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2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426화(426/466)
426 170. 응답 (3)
어웨이큰만이 놈에게 두려움을 느끼는 게 아니다.
살아 있는 것이라면 모두 일관된 두려움을 저 일렁거리는 균열 아래 우뚝 선 괴물에게 느낀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녀석의 존재감을 인지한 순간 나는 만성적인 졸음이 더욱 심해지는 걸 느꼈고 나도 모르게 앞으로 무방비하게 걷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이내 내 가슴 안의 증오의 불꽃이 내 영혼을 지졌고 나는 정신을 차리고 놈을 직시할 수 있었다.
“모두 들어라.”
프로페서 시절, 여간해서는 교신기를 통해 말하지 않았다.
최고의 친구들이 모인 팀답게 굳이 지시를 내리지 않더라도 저마다 최적의 위치에서 자신이 해야 할 역할을 알아서 수행했고 부득이하게 지시할 일이 있더라도 수신호만으로 충분히 소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를 비롯한 모두의 마음이 흔들리는 게 확실한 지금 침묵은 더 이상 금이 될 수 없다.
“저 몬스터가 일찍이 우리가 상대했던 어떤 놈보다 강한 건 맞다. 동시에 우리가 놈에 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평소의 침묵이 내 발언에 권위를 실어준 건 명백한 사실이다.
장기영처럼 허구한 날 정신론을 강조한다면 그 말은 얼마 지나지 않아 설득력을 잃게 된다.
“그러므로 내가 선두에 서겠다.”
무엇보다 팀원에게 신뢰를 주는 건 책임을 지는 자세다.
단순히 사약과 같은 쓰디쓴 결과를 감수하라는 게 아니다.
팀원 대신 혼자 매를 맞으라는 것도 아니다.
상황의 첨단에 서서 내가 판단하는 결과에 나 스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이라는 것이다.
“거리를 두고 따라와라. 판단에 따라 거리를 더 벌리는 것도, 그 자리에서 지원하는 것도 전부 자율적인 판단에 맡기겠다.”
교신기 너머에서 침을 넘기는 소리, 격하게 숨을 내쉬는 소리가 들려온다.
놈이 우리에게 던진 충격에서 회복하는 듯한 몸부림이다.
전의의 상실에도 불구하고 그 팀원에게 끊임없이 역할을 던져 주는 건 팀장이 팀원에게 해야 할 기본적인 배려라 생각한다.
“······적어도 나에게 광신도나 제삼자가 끼어드는 건 막아주길 바란다.”
주변에 광신도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이 말을 했다.
“그리고 김다람은 내가 신호하면 교란 사격을 가해라.”
“카피.”
가장 신뢰하는 팀원에게 역할을 맡긴 후 그대로 돌진했다.
빠르게 움직이는 풍경 속에서 마치 잠자리의 겹눈처럼 주변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형태를 의식 속에 담는다.
중요한 건 크게 세 가지.
중간 체크 포인트로 설정한 폐허와 나 사이의 거리, 몬스터의 움직임, 그리고 다음 체크 포인트로 삼을 엄폐물의 탐색.
얼마 지나지 않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팀원들이다.
잠시 몬스터의 위압에 위축됐던 그들이 어느새 전의를 되찾고 내 뒤를 따른 것이다.
가장 크게 흔들렸던 전상순은 자신이 보인 추태를 만회하려는 양 나보다 훨씬 더 빠른 전력 질주를 통해 내 앞을 지나가 2시 방향의 엄폐물을 먼저 점거했다.
피식 웃으며 체크 포인트로 삼은 엄폐물로 향해 놈을 살폈다.
최초의 파동 후, 놈은 미동도 없다.
김다람에게 신호했다.
“다람.”
탕!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묵직한 총성이 울렸고 동시에 몬스터가 충격파를 발했다.
쿵!
온몸에 전율이 일 정도의 충격파.
등줄기에 소름이 돋고 내장이 떨리는 게 느껴진다.
김다람의 탄환은 반사역장에 도달, 김다람에게 반사되어 그녀가 은신한 빌딩 벽면에 파편과 구멍을 만들어냈다.
“후우.”
김다람의 한숨 소리가 들려온다.
후방에 있다고 하나 그녀가 감당하는 위험은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그녀는 죽음 앞에 알몸으로 선다.
지체없이 두 번째 체크 포인트로 이동하면서 놈을 살폈다.
여전히 움직임이 없다.
묘하다.
이른바 몬스터의 반응성이라는 건 말 그대로 놈이 우리 헌터를 인지, 반응하는 성질을 말한다.
어떤 몬스터는 자기 영역 안에 들어오는 순간 인간을 공격하지만 어떤 몬스터는 50m 앞에서 총을 들고 돌아다녀도 아무런 움직임도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반응성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공격을 받기 전의 이야기다.
일단 우리가 인티미데이팅을 통해 녀석에게 명백한 공격을 가하는 순간, 몬스터는 어떤 타입을 막론하고 자신에게 위해를 가한 인간을 죽이기 위한 자기 보호 행동에 들어간다.
그런 행동 양식은 우리가 몬스터라는 분석할 수 없는 존재에게서 밝혀낸 몇 안 되는 법칙 중 하다.
하지만 저기 서 있는 거대한 놈은 두 차례나 인티미데이팅을 가했는데 불구하고 우리를 지켜보기만 한다.
“저 녀석.”
뒤를 따르던 감호섭이 말했다.
콜사인은 세이지.
나와 동기로 언제나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뛰어난 스포터다.
눈썰미가 뛰어나고 시야가 넓고 특히 사격이 빠르다.
예고 없이 나타나 기습을 가하는 광신도나 반군 상대로 그는 서부 시대 총잡이 같은 총격을 보여주며 몇 번이고 동료와 팀 전체를 구해냈다.
하지만 내가 가장 높이 평가하는 건 전투력이 아닌 지식이다.
그는 학교 출신 중 유일하게 인도에 파견된 국제 탐사대의 일원이다.
멸망한 인도라는 종말 세계에서 그는 100일 이상을 활동하며 균열이 우리 세상에 미치는 영향과 도처에 널린 미확인 몬스터를 두루 경험했다.
그러므로 몬스터에 관한 경험적인 지식은 그가 나보다 훨씬 뛰어나다.
비록 전투력은 최상급은 아니지만 그의 방대한 지식은 지금처럼 신종 – 당시에는 이렇게 불렀다 –을 상대할 때 가장 믿을 수 있는 근거를 여러 번 제시했다.
그 감호섭이 의견을 말했다.
“하드 포인트는 없는 거 같은데?”
“그래?”
그가 말하는 하드 포인트는 말하자면 몬스터 본체에 부착된 무기처럼 기능하는 신체 조직을 말한다.
이를테면 전차의 전차포나, 미사일 포대의 발사 장치, 전투 헬기의 30mm 미니건 같은 게 이에 해당한다.
이는 주로 전투형으로 분류된 중형종 이상에게서 두드러지게 발견되는 특성인데 방금 내가 처리한 센츄리언 타입의 기둥 형태 추진체를 사출하는 일련의 신체구조물, 애니힐레이터 타입의 두부와 몸통 전체가 함께 이루는 포신, 팔랑크스 타입의 활처럼 생긴 투사체 발사 조직 따위가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전투형 몬스터들은 무기처럼 생긴 기관을 통해 인간에게 균열의 악의를 토해내는데 그러한 기관을 통틀어 하드 포인트라고 말하며 그 몬스터의 주된 능력을 담당한다.
“하드 포인트가 보이지 않는다라······.”
그 하드 포인트에 대응하는 것이 “권능”이다.
외부로 뚜렷하게 구별되는 조직 없이 오로지 파동과 함께 나타나는 일련의 초능력적인 현상을 일컫는데 몬스터를 가장 유명하게 만든 반사역장 따위가 이에 포함된다.
물론 몬스터의 권능은 반사역장만이 아니다.
광범위한 범위에 불꽃을 일으키고 드론을 떨어뜨리고 좀비를 조종하고 공간에 날카로운 파열을 일으키고 심지어 유사 EMP까지 터뜨려 주변의 모든 전자기기를 먹통으로 만들기도 하는 이 모든 능력은 몬스터의 권능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렇다.
이 권능은 우리의 어웨이큰도 함께 공유하는 능력이다.
레벨이 높을수록 더 강한 권능을 구사할 수 있지만 강한민 같은 초월적인 어웨이큰이라고 해도 하드 포인트 자체에서 나오는 몬스터 고유의 능력은 흉내내진 못한다.
감호섭은 그 사실을 지적하고 있었다.
대단히 빠른 뜀걸음으로 전진하고 있음에도 그는 차분한 어조로 실시간으로 그물처럼 짜이는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했다.
“녀석을 보라고. 하드 포인트라고 할 만한 조직이 보이지 않아. 몸통이 유난히 거대한 게 인상적이긴 한데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저게 공격적인 하드 포인트라기보다는 우리가 예상하는, 그래, 녀석이 다른 몬스터에게 명령을 내리고 또 우리처럼 사고하는 원천이 아닐까 하는 그런 생각이 들거든?”
감호섭의 생각은 내 생각과 거의 일치한다.
저 새로운 몬스터는 우리와 중국군이 추측하는 것처럼 다른 몬스터를 조종하고 무리를 이끄는 몬스터의 우두머리적인 존재이다.
지금까지 놈들은 벌의 군집처럼 역할이 뚜렷하게 분리된 모습을 종종 보여 왔다.
“······녀석이 여왕벌 같은 존재라 이건가?”
두 번째 체크 포인트, 썩어가는 시체가 창가에 반쯤 걸쳐진 너머로 놈을 주시하며 교신기에 대고 말했다.
“여왕벌이라기보다는 브레인이 아닐까 싶은데 말이야.”
보일 리 없겠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감호섭이 덧붙였다.
“파동 출력 자체는 매우 강해 보이지만 아마 자체 방호력은 약하지 않을까?”
그건 알 수 없다.
“방심할 필요는 없다. 그러니 모두들. 최대한의 경계를 유지해라. 죽음이 옆에 있다 생각해라.”
문제의 몬스터와의 거리는 점점 좁혀 들어간다.
이제 거리는 100m 이내.
곧 살상 거리로 돌입한다.
여전히 놈은 우리를 인지하고도 반응이 없다.
“다람.”
탕!
김다람의 교란 사격을 신호로 전진을 시도했다.
우뚝 솟은 몬스터 너머에 있는 조각상을 예의주시했다.
저걸 어떻게 무너뜨릴 수는 없을까.
가지고 있는 하푸나이저 하나를 인티미데이팅식으로 발사, 녀석을 스쳐 지나가게 하면서 조각상에 적중, 그 쓰러진 구조물을 통해 놈에게 피해를 주는 방법을 생각했다.
해볼 만한 작전이라 생각했다.
거리 80m.
놈은 여전히 미동도 없이 그 자리에 서 있기만 한다.
철컥!
전상순이 자신의 무기를 꺼냈다.
비격진천뢰.
국산 헌터 장비로 모태는 유탄발사기.
이름의 모티브가 된 파편 비산형 유탄을 6연발로 쏘내며 몬스터를 걸레짝으로 만드는 치명적인 병기다.
내가 선택한 하푸나이저보다 단발 파괴력은 떨어지지만 범용성을 챙긴 무기라고 할까.
하지만 무게가 무겁고 크기가 번거로워 근접전을 선호하는 나는 그다지 마음에 들어하지 않았던 무기이기도 하다.
“선배.”
전상순이 나란히 달리며 말했다.
“이거, 해볼 만할지도 모르겠는데?”
그 말이 끝나는 순간 우리 앞에 마치 이 세상에 미지의 물감으로 그은 듯한 하얀 실선이 나타났다.
나는 이것이 뭘 의미하는지 안다.
레이저라고 부르는 어웨이큰의 공격 능력이다.
“회피!”
순식간에 우리 주위를 그물처럼 덮어버린 실선을 피해 몸을 움직인 직후,
쿵!
충격파와 함께 그 실선의 그물 위에 순간 번쩍이는 섬광이 나타나며 그 궤도 상에 있던 모든 물질을 그어버렸다.
“상황 보고.”
죽음의 선을 피하느라 발걸음을 멈추고 바닥에 엎드렸다.
몸을 일으키면서 피해 상황을 점검했다.
“괜찮아.”
“피했어.”
다들 무사하다.
하지만,
쿵!
또 한 번의 충격파가 바로 앞에서 터져 나왔다.
“이런.”
전상순이 중얼거렸다.
기이한 공간의 뒤틀림이 느껴졌다.
오버 5레벨 어웨이큰의 주력 공격 권능, 파열의 전조다.
“피해!”
고함을 지르는 것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우리가 있던 곳곳에 공간이 찢어지는 굉음과 함께 폭풍, 파편이 비산했다.
“다들 무사해?”
입안에 흙이 씹히는 걸 뱉어내며 흙먼지가 걷히길 기다렸다.
아마 다들 피했을 것이다.
피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놈은 기다려 주지 않는다.
쿵!
또 다른 충격파.
쿵!
그리고 또 다른 충격파.
죽음의 전조인 궤적이 떠오르고 공간의 비틀림이 다시 감지됐다.
“빌어먹을.”
감호섭의 낭패한 목소리가 굉음 속에서 들려왔다.
“저 새끼.”
파앙!
지근거리에서 파열이 일어났다.
이를 악문 채 뒤로 몸을 날렸다.
등이 바닥에 강하게 닿았다.
“커억!”
진통제를 맞아두길 잘했다.
그렇지 않았다면 허용 한계치를 넘은 고통이 어떤 식으로든지 내 정신과 육체에 강한 부하를 남겼을 것이다.
그 혼미한 찰나 속에서 감호섭의 마지막 육성이 들려왔다.
“하드 포인트는 없어. 하지만 권능 올인형이었어.”
또 다른 굉음이 들려왔다.
한 방울 뜨거운 액체가 내 볼에 튀었다.
피.
“사상자 확인.”
뒤편에서 김다람의 냉철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세이지 다운.”
“······.”
그대로 지면을 박차고 달려 나갔다.
흙먼지 속에서 하나의 인영이 모습을 드러냈다.
전상순이다.
“개새끼.”
그의 눈엔 저항하기 어려운 복수심이 타오르고 있었다.
“흥분하지 마라.”
차분하게 말했다.
“······흥분은 우리의 정교함을 떨어뜨릴 뿐이다.”
거리 60m.
이제 코앞이다.
권능에 의한 공격은 일반 몬스터도 구사하긴 하지만 놈들의 지능 문제인지 아니면 패턴의 문제인지 인간처럼 날카롭게 구사하진 못한다.
하지만 저 놈은 다르다.
거의 강한민이나 나혜인급으로 강력하고 광범위한 권능 공격으로 우리를 몰아붙인다.
하지만 권능 공격이라고 해서 약점이 없는 건 아니다.
하드 포인트를 필요로 하지 않고 오로지 파동에 의해 발현되지만 동시에 그것은 실현되기 전까지 찰나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우리가 쏘는 총기처럼 즉발로 나간다는 게 아니라는 소리다.
그 말은 회피 가능성과 연결된다.
물론 그 넓은 범위 전체에 그물처럼 투사되는 그 광역 공격을 피한다는 건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걸 위한 헌터다.
철컥!
하푸나이저의 분리 장약 버튼을 누르며 장약을 뒤섞으며 거리를 쟀다.
앞으로 2초.
가속도가 붙은 시선 속에 하얀 실선이 보인다.
레이저가 아닌 발화.
불꽃을 붙이려는 모양이다.
“다람.”
“응.”
“뛰면 되겠냐?”
“아주 빠르게.”
총기를 벗어던지고 전력으로 질주했다.
가진 건 두 자루의 도끼와 하푸나이저 한 정.
그렇게 죽음으로 얼룩진 선을 헤쳐 나간다.
뒤에서 전상순이 멈추는 소리가 들리지만 아무래도 좋은 일이다.
내 시선은 오로지 내 앞에 성채처럼 서 있는 거대한 몬스터를 향한다.
이제 세상의 모든 이치는 놀랄 정도로 간결해졌다.
이 세상엔 놈과 나만이 있다.
균열이니, 세계니, 인류의 존망 같은 건 그 안에서 아무래도 좋은 것이다.
이 극히 한정된 세계 속엔 두 가지 명제만이 존재한다.
내가 놈을 죽이느냐, 아니면 내가 죽느냐.
물론 내가 죽기를 바라지 않는다.
찰나의 사고가 끝난 후 충격파와 함께 내가 머물고 있던 죽음의 영역에 하얀 불꽃이 타올랐다.
그 불꽃이 내가 있던 곳을 태우는 순간, 나의 몸은 거의 종이 한 장 차이로 그곳을 빠져나갔다.
그때였다.
녀석이 처음으로 움직임을 보인 것이.
그 거대한 몬스터가 처음으로 마치, 움찔거리는 것처럼 거체를 떨며 날 향해 머리를 돌렸다.
그 움직임은 내게 확신을 줬다.
놈은 나를 두려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