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08)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408화(408/46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408화
164. 가설 (5)
“갈림길이라. 지도에는 없는 거 같은데?”
옛 지도를 살폈다.
역시 이 주변엔 갈림길이라는 건 없다.
다른 노선처럼 길이 두 개로 갈리는 지점도 아닐뿐더러.
“새로 만든 거 같은데.”
천영재가 랜턴을 켜서 지도에 없던 갈림길 쪽을 살폈다.
과연 콘크리트의 색이 다르다.
새롭게 증설했다.
이유는 알 수 없다.
방위각과 함께 지도를 확인했다.
최대한으로 근접한 인근 지역 지도엔 저 갈림길이 향하는 방향이 지하선로가 아닌 지상 플랫폼으로 향하는 걸 말해주고 있었다.
“잠깐만.”
멍텅구리 드론을 다시 설치했다.
오직 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밖에 없는 멍청한 기계지만 지금 우리가 안전하게 이 선로의 끝을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이것뿐이다.
“또 이거야?”
김다람이 한마디 했다.
그러자,
“아 쫌! 적당히 합시다!”
옆에 있던 엠구가 한마디 했다.
김다람이 야수처럼 이를 드러내며 그를 노려보지만 엠구는 어느새 다른 곳을 보고 있었다.
김다람의 분노가 식기를 기다려 엠구를 향해 슬그머니 엄지를 세워 보였다.
엠구는 윙크를 하며 손가락 하트를 보여주는 것으로 답했다.
“아.”
갑자기 엠구가 외마디 소리를 질렀다.
“무슨 일이지?”
카메라가 날 향하는 걸 확인하고 최대한 내 모습이 많이 담기는 각도를 택해서 그에게 접근했다.
“아, 보조 배터리가 맛이 갔네.”
“보조 배터리?”
“7년이나 쓴 휴대폰이라 배터리가 금방 닳잖아? 그래서 영희씨한테 보조 배터리를 빌렸는데, 이게 충전이 안 됐네.”
나는 그 충전이 안 된 배터리가 지영희가 엠구에게 가진 현실적인 마음의 크기라고 생각하지만 여기서 할 말은 아니겠지.
“그럼 어떻게 되는 거냐? 촬영은?”
“사진이나 찍어야지. 아껴서 쓰면 몇 장 정도는 남길 수 있을지도 몰라.”
엠구가 카메라 렌즈를 소매로 문질러 닦았다.
“그러니 중요한 장면이 올 것 같으면 말해주라고. 시민들에게 희망을 줄 스펙타클할 장면을 남겨야 하니 말이야!”
말은 쉽지.
말은 쉽다.
그런데 이번 임무에서 화려한 전투라는 건 옵션이다.
그것도 전멸의 위험이 있는 최악의 옵션이다.
아무리 정규 어웨이큰이 있다고 하더라도 전투형 여럿 상대로 일개 헌터 팀으로 전투를 벌일 정도로 나는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다.
“······.”
잠자코 멍텅구리 드론과 연결된 화상을 지켜봤다.
천영재가 든 원형의 전선 풀링기가 빙글빙글 돌아가며 드론과 연결된 전선의 길이를 늘이고 있다.
곧 풀링기에 감긴 전선이 바닥을 드러냈다.
“여기가 끝이야.”
전선 풀링기에 수납된 전선의 길이는 250m.
풀링기에 수납되는 전선 무게만 20kg가 넘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길이지만 무선 시대에 250m라는 길이는 퍽이나 짧아 보인다.
유선의 한계를 체감할 수 있는 대목이라고 할까.
안타깝게도 250m 너머는 어둠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어떻게 할까?”
김다람이 묻는다.
답은 정해져 있다.
“이대로 전진.”
드론을 앞세우고 전진한다.
250m의 간격을 두고.
250m.
아슬아슬한 거리다.
하지만 충분히 방벽으로 삼을 수 있는 거리라고 생각한다.
저벅- 저벅-
선로를 걷던 중 물소리가 났다.
선로 옆에 저수지처럼 물이 고인 부분이 있었다.
그 안에 섬뜩한, 개구리 같은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이고 있었는데 우리의 기척을 느끼자 시커먼 물속으로 사라졌다.
수도 배관이 파괴되면서 거기 있던 물들이 고여서 만들어진 웅덩이로 보인다.
삐이이이–
김한나의 방사능 측정기가 반응했다.
꽤 높은 수치가 감지된 모양.
수치를 확인해 보았다.
잠깐 스쳐 지나가는 것 정도는 안전하다.
하루에 X레이 열 번 정도 찍을 정도의 양이 축적되긴 하겠지만 말이다.
웅덩이를 지난 후 카메라에 비친 시야에 환한 빛이 들어왔다.
바깥이다.
이 새로 만들어진 선로는 역시 서울역 광역철도선과 연결되어 있었다.
우리를 부산과 대구, 광주와 대전으로 데려다주던.
카메라를 움직이는 기능 따위는 없기에 좀 더 앞으로 전진해 역사를 시야에 담으려 할 때였다.
“!”
철로 중앙에 회백색의, 축 늘어진, 거대한 무언가가 열차들이 있던 빈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눈대중으로만 그 크기는 약 50m 이상.
대형종이다.
“스크리머.”
오늘의 사냥감을 발견했다.
놈은 역시 서울역에 있었다.
아마 우리의 접근을 눈치채고 있었겠지만 김한나의 말마따나 우리를 그리 큰 위협으로 생각하진 않았던 모양이겠지.
우리가 솥뚜껑인지 자라인지는 지켜볼 일이다.
“어?”
카메라의 신호가 끊겼다.
동시에.
쿵!
터널 너머에서 충격파의 파장이 들려왔다.
김한나가 휘청거린 것도 거의 동시였다.
등 뒤에 NP장비를 진 그녀의 얼굴은 보기에 위태로울 정도로 하얗게 질려 있었다.
그녀의 뺨을 가볍게 때리며 동공을 확인했다.
“괜찮아?”
“헉! 헉!”
그녀가 식은땀을 흘리며 정신을 추스르려 했다.
“그, 그들이 물어봐요.”
엠구를 응시했다.
“잠시 부축해 줄 수 있나?”
엠구가 씨익 웃으며 팔을 드러냈다.
근육질의 팔.
다만 보디빌더가 가진 아름다운 육체미와는 거리가 먼, 실전형 노동 근육으로 가득 찬 팔이다.
성능은 아마도 이쪽이 우월하겠지.
“전속력으로 후퇴한다.”
김다람과 엠구를 먼저 보냈다.
천영재와 나는 후위를 맡았다.
상대가 상대인 만큼 총부리만을 겨누진 않는다.
툭- 툭-
천영재가 배낭에서 크레이모어를 설치했다.
전원을 켜자 붉은빛의 레이저가 허공에 죽음의 인계철선을 펼친다.
쿵!
또 다른 충격파가 터널 너머에서 들려왔다.
찰나의 순간,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다.
“엎드려!”
고함을 지름과 동시에 몸을 숙였다.
슈욱—-
머리 위로 전신주 만한 물체가 무시무시한 소리와 풍압을 일으키며 머리를 지나갔다.
“팔랑크스 타입!”
즉시 내가 확인한 정보를 팀원에게 육성으로 고지했다.
회백색의 창과 같은 투사체를 던지는 중형종이다.
그 투사체는 3세대 전차조차 정면에서 관통할 정도의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빌어먹을.”
천영재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아무리 경험 많은 헌터라고 해도 전투형 – 중형종 상대로는 기가 질릴 법하겠지.
애당초 미스 매치니까.
새삼스럽지만 나는 이 대목에서 내가 천상 헌터라고 느꼈다.
중형종과 전투를 돌입한 절망적인 순간에 전차를 타고 오지 않길 잘했다고 안도하는 걸 보면 말이다.
그런데 우리 적은 중형종만이 아닌 모양이다.
재빠른, 귀에 익은 발소리들이 들려 온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이것들은 캐터필러 타입이다.
한때 서울 전역에서 발견되었다가 갑자기 숫자가 줄어든 대인 몬스터들이 몬스터의 소굴에서 다시 얼굴을 비추려 하는 것이다.
“뒤도 돌아보지 말고 뛰어!”
개체의 전투력은 약할지언정 지금 상황에서 놈들에게 둘러싸이면 끝장이다.
쾅!
뒤에서 폭음이 들린다.
크레이모어의 폭발음이다.
물론 그 와중에도.
“엎드려!”
슈욱—-
팔랑크스 타입의 꿰뚫어 버리는 창이 어둠 속을 순간 하얗게 물들이며 우리의 머리 위를 지나간다.
몬스터의 창이 스쳐 지나갈 때마다 우리의 옷자락은 태풍 속에 있는 것마냥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리고.
키이이이이이익—–
기괴한 비명이 어둠을 떨쳤다.
틀림없다.
이 불쾌한, 강제로 뇌에 밀어 넣는 듯한 정합성을 연상케하는 이 비명은 우리를 죽이려는, 그리고 우리가 죽이려는 스크리머 타입의 것이다.
놈에겐 안타까운 일이겠지만 우리는 놈의 비명에 귀를 막을 정도로 나약한 물건은 들고 오지 않았다.
툭-
스틱형 야광봉을 옆으로 꺾어 불빛이 나오게 한 후 곳곳에 뿌려두었다.
슬슬 거리가 가깝다.
아니나 다를까, 산만한 발소리와 함께 캐터필러 타입이 역겨운 벌레 같은 몸통과 찢어진 아가리를 벌린 채 우리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거리 200m.
“사격.”
타타타타탕!
곳곳에 뿌린 야광봉의 불빛에 의지하여 놈들의 일파를 빠르게 섬멸했다.
곧 되살아나겠지만 적어도 발걸음을 느리게 할 순 있겠지.
물론 몬스터 놈들도 우리의 발목을 붙잡는다.
슈우우우욱——-
이번에는 아주 아슬아슬할 정도로 몬스터의 창대가 우리 위를 스쳐 지나갔다.
“김다람!”
어둠을 향해 소리쳤다.
“올 그린!”
김다람이 즉답했다.
멀리 희미한 불빛이 보인다.
김다람이 던져 놓고 간 야광봉이다.
거리로 놓고 보건대 총성이 울린 시점부터 던져 놓은 모양.
틱틱거리고 불평 많은 녀석이긴 하지만 이런 일 처리를 보면 좋아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불빛에 의지해.
타타타탕!
달려드는 추격자를 뿌리친다.
곧 갈림길이다.
어둠 너머에 우리의 열차가 두터운 장갑판을 두른 채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멀리서 엠구가 우리가 오는 걸 찍고 있었다.
찰나의 순간 머리카락을 잠깐 정돈한 후 열차 앞에 섰다.
“한나는”
“귀환용 열차 안에 있어.”
“즉시 열차를 가동한다.”
선로를 조정할 필요는 없었다.
이미 발견 시점부터 선로는 오직 지상으로 향하게끔 조정되어 있었다.
쿵!
팔랑크스 타입은 계속해서 다가오고 있다.
콰직-!
놈이 쏘아낸 회백색 창이 갈림길의 완만한 곡선부 콘크리트 벽에 박혔다.
“열차를 움직인다고?”
김다람이 물었다.
천영재가 그녀 옆에 섰다.
내 작전의 의문을 느낀 게 김다람만이 아니라는 소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팔랑크스 타입이 추격하고 있잖아?”
그렇다.
탕! 탕! 탕!
그 와중에 김다람이 3번의 핀포인트 사격으로 캐터필러 타입을 고꾸라뜨렸다.
“놈에게 막히면 어떻게 해?”
아무렇지도 않게 몬스터를 쓰러뜨린 김다람이 묻는다.
미소 지으며 열차를 응시했다.
“열차는 몬스터를 뚫어.”
“뭐?”
“뚫는다고.”
또 하나의 매혹적인 세계를 창조한 소설가 러브크래프트의 증기선은 외계의 신을 뚫고 지나갔다.
그 증기선보다 빠르고 아마도 더 견고한 열차가 그보다 열등한 몬스터를 뚫지 못할 이유는 없겠지.
몬스터는 의외로 뼈대가 부실한 놈들이다.
도끼로 놈들을 수도 없이 학살한 내 경험이다.
위이이이잉—
발전기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김다람과 엠구가 선두 열차의 연결부를 분리하는 동안 나와 천영재는 끝도 없이 몰려드는 캐터필러 타입에 맞섰다.
타타타탕!
탕! 탕!
“젠장.”
스르릉-
천영재가 쿠크리를 뽑았다.
탄창이 떨어졌다.
그의 어깨를 잡아 만류하며 대신 앞으로 나섰다.
바닥에 널린 탄창이 담긴 가방을 가리켰다.
“내 것도 장전해 ”
도끼를 들었다.
새로운 도끼가 아닌 내 손에 익은 두 자루의 도끼다.
사실 이쪽이 내게 맞다.
“키이이이익!!”
스걱!
쩍!
사명감 속에서 혹은 의무감 속에서 놈들을 찍어버린다.
나름의 목적도 있다.
쩍!
놈들의 조직 깊숙이 숨겨진, 놈들의 통신칩을 파괴한다.
죽여도 죽여도 살아나는 괴물들이 빛으로 화하는 걸 바라보며 야광봉이 비추는 어둠 너머를 응시한다.
위이이이이잉—
열차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다.
“폭파 장치 기폭 5분, 아니, 3분 뒤로 세팅 해.”
천영재가 장전된 총을 내게 건넸다.
“역시. 프로페서야.”
희미한 미소를 머금으며 열차 쪽을 보았다.
안타깝게도 엠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하.”
이 새끼. 도대체 뭐 하냐.
이걸 찍었어야지.
이런 실없는 생각을 할 정도로 기량이 돌아왔다는 걸 느끼면서 열차가 움직이는 걸 지켜보았다.
우우우우웅—
수만 명의 시민을 실어 나르던 시민의 발은 이제 폭발성 물질을 가득 싣고 한국인의 추억과 기억의 산실인 서울역 플랫폼을 향해 질주한다.
무제한의, 브레이크 없는 속도로.
콰직!
열차가 몰려온 캐터필러 타입들을 무자비하게 짓밟았다.
일부가 빛의 입자로 화하는 게 보인다.
“버텨 낼까?”
어둠 너머로 사라진 열차를 보며 천영재가 걱정스레 묻는다.
쿵!
과연 충격파와 함께 팔랑크스 타입이 내는 무시무시한 바람 소리가 들려왔고 그것이 장갑판에 정통으로 박히는 소리 또한 들려왔다.
하지만.
우우우우우우웅—
열차는 멈추지 않는다.
애당초 그것의 엔진은 열차 하단부에 있다.
장갑판을 뚫고 선두 차량을 고슴도치로 만들어봐야 멈추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쿵!
당황한 모양인지 녀석은 재차 충격파를 일으켜 보지만.
콰직!
또 다른 로드킬이 있을 뿐이다.
“뛰어.”
즉시 귀환 차량에 올라탔다.
“······대, 대장 미안해요.”
초췌한 얼굴의 김한나가 내게 사과했다.
“넌 충분히 역할을 했다.”
열차의 엔진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선두 차량보다는 열등한 것이긴 하지만 그것은 우리를 우리의 집, 혹은 고향으로 돌려보내 줄 것이다.
느릿하게 움직이는 열차 속에서 우리는 천둥 같은 굉음을 터널 너머에서 머리 위에서 지축 아래에서 느꼈다.
열차가 도달했고 폭발을 일으켰다.
그 장관을 볼 수 없는 건 아쉽지만 그 일부는 볼 수 있었다.
화르르르륵–
터널을 타고 무자비한 불길이 화룡의 입김처럼 터널을 휩쓸고 지나갔다.
그 화염은 아슬아슬하게 질주를 시작한 우리의 열차 끄트머리를 터치하고 사라졌다.
정적이 감도는 터널 너머를 바라보며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았다.
천영재는 엄지를, 김한나는 해맑은 웃음으로, 엠구는 그 빌어먹을 손가락 하트로 기쁨을 드러냈다.
김다람이 처음으로 미소 비슷한 걸 내비쳤다.
작전 성공이다.
“엠구.”
“왜?”
“내가 활약하는 거 찍었냐?”
“뭐?”
“내가 도끼 들고 몬스터 잡는 거.”
옆에서 들려오는 김다람의 한숨 소리는 무시해도 되는 것이다.
“못 찍었는데? 네가 한나 데리고 가라며?”
“······.”
세상에 완벽한 작전이라는 건 없는 거겠지.
아무튼, 이번 작전은 내 가설에 결정적인 근거를 제시했다.
그것은 스크리머 타입 최초 격파가 있은 후 3일이 지난 뒤에 확인됐다.
*
“······저건 뭐지?”
흐릿한 안개 너머로 터무니 없이 거대한 형체가 나타났다.
내 눈이 틀리지 않는다면 저것은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다.
우민희가 질린 눈으로 그 형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초대형종. 자이언트 타입.”
일전에 인천에 갔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인간의 형상을 한 터무니 없이 거대한 것이 나타나 바닥에 엎어지니 그 일대가 전부 침식 지대로 변했다는.
솔직히 믿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꽤 자주 상상을 넘어선다.
같은 일이 우리 앞에서 일어났다.
인간 그 자체를 조롱하는 것처럼 인간의 형상을 지닌 터무니 없이 거대한 괴물이 우리 앞으로 다가왔고 바닥에 쓰러졌다.
강변 너머 전체가 완전 침식 지대로 변했다.
그 회백색의 영역 너머로 몬스터의 그림자가 일렁거리고 있다.
볼 것도 없다.
진정한 의미의 대규모 공세다.
“······.”
한 가지는 확실해졌다.
몬스터도 분노한다.
내 가설은 증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