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01)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401화(401/46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401화
163. 무리 (1)
3주 차에 접어들었다.
특별한 변화는 없다.
몬스터가 떼 지어 오면 우리는 파괴하고, 다음을 준비한다.
병사들은 노련해졌다.
시민 또한 점점 몬스터에게 공격당한다는 상황에 익숙해졌다.
전방에서는 보급형 헌터 장비 – 몬스터 킬러에 관한 교습이 이어지고 있다.
“이 장비에 든 특수 장약은 여간해서는 반응이 일어나지 않는 둔감 장약인지라 이렇게 꽂을대로 힘껏 피스톤 운동을, 해 가지고! 마찰을 일으켜서! 헉헉! 시발. 보다시피 시발! 개 빡셉니다!”
몬스터 킬러는 RPG라 불리는 대전차로켓을 몬스터용으로 개조한 물건으로 우리가 쓰는 헌터 장비와 달리 고가의 분리 장약을 넣을 수 없기에 인위적으로 꽂을대라 불리는 막대로 화약을 휘저어 반응성을 만들어 내는 조잡한 장비다.
2차 대전에 흥미와 조예를 가진 김병철은 그것이 현대판 판처 파우스트라고 이야기하는데 나로서는 그다지 중요한 개념이 아닌지라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러들었다.
두 가지 변화가 감지됐다.
하나는 몬스터의 이동 방향이다.
놈들은 사방으로 몬스터 무리를 보내고 있다.
일부는 경기 북부를 가로질러 북한 쪽에 들어가기도 했고 또 일부는 임진강 유역에서 길을 잃어버린 듯 험준한 골짜기와 거칠고 깊은 물살 사이에서 헤매다가 금빛 입자로 변하며 소멸했다.
몬스터 무리 하나가 군단파 영역에 진입해 군단파를 발칵 뒤집어 놓았을 때 군단파 출신과 정부군 출신이 오랜만에 합심하여 박장대소를 터뜨렸지만 그 왁자지껄한 웃음 속에서도 나는 일말의 불길함을 느끼고 있었다.
어쩌면 이 이해할 수 없는 일련의 행동이 장군 타입이라는 몬스터가 수행하는 사고 활동의 일환이 아닌가 하는.
한때 바둑이라는, 인간만의 전유물로 여겨졌던 지적 유희에서 인간과 기계가 세계적인 관심을 받으며 맞붙은 적이 있다.
바둑 각계엔 그동안 인정받고, 혁혁한 공적을 세운 사람들이 있었지만 그들 또한 이구동성으로 이야기했다.
저 기계라는 생소한 적은 그들이 단 한 번도 생각해 보지 못한, 이해할 수 없는 방식으로 대국에 임한다고.
그 인간 대 기계의 신화에서 위대한 한국인이 기계라는 적에게 인간만이 보여줄 수 있는 통렬한 한 수를 날려 승리를 거뒀지만 최종 승자는 기계였다.
인간은 전혀 다른 방식의 바둑을 구사하는 기계에게 패한 것이다.
몬스터가 현재 보여주는 패턴도 그와 비슷하다고 본다.
놈들은 우리와 같은 구조로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는 후술할 두 번째 변화에 비하면 그리 치명적인 문제는 아니다.
기온이 떨어지고 있다.
영상과 영하를 넘나들던 기온이 연말이 다가오면서 이제 평균 기온 영하 10도까지 떨어졌다.
이른 새벽엔 영하 15도까지 떨어지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생명이라는 건 단순하다.
너무 높은 온도에서도 살지 못하고 너무 낮은 온도에서도 살지 못한다.
더위가 추위보다 불쾌감이 더 강한 인상이 있지만 보다 치명적인 건 언제나 추위였다.
기온이 급강하하면서 방어선 전체에 비상이 걸렸다.
발전소가 하얀 연기를 연신 내뿜으며 24시간 발전기를 돌리고 있지만 필요한 전력 수요를 맞추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방어선 곳곳에서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병원에는 동상을 입은 환자가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환자 대부분은 동상자라기보다는 동상 호소인이었지만 부쩍 추워진 날씨가 사기에 영향을 미친 건 확실했다.
실제로 병사와 시민 가운데서는 다리 주변만 지키는 것만으로 충분한데 굳이 강변까지 그 많은 병력을 집어넣어서 지켜야 하냐는 여론이 형성됐다.
나는 이러한 여론이 기온의 하강 때문만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갑작스러운 추위가 찾아온 지 3일 만에 기온은 다시 전처럼 견딜 만한 온도까지 올라왔지만 강변 투입에 관한 부정적인 여론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강변에서 놀고 있는 병사들을 불러들여 하루가 멀다하고 시비를 걸어오는 광신도가 설치는 동쪽 외곽에 재배치하라는 요구가 빗발쳤고 결국 이 문제가 회의 안건에 올라왔다.
이 문제에 관한 내 생각은 확고하다.
몬스터가 물을 기피하는 성향이 있는 건 사실이지만 놈들은 예측할 수 없다.
놈들이 물에 들어갔을 때 놈들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악영향이 있는지 우리는 알지 못한다.
만에 하나 놈들이 다리가 아닌 강바닥으로 한강을 건너 강 안에 모습을 드러낼 경우, 우리는 커다란 대가를 치러야 한다.
“병력을 뺄 순 없습니다.”
그렇기에 이 부분만큼은 타협하지 않으려 했다.
병사 대신 자원병을 투입하는 한이 있더라도 강변의 수비를 늦춰서는 안 된다.
강변을 잃는 순간, 우리는 다리를 잃게 될 것이고 다리를 잃으면 우리는 도시 전체를 잃게 된다.
나의 확고한 태도로 인해 강변 방어선은 유지됐지만 이번 사태로 나는 도시에 드리운 또 하나의 불길한 징조를 알 수 있었다.
사람들의 의지가 꺾이고 있었다.
긴장이 지속되면 긴장이 아니라는 말처럼 그들은 더 이상 현재 상황에 위기 의식을 느끼지 못했고 따라서 지금처럼 비상 체제를 가동해야 하는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어쩔 수가 없다.
전쟁이란 건 동화나 영화에 나오는 것처럼 한 번의 큰 싸움으로 해결되는 게 아니다.
대부분의 전쟁은 길고 지루하고 넌더리가 나는 형태를 취한다.
몬스터 전쟁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북경 전선 같은 예외도 있지만 대부분의 몬스터 전쟁은 몬스터가 그저 일정 수의 몬스터를 일정 영역에 밀어 넣는 것만으로 끝났다.
그 패배의 대부분은 병력이 소멸해서가 아니라 싸우려는 인간의 의지가 바닥난 결과다.
인도가 그랬고 북경 상실 후 중국이 그러했다.
어떤 냉소적인 몬스터 학자의 말마따나 “마치 근면한 농부가 살충제를 주기적으로 뿌리는 것”만으로 인간은 그들의 영역에서 축출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승리란 어떤 것일까?
어려운 질문이다.
학자들은 세 가지 조건을 들지만 나는 두 가지 조건을 든다.
그건 바로 주변에 더 이상 무리 지은 몬스터가 돌아다니지 않고, 또 그 몬스터를 뿜어낸 균열 주위에 소수의 몬스터만 발견될 때.
균열의 힘이 빠졌을 때다.
언젠가 다시 회복해서 대량의 몬스터를 분출하겠지만 당분간의 평화는 주어진다.
1년, 2년, 어쩌면 수개월뿐인 평화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여전히 균열 주위엔 1천 마리 이상의 몬스터가 득실거리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주의를 늦춰서는 안 된다.
긴장을 늦춰서도 안 된다.
하지만 인간의 인내라는 건 가끔은 놀랄 정도로 빠르게 소모되곤 한다.
대규모 시위가 일어났다.
새로운 서울이 만들어진 지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시위는 그러나 1시간을 채 넘기지 못했다.
우리가 강압적인 방법을 써서가 아니다.
북쪽에서 기이한 울림이 들려왔다.
수천 대에 달하는 무선장비의 파손이 보고됐다.
동시에 고고도에서 몬스터 경로를 추적하던 다수의 드론과의 교신이 끊겼다.
더 이상 인간끼리 한심한 다툼을 벌일 여유는 없다.
본대가 오고 있다.
*
몬스터는 우리가 잘 알지 못하고 또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인 만큼, 놈들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놈들을 더 자세히, 잘 관찰해야 한다.
내가 오랫동안 고수한 대 몬스터 전쟁의 금과옥조다.
하지만 내가 만나 본 여러 지휘관들은 이러한 정찰 활동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정찰의 가능성을 폄훼하려는 게 아니라 몬스터의 일반 행동 방식이 이미 잘 알려졌는데 왜 굳이 위험을 무릅쓰냐는 태도다.
실제로 위험을 동반한 정찰에서 새로운 타입이나 패턴을 찾는 일은 드물다.
몬스터 장악 지대에서 작전 활동을 하는 게 매우 위험한 일이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그 지휘관들 말대로 이득을 볼 확률도 현저히 낮다.
하지만 그럼에도 나는 꾸준하게, 설령 손실이 날 가능성이 있더라도 우리의 적을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찰대 하나가 실종됐다.
정규 어웨이큰 한 명을 포함한, 베테랑으로 이루어진 팀이었다.
목표는 신규 유선 관측 장비의 설치 및 일대의 정찰 활동으로 예상 복귀 시간을 10시간이나 넘겼는데도 최소한의 연락조차 없다.
그들에겐 무선장비는 물론, 무선장비가 신형 몬스터, 스크리머 타입의 공격에 의해 파괴될 경우에 대비하여 조명탄 등 가시적인 신호 수단을 지급했는데 어느 쪽으로도 연락이 없다는 사실은 그들의 신변에 심각한 문제가 벌어졌다는 걸 암시했다.
“역시, 이 상황에서 정찰대를 보낸 건 패착인가.”
곽상훈 대령은 대령 계급장에도 불구하고 대장 계급장을 단 김병철과 거의 동급으로 취급받는 존재였다.
그는 정부군이다.
대한민국 정부가 무너지자 앞다투어 셀프 진급을 한 군단파와 다르게 정부군 군인은 병적일 정도로 진급이라는 행위를 멀리했다.
어떤 종교의 근본주의자마냥 그들은 대한민국 정부가 건재하던 시절에 받았던 계급을 마치 그들에게 정해진 운명인 것처럼 고집했다.
정부군 장교 중 최선임인 곽상훈도 그러한 계급 순수주의자 중 하나였다.
“대단히 안타까운 일이지만, 선행 정찰대는 실종 처리를 하고 해당 작전은 중지하는 쪽이 옳을 듯싶습니다.”
정부군은 지금까진 적극적으로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지만, 가시적인 위험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본격적으로 회의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여럿이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군단파와 겸상을 하기 싫어서일 것이다.
여전히 정부군은 군단파 쪽 군인을 배신자 심하게는 용병 정도로 생각하고 있고 당연한 일이지만 김병철에 대해서는 일말의 존중심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들은 김병철을 보고 경례하지 않는다.
군단파 군인들도 그들을 보고 무시하긴 하지만 말이다.
정부군의 애국심과 충성심은 높이 사는 바지만, 개인적으로는 군단파 쪽과 더 말이 통한다.
“대장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김병철만 해도 그렇다.
“······연락이 안 됐을 뿐, 살아 있을 가능성이 아주 없다고는 할 수 없지 않나?”
사물을 바라보는 생각이 비슷하다.
이유는 뻔하다.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일을 많이 겪어 봤기 때문이겠지.
게다가 이 양반은 비바! 아포칼립스!의 오랜 눈팅 유저다.
글을 거의 올리지 않지만 어지간한 큼직한 이슈는 전부 다 지켜보았다고 한다.
이제는 전설로 남은 그 “선비” 사건도 흥미진진하게 지켜봤다고.
심지어 그는 그 선비와 메시지를 주고받은 적도 있다고 한다.
“딸년한텐 비밀인데. 진짜로 혹해서 갈 뻔 한 적도 있었다고?”
김병철처럼 솔직한 사람은 대체로 사람에 대한 믿음이 있다.
어떤 인간을 신뢰한다기보다는 인간의 악착같은 가능성을 긍정하는 것이다.
우리 인간이 상상 이상으로 끈질기고 독종이라는, 우리의 선조가 이미 증명한 객관적인 사실을 말이다.
반면 정부군 측의 사고는 인간 대 인간.
그다지 변수 없는 과거의 전쟁에 머물러 있다.
확실히 인간 대 인간의 전쟁에서 한 정찰 유닛이 정찰에 나섰다고 가정해 보자.
그 정찰 유닛이 적대 진영에서 10시간이 넘는 상황에서 연락이 두절됐다면 그 유닛은 전멸했다고 간주하는 쪽이 간명한 처리법일지도 모른다.
아무리 뛰어난 인간이라고 해도 총알이 몸에 박히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까.
하지만 몬스터는 다르다.
곽상훈 대령은 영원히 이해할 수 없겠지만 몬스터의 주적은 언제나 우리가 발을 디디고 선 지구 그 자체다.
최근 들어서야 인간에 대응하는 신종을 내놓고 있지만 놈들이 지금까지 보여준 커다란 궤적을 보면 놈들이 원하는 건 전 지구의 침식이다.
놈들에게 인간은 그저 귀찮은 걸림돌에 지나지 않는다.
만류귀종교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도 이런 몬스터의 인간에 대한 무관심이 있었다.
“수색대를 보내겠습니다.”
곽상훈 대령은 내 의견에 불쾌감을 표시하긴 했지만 입으로 반대 의견을 내진 않았다.
몬스터 전쟁에서 가장 우선권이 높은 건 바로 우리 부서다.
저기 야릇한 미소를 머금은 채 앉아 있는 우민희가 내게 그러한 권력과 책임을 주었다.
게다가 작전 지역에서 실종된 사람은 내가 잘 아는 친구다.
비록 학교 출신은 아니지만 어지간한 학교 출신만큼의 능력을 보여준 심형도를 위시한 정예 헌터, 그리고 정규 어웨이큰 중에서도 특히 나와 친분이 깊은 이하루다.
이들이 죽었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나는 이들이 그리 쉽게 죽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살릴 수 있다면 반드시 큰 보탬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우리는 우리의 적을 제대로 봐야 한다.
스크리머로 추정되는 신형의 등장 이래, 우리의 눈은 거의 멀어버렸다.
정찰대의 목적도 이러한 시야의 확보다.
사람의 실수는 급하거나 한 번에 많은 걸 동시에 하려 할 때 자주 일어난다.
시야의 확보는 이러한 상황을 줄여준다.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는 이야기다.
“대장님의 의견이 그렇다면 이의를 제기할 생각은 없습니다만, 대장님도 아시다시피 헌터 전력은 유사시, 우리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소방수입니다. 그 귀중한 전력을 축차적인 투입으로 잃지는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한발 물러섰던 곽상훈이 생각을 정리했는지 다시금 반대 의견을 낸다.
그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폄훼할 생각은 없다.
어떤 측면에서 그의 의견은 대단히 합리적일 수도 있고 타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모두가 보는 가운데 주위를 둘러보며 조용히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당연한 일이지만 곽상훈은 우려를 드러냈다.
“괜찮겠습니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1,027번의 임무를 수행했습니다. 이중 제때 돌아오지 못한 건 한 번뿐, 살아서 돌아오지 못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습니다.”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