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27)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427화(427/466)
427 170. 응답 (4)
용기와 두려움은 제로섬 게임과 같다.
누군가가 두려움을 느끼는 만큼 다른 한쪽은 용기를 얻는다.
발걸음이 가볍다.
놈의 위축 속에서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거리 50, 아니 45.
놈에게 죽음을 줄 작살의 촉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겼다.
치이이익-
로켓이 천둥 같은 굉음과 함께 놈을 향해 날아갔다.
후폭풍의 열기와 파편이 몇 차례나 상처 입은 등을 때리는 걸 지켜보면서 작살이 놈에게 꽂히기를 기다렸다.
그 작살이 놈에게 닿으려는 순간이었다.
쿵!
충격파가 직전에서 터져 나왔다.
영혼 그 자체가 강풍에 쓸려나가는 듯한 감각을 느끼며 흔들리는 시야 속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부릅뜬 눈으로 노려보았다.
“?!”
이변이 일어났다.
시간이 멈췄다.
아니, 정확히는 로켓이 멈췄다.
몬스터를 죽이는 작살이 작열하는 꼬리를 방사하고 있음에도 더 나아가지 못하고 허공에 붙잡힌 것처럼 머물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 나는 염동력이라는 개념을 떠올렸다.
나혜인이 염동력으로 떨어지는 파편을 허공에서 멈춰세웠다는 기록이 눈에 스친 듯 떠올랐다.
“······.”
놈도 비슷한 권능을 구사하는 건가.
절망이 내면에서 고개를 들었지만 내 몸은 나도 모르게 놈을 향해 달려들고 있었다.
결국 우리 헌터가 궁극적으로 믿는 것은 첨단 무기도 동료의 지원도 아니다.
스르릉–
모든 조건 앞에 있는 것.
그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나와 일부가 된 두 자루의 도끼를 빼든 채 질주를 재개했다.
“선배!”
내가 향하는 곳은 놈이 아니다.
뒤편에 우뚝 선, 아마 중국의 영웅 – 인민들을 조형한 조각상이다.
스무 명 이상이 한 곳을 바라보며 공산주의 선전물 특유의 주먹을 부르쥐거나 입에 손을 모아 소리치는 포즈를 취한 동상들은 현대 미술사조의 영향을 받은 듯 어느 정도 추상화된 모습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타고 오를 포인트가 많다는 게 좁아진 시야 속에서도 확연하게 눈에 들어왔다.
“박 선배. 뭐하는 거야?”
“선배! 정신 차려!”
시끄럽게 떠드는 후배들을 향해 한마디 했다.
“보다시피 근접전을 시도한다. 보고만 있지 말고 지원해라. 뭐든 좋다. 놈을 거슬리게 해라.”
힐끗 놈을 보았다.
내가 쏘아 올린 작살은 여전히 허공에 머문 채 미친 듯이 회전하며 놈이 펼친 무형의 장막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순간 느낀 게 있다.
놈의 염동력으로도 완벽하게 고정할 수 있는 건 아니구나 하는.
몬스터라는 존재는 얼핏 보기에 전능에 가까운 힘을 가진 것처럼 보이지만 놈들의 모든 권능엔 저마다의 한계가 있다.
당장 놈들을 대표하는 반사역장만 하더라도 일정 이상의 충격량을 받으면 기능을 다한다.
염동력의 그물에 걸린 작살이 힘없이 떨어졌다.
툭-
어느덧 석상 중앙이다.
머리 위에는 균열, 뒤에는 이름 모를 인민의 조각상 얼굴, 그리고 앞에는 회백색의 적이 있다.
동상은 손가락으로 어딘가를 가리키고 있다.
아마도 제작자의 의도는 대의, 혹은 공산당에서 추구하는 이념적인 이상이 그 손가락이 가리키는 지점에 있는 것으로 설정했겠지만 지금 그 청동제 손가락이 가리키는 건 회백색의 몬스터다.
쭉 뻗은 거대한 팔을 질주했다.
보인다.
놈과의 거리가.
충분히 닿을 수 있다.
비교적 평평한 녀석의 몸통과 그 몸통 위에 뿔처럼 솟은 두부와 마디를 보며 도끼를 든 채 훌쩍 날아올랐다.
탕!
총성이 들린다.
김다람의 것이다.
쿵!
충격파가 화답한다.
지근거리에서 닿은 충격파는 순간 정신이 아득해질 정도의 강도를 갖고 있었지만 굴하지 않고 도약한 채 착륙할 곳을 노려보았다.
툭!
놈의 위에 올라섰다.
그 순간 놈의 거체가 꿈틀거렸다.
놈에겐 비척거림이겠지만 나에겐 지진이다.
균형을 잡으며 전상순을 불렀다.
“피아니스트.”
이름이 아닌 콜사인으로 부르는 건 특별한 의미가 있다.
콜사인을 걸고 행하라는, 보다 강도 높은 요구가 담겨 있는 것이다.
“역장 사거리 안에서 전탄 사격을 실시해라.”
전상순은 내가 선택한 팀원은 아니다.
그는 성격에 결함이 있었다.
항상 나를 의식했고 나를 넘어서려 했다.
그건 그 친구가 장기영이 아닌 다른 교관의 직계 제자인것도 있겠지만 곧 무대에서 사라질 우리 올드스쿨 헌터라는 무너지는 세계 속에서 최고의 헌터로 기억되고 싶다는 열망이 더 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였다.
그런 호승심은 아무래도 좋지만 실력 외에 멘탈 쪽에 불안한 이야기를 종종 들은 지라 그를 팀에 기용하는 걸 꺼렸다.
하지만 결원이 생겼고 전상순이 강하게 지원했다.
예상한 대로 그는 멘탈 쪽에 약점을 연거푸 노출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가 자신의 실력을 증명할 때다.
“······카피.”
전상순이 달려오는 게 보인다.
6연발, 이제는 5개의 무반동 유탄이 든 유탄발사기를 가지고 반사역장 사거리 안에 진입했다.
“선배가 휘말리면 어떻게 하지?”
“걱정하지 말고 쏴.”
“진심이야?”
“너한테 좋은 일 아니냐?”
피식 웃으며 말했다.
“질 나쁜 농담을······.”
전상순이 그대로 비격진천뢰를 겨누었다.
퉁- 퉁- 퉁- 퉁- 퉁-
그가 다섯 발의 유탄을 몬스터를 향해 발사했다.
흔들리는 몬스터의 거체 위에서 균형을 잡으며 추이를 지켜보았다.
유탄이 다가온다.
저 유탄의 위력은 나도 잘 알고 있다.
휘말리면 나도 죽음을 면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렇기에 도박을 걸었다.
놈이라면 반드시 막을 것이다.
이를 악물고 곧 실현 될 미래에 대비했다.
쿵!
충격파가 일었다.
놈의 거체 위에서 직접 울린 충격파는 역시 버티기 버거운 것이다.
이를 악물고 있어도 의식이 날아가는 기분이다.
하지만 버텨냈다.
그리고 본다.
다섯 개의 유탄이 허공에서 회전하고 있는 모습을.
녀석이 다시 염동력을 구사한 것이다.
두근-
심장 박동이 노크하는 것처럼 내 의식을 일깨우는 걸 느끼며 뿔처럼 솟은 놈의 머리, 아니 본체를 향해 질주했다.
저기가 본체다.
틀림없다.
충격파는 바로 놈의 본체 위에서 터져 나왔다.
이제 녀석은 바로 앞에 있다.
그 잘난 염동력도 쓸 수 없을 것이다.
이미 녀석의 염동력은 과부하 상태에 걸렸을 테니.
그렇게 생각하며 녀석에게 재차 도약했다.
찰나의 도약 속에서 나는 몬스터의 머리를 보았다.
거대한 곤충, 풍뎅이를 그대로 카피한 듯한 각진 생김새.
눈에 해당하는 부분엔 다른 부위와 다르게 광택이 있는, 그러나 여전히 회백색을 품은 눈으로 보이는 기관이 있다.
그 눈의 매끄러운 표면을 내 모습이 덮어나갔다.
두 자루의 도끼를 들고 놈을 향해 쇄도하는.
순간 느꼈다.
죽일 수 있다.
놈을 죽일 수 있다.
순수한 살의만을 품은 채 놈에게 쇄도했다.
쿵!
충격파가 터져 나왔지만 이미 내 정신과 육체는 하나의 목적만을 위해 움직이는 기계다.
그렇게 생각하며 도끼를 휘두르려 할 때였다.
“······.”
몸이 움직여지지 않는다.
빠르게 상황을 파악했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나조차 놈이 만들어 낸 무형의 힘에 붙잡힌 채 허공에 떠올라 있다.
염동력의 덫이 나 박규를 놈의 바로 앞에서 잡아버린 것이다.
몬스터의 얼굴은 바로 내 앞에 있다.
팔만 휘두르면 도끼가 닿을 거리 앞에서 우리는 서로를 응시했다.
“······너.”
놈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은 나도, 그도 들을 수 없었을 것이다.
쾅! 쾅! 쾅! 콰콰쾅!
전상순이 쏜 비격진천뢰가 허공에서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으니까.
번쩍이는 불빛과 함께 샷건의 탄환처럼 쏘아 들어온 파편이 내 바로 앞에서 마술처럼 멈추는 걸 보면서 놈을 향해 다시 말했다.
“죽여버리겠다.”
놈의 눈 위에 기이한 이채가 떠올랐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그 전투의 마지막이었다.
놈이 날 내동댕이쳤다.
혼란스러운 시야와 흩어지는 의식 속에서 다급한 목소리들이 들려왔다.
“······프로페서 아웃”
“프로페서가 당했다. 작전은 실패했다. 반복한다. 프로페서가 당했다. 작전은······.”
“프로페서 즉시 전원 현장에서 퇴각하라.”
“죠쇼우죠우라~.”
“죠쇼우죠우라!”
…
…
비격진천뢰의 폭발 속에서 나는 의식을 잃은 채 균열 너머로 내동댕이쳐졌다.
전상순은 그 직후 죽임을 당했다고 하지만 그의 시체는 찾지 못했다.
그 이후에도 나는 몇 차례 균열을 드나들며 전장에 남았지만 오래 버티지 못하고 전장을 떠났다.
그 이후는 알려진 대로다.
나는 멸망을 준비했다.
프로페서가 죽고 스켈톤이 탄생했다.
하지만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온다.
놈은 저 너머에 있다.
안개로 얼룩진 몽환적인 폐허 속에서는 많은 것들이 보인다.
유령, 귀신, 허상 뭐라고 불러도 좋다.
셀 수 없는 입자로 이루어진 안개들을 가만 보고 있노라면 머릿속에 흐릿하게 떠오른 이미지들이 제멋대로 그 입자를 캔버스 삼아 떠오르곤 하니까.
그중엔 과거의 나도 포함되고 있다.
프로페서.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던 날 선 사내가.
다만 그는 말하지 못한다.
내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니까.
하지만 그가 뭘 말하려는 지는 알 것 같다.
그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의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고.
전장을 떠난 이후, 필사적으로 그날의 일을 잊으려 했지만 그럴수록 내면에서는 내 판단은 틀리지 않았다는 언성이 커져 갔다.
증명의 시간이다.
스르릉-
거추장스러웠던 나의 새로운 무기.
마울을 들었다.
“정말 그거 가지고 되겠어?”
하태훈과 공경민이 의아한 눈으로 본다.
뒤늦게 도착한 김다람이 육중한 대물 저격총이 든 케이스를 쿵 하고 내려놓으며 숨을 돌렸다.
“여기서는 그나마 실루엣이라도 보이네.”
그녀도 내가 든 무기를 발견했다.
“뭐야? 그 장난감. 진짜 쓸 거야?”
김다람마저 이런 말을 하다니.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말을 고르고 있자니 저 너머에 우두커니 서 있는 깡마른 좀비가 보인다.
내 은사, 장기영이다.
설마, 여기서 제자들을 만나러 온 건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갑자기 장기영이 활짝 웃었다.
알 수 있다.
그의 공허한 눈동자에 동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지만, 그는 내가 손에 쥔 “로켓 도끼”를 보고 있다.
“박규! 보고서에 적힌 네 의견을 모두가 무시했지. 그래. 맞아. 놈이 만들어 내는 모든 에너지엔 한계가 있어. 염동력도 예외는 아니야. 설령 그게 몬스터의 우두머리라고 해도 말이야! 그날 네가 패배한 건 그 양아치 같은 전상순이 하푸나이저를 안 들고 비격진천뢰 같은 장난감을 들었기 때문이야.”
장기영은 자기 제자가 아닌 사람을 다 싫어했지만 유독 전상순을 싫어했었다.
이 양반이 사기꾼 소리를 듣긴 하지만 그대로 날카로운 통찰력이 있었고 전상순이 무슨 의도로 내 팀에 왔는지도 뻔히 알고 있었으니.
“프로페서”가 부정되고 대신 “피아니스트”가 올드스쿨 헌터 최고 반열에 오른다면 자신의 알량한 경력도 끝장난다는 걸 그 양반도 알고 있었다는 소리다.
“그 새끼가 하푸나이저를 들고 있었다면 그 몬스터는 그걸 막는 것만 해도 다른 겨를이 없었을 거야. 바로 거기서 착안해 너를 위한 무기를 만들었지. 응? 단순하게 생각하면 되는 거 아니야? 반사역장을 포탄 세례가 개박살을 내는 것처럼 놈의 염동력도 힘으로 찍어누르면 되는 일 아닌가? 박규. 바로 그게 네 손에 든 거야.”
장기영이 잠시 말을 멈추고 말했다.
“마울.”
그가 찢어진 입에 미소 비슷한 것을 떠올렸다.
“몬스터를 심판하는 망치.”
순간 입을 다물었다.
“······.”
같은 이름을 생각했던 건가.
아무리 사제 관계라고 해도, 내 사상의 대부분이 그의 영향을 받았다고 해도 이토록 기묘한 일치라니.
알 수 없는 뭉클거림 속에서 김다람의 목소리가 불쑥 내 의식을 파고 들었다.
“선배. 큰일 났어. 동쪽에 균열에서 출발한 몬스터 무리의 선두가 출현한 모양이야. 나혜인 선배가 막아내고 있는 모양인데 오래 가진 않겠지.”
고개를 끄덕이고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본 후 장기영 쪽을 바라봤다.
다들 들었겠지.
나의 은사이자, 우리 학교의 사실상 설립자이자 교장이었던 선생님의 훈화를.
동료들의 반응을 보았다.
묘하다.
하태훈은 고개를 갸우뚱했고 김다람은 나를 이상한 눈으로 응시한다.
뭔가 잘못되기라도 한 건가.
아니나 다를까, 공경민이 내게 퉁명스레 말했다.
“아까부터 자꾸 허공을 보는 거 같은데 뭐냐. 헛것이라도 보는 거냐?”
물끄러미 그를 응시했다.
안 보이는 건가.
저기 우두커니 선 채 우리를 지켜보는 우리의 은사, 장기영의 모습이.
신기하게도 하태훈도 공경민도, 뒤늦게 도착한 김다람도 안개 너머에 서 있는 장기영에겐 거짓말처럼 관심을 주지 않았다.
“방금 아무 말도 못 들은 거냐?”
다들 고개를 가로저었다.
장기영 쪽을 다시 보았다.
그는 어느새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우리를 보고 있었다.
동료들을 보았다.
그들의 표정을 보고서야 그들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이해했다.
보이지 않나 보다.
그들의 눈엔 나의 은사, 나의 스승인 장기영 교관의 모습이 안 보이는 모양이다.
“······.”
의아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이 안개 속에서는, 균열이 소용돌이치는 곳에서는 인간의 인지를 넘어선 기묘한 일이 심심찮게 일어나니까.
내 은사가 그러한 기적에 편입된 것으로 믿겠다.
실제로 그는 현실보다는 신화 속의 세계에 어울리는 인물이기도 하니까.
먼 곳에 선 내 은사가 날 향해 손을 흔들었다.
“가라. 박규.”
순간 나는 눈을 부릅떴다.
장기영 옆에 누군가 서 있다.
나다.
아니, 프로페서다.
“가라. 프로페서.”
그 프로페서 너머에 나와 같은 옷을 입고 마크를 달았던 셀 수 없는 어리고 젊은 친구들의 그림자가 보이지만 무시하기로 했다.
“······.”
과거는 과거일 뿐이다.
인간은 과거에서 교훈을 찾는다고 한다.
과거의 용도는 그 정도면 충분하다고 본다.
철컥!
곳곳에서 들려오는 포성과 총성을 들으며 저 멀리 웅크리고 있는 우리의 적을 바라본다.
고개를 들었다.
갑자기 헬기 소리가 들려왔다.
머리 위를 보았지만 보일 리 없다.
공경민이 휴대폰을 확인하며 말했다.
“어이. 박규.”
그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강한민이 떴다는데?”
“그래?”
공경민의 표정이 변했다.
순수하게 나를 걱정하는 얼굴이다.
이 친구가 가장 잘 알 것이다.
내가 전장에서 떠나고 강한민과 나혜인을 역린에 넣었을 당시 나의 심정을.
하지만 이제는 강한민조차 나에겐 과거다.
앞을 본다.
안개 너머로 흐릿한 실루엣이 보인다.
인간이 하는 일이 대저 이와 같을 것이다.
불투명하고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들은 도전했고 부러졌고 무너졌고 더러는 성공했다.
“모두에게 전해.”
무겁다기보다는 묵직한, 마치 형벌의 도구와도 같은 양손 도끼를 들고 발걸음을 옮겼다.
“팀 프로페서가 전투에 돌입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