세를 떨친 KKK단 같은 도저히 답이 안 나올 것 같던 비밀 단체가 실상은 어린이용 만화에서조차 거를 정도로 유치한 개념으로 무장하고 있다든가, 철의 장막 아래 초월적인 기술력으로 무장한 소련이 알고 보니 체제경쟁에서 패해 죽음 직전에 내몰린 환자였다든가.
중국군 잔당도 문제가 많은 조직이었다.
마화평이 밝혔다시피 이 조직은 하나의 완전 편성된 부대가 아닌 패잔병들의 비자발적 모임이다.
부대 숫자만큼의 파벌이 있다.
해병대는 해병대끼리, 육군은 육군끼리, 같은 해병대 안에서도 부대 단위로 또 파벌이 갈리고 바다에서 구출한 해군은 또 해군 함정 혹은 사령부 별로 또 따로 뭉치고.
단적으로 헌터만 보더라도 나를 이곳에 데리고 온 장수영은 중국 헌터 쪽에서도 상해쪽 파벌 출신인 반면, 청룡도를 휘두르는 바이토우는 북경 쪽 파벌 출신이라고 한다.
파벌이 다르면 협조하지 않는다.
교류도 없다.
심지어 같은 중국인인데 서로의 언어를 못 알아듣는 일까지 생기는 모양.
마화평이 이 집단의 수장이라고 하지만 강제력은 없다.
이렇게 진저리 나는 내부 갈등이 계속되다 보니 주전파도 화전파도 결국 본국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고 배를 준비하기 시작한 것이다.
장수영이 개인적으로 의뢰한 몬스터는 해안가에 자리 잡은 중소규모 선박 수리 업체들이 다수로 모여 있는 곳이었다.
곳곳에 배의 수리를 위한, 지붕이 있는 작은 선거(船渠)가 눈에 띄는데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의 그림자는 찾아볼 수 없다.
“아니, 헌터도 부대 단위로 있다던데 소형종 하나 못 잡아서 우리한테 도움을 요청하는 게 말이 됩니까?”
장수영이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고개를 숙인 채 그녀가 덧붙였다.
“헌터는 많지만 저걸 잡으려는 건 저밖에 없어요.”
장수영이 고개를 숙였다.
“······여기에 친구들이 있어요.”
그녀가 길가 한 구석을 가리켰다.
작은 돌로 만든 비석들이 있었다.
중국어 비슷한 기호가 적혀 있었다.
아마 중국어 부수만을 적어놓은 듯한 모양새.
파자 놀이하던 양반들이라면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친구요?”
장수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고향 친구들이죠.”
그녀가 은은히 빛나는, 동시에 서글픔을 품은 눈동자로 서해를 응시했다.
“모두 여기를 나가고 싶어했죠.”
이 진저리 나는 점령지에서 나가고 싶은 사람은 그녀만이 아니다.
모두가 칙칙하고 음울한, 적대적인 사람으로 가득 찬 이 땅을 나가고 싶어 했다.
마침 저기 보이는 선거 안에서 말끔한 세일링 요트 한 척이 있는 걸 발견했다.
돛이 달린 요트로 항해법만 알면 대량의 기름 없이도 바다를 오갈 수 있는 물건이었다.
그들은 장강을 통해, 한국군이 무너뜨린 샨사 댐을 지나 내륙 깊숙이 갈 계획을 세웠다.
계획은 완벽했다.
요트 상태는 매우 좋았고 당나라 군대 특성상 보안도 엉망이라 충분한 식량도 비축했다.
간단한 작업만 하면 이제 본국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데 선거 구석에 캡슐 하나가 있다는 걸 그들은 발견하지 못했다.
“하필이면 댄서 타입이었죠. 다른 타입이었다면 다들 무사히 빠져나올 수 있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이토록 큰 집단이 가까이 있는 댄서 타입 하나조차 처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어쩌면 이들이 이미 멸망한 고향만을 바라보는 건 여기서 어떤 희망도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러서인지도 모르겠다.
먼저 간단한 정찰을 했다.
하수인의 수도 적고 요새화도 덜 되었다.
바다의 염분이 몬스터의 활동을 느리게 한 것일까. 아니면 다른 사유로 침식이 느리게 진행된 것일까.
그대로 작업을 시작했다.
댄서 타입만큼 온도 차가 극명한 몬스터도 드물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는 손발도 쓸 수 없는 놈이지만 충분한 준비가 갖춰진 상태에서는 이보다 간편한 사냥감도 없다.
필요한 건 인간보다 빠르고 강한 몬스터의 반사역장 사거리 안으로 뛰어들 수 있는 용기다.
“우리끼리 해도 될 것 같습니다.”
장수영을 활용할 계획이 있었지만 굳이 그럴 필요는 없어 보인다.
솔직히 방해만 된다.
중국 헌터는 우리와 다른 교리를 채택했고 그들만의 룰에 따라 움직이니까.
가령 하수인을 상대할 때 우리는 하수인들을 끌어내서 숫자를 줄이는 방법을 즐겨 쓰지만 중국인들은 그런 거 없다.
하수인이 많으면 더 많은 헌터를 우겨 넣어 강대강으로 처리한다.
그들의 교리에 따르면 하수인은 몬스터의 경계 장치이므로 몬스터가 반응하기도 전에 하수인을 제압할 수 있다면 몬스터를 손쉽게 사냥할 수 있다고 한다.
뭐, 맞는 소리겠지.
오랫동안 반박되지 않은 걸 보면.
당연히 헌터 목숨이 파리 목숨이냐는 말이 나오긴 하는데 이에 대해 중국인들은 아래와 같이 반박했다.
“우리가 1초를 지체하는 동안 천 명의 동포가 죽어 나간다.”
그 말도 맞는 소리다.
중국에 퍼진 몬스터의 숫자는 한국에 비할 바가 아니니.
하지만 여기는 한국이다.
우리 또한 그들과 다르다.
탕! 타타탕!
신중하게 하수인이라는 몬스터의 외피를 깎아낸다.
몬스터가 100% 컨디션으로 공격하고 말고는 부차적인 문제다.
우리는 놈들이 최대 전력으로 임하리라는 걸 받아들이고 있으니까.
탕! 탕!
그렇게 하수인들을 제거하는 사전 작업을 하고 있자니 천영재가 한마디 했다.
“박 선배. 거기 봐. 갤러리가 생겼네?”
중국군이다.
좁은 바닥 아니랄까 봐 총성이 들리자 우르르 몰려 나왔다.
그중엔 우리가 매우 잘 아는 바이토우도 포함되어 있었다.
장수영에게 물었다.
“계속해도 관계없죠?”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탕! 탕!
유인해서 끌어낸 하수인을 처리하고 천영재에게 신호했다.
나 혼자서 돌입하겠다는 신호.
중국인이 자랑하는 헌터 병기를 써보고 싶다.
선거 안쪽, 회백색으로 물든 작은 영역 안에 댄서 타입이 미동도 없이 자리 잡고 있다.
녀석을 응시하자,
쿵!
놈도 나를 응시한다.
충격파의 잔향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녀석이 몸을 일으켰다.
즉시 뒤로 전속력으로 달려 나갔다.
그대로 추코누를 쓸 수도 있겠지만 바로 아래에 요트가 있다.
선거 밖으로 뛰쳐나오는 직후 놈이 칼날 같은 다리로 대지를 박차며 내 뒤를 바짝 따라왔다.
멀리서 지켜보던 중국인들의 아우성을 들으며 추코누를 조준했다.
삐이이이–
고글이 정확하게 몬스터의 몸통을 타격점으로 선정했다.
그대로 발사 버튼을 눌렀다.
치이이익—
버튼을 누른 직후 팔목에서 3개의 미사일이 거의 동시에 몬스터를 향해 발사됐다.
“······.”
문제가 발생했다.
미사일은 몬스터를 지나쳐 허공을 한 차례 휘젓는 궤도를 그린다.
볼 것도 없다.
불량이다.
이미 지나가 버린 얄팍한 희망에 목숨을 거는 대신 즉시 고글과 사출기를 벗어던지며 도끼를 꺼냈다.
스르릉-
아까 거기서 발사를 했었어야 했나.
요트가 부서지든 말든 거리가 있을 때 버튼을 눌렀어야 했나.
찰나의 순간 수많은 후회가 사고를 덮어오는 걸 느끼며 정면을 응시했다.
쉬이이익-
댄서 타입의 송곳 같은 앞발이 지체없이 날 향해 쇄도하고 있었다.
“박 선배!”
중국인들의 고함과 천영재의 다급한 외침이 들려온다.
그런데.
“······.”
댄서 타입이 이렇게 느렸었나?
전성기엔 온 감각을 곤두세워도 간신히 따라잡을 수 있었던 속도로 찔러 들어오던 놈의 공격이 이제는 눈으로 보고 반응할 수 있을 정도로 무뎌진 느낌이다.
뇌리를 잠식한 후회를 걷어버리고 증오의 불꽃에 몸을 맡겼다.
쉬이이익-
녀석의 송곳을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피해낸 후 관절 부위를 찍었다.
쩍!
놈의 팔 하나가 꺾이며 휘청거린다.
고통도 공포도 모르는 몬스터는 또 다른 팔을 날 향해 찔러 들어오지만 두 번째 공격은 내가 품은 의문에 확신을 더할 뿐이다.
쉬이이이익–
확실히 느려졌다.
도끼로 전달되는 감각도 전보다는 훨씬 무른 느낌.
순간 생각이 들었다.
다운그레이드라도 된 것일까?
더 이상 우리 올드스쿨 헌터가 주적이 아니라서?
아니면 우리보다는 지구라는 환경 자체에 더 잘 적응하기 위한 버전업이라도 한 것일까?
“······.”
아무래도 좋다.
쩍!
오늘을 살아남았다.
그리고.
쩍!
또 하나의 몬스터를 내 손으로 죽일 수 있다.
쩍!
이 감각은 나를 살아있게 만든다.
*
작은 사고가 있었지만 중국군과의 교섭은 성공적이었다.
원하는 것은 물론 생각지도 못한 보상을 얻었다.
장수영이 거듭 사과했다.
“정말로 죄송해요. 그게 거기서 고장이 날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제일 상태가 좋은 물건이었는데.”
순간 나쁜 생각이 들었지만 머릿속에 머물게 하진 않았다.
좋은 게 좋은 거다.
게다가 지금 우리 주변엔 중국인이 잔뜩 있다.
온몸을 화살로 쪼이는 듯한 시선의 세례.
그들이 떠드는 말 중에서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건 하나뿐이다.
“······프로페서.”
“프로페서······.”
“······프로페서···.”
웅성거림 속에서 한 사내가 운명처럼 모습을 드러냈다.
청룡도를 든 사내. 바이토우다.
중국 최강자라고도 알려진.
그가 청룡도를 어깨에 떡하니 걸쳐 놓은 채 성큼 걸음으로 내게 다가와 나를 적대적인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
아직도 안 끝난 건가.
중국인의 집념이란 건 악명이 높지.
그런데 나도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나 보다.
날 죽일 듯이 노려보던 바이토우가 갑자기 씨익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프로페서!”
잠시 사고가 멈췄다.
이 사내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다.
뒤늦게 천영재가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자 비로소 나는 이 친구가 내게 호의를 품고 있다는 걸 발견했다.
손을 마주 잡았다.
중국인 헌터가 호탕하게 웃으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멋지다 해!”
적어도 이 양반이 통이 크다는 건 알겠다.
리얼돌과 묶여 종일 방치된 원한을 그토록 가볍게 털어낸 걸 보면 말이다.
아니, 어쩌면 같은 적을 상대로 숱하게 목숨을 걸었던 동류로서의 정일지도 모르겠지.
내가 바이토우를 살려준 것도 그러한 정에 이끌려서다.
어떤 의미로 우리는 몬스터에 대한 증오라는 같은 고향을 가진 동향인이니.
중국인들의 배웅 속에서 우리는 몰락해 가는 집단을 떠났다.
이튿날, 서울 북부에 대규모 몬스터 무리가 관측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