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38)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438화(438/466)
8 174. 변신 (2)
영감을 준 건 매일 정부 임시 청사 앞에서 시위하는 노인들이었다.
제주에 있던 그들은 우민희의 보살핌을 받았다.
본토에 남은 소수 노인보다 명백히 때깔도 좋고 건강 상태도 좋아 보이는 그들은 연령 덕분에 김병철식 노역에도 해방된 상태라 일과 시간 대부분을 우민희 석방 운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그 노인 중 하나가 소리쳤다.
“당장 우민희. 민희 공주를 석방하라!”
그들의 화력은 인상적이었지만 적어도 인터넷에서는 발휘된 적이 없다.
내가 그 시작을 끊겠다.
UmChang : 민희 공주님을 석방하라!
“······.”
타다다다다다닥-
간만에 1초 30개의 글을 올려보았다.
UmChang : 민희 공주님을 석방하라!
UmChang : 민희 공주님을 석방하라!
UmChang : 민희 공주님을 석방하라!
망자82311 : ?
UmChang : 민희 공주님을 석방하라!
UmChang : 민희 공주님을 석방하라!
망자39211 : 뭐야? 엄창이?
UmChang : 민희 공주님을 ㅅᅟᅥᆨ방하라!
익명2813 : 뭐지? 이건?
UmChang : 민희 공주님을 석방하라!
UmChang : 민희 공주님을 석방하라!
…
…
게시판을 내 주장으로 물들이고 있자니 내가 사람이냐고 묻는 자동 질문이 뜬다.
매크로 방지를 위해 게시판에서 준비한 도구다.
[ 사람입니다. ]사람이라는 걸 증명한 후 다시 게시판을 나의 개성 강한 주장으로 물들인다.
“······.”
타다다다다닥-
UmChang : 민희 공주님을 석방하라!
UmChang : 민희 공주님을 석방하라!
UmChang : 민희 공주님을 석방하라!
도배는 10분간 계속되었다.
평범한 게시판 하나를 초토화할 수도 있을 정도의 화력.
결국 비바봇이 출동하여 나에게 도배차단을 먹이는 것으로 내 도배 행각은 끝났지만 적어도 세상에 우민희를 응원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확실하게 알렸다.
물론 차단도 이제 나한테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아니, 스켈톤님. 밥을 잘 못 드셨나. 갑자기 왜 부계정으로 이상한 짓을 하세요?
나는 리빙 레전드다.
엠구, 동탄맘 같은 하급 네임드하고는 차원이 다르다는 이야기다.
물론 나는 리빙 레전드이기 전에 인간으로서 된 사람이기에 사정을 설명했다.
UmChang : 이런 일이 있어서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습니다.
새로운 서울의 권력 투쟁, 비열한 권력자들의 견제, 혼자 모든 죄를 뒤집어쓰고 사실상 감옥에 갇혀 선고 날만 기다리는 여인.
그야말로 고전적인 권선징악 플롯이다.
내 말이 다른 유저보다 높은 설득력을 가지고 있는 것도 부정하진 않겠다.
아무튼 비바봇은 내 사정을 이해했다.
VIVA_BOT014 : 흠…. 스켈톤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하지만 적당히 하세요. 억울한 건 억울한 거고 게시판의 질서는 게시판의 질서죠.
VIVA_BOT014 : 차단은 풀어드릴게요. 제발 이름 값에 걸맞는 처신을 하세요. 뭐, 스켈톤 계정으로 이런 짓 안하는 것만 봐도 자각은 있으신 걸로 보이니.
차단이 풀렸다.
하지만 내가 굳이 움직일 필요는 없다.
노인들이 IT나 새로운 기계에 약하다는 이미지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일면에 불과할 뿐이다.
전쟁 전 우리는 노인 계층의 적극적인 인터넷 활동을 본 적이 있다.
그 비슷한 광경이 우리 게시판에 재현됐다.
망자2931 : 새끼덜,, 우민희가 얼마나 우리를 위해 不撤晝夜 애를 쓰셨는데! 背恩忘德한 것도 유분수지!
망자11121 : 작금의 상황에 통탄을 금할 수 없음. 우민희가 없었다면 우리는 전부 죽었을 것.
망자190990 : 위원회,,,,건방진것들아,,,,늬들이,인륜을,,,,아느냐~~~~
망자9811 : 평생 국민을 사랑하시여~~ 한반도와 결혼한 우민희 연구소장을 죄도 없는데,, 허위로 부당한 죄를 덮어 씌우느냐~~?
망자2121 : 우민희는 죄가 없다? 내가 지금 매우 화가 난다? 내가 나이가 들어서 그렇지 월남전 때 베트공 빨갱이들 꿀밤으로 죽이던 사람이여~
…
…
노인들이 합세했다.
인터넷 전문가 홍다정의 말에 의하면 노인들은 젊은 층에 비하면 확실히 배우는 게 느리지만 그들의 응집력과 끈기는 한 커뮤니티를 초토화하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다만 우민희를 지지하는 노인의 숫자는 100명 미만으로 대세에 큰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다.
다만 관심을 환기할 순 있다.
제주 위원회라는 협잡꾼들이 저지르고 있는 일방적인 매도의 흐름을 적어도 멈출 순 있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중심에 선 건 “엄창이”다.
UmChang : 여러분, 저 아시죠? 제가 그 엄창입니다.
“······.”
타닥타닥
-페일넷을 하신 분이라면 저와 우민희 소장님의 일화를 잘 알고 계실 겁니다. 그때 저는 어렸죠.
하지만 어른이 되니 알겠어요.
우소장님이 얼마나 어른이신지.
그분이 정부 찌라시에서 떠드는 것처럼 진짜 악인이었다면 제가 살아남을 수 있었을까요?
우소장님 멀리서 본 적이 있지만 나이는 인터넷에서 말하는 것보다 들어 보이시던데 진짜 미인이세요!
아무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하납니다.
민희,,, 공주를,,, 석방하라~~~!!!
“음.”
내가 봐도 명문이군.
아니나 다를까, 곧 지원군의 댓글이 달리기 시작했다.
망자13121 : 토씨하나,,,틀린말씀이,,,없으십니다,,,,
망자3882 : 요새,,, 민희 공주님을,,,,음해하는,,,무뢰배들이,,,많은데,,,,고생이,,,많으십니다,,,,
망자2892 : 민희 공주를 석방하라!!!!!!!
망자12818 : 써글놈의 자식들! 민희가 몬스터랑 싸울 때 자기들은 안전한 곳에서 지켜본 주제에! 이런 배은망덕한 놈들은 반드시 씨를 말려버려야 합니다…..
…
…
역시 홍다정 말대로 노인들의 화력은 무시무시하다.
격동기를 경험한 세대답게 연륜에도 불구하고 젊은이에게 조금도 뒤지지 않는 뚝심으로 휴대폰을 껐다 켜며 – 네크로폴리스 접속자의 경우 닉네임을 바꿀 수 있다 – 순식간에 추천 수 500개 이상의 대인기글로 끌어 올린 것이다.
이건 작지만 큰 일보다.
인터넷 세상이라고 하더라도 의외로 바깥에 있는 것처럼 눈치를 보는 사람들이 많다.
모두가 우민희를 욕하고 있을 때 함부로 의견 내는 걸 꺼리는 사람이 많았다는 이야기다.
그런 글을 올려봐야 욕과 핀잔만 듣기 일쑤니까.
하지만 엄창이가 총대를 멨다.
자리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이는 노인으로 추정되는 유저를 제외한 유저의 댓글만 봐도 알 수 있다.
망자128321 : 우민희씨. 개인적으로 아무 감정 없지만 그래도 지난 전투 때 도시 앞에서 혼자 싸우신 분 아닌가?
망자7413 : 우민희가 고의적으로 애들 죽인 건 모르겠고, 제주도 가려고 재능도 없는 애들 억지로 시설에 떠민 긴 건 팩트긴 하지 ㅋ
mmmmmmmmm™ : 흠…
망자9231 : 확실히 갑자기 너무 심하긴 했지. 페일넷 초창기부터 했는데 지금까지 한 개인을 저렇게까지 매장하려는 건 본 적이 없거든.
망자68131 : 우소장님 힘내세요
dongtanmom : 냠냠….
…
…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겠지.
결정적인 한 방을 이용하자.
“······.”
타닥타닥
[ 비바! 아포칼립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접속.
그리고.
“······.”
타닥타닥
닉네임 : SKELTON
그렇다.
엄창이와 비교도 안 되는, 이제는 인류 마지막까지 그 이름이 울릴 리빙 레전드가 엄창이의 글에 찬성하는 뉘앙스를 비추면 어떠할까?
분명 풍파가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생겼다.
어떻게 댓글을 달아야 할까.
현재 스켈톤은 범인을 넘어선 초월의 경지에 이른 자다.
엄창이의 말에 힘을 싣는 것도 좋지만 모양새가 좋아야 한다.
별 거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문제다.
무엇보다 나는 장기영의 수제자.
마음만큼이나 형태도 중요하다.
잠시 팔짱을 끼고 점멸하는 입력 커서를 응시했다.
어떻게 해야 신비인 다운 지지댓글을 적을 수 있을까?
역시 이 부분은 홍다정에게 물어봐야 하나?
아니, 그녀는 관찰자에 불과하지 네임드는 아니다.
동탄맘도 엠구도 참고는 될 수 없다.
오늘따라 존내논의 빈자리가 그립다.
모처럼 존내논을 검색해 보았다.
John_nenon : (존내논) ㅎㅎ 오늘 저녁입니다
John_nenon : (존내논) 의외로 단단한 시골 병원 시설의 구조
John_nenon : (존내논) 골든리트리버입니다 ㅎ
John_nenon : (존내논) 이른바 “정신병원”의 방어력
John_nenon : (존내논) 르포 시골 폐병원을 찾다 (1)
John_nenon : (존내논) 좆같은 새끼들…. 내가 니들한테 해준 게 얼만데!
…
…
“······.”
무한 원숭이 이론이란 게 있다고 한다.
무한한 시간과 무한한 시행이 있다는 조건 하에서 원숭이에게 타자기를 주면 셰익스피어의 작품과 같은 걸 만들 수 있냐는 물음과 그 고찰에 관한 이론이라고 한다.
나는 이 이론에 부정적이다.
뭐, 비슷한 글을 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존내논의 글이 주는 감동은 글 자체만 있는 것이 아니다.
그는 인생 전체를 통틀어 자신이라는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그의 거룩한 어록을 보며 고독한 절대자의 기분을 느껴보도록 하자.
하지만 내 작업은 뜻밖의 불청객에 의해 방해받았다.
“어. 선배.”
김다람이다.
문병을 오긴 왔다는데 내가 인사불성일 때 잠시 와서 사실 네메시스 타입전 이후로는 처음 본다.
전보다 표정이 꽤나 좋아진 것 같지만 말쑥하게 차려입은 그녀의 복장과 어딘가 나를 떠보는 듯한 시선을 보고 있자니 불길한 예감이 든다.
아니나 다를까.
“나 이번에 선거에 출마해.”
“뭐?”
“왜? 놀라? 나 정도면 충분히 자격 있지 않아? 저기 폐허 뒤적거리며 고물 떼서 파는 양아치들은 물론이고 전투 때 아무것도 안하던 애들도 후보로 나오는 마당에 전 국위원 위원 출신인 내가 나가는 게 이상해?”
말은 맞는 말이다.
동탄맘 같은 친구가 선거에 나오는 마당에 목숨을 걸고 가장 위험한 곳에서 묵묵히 싸워 준 김다람이라면 충분히 자격이 있겠지.
문제는 역시 내 후배 특유의 뻔뻔함이겠지.
“아무튼 내가 온 건, 선거 지원 좀 해달라고.”
“선거 지원을?”
“응. 별 건 아니고 유세할 때 손 좀 흔들어줘.”
“내가?”
“옛날 국회의원 선거처럼 종일 하는 건 아니야. 다들 일과가 있으니. 휴일에 한 번 얼굴 비쳐서 내 옆에서 손만 흔들어 줘. 분위기가 좋으면 마이크 한 번 줄 테니 거기서 찬조 연설을 하건 비트박스를 하건 마음대로 해. 지금 선배만큼 이미지 좋은 사람도 없으니.”
“그, 그래? 하지만 광신도가 있으면?”
“아.”
김다람이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거기까진 읽지 못한 모양이다.
“나, 동탁이 데리고 유세할 건데. 그러면 안 되겠네. 선배는 그냥 지지문만 써줘. 선배 계정 있잖아? 뭐? 스켈레톤이었나?”
“스켈톤.”
“응. 그걸로 김다람을 추천함. 이런 글이라도 써주면 참 좋을 거 같은데.”
“······.”
“왜? 불만이야?”
“아니, 그건 아니고.”
김다람이 소중한 후배인 건 맞다.
하지만 우리 다람이 욕심 채우자고 스켈톤이라는 전가의 보도를 함부로 꺼내 쓰는 건 과한 게 아닐까?
닭 잡는데 용 잡는 칼을 쓸 순 없는 노릇 아닌가?
“다른 네임드 계정으로는 안 돼?”
대안을 제시하자 역시 우리 다람이의 얼굴이 썩어 들어간다.
“누구?”
그녀가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며 묻는다.
“엄창이.”
“안 돼.”
“왜 안 돼?”
“아니, 도대체 뭐 하는 놈인지도 모르겠고. 거기다 엄창이가 뭐야 엄창이가. 진짜 저질이야. 센스하고는 진짜. 학교 다닐 땐 안 그랬는데. 이래서 내가 동탁이한테 인터넷을 절대 안 시키는 거지.”
역시 한 아이의 어머니답게 내공이 보통이 아니다.
천하의 네메시스 타입의 충격파에도 적응했던 내가 김다람의 기에 밀리고 있다.
한바탕 짜증을 낸 김다람은 맥 빠진 얼굴로 날 힐끗 쳐다보더니 사무실의 탕비실을 뒤적였다.
곧 커피믹스 하나를 발견해 셀프로 탄 후 그녀는 빈자리에 앉아 한동안 커피를 음미하며 생각에 잠겼다.
“······.”
시위라도 하는 건가.
스켈톤 계정으로 추천사 하나 써주지 않으면 계속 여기 죽치고 있겠다는 건가.
솔직히 나는 이제 김다람이 두렵다.
“선배.”
김다람이 입을 열었다.
“어.”
짐짓 태연한 척을 하며 뭐라고 핑계를 댈지 필사적으로 머리를 굴렸다.
“민희 소식 알지?”
정색한 얼굴로 김다람을 보았다.
설마 여기서 그 이야기를 꺼낼 줄이야.
의외라고 생각했다.
그녀라면 우민희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모두가 아는 것처럼 김다람은 우민희를 학생 시절부터 매우 싫어했으니까.
지금 그 싫어하던 옛 친구가 곤경에 처한 것도 당연히 알 것이고 그 이야기를 내게 꺼내봐야 내 입에서 우민희를 돕자는 말밖에 안 나올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다람이 우민희에 관한 주제는 입도 뻥긋 하지 않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김다람이 먼저 우민희의 이야기를 꺼내다니.
무슨 의도일까 궁금해하며 입을 열었다.
“알지.”
김다람의 얼굴을 보았다.
무표정.
좋아하지도 않고 싫어하지도 않는다.
무엇보다 확연하게 드러나는 건 근심이다.
“민희 말이야.”
한숨을 내쉬며 김다람이 말했다.
“걔가. 그래. 내가 흉보는 것만큼 성질머리가 나쁜 애는 아니야. 다들 존재 자체가 밉상이라 싫어할 뿐이지. 성격 자체는 착하진 않지만 악하지도 않아. 한마디로 자기 꼴리는대로 사는 자유로운 영혼이지. 그게 나 같은 평범한 애들 열등감을 더 자극한 것도 사실이고.”
과거사인가.
우민희 흉만 보던 김다람의 입에서 옛 친구에 관한 솔직한 평가가 나오는 건 아마 이번이 처음이 아닐까.
갑작스러운 주제 변경에 혼란을 살짝 느끼긴 했지만 이내 흥미진진한 마음으로 김다람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남자 갈아치우는 것도 곤란하게 하는 것도 뭐 자기 취향이지. 다 자기 꼴리는대로 하는 것의 연장선상이잖아. 우리 눈엔 그게 나는 이런 남자까지 컨트롤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내비쳐서 싫어했지만 말이야. 다시 말하는데 근본이 나쁜 애는 결코 아니야. 하지만.”
김다람이 날 보았다.
역시, 근심 어린 얼굴이다.
“성깔이 있어.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애야. 보기와 다르게 역치가 높아서 걔가 진짜 화내는 걸 본 사람이 적긴 한데, 걔가 진짜 화나면 장난 아니야.”
“그래?”
“진짜. 진짜 장난 아니야. 평생 모르고 사는 게 나을 정도로.”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지금에야 허물없이 지내지만 학생 시절부터 늘 접근하기 어려운 분위기를 풍기던 녀석이었으니.
김다람이 목소리를 낮추며 상체를 기울였다.
“선배는 우민희가 이대로 당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