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17)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417화(417/466)
417화 168. 가능성 (2)
역시 미군기였다.
아마 A-10이라고 불리는 기종이었을 것이다.
특유의 공기를 부수고 가는 듯한 묵직한 파공음과 엔진음을 보고 예상했다.
본대로 복귀하자 정확한 사정을 알 수 있었다.
대구에 있던 미군이 정식으로 연락을 취해왔다.
시대가 시대다 보니 옛 동맹군의 정만으로 우리를 도와주려는 건 아니었다.
그들은 거래를 요구했다.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는 내 소관이 아닌지라 알 수 없었지만 그들이 요구한 건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이주다.
그들은 대구 미군 기지에 있는 미군 및 그 가족을 서울 근교로 옮기고 싶어 한다.
시설이나 설비 쪽은 대구 쪽이 월등하지만 침식이 너무나 강해서 더 이상 사람이 살기 어렵다는 판단이 섰기에 이주를 희망한 것이다.
그들이 희망한 장소가 내 방공호 바로 건너편의 버려진 미군 기지라는 건 그리 놀랄 만한 일은 아니다.
애당초 그곳은 미군의 영역이었으니까.
그들은 이주 및 기지 복구에 관한 물자를 요구하는 대신 현재 가지고 있는 전력으로 도시를 돕겠다고 말해왔다.
또 하나 요구한 건 헬륨이었다.
그들은 구체적으로 대량의 헬륨을 공급할 수 있는지 콕 찍어서 문의했다고 한다.
이들의 요구 사항은 전쟁 전 기준이라면 모를까, 전쟁이 시작된 지 4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는 꽤나 버거운 요구였다.
수천 명에 달하는 식량이야 공급할 수 있겠지만 항공유를 포함, 갖가지 건설 자재나 건설 인력까지 요구하는 건은 새로운 서울로서도 버거운 요청이었으니.
이에 대해 서울 정부는 잠시 고민하긴 했지만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다.
어차피 여기서 못 지키면 모든 게 끝이다.
이에 미군은 전술폭격기로 이루어진 대대급 비행대에 의한 한 차례의 전술 폭격을 약속했다.
야박한 수치처럼 보이지만 현재 시대에 스무 기에 달하는 전폭기의 폭격 지원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풀 코스를 먹는 것만큼이나 사치스러운 일이다.
미군 입장에서도 남은 기름과 자원을 모조리 쏟아붓는 도박이다.
그들도 운명을 걸었다는 이야기다.
뜻하지 않은 호재다.
레베카와 스우.
우연히 만난 그들 모녀와의 만남이 마지막이 될 지도 모르는 절망적인 임무의 가능성을 대폭 끌어 올렸다.
그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지만 전투는 현재 진행형이다.
게다가 예기치 못한 새로운 상황이 속속 발생한다.
밤에 접어들 무렵 한 무리의 병사가 도시 외곽에 나타났다.
도시가 발칵 뒤집혔다.
중국군이다.
김병철과 함께 휴전 쇼를 하고 몇 차례 거래를 하긴 했지만 여전히 중국군이라는 건 한국인에겐 주적으로 인식되는 존재다.
그런 중국군이 완전 무장을 한 채 오성홍기를 휘날리는 장갑차를 타고 왔으니 도시 전체가 뒤집힌 건 당연한 결과였다.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악의로 오지 않았다.
“과거는 과거고 미래는 미래라고 생각합니다. 이 도시가 무너지면, 우리가 현재 터 잡은 주둔지까지 급속도로 침식이 될 겁니다. 침식 지대에서는 인간이 살 수 없습니다.”
중국군을 이끈 건 한국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는 단아한 미모의 여인이었다.
장수영이다.
그녀가 최상급자는 아니었다.
그녀를 따라 같이 서울에 들어선 인물 중엔 한국군의 중령에 해당하는 중교 계급장을 단 고급 장교와 나와 한 차례 악연이 있는 이른바 중국 최강의 헌터 바이토우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녀가 중국군을 대표한 건 그들 중에서 가장 한국어에 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멀리서 바이토우가 과할 정도로 강렬한 눈빛을 보내는 걸 애써 외면하며 장수영과 이야기했다.
“스무 명입니다. 저를 포함하여 헌터 팀 하나. 그리고 나머지는 전투 드론 부대입니다.”
드론이 몬스터 상대로 무력하다고 하지만 중국인은 마지막까지 그 드론으로 몬스터를 도모하려 했던 사람들이다.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지의 기술이 있을 것이다.
미군과 달리 중국군의 도움은 논란을 일으켰다.
다수의 강경파가 중국군의 도움을 거절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부는 그들이 여전히 서울을 파괴하고 이 나라를 점령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중국인들의 소망을 아는 자는 극소수다.
그들은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바다를 건널 수는 있어도 회백색으로 변한 죽음의 대지에서 살기 위해서는 많은 것을 필요로 할 것이다
그걸 위한 조력이다.
우민희가 내 편이라는 건 이런 상황에서 커다란 도움이 됐다.
“제가 책임지면 되는 거죠?”
우민희가 짜증을 내비치자, 지지부진하던 논쟁은 거짓말처럼 빠르게 끝났다.
중국군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단, 그들은 오로지 내 감독하에서, 내가 지정하는 곳에서만 작전권을 받기로 했다.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어차피 한 줌밖에 안 되는 전력이니.
허가를 얻은 후 장수영 일행과 만났다.
아직 완전히 그들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게 아니다.
내 나름의 마지막 테스트가 남아 있다.
내가 비록 중국군에게 우호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있지만 사실 대한민국과 미국을 통틀어 나만큼 중국이라는 집단 전체를 미세 단위에서부터 의심하는 이는 거의 없다.
나의 테스트 결과에 따라 이들의 쓰임새가 정해질 것이다.
처음부터 희생할 버림패로 쓸 것인지, 아니면 계획을 위한 중요한 한 축으로 쓸 것인지.
장수영은 바이토우와 중국군 중교 하나를 대동했다.
장수영을 제외한 나머지 두 명은 실시간 번역기를 들고 있었다.
“잘 지내셨어요?”
고개를 끄덕이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역시 중국군도 요구하는 것이 있었다.
그들이 요구하는 건 미군이 요구한 것에 비하면 턱없이 소박했다.
식량과 연료는 물론이고 갖가지 기계와 건설 자재, 건설 인력까지 요구한 미군과 다르게 중국군이 요구한 건 “맛과 관계없이” 먹을 수 있는 식량과 의약품 공급이 전부였다.
전쟁을 시작했다는 과거의 부채 때문에 크게 요구하기도 어려웠겠지만 소박하기 짝이 없는 그들의 요구는 저물어 가는, 몰락을 앞둔 한 집단의 모습의 씁쓸한 초상화처럼 보였다.
속내를 드러내고 싶지 않지만 한때나마 함께 몬스터와 싸웠던 사람들이다.
안쓰러운 눈빛을 보내자 장수영은 쓸쓸히 웃으며 답했다.
“양쯔강을 거슬러 올라갈 거예요.”
“장강요?”
“네. 예전엔 댐으로 물길이 막혔지만 그쪽 나라가 댐을 파괴한 덕에 상류까지 물길이 뚫렸죠.”
“상류엔 뭔가 있습니까?”
장수영이 빙그레 웃으며 대답했다.
“샹그릴라.”
그 흔들림 없는 눈동자가 내게 확신을 줬다.
샹그릴라.
그것이 그들의 희망이다.
중간에 매의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던 바이토우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대뜸 그는 내게 엄지를 치켜 세우며 어눌한, 하지만 열심히 공부한 티가 역력히 나는 한국어로 말했다.
“크라켄 타입. 사냥 봤다. 죽여 줬다.”
역시 본 건가.
하긴 그 태풍에 비견되는 놈이 나타났으니 중국인들도 바짝 긴장을 했겠지.
행여라도 그것이 그들의 주둔지로 오게 된다면 글자 그대로 전멸을 면치 못할 테니 말이다.
웃음으로 화답한 후 장수영에게 질문을 던졌다.
“드론이 몬스터에게 통용됩니까?”
장수영이 동석한 중국군 장교를 응시했다.
장교가 중국어라 뭐라고 떠들었다.
곧 그가 손에 쥔 휴대폰에서 한국어로 변역된 문구가 나왔다.
[ 말벌. 발마사지. 그렇습니다. ]장수영에게 눈짓을 보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중국인은 제한적이나마 드론으로 몬스터에게 대항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중국인은 드론에 대한 몬스터의 공격 패턴을 크게 3가지로 분류하는데 하나는 공격 능력을 이용한 직접 공격 방식, 다른 하나는 우리가 겪어 본 적이 있는 전파 방해 방식, 그리고 마지막은 사례는 있으나 아직 확실하게 정립하지 않았던 유사 EMP 방출 방식이다.
어느 쪽도 치명적이지만 중국인은 그럼에도 어느 정도 통할 수 있는 체제를 구축했다고.
정확한 스펙을 물었다.
“중형종 상대로 전투를 수행할 수 있습니까?”
장수영이 답했다.
“다짜고짜 EMP 파장부터 터뜨리지 않는 한, 두 기 정도는 파괴할 수 있습니다.”
중형종 두 기.
그것도 내가 지정할 수 있는 두 기라면 의미가 다르다.
중국인의 말이 맞는다면 이것은 미군의 폭격만큼이나 나의 가능성을 올리는데 큰 역할을 할 것이다.
그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미군과 중국군.
결코 섞일 수 없을 것 같은 존재가 이곳 새로운 서울에서 하나로 섞였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가 넘어야 할 산은 높다.
이튿날 새벽, 몬스터가 다시금 무리를 보냈다.
*
제아무리 잘 방비된 방벽도 결국은 인간이 만드는 것이다.
끝없이 밀려드는 공세 앞에서는 마모되고 균열이 생기고 그리고 부서진다.
새벽의 공세는 밤새 얼어붙은 강을 바로 건너왔기에 더욱 피해가 심했다.
중형종 한 기에 의해 방어 구역이 뚫렸다.
사상자의 숫자는 다섯 명 남짓이지만 수십 명이 부상을 입거나 입었다고 호소하고 있고 참호 시설 일부가 파괴됐고 전차 두 대가 격파됐다.
피해를 수복하기도 전에 균열은 또 하나의 무리를 보내왔다.
무한.
내가 균열에서 보았고 중국에서 경험했던 무한이 드디어 이 도시를 본격적으로 덮치기 시작한 것이다.
아울러 중국에서 경험했던 역겨운 배신도 비슷한 형태로 재현됐다.
동쪽 전선에서 원인 불명의 총성이 들렸고 사망자가 발생했다.
광신도다.
총성을 신호로 박격포로 추정되는 포격이 시가지를 강타했다.
곽상훈 쪽 부대가 추정하기로는 많아 봐야 스무 명 남짓의 소규모 테러 집단이라고 하는데 당장 몬스터에 대해 모든 힘을 쏟아야 하는 우리들에겐 성가신 방해다.
특히 박격포 포격이 도시의 심장인 발전소에 집중됐다는 것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놈들은 같은 인간이면서도 우리 모두를 죽이려 든다.
극한의 날씨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이다.
물론 놈들에겐 임자가 있다.
“광신도는 우리에게 맡겨.”
디펜더와 그의 킬팀이 출동했다.
여기서는 전적으로 디펜더를 믿을 수밖에 없다.
이 시기에 발전소가 멈추면 도시의 숨이 멎는다.
기상예보에 의하면 3일 뒤에 날이 풀린다고 하는데 사람이 얼어 죽는데 걸리는 시간은 1시간이면 충분하니까.
광신도의 공격은 시민은 물론이고 도시 수뇌부마저도 공포에 몰아 넣었다.
“이대로 버틸 수 있습니까?”
한 정부 인사가 한 말이다.
대답했다.
“버티지 못하면 죽습니다.”
말 그대로다.
지금 상태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끝까지 버티는 것이다.
버티고 버텨서 놈을 둘러 싼 몬스터의 장벽이 충분히 엷어지기까지 기다려야 한다.
물론 그때까지 버티는 게 쉽다는 건 아니다.
“명심해라. 우리의 역할은 소방수다.”
싸워야 한다.
싸워서 결과를 내야 한다.
헌터 전력을 이끌고 구멍이 난 전선마다 지원을 가며 도시를 향해 진격하는 몬스터를 막아냈다.
하지만 그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건 누구보다 내가 가장 잘 알고 있다.
*
공세 4일차.
전선에 두 번째 구멍이 뚫렸다.
수십 명의 사상자가 발상했다.
몬스터의 공격보다는 지근 거리에서 터진 충격파를 버티지 못하고 미쳐버리거나 정신 이상을 호소한 환자가 다수였다.
동쪽 인간 대 인간의 전선에서는 피로 피를 씻는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수시로 박격포가 도시 위로 떨어졌고 낮에도 밤에도 총성은 끊이지 않았다.
하루가 저물 때마다 도시 곳곳에서는 기도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공세 5일차.
디펜더가 악명 높은 광신도 저격수를 포획해서 산 채로 갈고리에 걸어 빌딩 위에 매달아 놓았지만 이를 조롱하기라도 하듯 또 다른 저격수가 디펜더의 팀원 한 명을 저격해 죽였다.
공세 6일차.
마지막 전차가 파괴됐다.
또한 포탄 재고가 바닥을 드러냈다.
공세 7일차.
내 후배 천영재가 치명적인 부상을 입었다.
목숨엔 지장이 없지만 당분간은 전투를 수행할 수 없을 정도의 중상이었다.
산소마스크를 낀 채 눈을 감은 천영재 옆엔 김다람의 남편이 서 있었다.
“괜찮을 겁니다. 이대로 안정을 취한 상태에서 충분한 영양을 섭취한다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겁니다.”
김다람의 남편 아래엔 그와 김다람을 반반 섞어 놓은 듯한 키가 크고 깡마른 소년이 물끄러미 우리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누군지 알 것 같다.
“네가 동탁이냐?”
말로만 듣던 김다람의 아들.
엄마가 손이 커서 비만 아동으로 알고 있었는데 어느새 저렇게 훌쩍 커버린 모양이다.
커다랗게 뜬 눈에 은은히 서린 광채는 아마 김다람의 가슴을 강하게 짓누르는 고민의 원인일 테지.
머리를 쓰다듬고 병실을 나섰다.
“······.”
이제 조금만 버티면 된다.
아주 조금만 더.
안개 지대에 분포하는 몬스터의 총량이 이제 백 기 아래로 떨어졌다.
파주에서 새로운 분출이 일어났다고 하지만 분출만 했을 뿐, 이곳에 이동하는 움직임은 없다.
이대로 한 번, 아니 두어 번의 공세만 막아낸다면 충분히 장군 타입을 제거하는 작전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도시의 상황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날이 풀리자 다수의 피난민이 도시를 떠났다.
꿋꿋하게 강변을 지키던 자원병 다수가 탈영한 건 덤.
설상가상으로 북부엔 대규모 좀비의 운집이 포착됐다.
네크로맨서 타입이 이제 몬스터에 더해 놈들을 보조할 병력까지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정확한 건 아니지만 도시 동남부 먼 곳에서 다수의 좀비가 모여 있다는 첩보도 들려왔다.
강은 얼어붙었지만, 얼어붙은 강을 파괴할 폭약이 부족하다.
재료는 충분히 있지만 그 재료를 폭약으로 만들 시간이 없다.
이대로 다음 공격이 다수의 좀비를 동반하고 온다면 그때는 방법이 없다.
곽상훈과 김병철은 지금이라도 당장 미군기를 불러 북부를 폭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말도 안 되는 이야기다.
여기서 섣불리 폭격을 가한다면 장군 타입에게 우리의 공격이 있을 거라는 시그널만 줄 뿐이다.
폭격은 놈을 죽이는 가능성의 일부를 이뤄야만 의미가 있다.
“선배. 이제는 나도 어떻게 커버를 해줄 수가 없어.”
내 계획을 아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인 우민희가 내게 말했다.
“이제는 폭격이라도 해야 해.”
그녀의 말이 맞다.
도시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수많은 생각이 있다.
나 혼자만의 생각을 고수할 순 없다.
하지만 불과 한 발자국 앞이다.
조금만 더 놈들의 전력을 깎아낼 수 있다면 실낱같은, 기적의 가능성이 생긴다.
또 다른 대규모의 피난 행렬이 도시를 떠나는 가운데 안개 너머에서 불길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웅- 웅- 웅-
발작적인, 어떤 생명의 구조에서도 낼 수 없는 기괴한 울림.
몬스터의 공세를 알리는 파멸의 나팔 소리다.
더 호프 옥상 위에 설치된 신호기가 움직이며 공격에 준비하라는 식별 신호를 만들어 내는 가운데 도시 곳곳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사이렌이 울려 퍼졌다.
웨에에에에에엥—-
새벽녘 공기를 타고 하늘 위로 울리는 그 중첩되는 사이렌 소리는 우리 인류에 대해 고하는 조종(弔鐘)처럼 느껴졌다.
“선배.”
김다람이 말했다.
“이제 더는 안 될 것 같아.”
미군 지원 요청에 관한 권한은 오로지 내게 있다.
최대한 아껴두고 싶었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 인류가 균열에게 통렬한 일격을 가하기 위한 가능성 중 하나였으니.
그러나 도시의 멸망이 눈앞에 온 지금, 가능성을 운운한다는 건 일종의 블랙코미디겠지.
덧없이 푸른 하늘을 보며 한숨을 내쉬고 교신기의 마이크를 입 앞으로 가지고 왔다.
“······.”
입안이 바싹 말랐다.
여전히 미련이 남는다.
기적을 바란 적은 없지만 기적이 일어났으면 한다.
그렇게 생각하며 본부와 교신을 시도하려는 찰나였다.
치지직-
갑자기 노이즈 섞인 전파가 무전기에서 터져 나왔다.
그 거칠기 짝이 없는 노이즈 속에서 기억에 있는, 잊을 수 없는 강렬한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왔다.
“세종의 왕이 도착했다.”
김다람이 놀란 눈으로 날 보았다.
“뭐야?”
그뿐만 아니다.
거의 동시에 또 다른 전파가 무전기를 통해 우리에게 또 한 사내의 생생한 육성을 전달했다.
“인천 피난민 연합입니다. 평범한 사람들이라 별 도움은 안 되겠지만 도우러 왔습니다.”
정확한 상황은 본부에 가서야 확인할 수 있었다.
도시 외곽에 수백 명의 전투원과 전투 장비를 갖춘 병력이 도착했다.
그들의 장비는 조악하지만 충분히 효율적이었고 그들의 눈빛과 기세는 정부군의 정예와 비교해도 모자람이 없었다.
한때는 평범한 학생, 직장인, 아버지이자 어머니였지만 전쟁 후 지옥 같던 아포칼립스 상황에서 살아남았고 스스로를 증명한 전사들이다.
이들을 이끄는 건 킹과 박펭귄.
세종과 인천의 지도자가 우리를 도우러 왔다.
“스켈톤! 어디 있냐? 얼굴이나 보자.”
“스켈톤님이라는 분과 만나 뵐 수 있을까요?”
꺼져가는 가능성의 불씨가 다시 타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