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36)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436화(436/466)
6 173. 거취
“여기? 뭐, 그럭저럭이지.”
간만에 하태훈과 연락을 했다.
좀 더 일찍 연락하고 싶었지만 부상 문제도 있고 그쪽 통신 상태도 좋지 않아 일정이 뒤로 미뤄졌다.
“미군 부녀도 잘 지내고 있고. 역시 사람이란 건 어느 정도 거리를 둬야 원만하게 지낼 수 있는 거 같단 말이지.”
하태훈은 네메시스 타입을 격파한 헌터 중 한 명임에도 불구하고 승자의 영광을 제대로 누리지도 않고 내 영역으로 돌아갔다.
이유는 하나다.
돌아가서 자신의 아내를 데리고 오기 위함이다.
그렇다.
하태훈도 내 영역을 떠나기로 했다.
뭐, 이제는 네메시스 타입 최초 격파자 중 한 명으로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고 비록 내부 잡음은 있지만 그래도 정부 타이틀을 건 조직에서 도시를 관리하고 있으니 굳이 방공호에 있을 필요는 없겠지.
당장 올 수도 있지만 정리할 게 있기에 아직 내 영역에 남은 것으로 안다.
뭘 준비하길래 한 달 넘게 죽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름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
뭐, 덕분에 내 영역 근황을 물을 수 있겠지.
“나쁘진 않아. 그런데 최근 들어 미군 기지 쪽이 북적거린단 말이지?”
“미군 기지?”
“미군이 왔어.”
결국 그들이 왔군.
올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빠르게 올 줄이야.
그 친구들도 급하긴 했나보다.
“당장 온 건 선발대 같은데 보아하니 기지를 재정비하려고 여기저기 견적을 내는 거 같더라고.”
“그래?”
썩 달가운 소식은 아니다.
내 영역의 가장 큰 장점은 조용하고 한산하다는 건데 미군들이 와버리면 시끌벅쩍해지고 전처럼 자유롭게 행동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우리가 이용하는 도로가 미군 통제 하에 놓인다는 것도 그렇고.
옆 동네에 강력한 무력 집단이 있는 것도 썩 달가운 일은 아니다.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보호를 요청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 관계는 언젠가는 한쪽이 고개를 숙이기 마련이다.
요구가 점점 늘어나고 간섭이 심해졌을 때 결국 선택의 순간이 온다.
“왜? 마음에 안 들어?”
“마음에 안 든다기보다는. 뭐, 그런 거지. 아무튼 형수님하고는 잘 지내고?”
“우리야 뭐. 그냥 사는 거지. 아, 요즘 좀 피곤하긴 해.”
“깨가 쏟아지는구먼. 끊을게.”
전화를 끊고 잠시 하태훈과의 대화를 되새겨봤다.
“흠······.”
사람 마음이란 게 화장실 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르다.
네메시스 타입을 격파하기 전 미군의 도움이란 건 도시가 함락 직전까지 내몰린 상황에서도 아껴야 할 자원이었지만 네메시스 타입이 격파된 지금에서 미군이라는 건 나도 그렇지만 정부 입장에서도 귀찮은 손님이다.
더군다나 그 친구들이 우리 집 옆에 자리 잡는다?
이건 확실한 악재다.
미군 전체만 놓고 보면 괜찮은 친구들이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동맹국 아닌가.
하지만 전체로서의 미군과 개인으로서의 미군은 엄연히 다르다.
옆 동네 사는 미군 A – 토마스라고 부르도록 하자 – 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평소 향수병 때문에 술에 의존하던 토마스가 술김에 우리에게 총질을 가할 수도 있다.
오랫동안 성욕이 충족되지 못한 토마스가 하태훈의 마누라를 발견하고 음심을 품고 우리 영역에 침입하는 가능성도 충분히 고려할 수 있다.
우리 방공호가 탐나거나, 아니면 우리가 단지 눈에 거슬리거나 여하의 이유로 우리 전체를 제거하려는 토마스 대위가 있다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평소처럼 트럭을 타고 가다가 재블린 혹은 크레이모어를 이용한 공격을 맞고 비명횡사할 수도 있다.
아니면 심야에 야간투시경을 대거 장비한 정예병력을 투입할 수도 있다.
물론 이 전부는 내가 상상한 시나리오에 지나지 않는다.
그런데 사회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범죄의 희생양은 범인 가까이에 있는 누군가다.
가능성이 있다는 것.
1보다 0이 더 익숙한 세상에서 가능성이 있다는 건 모든 걸 원점에서 검토하기에 충분한 사유다.
“영재.”
천영재는 최근 내 사무실에 개근하고 있다.
부상 때문에 지난 전투에 빠진 게 못내 아쉬운지 워커홀릭처럼 일하고 있다.
원래 머리도 좋고 능력도 있는 친구라 제대로 각을 잡고 일을 하니 주변 평판이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게 보일 정도다.
“어.”
이 천영재에겐 방공호가 하나 있다.
그의 부친이 쓰던 방공호다.
“너희 아버님이 쓰던 방공호 말이야. 그거 아직 쓰는 사람 없지?”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음. 나중에 여기서 떠나게 된다면 그곳에 정착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야.”
방공호 전체는 잘 지어졌다.
문제는 주변 여건.
험준한 산중에 있고 또 방공호 자체가 잘 위장되어 있어 약탈자의 공격을 받을 일은 없지만 그만큼 물자가 부족하다.
자급자족 체제를 갖춘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방공호 생활을 하는데 상당한 어려움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천영재 가족이 거기서 굶어 죽은 부분에서 알 수 있듯이 완벽하게 고립된 영역은 그렇지 않은 곳보다 생존 확률이 현저하게 떨어진다.
유연성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말하는 유연성이라는 건 다른 인간과의 교류 가능성이다.
“선배가 쓰고 싶으면 쓰도록 해.”
“정말이냐?”
“어. 나는 거기 쓸 일도 없고, 가고 싶지도 않으니. 시체 냄새는 싹 뺐으니 짐만 갖다 놓으면 살 수 있을 거야.”
“그렇군.”
“그런데 갑자기 방공호 이야기는 왜 꺼내?”
천영재가 날 물끄러미 쳐다본다.
“설마 다시 방공호 생활로 돌아가려고?”
이해하기 어렵다는 표정이다.
뭐, 그럴 수밖에 없겠지.
예전처럼 우리 올드스쿨 헌터가 어웨이큰의 부속품 취급 받던 시절도 아니고 당당한 한 명의 헌터로 인정받는 시점에 정부 조직을 떠날 이유는 하나도 없어 보이니.
당장 하태훈만 해도 도시로 오려 한다.
방공호가 자유나 개인적인 생활면에서 나은 구석은 분명 있지만 거긴 한 번 삐끗하면 끝이다.
한 번의 실수나 방심, 아니면 운명의 변덕으로 모든 걸 잃어버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나와 다르게 지켜야 할 가족도 있으니 도시로 오는 것이 하태훈에겐 확실히 안전한 선택일 것이다.
뭘 한다고 한 달 넘게 거기 죽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천영재가 이상한 눈으로 날 보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이다.
“선배. 진짜 여기 떠날 거야?”
제법 진지한 얼굴로 묻는다.
잠시 생각했다.
“그럴 수도 있다는 거지.”
지금 내 입지는 내가 봐도 탄탄하다.
보안상 스켈톤이 박규라는 건 부정하고 있지만 알만한 사람은 내가 네메시스 타입의 격파자라는 걸 알고 있고 이 공로는 그 거만한 제주 어웨이큰조차 인정한다.
비록 지금 맡은 일은 없지만 존경받는 원로라고 할까.
그게 현재 도시에서 받는 내 대우다.
천영재의 눈엔 그런 내가 도시를 떠나려고 하는 게 이해가 안 갈 수밖에.
그런데 내가 도시를 떠날지 말지는 지켜볼 일이다.
네메시스 타입 격파 후, 제주 정부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서울 전체를 접수했다.
예상된 일이다.
새로운 서울이 제주 정부에 적대감을 가진 것과 별개로 둘은 애당초 같은 조직으로 새로운 서울 행정부 자체가 제주 쪽에 부속된 자회사적인 조직이었다.
오랜 전투로 사람들은 지쳤고 특히 병력과 군수 물자의 부족이 심각했다.
몬스터가 격파됐다고 하나 여전히 군단파의 위협은 존재하고 있고 세가 많이 죽었다고 해도 광신도의 위협도 있다.
무엇보다 수십만 명이 넘는 도시를 움직이기 위해서는 이를 뒷받침 하는 행정력이 있어야 한다.
어쩔 수 없이 도시는 제주 정부를 받아들여야 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원인은 우민희다.
전투 직후 그녀는 강한민에게 통화를 걸어 도시의 모든 결정권을 이양했다.
사람들은 그런 우민희의 결정을 두고 결국 제주의 첩자라느니, 굴욕적인 굴종이라느니 비난을 해대지만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소리다.
도시는 이미 여러모로 한계에 달해 있었다.
우민희의 결단은 부서지기 직전의 도시를 지키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문제는 그다음이겠지.
제주 쪽 인사와 기존 인사의 파벌 싸움, 제주에서 온 사람과 남겨진 사람 간의 갈등, 군단파 출신과 정규군 사이의 해묵은 감정 등등.
사람이 모이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
즉, 정치라는 것이 내 심기를 긁는다.
지금도 한자리하려는 사람들이 수시로 날 찾고 있다.
“그나저나 아까 또 사람 하나 찾아왔던데?”
“뭐 때문에?”
“뭐긴 뭐야. 선거 유세 도와달라는 거겠지.”
“그래?”
“당연히 안 갈 거 같아서 단칼에 거절했어.”
“잘했어.”
날파리처럼 달라붙는 인간들도 짜증 나긴 매한가지지만 제주 위원회의 견제도 시민 위원 후보만큼이나 나를 성가시게 한다.
내가 전무후무한 업적을 세워서 영웅이 된 건 인정하겠지만 실권은 주지 않겠다는 음습한 견제 같은 것이 느껴진다.
아무래도 좋은 일이지만.
결국 내가 보는 건 하나뿐이다.
강한민이다.
그 친구와 대담을 했지만 그가 정확하게 무엇을 하려는지는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뭔가를 하려는 건 분명하고 그것을 내 눈으로 지켜보려 한다.
필요한 게 있다면 옆에서 돕겠다.
그게 내가 도시에 남아야 할 이유다.
그 이유가 없어진다면, 도시를 떠나야겠지.
남을 이유가 없다.
강한민이 실패한다면 결국 우리가 맞이하게 될 운명은 파멸일 테니까.
“······.”
딸깍-
메시지 하나가 와 있다.
익명68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무튼 앞으로 잘 부탁해! 아니키!
그다지 놀라운 일은 아니지만 강한민도 일단 비바! 아포칼립스! 유저였다.
그와 닉네임을 교환했다.
이번 대담에서 얻은 유일한 가시적인 소득이라고 할까.
그리 자주 쓰진 않는다고.
그의 방을 보면 알겠지만 거긴 노트북은커녕 랜선을 꽂을 자리도 없다.
아주 가끔 쓰는 용도라고 하는데 그게 어딘가.
아무튼 강한민은 전설적인 “스켈톤”과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그나저나. 선배. 이제는 스켈톤 계정으로 글 안 쓰는 거야?”
천영재가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불쑥 묻는다.
“······쓰기 어렵겠지.”
빈말이 아니라 진짜다.
나는 어느 때보다 존내논의 심정을 잘 이해하고 있다.
신적인 유명세와 권력을 가졌음에도 그 좋아하는 인터넷에 단 한마디도 할 수 없는 그 슬픔을 말이다.
내가 감당한 무게는 당장 스켈톤 세 글자를 검색하기만 해도 느낄 수 있다.
망자3411 : 스켈톤 맙소사!
익명1521 : 스켈톤은 어디로 갔는가….?
망자1882 : 한국 친구들. 스켈톤 소식 없어? 거의 2달째 안 보이는 거 같은데?
익명2131 : 스켈톤 글 예전에 본 거 같은데 지금은 하나도 안 보여. 설마 전부 블라인드 처리한 건가?
망자28113 : 스켈톤은 헤라클레스처럼 별자리가 되어 버린 건가?
망자88921 : 돌아와 스켈톤······.
…
…
모두가 스켈톤을 찾는다.
리빙 레전드를 넘어 스켈톤은 “종교”가 된 것이다.
이러한 무게를 지닌 내가 예전처럼 뻘글을 쓰고 친근하게 대할 순 없다는 이야기.
지나고 보니 비바봇의 판단이 옳았다.
인터넷에 유명해지는 것도 정도가 있어야 한다.
너무 유명해지면 글을 쓸 수가 없다.
일단 유명해지면 똥을 싸도 손뼉을 쳐준다고 하는데 그건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이야기.
너무 유명해지면 똥도 함부로 쌀 수 없다.
“확실히 선배처럼 유명해지면 글 쓰기도 좀 그렇겠네.”
“뭐, 어쩔 수가 없는 일이지.”
벙어리 냉가슴 앓듯 스크롤만 내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서 그런지 요즘 이상한 게 나돌더라고.”
“이상한 거?”
“chatCPT라는 거 알아?”
“그게 뭐냐?”
“전쟁 전에 만든 대화형 인공지능 서비스. 전쟁 후 소실된 줄 알았는데 누가 어떻게 데이터를 복구해서 다시 가동하고 있더라고.”
“그런데 그 chatCPT라는 게 뭘 어쨌다는 거지?”
“아, 스켈톤이 그날 이후로 게시판에서 안 보이고 글도 전부 지워지니까 사람들이 그걸 통해서 선배에 대한 정보를 찾으려 들더라고.”
“그래?”
인공지능이라.
그런 게 유행하던 시절이 있었지.
막 대세가 되어 인간의 영역을 대체하던 시점에 전쟁이 일어났고 모든 게 파괴된 걸로 안다.
어차피 당분간 할 일도 없겠다, 흥미 삼아 인공지능에게 나에 대해 물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 chatCPT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이게 그 인공지능인가.
채팅하듯이 질문을 던지면 학습형 A.I가 딥러닝을 통해 습득한 정보를 자연스럽게 알려 준다고 한다.
백문이 불여일견.
시작해 보자.
“······.”
타닥타닥
SKELTON : 한국어 게시판 유저 SKELTON은 어떤 사람이지?
chatCPT :
SKELTON은 비바! 아포칼립스! 한국어 게시판의 네임드 유저입니다.
그는 작성글보다 댓글이 많은 참여형 유저로 분류됩니다.
참여형 유저는 댓글보다 작성글이 많은 유저에 비해 타인에 대한 관심이 많고 인간적인 성숙함을 가진 것으로 평가됩니다.
그는 라이브! 아포칼립스!에서 강력한 몬스터를 일 대 일로 격파하는 활약을 보여줬고 그 결과 세계적인 유명세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그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어 전세계 유저들의 걱정을 사고 있습니다.
…
…
“흠.”
“어때?”
“나쁘지 않네.”
A.I 다운 객관적이고 차가운 분석이다.
확실히 제삼자의 눈으로 본다면 이런 평가가 가능하겠지.
그런데 아직 A.I는 할 말이 남은 것 같다.
chatCPT : SKELTON의 인터넷 활동에 관한 이야기도 있는데 이것도 열람하시겠습니까?
안 될 건 없지.
SKELTON : 응.
chatCPT :
SKELTON님의 인터넷 활동 기록은 알 수 없는 원인으로 모두 삭제 처리가 되어 더 이상 확인할 수 없으나 현재까지 확인된 데이터로 정리하면,
1. 인기글 전반에 댓글을 주로 작성하며.
2. 인기글이 아닌 경우엔 성인물(포르노 포함), 썰글, 방공호 자랑글에 적극적으로 댓글을 남기는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3. 한편 스켈톤님의 작성글은 주로 타인 비방, 썰글, 비트박스, 개그에 관한 글을 작성하였고 대체로 그 글에 댓글은 많이 달리지 않았습니다.
한편 스켈톤님은 같은 게시판 유저 dongtanmom, mmmmmmmmm 등과 사이가 좋지 않은 것으로 보이며 그들을 음해하는 글을 상습적으로······.
거기까지 읽었다.
뒷부분을 보니 SKETLON의 성적 취향에 관한 글도 있던데 차마 거기까진 맨정신으로 읽을 수 없었다.
“뭐지 이건?”
천영재를 보며 항의했다.
“뭐긴 뭐야. 인공지능이지.”
“깡통이 뭘 안다고 함부로 타인을 평가하는 거지?”
도저히 안되겠군.
비바봇한테 일러서 금지해야겠다.
“······.”
타닥타닥
오랜만에 비바봇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있을 때였다.
휴대폰을 보던 천영재가 깜짝 놀란 목소리로 말했다.
“어. 선배.”
“뭐냐?”
“큰일 났는데?”
“뭐가?”
천영재가 내게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
정부에서 제공하는 뉴스 화면이다.
내용을 확인한 순간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
“······이건.”
우민희가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