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14)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414화(414/466)
414화 166. 네메시스 (5)
구원자라는 타이틀을 얻은 이후 강한민은 대한민국은 물론 세계에서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다.
하지만 정작 강한민이 어떤 사람이냐는 질문에 제대로 된 답을 해줄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은퇴 후 강한민과 나혜인이라는 주제를 의도적으로 피하긴 했지만 그 기나긴, 잉여로운 시간 속에서 그들의 정보를 단 한 번도 찾아보지 않았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1년에 한두 번 특히 술을 과하게 마신 날, 혈관을 타고 술기운의 여흥이 온몸을 기분 좋게 달구고 있을 때 그들을 검색할 용기를 얻었다.
짧은 기사 속에서 묘사된 강한민은 틀에 박힌 모범적인 영웅이었다.
몬스터를 두려워하지만, 그럼에도 국민과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걸고 싸우는.
일본 애니메이션을 즐겨 본다는 사족은 실제에 부합하기도 하지만 내가 볼 땐 억지로 갖다 붙인, 인간으로 보이기 위한 장치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아는 강한민은 그렇지 않다.
물론 내가 그의 전부를 안다고는 할 수 없다.
같은 학교 출신이라고 하나 그와 나 사이엔 항상 높은 벽이 서 있었고 나도, 그도 그 벽을 넘으려고 시도하지 않았다.
내가 본 건 그 높은 벽 너머에 희미하게 보이는 단면이다.
그 흐릿함과 모호함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섬뜩했고 공포를 느끼게 했다.
그는 극단적이고 동시에 과대망상적이었다.
수년의 세월이 흐른 끝에 제주에서 그를 보았다.
꽤 충격을 받았다.
그의 모습은 같은 인간이라기보다는 인간이라는 존재가 한 단계 높은 단계로 진화한 듯한 비인간적인 속성을 띄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에 관해 다시 관심을 가지고 조사를 시작한 이래, 나는 그 생각에 의문을 갖는다.
어쩌면 그 비인간적인 모습 또한 연출의 일환이 아니었을까 하는.
제주에 있었던 친구를 중심으로 탐문을 해보았다.
“가끔 모습을 드러내세요. 정말로 강하시죠. 반경 1km가 넘는 분해 역장을 쳐서 몬스터를 글자 그대로 분해하는 권능을 가지셨으니까요. 강한민 구원자는 의심할 여지가 없는 몬스터의 천적이에요. 그분이 있었기에 균열 안이라는 극한 환경에서 그나마 우리가 활동할 수 있었죠.”
정규 어웨이큰 이하루는 균열 안에서 잠깐 임무를 수행한 적이 있다.
원인 불명의 고열과 숨 가쁨, 공황이 닥치기 전까지 그녀는 균열 안에서 꽤나 주력으로 분류되는 파트에 속해 있었다고 한다.
“나혜인 구원자하고 활동한다는 건 못 들어본 거 같아요. 제가 빅 홀 안으로 들어갈 땐 나혜인 구원자는 부하를 구하려다가 큰 부상을 입고 후방에서 요양 중이라는 이야기가 떠돌아다녔거든요.”
같은 정규 어웨이큰인 안승환의 이야기는 이하루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저는 직접 그분을 본 적이 없어요. 제가 있던 곳은 안정화 작업이 이미 진행된 곳이라. 하지만 가끔 라디오로 소식이 들렸어요. 강한민 구원자가 섹터 BT에 나타났다. 강한민 구원자가 섹터 BT에 몰려 온 몬스터를 섬멸했다. 이런 식의 교신이 말이죠.”
같은 어웨이큰 내부에서도 강한민은 신격화가 됐다.
그리고 신격화가 이루어진 사람이 으레 그렇듯 강한민 또한 다른 사람과 엄격하게 구분됐다.
“늘 우리와 거리를 뒀었죠. 거리를 두고 소수의 측근, 이너 서클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었어요. 그러므로 우리는 먼발치에서 그분이 몬스터를 몰아내고 길을 개척하는 모습밖에 볼 수 없었어요.”
같은 정규 어웨이큰인 도경수라는 친구는 전형적으로 루머를 좋아하고 휩쓸리는 부류였다.
그는 안승환도 이하루도 모르는 뒷이야기를 알고 있었다.
“이너 서클이 되는 거, 그거 좀 치는 애들이 들어가는 이미지라 어려워 보이는데 실제로는 아예 쳐다도 못 볼 정도로 어려운 건 아닌 거 같더라고요. 이너 서클 안에 엘리트가 많은 건 사실인데, 사망률이 매우 높다고 하더라고요. 올드 스쿨, 아니 일반 헌터에 준할 정도로 말이죠.”
또 도경수는 말한다.
“나이 좀 먹은 선배들이 말하는 거 들어보면 이런 이야기가 있었어요. 강한민 구원자가 있는 곳은 안 가는 게 좋다고. 차라리 나혜인 구원자가 있으면 그쪽에 가라고.”
“왜 그렇지? 강한민 쪽이 좀 더 위험해서 그런 건가?”
“강한민 구원자가 가장 치열한 격전지에만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맞지만 그, 제가 아는 선배들은 좀 미묘한 반응이더라고요. 말을 아끼는 듯한? 정확히 뭐가 문젠지는 말들을 안 해주는데, 제가 이해한 바로는 강한민 구원자 쪽에서 우리들을 좀 더 허투루 다룬다? 막 쓴다? 이렇게 들리더라고요.”
정규 어웨이큰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그리고 격전지에서 복무했던 건 김한나다.
“······항상 친위대 같은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요. 이너 서클요? 잘 못 들어본 이야기네요. 그룹마다 걔네들 부르는 명칭이 달라서요. 네? 그룹요?”
김한나는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제주 어웨이큰 사이의 문제를 암시했다.
제주 어웨이큰은 철저하게 파편화가 되어 있었던 것 같다.
군대에서 중대가 다르면 아저씨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김한나의 그룹 쪽에서 살펴본 강한민은 소위 말하는 “원숭이 손” 같은 존재였다.
분명 그가 나타나면 위협적인 몬스터가 제거되고 애를 먹던 임무가 수월하게 달성되지만 그가 사라진 직후엔 평소와 다른 몬스터의 대대적인 반격이나 원인 불명의 사고가 일어나 다수의 희생자를 낸다는 것이다.
김한나의 마음이 부러진 것도 그나마 절친하게 지내던 동료들의 상실이었다.
“저는 잘 모르겠지만, 학교가 서울에 있을 때 교육받은 선배들은 강한민 구원자를 되게 안 좋게 보는 것 같았어요. 그분이 나타날 때마다 사고가 났다나?”
정황만을 놓고 보면 강한민에게는 구원자라는 타이틀로도 감출 수 없는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내가 예전에 보았던, 그의 극단적인 단면과 맞물려 좋지 않은 예감을 주었다.
어쩌면 대통령으로 추정되는 자의 메모가 그러한 의심을 가속했는지도 모른다.
그 강한민이 우리 앞에 나타났다.
“뭐야?”
기장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아니, 왜 씨발 경로를 처 막냐고. 뭐 하는 새끼야?!”
기장은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조종과 관련된 문제가 생기면 화를 주체하지 못하는 타입인지 우리가 있는데도 연신 욕을 쏟아냈다.
“씨발새끼가. 진짜.”
기수가 급격하게 옆으로 꺾였다.
손잡이를 잡아야 할 정도로 기체가 휘청거렸다.
“무슨 일이죠?”
김다람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묻자 기장이 여전히 신경질이 남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저 헬기 하는 꼬락서니 보세요. 고의적으로 진로방해하고 있잖아요?”
헬기 조종에 관해서 아는 바가 없지만 강한민의 문장이 그려진 헬기가 우리의 진로를 막는 건 사실처럼 보인다.
그러는 동안 초대형종은 어느새 산기슭을 오르고 있었다.
빌딩처럼 치솟은 녀석의 상부 구조물이 지면과 비교했을 때 직각에서 꽤 아래로 꺾였다.
기다렸던 순간이다.
김다람이 날 매서운 눈으로 보았다.
그 눈을 본 순간, 나는 내 후배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품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부러 방해하는 거?”
다만 김다람은 강한민의 본성까지는 파보진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런 걸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녀는 겉으로 드러난 현상만을 보고 으레 단정 짓는 삶을 살아왔고 앞으로도 같은 삶의 방식을 고수할 것이다.
그런 삶의 방식이 반드시 나쁘다는 건 아니다.
오히려 그러한 방식은 대부분의 상황에서 나처럼 깊이 생각하는 사람보다 효율적이고 긍정적이다.
“아마도.”
아무튼, 상황이 복잡해졌다.
강한민의 헬기가 진로방해를 한다.
이쪽에서 교신을 해보지만 묵묵부답.
하지만 그렇다고 섣부르게 공격을 한다는 건 현실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불가능한 일이다.
상대방은 구원자라 불리는 대한민국의 영웅인 강한민이다.
누가 감히 그에게 총부리를 겨눌 수 있을까?
“어떻게 하죠?”
기장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는 나에게 해결법을 묻고 있다.
그런데 나라고 해서 뾰족한 방법이 있는 건 아니다.
“어떻게 잘 회피해서 쏠 순 없을까요?”
“······그게 그리 쉽지만은 않습니다.”
“일단, 우리가 세 기나 있으니 전부 다 방해할 순 없는 노릇 아니겠습니까?”
“각개로 타격을 가하라, 이 말씀이죠?”
고개를 끄덕였다.
편대가 산개했다.
세 대의 헬기가 다른 방향으로 흩어져 각기 다른 방향에서 타격점을 노렸다.
강한민의 헬기는 잠시 허공에 머물더니 이윽고 가장 먼저 타격 준비를 갖춘 헬기의 진로를 향해 돌진했다.
“2번기. 공격 중지.”
직접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아니, 정확히는 공격하는 척만 하세요.”
김다람이 날 보았다.
설마 그렇게까지 하겠냐는 감정이 그녀의 일그러진 얼굴에 담겨 있었다.
나는 그렇게 할 거라고 믿는다.
“3번기. 공격 시작합니다.”
다른 방향으로 돌아간 헬기가 미사일을 토해냈다.
다음 순간, 강한민의 헬기가 그쪽을 향해 전속력으로 전진했다.
그리고.
쿵!
충분히 먼 곳임에도 불구, 내장 전체가 흔들릴 것 같은 충격파가 강한민의 헬기 쪽에서 터져 나왔다.
틀림없다.
반사역장이다.
다행스럽게도 이미 벌려놓은 거리 탓에 미사일은 강한민의 역장을 스쳐 지나가며 크라켄 타입의 다리를 강타했다.
콰쾅!
지옥불이라는 이름답게 가공할 파괴력의 미사일 12기가 순차적으로 몬스터의 다리에 폭발을 일으켰다.
연기가 걷히기도 전에 우리는 3개의 다리가 몬스터의 몸통에서 분리되는 걸 확인했다.
“나이스 샷.”
마이크에 대고 말했다.
“천천히 계속합시다.”
일전에 들은 이야기가 있다.
같은 특기 내에서도 최고의 실력을 가진 사람만이 정부군에 남을 수 있었다는.
헬기 파일럿들은 정부군 소속으로 과연 소문에 걸맞는 실력을 겸비하고 있었다.
굳이 내가 지시를 하지 않아도 그들은 현란한 기동으로 강한민의 헬기를 따돌리며 제2타를 먹였다.
이번에 강한민은 반사역장을 펼치지 않았다.
그가 생각해도 너무나 먼 거리라서 아예 전개를 하지 않는 모양.
크라켄 타입의 다리 3개가 다시 떨어져 나갔다.
파괴 목표로 설정한 다리 중 6개가 파괴됐다.
하지만 아직 남은 게 있다.
녀석의 균형을 지탱하는 다리가 여전히 남아 있다.
그 숫자는 2개.
내가 탄 헬기는 아직 미사일 공격을 하진 않았다.
하지만 강한민도 그 사실을 잘 안다.
두 번이나 미사일을 놓쳐버린 강한민의 헬기는 이제 작정하고 우리와 크라켄 타입 사이에 자리 잡았다.
기장이 딱 잘라 말했다.
“이대로는 발포가 불가능합니다.”
알고 있다.
“김다람.”
“응.”
“폭약 좀 준비해줘.”
김다람이 놀란 눈으로 날 보았다.
“진짜 하려고?”
고개를 끄덕이며 기장을 보았다.
“크라켄 타입 쪽에 접근할 수 있을까요?”
기장 또한 놀라워하며 물었다.
“플랜 B를 하시려고요?”
사전에 고지했다.
만약 미사일 공격으로 충분치 않을 경우, 명백히 미친 짓을 할 것이라는 예고를.
당시 정부군 파일럿들은 실소를 금치 못했지만 일이 이렇게 됐다.
강한민은 적극적으로 우리를 공격하지 않지만 간접적으로 우리를 방해하고 이른바 “부작위”적인 행동으로 우리를 죽이려 하기까지 한다.
이게 평상 임무라면 포기했겠지만 이번 임무엔 수십만이 넘는 사람의 목숨이 달렸다.
기회는 지금뿐이다.
놈이 능선을 오를 때, 녀석의 각도가 지구의 중력의 중심과 미묘하게 일그러질 때만이 이번 작전을 성공시킬 수 있다.
두두두두두—-
눈앞에서 거대한 회백색 물체가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걸 지켜보며 등에 대량의 폭약을 짊어졌다.
“괜찮겠어?”
김다람이 조심스레 묻는다.
고개를 끄덕였다.
팀원에게 종종 위험한 지시를 내리곤 하지만 나는 내가 해야 하는 일을 명확히 알고 있다.
이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다.
두두두두두–
또 한 대의 헬기가 우리 바로 앞을 스쳐 지나가며 굉음과 강풍을 일으키는 게 보인다.
그 헬기의 측면엔 무릎 꿇은 채 하프를 켜는 광대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니 중세풍으로 그린 그 광대의 눈가엔 눈물이 맺혀 있었다.
그 눈물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하강.”
그대로 한 줄의 로프에 목숨을 의지한 채 아래로 뛰어내렸다.
찰나의 순간, 많은 것들이 스쳐 지나간다.
벽처럼 시야 한구석을 막은 크라켄 타입의 회백색, 바람으로 일렁거리며 가까워지는 지면, 저 아래 끊임없이 꿈틀거리며 움직이는 2개의 다리, 그리고 그러한 풍경을 뚫고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는 동료들의 얼굴.
그들은 하나 같이 내게 뭘 말하려고 한다.
궁금하다.
그들이 나에게 말하려는 것이 무엇인지.
하지만 그 답은 영원한 졸음에 빠진 뒤에나 얻을 수 있겠지.
아직은 죽을 수 없다.
때가 아니다.
이를 악물며 바로 로프를 붙잡는다.
쿵! 쿵! 쿵!
바로 앞에 지축을 흔들게 하며 움직이는 두 개의 다리가 보인다.
동시에 헬기의 굉음이 들려온다.
강한민의 헬기가 이쪽을 향해 다가오고 있다.
부우우우웅———
가깝다.
마치 헬기의 프로펠러로 내 생명줄과 같은 로프를 끊으러 올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마저 든다.
“······.”
무시했다.
지금은 눈앞의 일에만 집중하겠다.
턱!
가방의 폭약을 세팅하고 교차하는 두 개의 다리에 부착했다.
삐빅-
세팅이 끝난 직후 교신기에 대고 말했다.
“올려 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로프가 위로 상승했다.
굉음과 강풍이 가까워진다.
우리의 것이 아니다.
강한민의 것이다.
곧 나와 강한민의 헬기가 평행선 상에 위치 잡았다.
찰나의 순간 나는 보았다.
헬기의 열린 창문을.
거기엔 내가 잘 아는 얼굴이 자리 잡고 있었다.
강한민이다.
창밖에 상반신을 내민 그는 살짝 놀란 얼굴로 날 노려보고 있었다.
순간, 뇌리에 새겨졌던 의문 하나가 지워지는 걸 느꼈다.
역시 강한민이다.
녀석은 변하지 않았다.
비인간적으로 변한 모습은 연출의 결과.
강한민은 내가 아는, 내가 북경의 하수도에서 섬뜩함을 느꼈던 바로 그 강한민과 다르지 않은 존재다.
찰나의 마주침은 잠시.
나는 위로 상승하고 강한민의 헬기는 그대로 저쪽으로 날아가 버렸다.
김다람이 위태로울 정도로 몸을 내민 채 손을 내밀었다.
“선배!”
김다람의 손을 잡고 다시 헬기 안에 올라탔다.
헬기에 올라타기 무섭게 아래에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두 개의 다리가 떨어져 나갔다.
이제 크라켄 타입의 후면을 지탱할 모든 다리가 제거됐다.
교신기에 대고 말했다.
“방금, 좌표 보내드린 좌표로 포격 부탁합니다.”
명령하기 무섭게 남쪽에서 포성이 들려왔고 수많은 포탄이 북한산을 오르는 크라켄 타입의 상부 구조물을 연이어 강타했다.
수많은 폭발이 놈의 표면에 수를 놓는 가운데 크라켄 타입이 크게 휘청거렸다.
잠시 후 녀석의 거체가 한쪽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어어?!”
“넘어간다! 넘어간다고!”
크라켄 타입이 기울었다.
급격한 경사에서 반대편을 지탱할 다리를 모두 상실한 녀석이 적절한 힘을 받자 반대 방향으로 힘없이 쓰러지기 시작한 것이다.
쿠우우웅–!
놈은 죽을 때도 장관이지만 쓰러질 때도 장관이다.
폐허가 된 도시 안에서도 우뚝 서 있는 수십 개의 빌딩을 자신의 거체로 덮어버리며 크라켄 타입은 전도됐다.
자욱한 흙먼지 속에서 놈은 여러 개의 다리를 움직일 뿐 두 번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해냈어!”
“이걸 진짜 해내네!”
“사진 찍어! 저 새끼!”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기내 안에서도 교신기 안에서도.
“선배!”
우민희의 벅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평소엔 좀처럼 들려주지 않는, 옛 귀여웠던 후배 시절의 목소리다.
“선배! 진짜! 진짜 해낸 거야? 역시 선배야. 그 한줌도 안 되는 장비로 크라켄 타입을 쓰러뜨리다니. 선배 아니면 누가 이런 짓을 하겠어?!”
퍽이나 기뻤던 모양이다.
하긴, 크라켄 타입이 도달해서 파괴 광선을 훅 긁는 것만으로 우리의 도시는 멸망했겠지.
우민희의 두서없는 칭찬 속에서 문득 서늘한 감각을 느꼈다.
김다람이 내게 냉담한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김다람은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어 보였다.
마치 이 여자는 절대 안 된다고 경고하는 듯한 표정.
피식 웃었다.
“화해 좀 해라.”
“뭔 화해? 싸운 적도 없는데.”
아무튼, 도시는 구원받았다.
하지만 저 멀리 유유히 허공을 가로지르는 헬기의 존재는 내 마음에 그림자를 드리운다.
“아무튼. 선배.”
김다람이 날 불렀다.
“굿잡이었어.”
모처럼 그녀가 엄지를 세워 보였다.
“······.”
희미한 미소로 화답한 후 멀어지는 강한민의 헬기를 응시했다.
잠시 후 부기장이 고개를 돌렸다.
“강한민의 헬기에게서 메시지가 왔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했다.
[ 임무 중 훈련을 위해 귀하의 기동을 방해한 부분에 대하여 심심한 사과를 표시함. 교신기가 중간에 고장이 난 관계로 제때 통보를 하지 못했음. ]여기저기서 욕설이 들려 오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내 시선은 좀 더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균열이 열린 이래 인류의 천적 – 네메시스의 지위는 몬스터가 오롯이 차지했다.
하지만 오늘 일로 확실히 알았다.
인간의 가장 강대한 적은 여전히 우리 인간일지도 모른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