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39)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439화(439/466)
9 174. 변신 (3)
속내를 말하자면 내 후배 썩 마음에 안 든다.
풋풋하고 순수했던 소녀 시절 모습이 엊그제 같은데 나보다 더 세파에 찌들어 “실리” 악착같이 챙기는 모습 보고 있자면 있던 정도 다 떨어진다.
하지만 오랫동안 합을 맞췄다.
그것도 서로의 목숨을 맡길 정도의 신뢰를 맡겼다.
김다람도 지금은 내가 실망스럽고 별로 마음에 안 들겠지만 뭐, 어쩌겠냐.
그리 오랫동안 손발을 맞췄는데.
서로 싫지만 우리는 이심전심이다.
그녀의 눈을 본 순간, 그녀가 뭘 말하려는 지 알 수 있었다.
“무슨 뜻이지?”
불길한 예감을 느끼며 묻는다.
김다람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도청 장치가 있냐고 묻는 듯한 몸짓.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 사무실은 내 방공호만큼이나 철저하게 관리한다.
창문은 한 개를 제외하고는 움직이지 못하게 막아두었고 유일한 한 개의 창문엔 체인을 걸었다.
퇴근 전 문틈 사이엔 명함을 꽂아 넣고 실내엔 적외선 동작 감지기를 포함, 몇 중의 함정을 파놓는다.
여기에 더해 적어도 아침에 한 번은 도청 장치 검색 장치로 방 전체를 훑는다.
네메시스 전까진 이렇게 하지 않았지만 그 이후부터는 늘 몸에 밴 것처럼 하는 일상이다.
여담이지만 개인적으로 접근해 오는 잘 모르는 젊고 아름다운 여자도 철벽을 치고 멀리한다.
촉이 왔다고 해야 하나.
건수를 잡히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발언권과 지위를 얻은 만큼 견제가 심하게 들어온다는 건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비록 방공호에 오래 묻혀 있었지만 오랫동안 최고의 자리를 지켰다.
시기심과 질투, 견제와 경계가 어떤 식으로 작동하는지 알고 있다.
“다람아. 내 성격 알잖아?”
넌지시 확신을 담아 말하자 그제야 김다람이 내게 기울였던 상체를 뒤로 빼며 얕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지만.”
“뭐?”
“인터넷에서 하는 짓 보니까 영 미덥지 않아서.”
“뭔 소리냐.”
“캡틴 엠나인이라는 사람이 선배가 예전에 썼던 글 계속 올리잖아. 하. 뭐, 말은 아끼겠지만 좀 그렇더라고.”
“캡틴 엠나인은 무슨. 엠구지 엠구. 그 기울어진 아파트 살던 놈이잖아? 이제는 어디 살려나. 그 친구 맞춤형 경사진 집은 찾기 어려울 텐데.”
“뭔 악담을 하고 있어.”
“그런 놈이 올리는 글 무시하라 이거야. 지금 그 놈은 질투심으로 눈이 먼 거지.”
거기서 말을 끊었다.
적절한 선택이다.
하마터면 “너처럼”이라는 말을 덧붙일 뻔했으니.
잠깐 엠구 쪽으로 둘러가던 주제가 다시 우민희로 전환됐다.
“······요즘 선거 준비한다고 바쁘긴 한데. 지금 제주 애들이 하는 짓은 선을 넘는 느낌이 들어. 그건 그렇다 쳐도 말이야. 난 우민희. 걔가 그 성격에 한 달 넘게 그런 대접을 받고도 참고 있는 게 더 불안하단 말이지? 누가 봐도 지금 제주 애들이 걔를 죽이려고 하는데도 말이야.”
김다람의 걱정은 객관적인 근거나 확증에 의한 게 아닌 여자 특유의 직감에 의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런 직감을 무시하지 않는다.
김다람의 감은 예리하다.
그녀 자체가 대형 고양잇과 같은 생태계 최상위 포식자의 자질을 타고났다.
내 기억이 맞는다면 김다람의 직감이 틀린 적은 없다.
그녀처럼 뛰어난 저격수의 감이라는 건 늘 관찰과 경험이 내포된 것이고 무엇보다 한 치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으니까.
김다람에게 적절한 선거 지원을 약속한 후 내 나름대로 조사에 들어갔다.
“아. 쌤. 오랜만이에요.”
우민희는 오랫동안 자기 영역을 구축했으면서 친하게 지낸 사람이 단 하나도 없었다.
그나마 개인 비서처럼 데리고 다니던 게 내 제자 송유진이었다고.
저레벨 어웨이큰이긴 하나 전투력에 문제가 있는 그녀는 후방 경비를 맡았다.
지금은 연금된 우민희가 필요로 하는 걸 사다 주는 일을 한다고.
일전에 우민희와 만나긴 했지만 그녀의 속내를 알기 위해서는 역시 주변인의 증언이 필요하다.
“우소장님요? 전에 만나시지 않았나요?”
“그건 그렇긴 한데.”
늘 그렇지만 사람은 나이를 빠르게 먹는다.
방공호 시절만 해도 소녀티가 느껴졌던 내 제자는 이제는 사회초년생을 넘어 사회에 찌든 직장인의 아우라를 풍기고 있다.
하긴, 고생이 많았지.
이런저런 일도 많이 겪었고.
지금은 적당히 내려놓은 듯한 흔적이 역력하다.
그것이 살아가는 데 유리하다면야 그리 나쁜 일도 아니겠지.
전쟁이 시작된 지 5년이 지난 지금, 결국 두 발로 걸어 다니는 건 산 사람이지 과거의 망령이 아니니까.
살아 있다는 것 자체가 축복이고 벼슬이다.
준비한 선물을 제자에게 내밀었다.
“와. 이거 뭔가요? 설탕?!”
고개를 끄덕였다.
“살 좀 찌라고. 요즘 많이 마른 거 같아서.”
“고마워요. 쌤. 진짜. 저는 이번에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설탕 하나만으로 진심 어린 감사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된 지는 꽤 오래됐지만 나와 가까운 사람이 이런 반응을 보이는 건 여러모로 마음을 심란하게 한다.
“······글쎄요. 우소장님. 크게 요구하시는 것도 없고 바라시는 것도 없죠. 항상 그 호텔 최상층에 가만히 계세요.”
“찾아오는 사람은 없냐?”
“예전에 우소장님이 제주에 운영하던 양로원 쪽에 있던 분들이 막무가내로 찾아오려 하는데 다들 입구에서 커트를 당하시죠. 그분들 말고는 딱히 찾아오는 사람은 없어요.”
“그렇군.”
예상은 했지만, 별거 없다.
일과 대부분을 우민희 옆에서 수발을 드는 송유진이 아무것도 모른다면 정말 아무 일도 없는 것이겠지.
애당초 제주 위원회 놈들이 우민희가 다른 사람과 접촉하게 놔둘 것 같지도 않고.
김다람이 예상했던 위험한 일은 어쩌면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정리를 하고 자리를 일어나려니 송유진이 입을 열었다.
“그 양로원분들 말이죠.”
뭔가 기억이 난 얼굴.
그렇지 않아도 궁금하긴 했다.
대체 우민희와 그 노인들의 관계가 뭔지.
친척이라기엔 숫자도 너무 많고 성씨도 다 다르다.
“우소장님은 말씀을 아끼시는데 예전에 제주에 있던 정규 분들 말씀 들어보니까, 예전 팀원분들 가족분이라고 하더라고요.”
“그게 정말이냐?”
솔깃한 이야기지만 이것도 말이 안 되는 게 우민희가 돌보던 노인 숫자는 100명을 넘어간다.
아무리 균열 내 임무가 많은 희생을 요구한다고 하더라도 저렇게까지 팀원이 갈리면 자기 멘탈이 갈리기 전에 처지부터 아슬아슬하지 않을까?
송유진은 내 의문에 대한 답을 느릿하지만 차분한 말투로 답했다.
“음. 예전에 우소장님이 제주에 계실 땐 지금과는 전혀 달랐다고 하더라고요.”
“어떤 식으로?”
“사명감에 불타는? 의욕이 넘치는? 그런 성격이었다고 들었어요.”
“호오. 민희가?”
의외다.
우민희에게 그런 일면이 있을 거라고는.
그녀는 나와 김다람과 달리 유복한 집 자식이다.
헌터가 된 것도 반쯤은 흥미다.
대단한 사명이나 의지가 있었던 게 아니다.
단지 세상이 그녀에게 분에 넘치는 재능을 줬을 뿐이다.
나처럼 몬스터에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사명감에 불타는 아이들이 학교 과정, 특히 장기영의 선별에 버티지 못하고 나가떨어지거나 진로 변경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을 때 우민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어려운 시험을 척척 합격해 냈다.
김다람처럼 뼈를 깎는 노력을 한 것도 아니었다.
우민희는 만물 유전자론의 표본 같은 존재였다.
본인이 중상위권에 만족해서 그렇지 자신이 목표 의식을 가지고 좀 더 노력했다면 최상위권을 노려봄 직한 그런 인재였다.
그런 그녀가 열의를 가진 지도자가 된다는 게 나에게는 상상이 가지 않는다.
당장 인천 연구소 시절이나 파주 캠프 시절만 하더라도 그녀는 퇴폐적이고 시들어 가는 듯한 장소에서 비슷한 무리들과 함께 가라앉고 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우소장님이라면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겠죠. 그분. 충동적인 면이 있잖아요? 끈기는 없는 것 같지만.”
“그런 경향이 없잖아 있지.”
“한창 전성기 때는 강한민 구원자처럼 자체 세력을 가지고 계셨던 모양이에요.”
“그래?”
“네. 저한테 이 말씀을 해주신 분도 우소장님 쪽 세력이라고 하더라고요. 정확히는 다른 파벌에서 쫓겨나서 갈 곳이 없어 몸을 의탁하게 된 정도?”
“그 사람이 누구지?”
“배택근이라는 분인데 파주에 계실 때 이미 사라지셨어요.”
아무렇지도 않게 송유진은 한 어웨이큰의 실종을 이야기했다.
“그렇군.”
“아무튼, 그분 말씀에 의하면 우소장님의 세력은 강한민 구원자의 친위대? 그런 사람들보다 숫자는 적지만 실력이나 끈끈함은 뒤지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어웨이큰 집단?”
“당연하죠.”
“······그래?”
고개를 끄덕이며 잠시 생각에 잠겼다.
처음 듣는 이야기다.
애당초 우민희의 제주 시절 이야기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강한민, 나혜인도 그렇지만 오버 10레벨 이상 어웨이큰 활동은 기밀이 걸려 있어 제주에 있던 사람도 알 방법이 없는지라 본인이 입만 다물면 나 같은 외부자는 알 방법이 없다.
“그런데 사고가 터졌죠.”
송유진이 말했다.
“정확한 건 모르겠어요. 배헌터님은 제주에서 일어난 최초의 재앙이라고도 말씀하시더라고요.”
“그래?”
“수백 명이 죽거나 실종됐죠. 사실 균열 내부 실종은 사망과 같잖아요?”
순간 우민희의 얼굴에 새겨진 흉터와 날카로운 소리를 내던 의수와 의족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사건의 영향인가.
알 수 없다.
우민희는 과거에 관해서는 말하는 법이 없으니까.
묻는다고 해서 알려줄 성격이 아니라는 걸 잘 아는지라 묻지도 않았지만 말이다.
“지금 모시고 계신 분이 당시 사고를 당했던 분들의 가족이죠. 연로하신 분만 저렇게 모아두신 거고, 아직 일할 나이거나 동생 같은 가족분에겐 괜찮은 일자리를 알선해 주신 걸로 알아요.”
“그렇군.”
사람을 잘 본다고 생각했는데 그것도 아닌 모양이다.
우민희에게 그런 인간적인 면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다.
전혀 다른 누군가의 일화를 듣는 기분.
마치 변신 같다고나 할까.
“오늘 이야기 고마웠어.”
제자에게 솔직한 감사를 표했다.
“어려운 거 있으면 기탄없이 부탁해. 전처럼 마음 꽁꽁 싸매고 있지 말고.”
“그래도 될까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내 교관 시절을 기억하는 건 너밖에 없지 않냐.”
“고마워요. 교관님!”
“쌤이라고 안하냐?”
“저도 나이가 먹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런 부끄러운 말은 남 앞에선 못하죠.”
송유진이 즐거워한다.
오랜만에 보는 과거의 얼굴이다.
그녀가 어려운 지경에 놓인 건 알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코가 석 잔데 누가 누굴 도울까.
새로운 서울에 얼마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은 작게나마 “끗발”이란 것도 생겼다.
제자 한 명 정도에게 좋은 자리 주는 것 정도는 가능하겠지.
한창 좋아하던 송유진이 갑자기 웃음을 그치고 다시 뭔가를 생각해 내려 한다.
나름의 보답일까.
시계를 봤다.
약간의 시간이 있다.
“이건 진짜 배헌터님도 반신반의하던 건데 말이죠. 그 사고가 있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우소장님랑 강한민 구원자가 대판 싸웠대요.”
“뭐? 우민희랑 강한민이?”
“네. 균열 안에서 둘이 거의 뭐, 신들의 전투? 그 정도 스케일로 싸웠다고 하더라고요.”
“진짜냐?”
솔직히 믿기진 않는다.
아니나 다를까, 송유진 본인도 그냥 해본 소리로 보인다.
“이건 진짜 카더라의 영역이라······. 그만큼 사이가 나쁜 시절이 있었던 건 확실해요. 그렇게 사이가 안 좋으니 인천에 온 거겠죠?”
“그렇겠지.”
이건 기회가 되면 본인에게 물어보는 게 낫겠지.
그것도 분위기가 아주 좋을 때나 말이다.
아무튼, 제자에겐 충분한 정보를 얻었다.
좋은 제자를 둔 것 같다.
“아, 그리고. 쌤.”
“교관님 아니고?”
“이게 입에 붙어서요. 개선해야겠죠? 그리고 이건 별 건 아닌데요. 아까, 우소장님이 평소 뭘 하는지 물어보셨잖아요?”
“응. 그래.”
“컴퓨터 자주 하시는 거 같아요.”
“컴퓨터?”
“네. 그 위성 인터넷 있잖아요. 교관님도 쓰던.”
아주 잠깐 송유진의 얼굴에 경멸과 당혹을 섞은 듯한 표정이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스켈톤을 떠올리고 그런 표정을 지은 건 아니겠지?
작은 벌레 같은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가는 감각을 느끼며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거의 인터넷만 하시는 거 같아요. 주로 마우스만 딸깍 거리시는데 가끔은 키보드를 치실 때도 있더라고요.”
“한 손으로?!”
“두 손으로 치시는데요?”
송유진이 정색하며 묻는다.
“······.”
잠깐.
문제는 그게 아니다.
“방금 민희가 키보드를 친다고 했냐?”
“네.”
우민희는 지금 모든 직에서 물러났다.
취미로 글을 적거나 일기를 쓰는 성격도 아니다.
그녀가 키보드를 칠 만한 공간은,
그렇다.
인터넷이다.
게시판 말고는 없다.
“고마워. 유진아. 다음에 보자!”
즉시 사무실로 돌아와 게시판을 확인했다.
검색 : gijayangban
우민희의 닉네임으로 글을 검색해 본다.
역시.
그녀가 최근 쓴 글은 없다.
한국어 게시판은 물론 외국어 게시판에도.
가끔 키보드를 치는 것은 내 불길한 예감을 더욱 증폭한다.
SKELTON : (스켈톤 부탁) 비바봇님.
내가 네임드를 넘어 게시판 전체에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데 감사한다.
김다람은 인터넷이 나를 망쳤다고 하지만 그 반대다.
인터넷은 내게 많은 걸 선물했다.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무슨 일인가요? 스켈톤님?
비바봇과의 인연도 그중 하나.
SKELTON : 대단히 죄송한데 gijayangban이라는 친구가 최근 메시지를 보낸 정황이 있나요?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비바봇 의심) 뭔가요…? 이번에는 또 개인 정보 열람 하고 싶은 건가요…? 아무리 스켈톤님이라고 해도 그렇게까지 자꾸 권한을 남용하시는 건 게시판 관리자로서의 제 양심이······.
SKELTON : 그 친구가 메시지 보낸 사람이 혹시 armeegruppe_B라는 친구일까요?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잠깐만요.
“······.”
차를 마시며 답이 오기를 기다렸다.
바깥에서 누군가의 연설 소리가 들린다.
선거철 특유의 떠들썩함도 느껴진다.
산만한 시간이 가는 가운데 비바봇이 답했다.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맞아요.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그 유저한테만 메시지를 보냈내요.
답은 정해져 있다.
VIVA_BOT014님으로부터 온 메시지 :
armeegruppe_B.
김병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