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19)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419화(419/466)
419화 169. 물음 (1)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보자.
장군 타입.
지성을 가지고 몬스터를 지휘하는 이 대형종 몬스터를 죽인다고 해서 도시를 둘러 싼 악몽이 끝날까?
정직한 속내를 말하자면 아니라고 본다.
놈을 죽인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변화가 일어나진 않을 것이다.
장군 타입이 특수한 개체라고 해도 균열이라는 측량할 수 없는 우주적인 존재에겐 그저 약간 희귀할 뿐인 카드 패 중 하나에 지나지 않을 가능성이 더 이치에 맞는 말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장군 타입을 반드시 죽여야 하는 이유는 그것 말고는 어떤 가시적인 희망도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전쟁이 시작된 지 이제 5년째에 접어들었다.
인류는 한계에 달해 있다.
우리 도시만이 아니다.
미국, 일본, 유럽, 기타 알려진 인류의 영역에서 전면적인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
내가 예상했던 인류의 종말은 느리지만 확실하게 진행 중이라는 이야기다.
한때 끔찍하면서도 낭만적인 꿈을 꾼 적이 있었다.
바로 나만의 방공호 안에 틀어박혀 세상이 멸망하기를 기다린 후 최후의 인류가 되는 꿈이다.
언젠가 찾아올지도 모를 외계인, 혹은 인류의 뒤를 이을 새로운 지성체가 참고할 수 있는 기록을 남겨두기도 했다.
분명 환상적인 꿈이지만 그건 나의 또 다른 자아, 스켈톤의 꿈이다.
프로페서에겐 다른 꿈이 있다.
아니, 숙원이라고 해야 하나.
내가 이름붙인, 아직 이름을 확정하지 않은 몬스터가 있다.
놈은 죽어야 한다.
왜냐하면 놈의 죽음 그 자체가 인류만이 할 수 있는 것, 우리 인류가 균열이라는 미지에게 던지는 물음이기 때문이다.
*
모든 준비를 마쳤다.
17개 헌터팀 – 정규 어웨이큰 8인이 포함된 – 이 모였고 31대의 전투차량, 5대의 전투 헬기, 최소 10기 이상의 대형 드론과 수백 개 이상의 소형 드론이 준비됐다.
밥만 축낸다고 욕을 듣던 중국군도 그들 고유의 무장을 가지고 만반의 준비를 마쳤고 미군 쪽도 최후의 공중 지원을 위한 만반의 대비를 갖췄다고 한다.
작전은 확정적이다.
되돌릴 수도 없고 번복할 수도 없다.
도시 일각에서는 이번 작전에 대한 회의가 제기되기도 했지만 나와 우민희의 뜻이 워낙에 강했고 또 이번 작전은 뜬금없이 등장한 게 아닌, 오래전부터 회의석상에서 주요 의제로 논하던 것이라 이제 와서 이번 작전에 반대하는 건 반대 측으로서도 솔직히 명분이 희박하다.
다만 모든 상황이 우리를 도와주는 게 아니다.
도시 전반적인 지표가 위태로운 수치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은 이번 작전에서 고려한 사항은 아니다.
현재 우리가 고려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날씨다.
기상 상태가 썩 좋지 않다.
기상예보관의 말에 의하면 강력한 저기압이 북상, 현재 머무는 고기압을 밀어내고 대량의 눈을 뿌릴 예정이라고.
아무리 한반도 날씨가 오락가락한다고 하지만 눈이 아닌 비가 올 수도 있다는 건 불과 며칠 전만 해도 동상과 싸우던 우리의 입가에 헛웃음을 감돌게 했다.
극도의 기상악화가 의미하는 건 작전의 지체를 의미한다.
화력의 80% 이상을 지원할 미군의 공중 지원이 막힌다는 이야기다.
작전의 개요는 목표물 장군 타입이 머물고 있는 A 시가지에 대해 연과 일회용 드론을 이용한 정찰을 해 도시 주요 길목을 지키고 있거나 주둔 중인 몬스터의 위치를 확인한 후 그 장소를 미군이 폭격, 놈들의 숫자를 대거 줄인 다음, 나를 포함한 헌터 팀이 각 방면에서 진격, 장군 타입을 잡아내는 것을 주요 골자로 하고 있다.
미군 폭격은 선택이 아닌, 이번 전투의 가장 중요한 손패다.
미군 측에서는 악천후라고 하더라도 제한적인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 안은 내 쪽에서 반려했다.
기회는 한 번뿐이다.
총격을 가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총탄은 어린 아이가 건장한 남성을 일격에 죽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무기지만 맞지 않으면 끝이다.
아무리 총탄을 많이 뿌린다고 해서 상대방에게 맞추지 못한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미군 전성기라면 부족한 명중률을 압도적인 출격 수와 폭탄의 양으로 보충했겠지만, 지금은 그때와 다르다.
단 한 번의 폭격만이 남았다.
최대한 신중하고 정교하게, 놈들에게 확실히 타격을 가하고 싶다는 게 내 의지다.
17개 헌터팀이라고 해서 거창해 보이긴 하지만 100명도 안 되는 소수다.
중국 시절처럼 헌터만 천 명 이상 투입되던 좋았던 시기와는 사정이 전혀 다르다는 이야기다.
줄여놓을 수 있을 때 최대한 줄여놔야 한다.
애당초 중형종 이상의 전투형은 헌터 팀의 표적이 아니니까.
쿠구구궁!
천둥이 친다.
예상했던 악천후가 시작됐다.
모처럼의 짧은 휴식이 주어졌지만 내 마음은 기묘한 감정에 빠져들어 가고 있었다.
그날도 그랬다.
천둥과 번개가 쳤다.
번쩍이는 어두운 하늘 아래서 우리는 진군을 했고 그리고 실패했다.
문제는 그때와는 상당히 다르다.
당시엔 악천후 속에서도 작전을 강행할 수 있는 저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악천후가 계속되는 한, 작전을 시작조차 할 수 없다.
일기예보관의 예보와 달리 저기압이 오랫동안 머물며 정체 기미를 보이면서 작전 개시 시작은 기약 없이 뒤로 밀려났다.
예정 작전 시간까지 48시간이 흘렀다.
억누르고 있던 회의론이 고개를 든 건 당연한 흐름이다.
나조차 믿지 않은 장군 타입 – 만능설을 다른 사람이 믿을 리 만무하니까.
하지만 그것보다 무서운 건 신규 몬스터의 충원이다.
목숨을 걸고 파주 인근에 파견된 정찰대가 대규모 몬스터가 새로운 서울을 향해 이동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숫자는 못 해도 300기는 족히 넘는다고.
“선배 더는 기다릴 수 없어.”
우민희가 말했다.
“이제는 결정을 해야 해.”
그녀답지 않은 우울한 얼굴.
고개를 돌려 창밖에 보이는 하늘을 보았다.
야속하게도 우리의 행성은 자신을 위해 싸우는 우리에게 행운을 열어 줄 마음이 없어 보인다.
여전히 짙은 구름이 하늘을 가리고 있고 강풍과 진눈깨비, 가끔은 빗물마저 휘날리며 창가를 때렸다.
“······.”
잠시 생각했다.
“선배.”
우민희가 다시 날 불렀다.
얕은 한숨을 내쉬고 대답했다.
“이왕 기다린 거.”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슬아슬할 때까지 기다려보자.”
인내가 무조건적으로 선한 덕목인 건 아니라는 건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왕 할 거, 확실하게 하고 싶다.
최고는 아니더라도 최선의 조건에서 하고 싶다.
위험이 늘더라도, 어차피 가능성의 기댓값은 떨어지면 떨어졌지 높아지진 않는다.
폭격기의 숫자도, 폭탄의 양도, 조종사의 기량도 동일하다.
이제 결단만이 남았다.
답은 정해졌다.
아슬아슬할 때까지.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기다린 후 실행한다.
“다음 무리가 작전 구역에 도착할 예상 시간을 계산해 주세요.”
설령 날씨가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진다고 하더라도, 이미 실패가 예정된 현재 시점에서 시도하는 것보다 낫다고 본다.
늘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건 몬스터를 죽이는 것도 균열을 닫는 것도 아니다.
인간이 문제다.
늘 인간이 문제였다.
균열도 그렇다.
인간들이 조기에 합치를 봤다면 일이 이렇게 커지기 전에 막을 수도 있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른바 시민 대표들이 공개회의를 요구했다.
전쟁 당시엔 코빼기도 비추지 않던 자들이 이제 어느 정도 안전해진 것 같으니 지하에서 슬그머니 기어나와 그놈의 정치 놀음을 하려는 것이다.
“박규 대장.”
그 중심에 선 건 김수조라는 이름을 가진 시민 위원이다.
소문에 의하면 제주 쪽에서 은밀한 지원을 받고 있는 인간이라고.
하지만 제주 쪽에서 뿌린 자원 덕분인지 시민 위언 중에서 그의 위세는 특히 막강하다.
우민희가 표면에서는 철권을 휘두르고 있지만 뒤에서는 김수조를 비롯한 “제주 쁘락치”들이 여론을 만들고 있었다.
이렇듯 후방에서 역겹기 그지없는 행태가 벌어지는 건 나도 우민희도 알고 있었지만 당면한 위협이 너무나도 강하기에 신경 쓸 여력이 없었다.
하지만 작전이 연일 지체되고 그리고 여론을 등에 입은 그들이 공개회의를 요구한 이상,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이 도시는 우리의 것이 아닌, 도시에 사는 구성원 전체의 것이니까.
게다가 시민 위원들이라면 모를까, 시민들은 충분히 요구를 할 자격이 있다.
그들은 지난 전투에서 우리와 함께 싸우고 버티고 상처입고 그러면서도 또 이겨냈으니까.
하지만 순수한 민의라는 건 왜곡된 대의제라는 더러운 필터에 의해 쉽게 왜곡되는 법이다.
“만약에 말입니다. 우리가 가진 모든 자원을 투입한 이번 작전이 실패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 중심에 선 김수조가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하는지는 뻔하다.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던져놓고 강한민 이야기를 꺼내려는 것이겠지.
우리를 영원히 돕지 않을 그 “구원자”를 들먹이면서 이번 작전의 실행을 막는 게 아마 그가 제주에서 들은 지령일 것이다.
“제가 알기로 미군 지원은 한 번밖에 안 된다고 하던데, 그 폭격을 동반한 작전이 실패하면 우리는 어떻게 됩니까?”
사내의 얼굴을 보았다.
탐욕과 아집, 부족한 지식과 편견으로 얼룩졌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동자에 확신이 깃들어 있다는 건 같은 인간으로서 회의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긴, 사기꾼도 살인자도 심지어 아동 성범죄자조차 자신의 결백과 정의를 주장한다지.
믿는 구석은 뻔하다.
그의 뒤에 서 있는 동류들이다.
잠자코 있자 그들의 시선이 나에게서 우민희로 향한다.
그녀를 압박하려 하는 것이겠지.
결국 이 도시의 운명을 결정하는 건 우민희니까.
하지만 이건 내 싸움이다.
내 영역이다.
우민희가 나서려는 걸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들의 시선이 다시 나에게 향한다.
대답했다.
“죽거나 도시를 떠나야겠죠.”
빈정거림, 비웃음, 더러는 가벼운 욕지거리 등이 터져 나왔다.
그러한 부정적인 웅얼거림을 등지고 김수조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물었다.
“책임질 수 있겠습니까?”
실소를 머금었다.
김수조가 언성을 높였다.
“책임 질 수 있냐고 묻고 있습니다. 웃음이 나옵니까?”
“그건 걱정하실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정색한 그를 보며 담담히 말을 이었다.
“작전이 실패했다면, 이미 저는 죽은 목숨일 테니까요.”
“당신 하나 죽는다고······.”
“말 함부로 하지 마세요.”
그를 노려보았다.
오랜만에 목소리에 살기가 실린 탓일까, 주변의 공기가 싸늘하게 얼어붙는 게 느껴졌다.
사실 나는 수많은 회의를 하면서 타인에게 날카롭게 굴거나 불쾌감을 표시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럴 필요가 없기도 하거니와 여간한 건 우민희 쪽에서 커트해 줬으니까.
이제는 확실하게 해둬야겠다.
사내를 노려보며 똑똑히 말했다.
“당신, 아니 당신들의 빈자리는 누구나 채울 수 있겠지만, 제 빈자리는 채우기 어려울 겁니다.”
“헌터야 많습니다만?”
사내도 자존심이 있는지 위축된 가운데서도 주변의 눈치를 보고 용기를 얻어 가까스로 말한다.
자리에서 일어선 채 지그시 두 눈을 감고 한숨을 내쉰 후 다시 그를 응시했다.
“그럼 묻겠습니다. 누가 프로페서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그, 그건.”
사내가 눈치를 보며 뒤를 돌아보려 했다.
하지만 그 전에 보다 빠르게 행동한 사람이 있다.
김다람이다.
그녀가 말없이 내 뒤에 열중쉬어 자세를 하고 섰다.
마치 나를 지지한다는 것처럼.
시선을 맞추자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을 지으며 저 앞의 시민 위원들을 표범 같은 눈으로 노려보았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녀를 필두로 뒤편에 느슨하게 앉아 있던 하태훈과 방재혁이 내 뒤에 섰다.
안승환과 이하루가 뒤를 따랐다.
김한나와 정규 어웨이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치 나를 뒤에서 지지해주는 것처럼.
심형도 또한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학원 헌터라 불렸던 베테랑 헌터 거의 전원이 일어섰다.
김수조를 비롯한 제주 쁘락치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보였다.
아마도 학원 헌터 몇을 포섭했던 모양이다.
하지만 지금 그들을 지지하는 이는 아무도 없다.
설령 그들과 사전에 이야기가 됐더라도 이 분위기 속에서는 나서기가 곤란하겠지.
한 가지는 확실히다.
적어도 이 작은 세상이 선택한 건 나, 프로페서다.
침묵 속에서 자리에서 일어나며 나에게 대한 지지를 표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작전을 예정대로 진행합니다. 이 이상의 이의를 받지 않겠습니다.”
“지금 파주에서 엄청나게 많은 몬스터가 몰려 오고 있다던데?”
김수조가 아닌, 다른 인간이 말했다.
그가 누군지는 나에겐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건 그가 던진 질문의 내용이겠지.
제법 날카로운 질문이다.
제주에게 포섭된 탐욕스러운 인간으로는.
확실히 이 부분에 관해서는 나로서도 속시원하게 대답할 수 없다.
작전을 미룬 이유는 오로지 날씨가 개선되기를 바라는 석연치 않은 희망 때문이니까.
“그건.”
그래도 뭐라도 대답은 해줘야겠지.
그게 새로운 서울 헌터 총책을 맡은 자의 책임이니까.
그런데 입을 열기도 전에 누군가 후다닥 회의장 안을 박차고 들어왔다.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아는 여성이다.
잡다한 일을 떠맡던 정부 주무관이다.
“제주 쪽에서 사람이 왔어요!”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으며 그녀가 소리쳤다.
“사람?”
두서없는 말에 사람들의 의아해하자 그녀는 심호흡을 하며 격한 호흡을 가라앉힌 다음 모두를 향해 그녀를 놀라게 한 사람의 이름을 모두에게 말해주었다.
“나혜인 구원자가 왔어요!”
나혜인.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며칠 전에 보냈던 메시지 내용을 떠올렸다.
설마, 그녀도 온 건가.
여성이 활짝 웃었다.
“나혜인 구원자가 우리를 돕겠대요!”
*
새로운 서울에 도착한 나혜인은 소수의 수행원만을 데리고 왔다.
하나 같이 눈에 은은한 광휘가 서린 어웨이큰들이다.
그녀는 곧장 우민희를 찾았다.
둘은 꽤 오랫동안 밀실에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와 김다람 같은 선후배 사이다.
철저히 공무적으로만 협조했던 나와 김다람과 다르게 둘은 동성으로 꽤나 친하게 지냈던 것으로 기억한다.
우민희의 성격상,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었다면 진작에 손절을 쳤을 테니 제법 죽이 잘 맞았겠지.
그 나혜인이 회의 석상에 등장하자 회의실 전체에 긴장이 흐른 건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나혜인은 강한민과 함께 구원자라고 불리던 대한민국의 방패였으니까.
“내가 A구역 전체를 막을 수 있어.”
그녀는 날 보고 가볍게 목례했다.
이어진 희미한, 하지만 장난기가 묻은 미소에서 그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었다.
역시, 내 부름을 받고 왔다.
다시 한번 공허했던 마음이 채워지는 걸 느끼며 지도를 응시했다.
모든 조각이 완성됐다.
그것도 내가 상상한 것 이상으로.
남은 건 최선을 다하는 것뿐이다.
“······내일 새벽 6시를 기해서 작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작전 당일.
17개 헌터팀, 수백 명의 병사와 수십만 명의 시민의 우리를 지켜보고 서 있다.
새벽 하늘을 보았다.
어두컴컴하기 짝이 없는 밤하늘은 뇌운에 의해 한층 더 짙은 어둠을 간직한 채 은은한 뇌성을 울리고 있었지만 나는 본다.
그 두터운 구름과 구름 사이에 간간이 모습을 내는 별들을.
“······.”
우리 희망도 그와 같으리라.
아니나 다를까.
“어?”
“뭐야?”
“보인다! 보여! 별이 보여!”
구름이 걷히고 있다.
실로 오랜만에 서울의 밤하늘에 하늘을 수놓은 별들의 바다가 펼쳐졌다.
무전기가 울렸다.
미군기가 공역에 도착했다.
날카로운 제트기 음이 멀리서 들려 오던 은은한 뇌성을 덮었다.
우민희가 은은한 미소를 머금으며 내게 다가왔다.
“미군 애들이 시작해도 되겠냐고 묻는데?”
미소로 화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박살을 내버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거대한 죽음의 새들이 우리 머리 위를 지나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