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395)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395화(395/46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395화
160. 내일 (2)
칠흑 같은 어둠 속엔 간신히 윤곽을 구분할 수 있는 희미한 실루엣이 있다.
우리 세계의 창조자 멜론 마스크다.
그에게 먼저 사과를 하고 싶다.
그의 행동을 히스테리라고 말한 것을.
어떤 의미에서 그는 모든 인류 중 가장 위험한 환경에 처한 사람이다.
물론 그의 우주 방공호에 약탈자나 몬스터가 들어올 일은 없다.
하지만 상상해 보자.
전쟁 전 어느 누구보다 화려하고 사치스럽고 성공 그 자체와 동일시되던 삶을 살았던 사내가 이제는 좁디좁은 밀폐된, 마치 감옥 같은 곳에 4년이나 갇혀서 산다는 걸.
해치를 열면 영하 -270.4도의 온도를 가진, 우주 방사선으로 가득 찬 지구 밖의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흔한 새소리 하나 들을 수 없고 비나 눈, 흘러가는 구름 같은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것도 없다.
지구로 돌아갈 수단이 있지만 목숨을 걸어야 하고 그 확률은 매우 희박하다.
무엇보다 그의 가장 큰 고통은 사람을 만날 수 없다는 것이리라.
인터넷에서 만남이 그의 영혼이 고갈되는 걸 막아줬지만 목숨을 건다면 어떻게든 타인과 접촉할 수 있는 우리와 달리 멜론 마스크는 타인을 만나기 위해서는 38만km라는 거리를 건너와야 한다.
유일한 동반자인 범피가 죽었다.
그것이 뭐였든 간에 간간이 위태로워 보였던 멜론 마스크의 마음을 지탱해 준 기둥이라는 부정할 수 없다.
이제 범피는 죽었고 멜론의 마음도 무너졌다.
하지만 그가 무너졌다고 해서 그가 만든 세상 또한 무너진다는 건 남겨진 자에게 너무나 가혹한 일이다.
어둠 속에 희미하게 떠오른 실루엣이 가볍게 움직였다.
MELON_MASK : 무슨 일이지?
즉시 타이핑을 쳤다.
SKELTON : 비바! 아포칼립스! 폐쇄를 철회해달라고.
MELON_MASK : 내가 왜?
SKELTON : 왜라니? 네가 만든 거잖아.
SKELTON : 네 덕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구원을 얻었는 줄 아냐?
SKELTON : 나 또한 너에게 구원받은 사람 중 하나다.
SKELTON : 멜론. 너는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위대한 사람이다.
MELON_MASK : 첫 번째는 누구지?
SKELTON : 네가 잘 아는 사람.
MELON_MASK : 예수 말인가.
땡~ 이라는 말을 타이핑 하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작은 희망을 느꼈다.
멜론 마스크가 대화에 응하고 있다.
역시 멜론은 나를 인정한 모양이다.
뭐, 내 입으로 말하기 조금 남사스럽긴 하지만 그 많은 비바리언 중 나 정도의 인물은 그리 흔친 않을 것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스켈톤은 프로페서라 불린 사람이니까.
그렇게 생각하며 다음 말을 준비하고 있을 때였다.
실루엣이 갑자기 일어섰고 화면 전체가 분간할 수 없는 어둠으로 뒤덮였다.
MELON_MASK : 폐쇄는 예정대로 일주일 뒤에 진행한다.
SKELTON : ?
[ MELON_MASK님이 퇴장하셨습니다. ]대화가 끊겼다.
“······.”
뭐지.
뭐가 문제였지.
문제의 원인을 차분하게 파악하고 있자니 또 다른 메시지가 떠올랐다.
VIVA_BOT014 : 스켈톤님······.
멜론 마스크 전용 대화방에 비바봇도 있었던 모양이다.
VIVA_BOT014 : 이제 어떻게 해요······?
멜론과 달리 실루엣조차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녀가 느꼈을 당황과 실망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일말의 기대를 품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의 생명줄이기도 한 비바! 아포칼립스!의 폐쇄를 이 박규가 막아줄 거라는.
그런데 멜론은 내가 채 손을 뻗기도 전에 자리를 떠났다.
비바봇이 보기엔 이 일련의 에피소드에서 어떠한 희망도 찾을 수 없었겠지.
하지만 나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아니, 처음부터 잘될 거로 생각하지 않았다.
오히려 나는 이번 대담에서 긍정적인 신호를 보았다.
SKELTON : 비바봇님.
VIVA_BOT014 : 네.
SKELTON : 그거 아십니까?
VIVA_BOT014 : 뭐, 뭐요?
“······.”
타닥타닥
SKELTON : (스켈톤 격언) 자살한다고 동네방네 다 떠드는 새끼치고 정작 죽는 놈 없다.
VIVA_BOT014 : ??
진짜 자살할 놈이면 어디 가서 말도 안 하고 조용히 죽는다.
멜론 마스크의 심리도 그와 같다.
범피의 죽음으로 그가, 그의 말마따나 영혼이 끊어질 것 같은 슬픔과 삶의 의미를 송두리째 상실했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최고 관리자 권한으로 우리 게시판의 숨통을 끊어놨을 것이다.
그런데 멜론 마스크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그는 유예기간을 줬다.
왜?
더 이상 세상 살고 싶지 않은 놈이 뭔 격식을 차리고 싶을까?
지구에 있을 때조차 단 한 번도 이타적인 적이 없었던 놈인데.
그는 원하고 있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그의 외로운 영혼을 달래 줄, 꺼져가는 생의 의지의 불꽃을 태워 줄 뭔가를 요구하는 것이다.
나와 대화를 응하는 장면에서 나는 멜론의 욕구를 읽었다.
내가 뭐 대단한 독심술사니, 심리학의 대가라서 그런 게 아니다.
단지 똑같은, 고독하고 외로운 사람이라서.
공명(共鳴)할 뿐이다.
SKELTON : 대화의 여지는 있습니다.
SKELTON : 조금 요구사항이 높긴 하지만 말입니다.
VIVA_BOT014 : 그 요구사항이 뭔가요?
SKELTON : 🙂
VIVA_BOT014 : ??
문제는 나도 그 요구사항이 뭔지 모른다는 거지만 굳이 내가 전부 다 알 필요가 있을까?
우리는 인터넷이다.
SKELTON : 머리를 맞대보죠.
우리는 하나가 아니다.
SKELTON : 그걸 위한 인터넷 아닙니까?
*
사실 내 본심을 이야기하자면 이번 기회를 나 혼자 독점, 스켈톤이라는 이미 자리를 굳힌 네임드를 멜론 마스크와 버금가는 불멸의 위치로 올려놓고 싶었다.
트웰브스퀘어와 스켈톤.
두 개의 신화를 가진 존재가 된다는 이야기다.
내가 방공호 안에 있었다면 그런 여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나에겐 지켜야 할 것이 있다.
비바! 아포칼립스! 만큼이나 중요한 내 사명이 있다.
세상에서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지 않기에 옷을 벗고 나왔지만 지금은 다시 한번 세상이 내게 기회를 줬다.
비바! 아포칼립스!도 분명 나에겐 중요하지만 이 기회를 포기하진 않겠다.
피할 수 없는 전투를 앞둔 지금, 내 일상은 점검과 준비의 연속이다.
“괜찮아? 기분은 어때?”
장군 타입의 영향 아래 고통 받는 정규 어웨이큰의 상태를 체크하고, 그들을 위한 신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는 지를 테스트 했다.
“많이 좋아졌어요. 대장. 그런데 휴대폰 전파 발생 장치는 너무 무거운 감이 있네요.”
“이 부분은 좀 더 엔지니어들과 상의해 볼게. 정 급하면 아니면 힘 꽤나 쓰는 사람을 붙여줄 수도 있고.”
어떤 의미로 우리보다 더 중요한, 전선 그 자체를 형성할 군인에 대한 교육은 빼놓을 수 없다.
“몬스터 상대로 포격을 하실 때 조금 비껴서 쏘시는 게 좋습니다.”
멍텅구리 전차를 조종하는 병사들에겐 내가 중국과 파주 균열에서 익힌 나름의 노하우를 전수했다.
“몬스터라는 게 이론적으로 검증할 방법이 없어서 100% 정확한 건 아닙니다만, 이쪽이 상대적으로 포신에 덜 피해를 줄 수 있다고 하더군요. 아시다시피 멍텅구리 전차라고 해도 포신에 반사 포탄을 직격으로 맞으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강단에 선 적이 없는 베테랑 헌터의 신입 헌터 교육을 관전하는 것도 하루 일과 중 하나다.
“사람과 사람의 전투와 다릅니다. 몬스터는 자기를 쳐다본다고 해서 바로 총부리를 들어서 쏘진 않습니다. 여유를 가지되, 확실하게 행동해야 합니다. 이것도 몬스터 유형에 따라 다르지만, 우리가 상대한 소형종 중에 인간을 타겟으로 인식하여 선제 공격하는 유형은 거의 없습니다.”
강단에 선 베테랑 헌터 심형도 – 더 이상 학원 헌터라고 부르지 않겠다 – 가 뒤쪽에 선 내 눈치를 힐끗 본다.
조용히, 남들 눈에 보이지 않도록 엄지를 세웠다.
연구소에서는 우민희가 거느린 연구원과 정보를 교환한다.
“캡슐에서 어떤 몬스터가 나올지 알 수 있는 기술요? 글쎄 그건 기술이 아니라 능력의 영역 아닐까요? 감이 좋은 어웨이큰이 캡슐에 접근, 손을 대고 캡슐 내부를 느끼는 식으로 출현할 몬스터의 종류를 예상하는 걸로 압니다. 정확도는 50% 정도고요.”
“익스큐셔너 타입. 균열 내부에서 보고가 됐죠. 자세한 정보가 제주에서 넘어온 적은 없습니다. 제주 쪽은 인트라넷을 쓰는데 인트라넷 밖으로 정보를 유출하는 걸 극도로 꺼리거든요.”
“균열 안에 수소폭탄을 터뜨린다고 해서 뭐, 달라지는 건 없습니다. 서울에도 몇 발 떨어졌지만 지구 상대로 핵폭탄을 떨어뜨린다고 가정해 보죠. 지구가 아파합니까? 무의미한 짓입니다.”
공학 연구소에서는 엔지니어들과 다가올 전투에 관한 새로운 방식에 관해 의논한다.
“어떻습니까? 전파 통신이 위험할 수도 있다는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한 결과, 무전기 발명 이전에 쓰던 걸 현대적으로 재해석해서 만들어 보았습니다.”
“이건 뭔가요······?”
“무전기 발명 전에 쓰던 세마포어 통신기라는 물건에서 영감을 얻어 만들어 봤습니다.”
엔지니어들은 여러 개의 관절이 달려 여러 형태로 변형할 수 있는 거대한 통신기를 내게 보여줬다.
“이걸 움직여서 신호를 전달하는 거죠.”
“흠. 어떤 의미인지는 알겠습니다. 일종의 시각 신호기군요. 그런데 이걸 어디에 달죠? 잘 보이는 곳에 설치해야 멀리서도 잘 보이지 않겠습니까?”
엔지니어들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더 호프 옥상에 달 겁니다.”
“더 호프요······?”
“네. 좀 기울어지긴 했지만 더 호프가 여기서 제일 높고 잘 보이는 건물 아니겠습니까?”
엔지니어들이 빙그레 웃었다.
“물론 밤에도 잘 볼 수 있게 크고 화려한 조명을 달아 놓겠습니다.”
“아니, 그런 문제가 아니라······.”
“왜요? 더 호프가 무너지기라도 할 것 같습니까?”
“······.”
“뭐, 더 호프가 무너진다면 서울도 무너지겠죠. 신앙이란 게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버팀목이 사라지면 신앙도 사라지는 거죠.”
그 외에도 해야 할 일은 산더미처럼 있다.
하루 일과 대부분을 차지하는 건 방어선의 점검이다.
이건 계속해야 한다.
할 때마다 개선점이 나오지 않더라도 꾸준히 해야 한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일 일과를 수행하고 숙소로 돌아오면 빠르면 자정 경, 늦으면 새벽 1시다.
인터넷을 할 수 있는 시간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새벽 4시에 다시 새로운 일과가 시작되기 때문이다.
밀려오는 졸음을 참으며 그동안 온 메시지를 읽어 본다.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스켈톤! 보면 연락.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이번엔 멜론 걔가 뭘 해보게 하는 게 어떨까? 그 자식 예전 행보 보면 지가 나대는 거 좋아했지 남이 나대는 거 보고 만족하는 사람은 아니었잖아? 바쁜 거 알지만 갑자기 생각나서. -다정이가-
foxgames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전에 한 이야기 말인데. 서울에 가더라도 평범하게 가긴 싫거든. 알다시피 내가 다른 사람보다는 나은 구석이 있잖아? 네가 좀 윗선에 말해서 잘 말해 주면 안 될까?
CrunchRoll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이엠지저스한테 이야기는 해봤어. 그런데 그 자식.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단 말이야.
mmmmmmmmm™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요즘 영희씨랑 썸 타는데 말이야. 이게 그런 느낌이거든? 잘 될 것 같은데 계속해서 잘 안 되는. 간질간질한? 이런 소재는 어떨까? 멜론이 좋아할까?
Dies_irae69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어디서 뭐 하는지 모르겠지만 슬슬 우리 집단에 합류하는 건 어때? 듣자 하니 서울도 이제 끝장난다고 하던데.
“······.”
그리 나쁜 인터넷 인생을 산 것 같진 않다.
내 재치와 재미가 인기에 한몫한 것도 사실이지만 그만큼 많이 베풀었으니까.
은은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나에게 처음으로 가슴이 뭉클해지는 감각을 선사했던 소중한 아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SKELTON : (스켈톤 ㅇㅅㅇ) 방금 메시지를 확인했지만, 착한 아이라면 지금쯤 자고 있겠지?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착한 아이 아니거든요~ 🙁
SKELTON : 웁스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허걱스!
SKELTON : ㅎㅎ.. 무슨 일이야?
세안 대신 비눗물을 적신 헝겊과 물을 적신 헝겊으로 얼굴을 닦으며 졸려가는 눈으로 모니터를 확인했다.
잠시 후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스켈톤이 말한 거 곰곰이 생각해 봤거든. 멜론 마스크 그 찐따 보이가 해피해질 수 있는 방법을?
SKELTON : 좋은 방법이라도 있어?
머리를 맞댄다.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범피 말이야.
SKELTON : 범피?
생각을 듣는다.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걔 여전히 그 정거장에 있을 거 아냐? 걔를 다시 지구로 보내는 건 어떨까?
SKELTON : ?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우주에서 죽었지만 적어도 시체는 원래 있던 고향으로 보내주는 거지.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걔, 남아메리카 정글 출신이잖아?
COOKIEMONSTER1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쥬시- 한 과일 많은.
SKELTON : !!
이러한 생각들을 모으고 또 다듬는다.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말한 그대로야. 스켈톤이 차력쇼 하는 것도 좋지만 말이야. 이번 만큼은 멜론 그 관종이 뭔가 해주는 게 낫지 않나 싶어서.
Defender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걔 자기가 주인공이 아니면 못 참는 성격이잖아? 그 더러운 성질머리가 우주에 갔다고 해서 고쳐졌겠냐고~?
그리고 전달한다.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네? 범피의 시신을 멜론 마스크님이 직접 지구로 보내는 내용으로 라이브! 아포칼립스!를 해보자고요?
잘되지 않을 수도 있다.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니, 그걸 어떻게 하나요. 로켓이라도 태워야 해요? 당장 멜론도 자기가 탈 로켓을 못 믿어서 저러고 있는데.
다른 의견이 있을 수도 있다.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실지 모르겠지만 멜론은 달과 비슷한 거리에 있어요······.
이 다른 의견이야말로 나는 인터넷의 순기능이라 생각한다.
다른 생각들이 있다면, 현실보다 더 간편하고 빠르고 또 지역과 언어에 구애받지 않고 다시 조율할 수 있는 것이 우리 세상을 처음으로 만든 사람의 진정한 의도였을 테니.
SKELTON : 영어 게시판에 전문가 있지 않나요? 의견을 구하는 거죠. 생각을 교환하는 거죠.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비바봇 회의) 잘······ 될까요?
SKELTON : (스켈톤 눈반짝) 해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