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13)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413화(413/46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 413화
166. 네메시스 (4)
칼바람이 부는 새벽.
얼어붙은 강가엔 두터운 방한복을 입은 사람들이 뭔가를 하늘로 띄우기 시작했다.
연이다.
물론 이 시국에 한민족의 전통 놀이를 하려는 건 아니다.
이들이 띄우는 연은 명주실 대신 강화 유리 섬유사를, 한지 대신 초경량 PVC 판막으로 만든 군사 장비다.
사람 하나를 매달고도 충분히 날아오를 수 있을 정도로 큰지라 무려 성인 남성 4명이 연에 달라붙어 있었다.
“바람 양호!”
“띄워!”
감독관이 지시하자 사내들은 발을 맞춰 돌리며 거대한 연을 하늘 위로 날렸다.
잠시 주춤거리던 연은 이윽고 바람을 타고 바람에 나부끼며 하늘 위로 솟구쳤다.
연이 치솟자 검은 줄이 배의 삭구처럼 무시무시한 기세로 딸려 올라갔다.
끼릭- 끼릭-
2톤 트럭에 실린 거대한 실패가 가솔린 모터의 동력을 받아 회전하며 검은 광택을 띤 연실을 풀어놓는다.
비슷한 장비가 강변을 따라 4개나 서 있었다.
비차(飛車)라고 명명된 이 장비는 드론을 대신할 새로운 관측 장비다.
과거엔 드론을 보냈지만 드론을 보내는 족족 몬스터의 방해전파에 의해 파괴되어 손실이 커지고 또 효율성이 급감하자 기술자들이 머리를 맞대 만든 장비다.
기계의 힘이 아닌 자연의 힘을 빌리는 만큼 안정성이 높고 경쟁자 포지션에 있는 기구보다 속도도 빠르고 사용자의 역량에 따라 날카로운 조종의 폭이 있는 반면, 조종 자체가 어렵고 또 바람이라는 변수에 지나치게 종속된다는 단점이 있다.
오늘은 바람이 좋다.
여전히 북쪽엔 짙은 안개로 덮여 있지만 연들은 그 안개를 뚫고 들어가 그 아래 우글거리고 있는 몬스터의 위치와 정보를 우리에게 알려줄 것이다.
장군 타입의 위치는 얼추 파악했다.
놈은 폐허가 된 거리 중심부에 머물러 있다.
몬스터가 일단 자리를 잡으면 다음 행동까지 미동도 하지 않고 움직이는 속성이 있다는 걸 감안하면 그 자리에 계속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포격을 가한다면 그 자리를 떠나겠지.
놈은 다른 몬스터처럼 멍청하게 포격을 맞아주지 않으니까.
그러므로 장군 타입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장소엔 일체의 포격과 폭격을 중지했다.
“장군 타입이라는 걸 처치한다면 몬스터가 물러갈까?”
“명령 통제형 몬스터가 존재한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몬스터가 없어진다고 해서 기존의 몬스터가 도망갈 것 같진 않습니다. 막말로 명령 통제형 몬스터가 없어지면 누가 철수 명령을 내리겠습니까?”
“삼국지도 아니고.”
여전히 내 계획에 의문을 품는 사람이 많다.
이들을 비난할 순 없다.
나조차 장군 타입을 쓰러뜨린다고 해서 몬스터들이 물러날 거라고 생각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해야 하는 일이다.
“이대로 앉아서 죽는 것보다 낫지 않아요?”
우민희가 내 편을 들어줬다.
“당장 그게 있으면 우리가 힘을 못 써요.”
그녀가 힐끗 날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확실히 그녀는 힘이 된다.
우민희의 지원으로 계획을 확정했다.
모든 것이 부족하기에 작전에 들어가는 물자와 장비도 최소화해야 했다.
적진을 파고들 전차와 장갑차, 그리고 유사시 우리를 꺼내줄 헬기 등등.
헌터 무기도 남아 있는 것 중에 가장 상태가 좋은 걸 배정하기로 했다.
인원의 경우, 5개 헌터팀을 동원하기로 했다.
다만 정규 어웨이큰이 힘을 쓰기 어려운 환경이기에 일반 팀원으로 다섯 개 팀을 편성했다.
과거 중국에서 실시했던 사냥 작전에 비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는 진용이지만 지금 우리 인류가 할 수 있는 최선이다.
하지만 이 작전을 실행하기 전에 한 가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있다.
그것은 바로 한 차례의 공격을 더 막아내는 것이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두 번은 없다.
중국 시절처럼 우리가 놈들을 힘으로 윽박지를 여건이 되지 않으므로 놈들이 우리에게 공세를 가하고 전력이 소모되는 때를 노려야 만이 가장 가능성을 높이 끌어 올릴 수 있다.
다행스럽게도 기다림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을 것 같다.
정찰대가 공세의 징후를 보고했다.
*
“우리가 살 곳은 여기 이 도시뿐입니다. 이 도시를 벗어나는 순간 살아남을 수 있는 사람은 단언컨대 그리 많진 않을 겁니다. 설령 여기서 도망을 친다고 해도 놈들은 여러분을 찾아갈 겁니다. 이 지구상에서 놈들에게 도망칠 장소는 없습니다. 살아남는 방법은 오직 하나. 놈들과 싸우고 이겨내는 것뿐입니다.”
김병철의 연설이 곳곳에서 들려 온다.
시민들의 반응은 시큰둥하고 냉소적이기까지 했지만 그들도 김병철의 한 가지 주장엔 동의했다.
이 도시 밖으로 나간들 살 확률은 드물다.
킹의 도시를 운운하는 사람이 있지만 킹의 도시는 냉혹한 실력제 사회로 자신의 능력으로 자신의 밥을 구할 수 없는 자는 죽게 내버려 두는 곳이고 도시의 인구 부양력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사람이 많이 몰려들수록 도시 하부 구조를 이루는 사람들은 지옥 같은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그렇다고 아무도 없는 황야에서 산다는 것 또한 그리 현명한 선택지는 아니겠지.
그건 오직 우리 멸망주의자만이 가능한 특권이다.
그 사실을 잘 아는 시민들은 현 상황에 불만을 가지면서도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순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 결과 한동안 도시를 펄펄 끓게 했던 도시 탈출론자들의 기세가 수그러들었고 공장과 초소엔 다시 사람들이 채워졌다.
성급한 피난민을 데리고 갔다고 복귀했던 피난민 리더가 김병철에게 감사의 편지를 쓴 것도 소소한 화제가 되었다.
이렇듯 잠깐 분열됐던 도시는 하나로 합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인류의 적은 우리를 그냥 놔둘 생각이 없어 보였다.
“파주 균열에서 대규모 분출. 숫자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몬스터가 균열 주변에 축적되고 있습니다.”
“초대형종 확인! 크라켄! 크라켄 타입입니다!”
“크라켄 타입 접근 중! 방향은 도시 정방향입니다!”
위기는 단 한 번도 완화된 적이 없다.
“크라켄 타입? 킬존이 붕괴한 후 전혀 안 보이던 녀석 아니었어?”
단지 놈들이 뜸을 들였을 뿐.
적어도 2년 동안 단 한 번도 발견 사례가 없는 크라켄 타입의 출현은 도시 전체를 긴장시키고도 남았다.
놈의 파괴 광선이 훑고 지나가면 이 작고 가련한 도시에 모여 사는 인간들의 숫자는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한국에서는 사례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일본 동경 가까운 곳에서 출현한 크라켄 타입이 일본 정부의 무능과 실책으로 도심에 진출, 단 두 번의 파괴 광선으로 5만 명이 넘는 사람을 순식간에 증발시켰다.
추위 대책의 일환으로 좁은 지역에 밀집된 새로운 서울 문전에 놈이 나타난다면, 도시의 인구는 절반, 아니 그 이하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놈이 도시 앞에 나타나기 전에 막아야 한다.
문제는 늘 우리의 발목을 잡는 자원이다.
공경민을 찾아갔다.
크라켄 타입을 처치할 수 있는 가장 전통적인 방법은 강력한 항공 전력을 이용하는 것이고 그 항공 전력을 가진 것이 제주 세력이기 때문이다.
손깍지를 낀 채 책상 위에 올린 양손으로 하관을 가린 채 공경민이 무심한 목소리로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
기대는 하지 않았다.
위원장이라는 거나한 직함을 가지고 있지만 이미 이빨이 다 빠진 호랑이라는 건 파다하게 떠도는 소문을 참고하지 않더라도 덩그러니 단 한 명의 비서와 함께 교사에 남겨진 현 상황만 봐도 알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강한민이 무슨 생각을 하는 줄은 알아. 그 생각에 나름의 일리가 있다는 것 또한 인정한다. 하지만 눈앞에서 수십만 명, 그것도 지킬 수 있었던 사람을 죽는 걸 보는 건 다른 문제라고 생각한다.”
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하던 공경민의 눈동자가 꿈틀하고 움직이며 날 정면으로 노려보았다.
“대한민국의 붕괴를 앞두고 도망친 프로페서가 할 이야기는 아닌 거 같은데.”
그의 표정은 손깍지에 가려 보이지 않았지만 아마도 그는 매우 화를 내고 있을 것이다.
과거의 나라면 이런 상황을 견디기 어려웠겠지.
아마 말없이 뛰쳐나왔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나는 프로페서지만 동시에 스켈톤이기도 하니.
가끔은 닥터 에미리스에 엄창이, 기타 등등이 되기도 하겠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그때보다 월등히 강해졌다는 것이다.
공경민의 이글거리는 시선을 똑바로 받으며 담담히 한 이름을 불렀다.
“경민아.”
나의 동료, 그리고 나의 벗.
공경민의 눈동자가 꿈틀거렸다.
뒤이어 말했다.
“우리는 현재를 살잖아?”
이것이 내가 할 말이다.
돌아섰다.
답은 기대하지 않는다.
내 의도는 충분히 와닿았다고 생각한다.
*
제주의 침묵 속에서 작전을 시작했다.
모든 자원이 극도로 한정됐기에 최소한의 자원만으로 크라켄 사냥을 시작해야 했다.
“살다 살다 크라켄을 직접 사냥할 거라고는 꿈에도 꾼 적이 없어.”
헬기에 동승한 김다람의 말대로 크라켄 타입은 헌터의 사냥감이 아니다.
잘 해봐야 중형종.
이것이 우리 헌터의 한계다.
하지만 지금은 우리 말고는 없다.
쓸 수 있는 자원은 한정적이고 최소한의 소모 값으로 도시를 파멸할 수 있는 몬스터를 사냥해야 한다.
크라켄 타입은 파주 시가지를 지나 고양시로 진입했다.
타격 지점으로 공릉천 일대의 평지가 후보로 거론됐는데 놈의 경로를 보고 타격 지점을 수정했다.
북한산 초입을 타격 지점으로 정했다.
이유는 두 가지다.
크라켄 타입은 전도(顚倒), 그러니까 넘어뜨리면 다시 일어나지 못한다.
이는 킬존에서 나타나는 출현한 크라켄 타입 다수에게서 관측된 현상이지만 실제로 이 특성을 노려서 크라켄 타입을 공략한 사례는 없다.
놈은 일본의 예를 든 것처럼 살려두기에는 너무나 위험한 놈이고 또 어지간한 화력으로는 꿈쩍도 하지 않는 내구력을 보유하고 있으니까.
내 계획의 핵심은 최소한의 화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뽑아내는 데 있다.
북한산 초입을 택한 건 경사 때문이다.
엠구처럼 경사에 극단적으로 강한 생물도 있지만 지구에 종속된 것들은 인간과 몬스터를 가리지 않고 중력의 영향을 받는다.
네크로맨서 타입 마냥 반중력 비슷한 정체불명의 힘으로 짧은 거리를 부유하는 녀석은 별론으로 하고서라도 말이다.
크라켄 타입이 킬존을 벗어난 적은 의외로 꽤 된다.
이러한 크라켄 타입은 태풍에 비견됐는데 놈들의 패악질은 과거에 레베카 모녀와 함께 지켜본 것과 같다.
이러한 태풍이 발생하면 보통 균열에 배치된 사령관과 헌터 책임자가 문책을 당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들의 실패가 내게 영감을 제시했다.
이 정보에 따르면 크라켄 타입은 반드시 평지로만 다니지 않는다.
놈들은 때로는 산악 지대를 경로를 택하기도 하고 따라서 경사진 곳을 오르기도 한다.
다만 급격한 경사는 피하는 편인데 바로 거기서 나는 이번 작전에 대한 영감을 얻었다.
“녀석이 북한산 기슭에 오르면 다리를 파괴하는 거지.”
크라켄 타입을 말로 표현하자면 63빌딩 크기의 거대한 껍질을 뒤집어쓴 소라게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신체 대부분이 기괴할 정도로 높이 솟은 갑각질로 이루어져 있고 이동과 공격을 담당하는 다리와, 두부, 기타 몸통은 그 빌딩 크기의 갑각 아래 짧게 분포되어 있다.
짧다고 해도 상부 구조물이 비약적으로 거대한지라 밑바닥 다리에서 공격 수단인 파괴 광선을 발하는 안구까지 높이는 무려 60미터에 달한다.
놈에겐 총 24개의 짧고 견고한 갑각질의 다리가 있는데 짧은 몸통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뻗은 그 수많은 다리는 추정 120,000톤에 달하는 터무니 없는 무게를 지탱한다.
내 계획은 이 괴물의 다리를 파괴하는 것이다.
녀석의 하중을 지탱할 다리를 파괴한다면 녀석의 종말이라고 할 수 있는 전도를 일으킬 수 있다.
그런데 경사 지대에서는 일부 다리가 더 많은 하중을 받게 된다.
그 다리를 집중적으로 노려서 파괴하여 녀석의 균형을 무너뜨린 다음, 원거리 포격으로 무너진 균형에 외력을 가해 녀석을 전도시킨다.
그것이 내가 즉석에서 수정한 대 크라켄 타입 사냥 계획의 요체다.
지금까지 누구도 시도한 적이 없기에 성공 가능성이 불투명하지만 항공 지원도, 무제한적인 포격 지원도 불가능한 지금 유일하게 쓸 수 있는 카드라고 본다.
문제는 역시 부위 파괴다.
우리는 크라켄 타입의 다리를 파괴하는데 어느 정도의 파괴력을 필요로 하는지 알지 못한다.
지금까지 제대로 계측을 한 적도 없을뿐더러 할 상황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바 “가공할 화력”을 퍼부으면 파괴가 되는 건 확실하지만 정확한 파괴량을 알 수 없다는 점은 작전의 큰 걸림돌이 될 것이다.
알려진 녀석의 유일한 무기는 악명 높은 교차하는 살인 광선이다.
반경 2km에 달하는 놈의 살인 광선은 오로지 지면만을 교차하며 훑으며 그 광선이 교차하는 지점의 모든 산 것들을 글자 그대로 소멸시킨다.
아무리 두터운 벙커도 육중한 장갑도 의미를 잃지만 녀석의 광선이 하늘을 향한다는 사례는 보고된 적이 없다.
다른 몬스터와 다르게 반사역장도 존재하지 않는 놈을 처치하기 위해 다수의 공격 헬기가 놈의 위에서 미사일을 퍼붓는데도 제대로 된 반격 하나 없이 묵묵히 걸어 나가는 크라켄 타입의 모습은 몬스터가 생물이 아닌 기계장치에 가깝다는 설에 힘을 실어주었다.
이제 이 괴물을 공격할 차례다.
동원할 수 있는 헬기는 3대.
각각 16개의 공대지 미사일을 무장했고 보조 무장으로 체인건을 장비하고 있다.
크라켄 타입이 반사역장은 없다고 하더라도 놈의 내구력이 일반 몬스터와는 급이 다른 방호력을 갖고 있는지라 화력이 충분할지는 의문이다.
다만 다리 관절부에는 어느 정도 타격을 준다는 것은 전쟁 전에 공유한 자료에 의해 확인되는 사실이다.
전 화력을 퍼부었음에도 다리를 끊어내지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을 때를 대비해 상당한 양의 폭약을 준비했다.
물론 이 폭약은 직접 가서 설치해야 한다.
미친 소리처럼 들리겠지만 그것 말고는 현실적으로 원하는 부위에 필요로 하는 강력한 폭발을 일으킬 방법은 없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크라켄 타입의 뒤편, 사각 지대의 다리를 노린다는 점 정도?
살인 광선을 맞거나 다리에서 굴러떨어져 사망할 확률이 대단히 높지만 도시의 파멸을 지켜보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이상의 준비를 마치고 헬기 위에 올랐다.
3대뿐인 편대지만 다수의 공격 헬기가 모처럼 서울의 하늘을 가르며 일제히 날아가는 모습은 썩 괜찮은 풍경이었다.
멀리 안개가 자욱하게 낀 장군 타입의 소굴을 지나자 북한산과 폐허, 그리고 저 멀리 흰 점처럼 보이는 크라켄 타입이 보인다.
“작전 목표 발견. 우회합니다.”
헬기 편대가 고도를 높이며 크라켄 타입의 측면을 향해 돌아갔다.
“포격 준비 완료됐습니다.”
포병대에서도 연락이 왔다.
크라켄 타입은 아직 산기슭을 오르지 않은 상태.
기류와 주변에 포진한 몬스터 등 제반 요건을 파악하며 크라켄 타입에 접근했다.
그럭저럭 순조로운 작전일 될 거라고 생각하던 찰나였다.
갑자기 조종석 측에서 비상 신호가 울렸다.
“4시 방향에 미확인 헬기 출현!”
기내에 살벌한 기류가 흘렀다.
미확인 헬기라니.
조금도 예측하지 못한 변수다.
갖가지 가능성이 뇌리를 스쳐 지나가는 가운데 부기장이 교신기를 통해 누군가와 말을 주고 받았다.
교신이 채 끝나기도 전에 부기장이 날 향해 고개를 돌리며 상황을 전달했다.
“제주 쪽 헬기입니다. 정찰 중 우연한 조우라고 하네요. 비무장이고 전투원도 탑승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확인 결과 제주 쪽 헬기는 정찰 헬기로 전투 무장을 한 우리 쪽의 상대가 전혀 되지 않는다고 한다.
김다람이 한마디 했다.
“아마 우리가 사냥하는 걸 구경하러 온 거겠지.”
구경꾼 하나둘 있다고 해서 변하는 건 없다.
편대는 제주 헬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헬기가 교차하는 와중 제주 쪽 헬기를 보았다.
창문에 누군가의 인영이 보였지만 역광과 빠른 속도로 인해 누가 거기에 탑승했는지는 알아볼 수 없었다.
다만 헬기의 측면 그려진 문장은 알아볼 수 있었다.
서양 중세풍으로 그린, 무릎을 꿇은 광대가 하프를 안고서 켜는 장면을 그린 그림이다.
그 무릎을 꿇은 광대 위엔 문구가 펄럭이는 휘장을 묘사한 빈 칸 안에 선명하게 적혀 있었다.
[ A FOOL ]“······.”
틀림없다.
강한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