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47)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447화(447/466)
447 178. 여행 (1)
“뭐? 여행?”
지금 시대에 여행이란 건 중세의 여행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중세와 달리 우리는 세상 대부분을 알고 있고 그 대부분의 세상이 파괴됐다는 것 또한 알고 있다.
과거처럼 성지를 순례하거나 명승지를 유람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파트너도 중요하다.
우민희는 좋은 파트너가 결코 아니다.
많이 유해졌다고 하나 여전히 종잡을 수 없고 충동적이고 매사 시니컬한 그녀는 함께 있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기보다는 이른바 “기가 빨리는” 인간이다.
천영재가 경기를 일으키고 있지만 정직하게 말하자면 나도 우민희가 자꾸 우리 사무실에 오는 게 마음에 편치 않다.
하지만 그 모든 악조건에도 불구하고 나를 움직일 수 있는 마법의 단어가 있다.
바로, 호기심이다.
“내 딸 보러 안 갈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 후배의 입에서 나왔다.
“딸? 그러니까 너의 딸? 네가 낳은 여자아이 말이지?”
“응.”
스스럼없이, 일말의 거짓도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우민희가 답했다.
“그래?”
전쟁이 시작된 지 5년이 지났다.
세상은 많이 변했다.
대부분 나쁜 의미로의 변화지만 살아남은 사람들은 왜 그들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는지 여러 방면에서 증명하고 있다.
물론 나도 그동안 장족의 발전을 이루었다.
특히 내적으로 커다란 성장을 했다고 자부한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주지 않겠어?”
더 이상 호기심이라는 미끼를 매단 낚싯대를 덥썩 물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우선은 역시, 탐문이겠지.
“네? 우소장님한테 아이요······?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기예요.”
인천 연구소 시절부터 우민희를 모셨던 송유진은 전혀 알지 못한다는 반응을 넘어 그 진위 여부를 적극적으로 의심하려 들었다.
“아니, 아이가 있었으면 그 뭐냐. 사진이라든가. 최소한 안부 같은 건 주기적으로 물어봐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 게 도통 없었거든요. 진짜요.”
일방통행적 앙숙 관계인 김다람에게도 이 사실을 좀 더 유화해서 물어보았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혹시나 해서 하는데 말이야. 우민희한테 아이가 있을 거 같아?”
“아니.”
유력 당선 후보 김다람 여사는 단칼에 부정했다.
“걔 성격을 보라고. 걔가 남의 애 같은 거 가질 애라고 생각해?”
“······그렇겠지?”
“내가 자꾸 걔 험담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야. 팩트가 그런걸. 우민희는 남의 아이 가지기엔 지나치게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야. 그런 애가 아이한테 줄 사랑 같은 게 있겠어?”
“사탕은 줄 수 있겠지?”
“아!”
김다람에게 쫓겨난 후 공경민을 찾아갔다.
여전히 서먹하긴 하지만 함께 목숨을 걸고 싸운 적도 있기도 했고.
“뭐?”
가장 믿었던 공경민도 반응이 이상하다.
“뭔 소리야. 갑자기 전화가 오길래 중요한 문제 논의하려는 줄 알았더니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진짜 없어?”
“아이는 혼자 만드나. 우민희는 제주에 온 이래 시종일관 혼자였고 남자 같은 건 만들지도 않았어. 남자가 있었다면 소문이 났겠지. 무엇보다 걔 남자라면 소싯적에 질리도록 만났잖아?”
“그런가.”
“뭐? 이상한 소리 듣기라도 한 거냐?”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그보다 말 나와서 하는 이야긴데 우민희 말이야. 최근 강한민 쪽과 접촉했다는 이야기가 있어.”
“강한민과?”
“둘은 영원히 갈라진 걸로 생각했는데 말이야. 뭐 사람 일이라는 건 모를 일이겠지. 조만간 어떤 식으로든지 상황에 변화가 생길 거 같으니 몸조심하고 있어. 당장은 모든 게 좋아 보이지만 언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게 현재 세상이니까.”
사람들이 말하길 공경민은 보기보다 실권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다.
이미 제주에 있을 때부터 후배들로 이루어진 위원회에게 갖은 견제를 받았고 자기 사람을 다 잃었다.
그러므로 그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한정적일 것이다.
하지만 그 화려한 연애 편력을 자랑하던 우민희가 이십 대 중후반부터 연애 쪽에 관심을 끊은 건 엄연한 사실로 보인다.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그 지옥도를 보고도 내일의 사랑을 속삭이는 건 마음 한구석이 마비됐거나 아니면 정말로 심지가 곧은 사람만이 가능한 일이다.
아무튼, 우민희의 주변인과 제주 쪽 사정을 아는 사람에게 탐문한 결과 만족할 만한 답은 구하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약속한 날이 왔다.
“선배. 준비 다 했어?”
우민희가 나타났다.
조금은 놀랐다.
늘 입고 다니던 오피스룩에 하얀 가운을 덧입은 스타일이 아닌, 전투복 차림이다.
“가자?”
과할 정도로 알록달록한 패치를 붙인 총기는 덤.
총기 끝에 매달린 이른바 “멘헤라”의 상징으로 알려진 캐릭터 인형이 덜렁거리고 있었다.
“······.”
틀림없다.
현역 시절에 쓰던 총이다.
*
그것은 여행이라기보다는 임무, 특히 정찰에 가까웠다.
차량도 흔한 지원도 없었다.
2인 1조.
오직 도보만으로 폐허가 된 시가지를 걸었다.
거리엔 사람도 몬스터도 좀비조차 없었다.
그야말로 모두가 떠난 버려진 거리다.
“저기. 저 아파트가 첫 번째 체크 포인트야.”
처음 우민희의 브리핑을 들었을 때만 하더라도 나는 우민희가 자신의 아이를 제삼자에 맡겨 놓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품었다.
아이가 있고 없고 여부를 떠나서 만약 진짜 아이가 있다는 전제하에, 우민희가 자신의 아이를 타인에게 위탁해서 양육하게 했을 거라는 건 그리 어렵지 않게 도출할 수 있는 결론이니까.
지금은 나와 같은 신세지만 전성기 때 우민희는 막후의 여왕으로 압도적인 존재감과 영향력을 과시했었다.
자신의 아이를 키우는 조건으로 누군가에게 안전과 미래를 보장한다면 그 조건을 마다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는 않았겠지.
당연히 우민희라는 거물은 서울 시내, 혹은 근교에 잘 숨겨진 A급 방공호를 제공했을 것이고.
그런데 우민희가 오늘 방문하고자 하는 장소가 너무 많다.
무려 여섯 곳이다.
외신에서 다섯쌍둥이를 낳았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지만 여섯쌍둥이는 글쎄다.
우민희가 고양이나 설치류라면 모를까, 그녀는 우리와 같은 인간종이다.
한 번에 여섯 아이를 낳는 건 불가능하다.
만에 하나 양보를 해서 세쌍둥이를 낳더라도 두 번을 낳아야 한다.
우민희의 제주 시절, 아이가 없었다는 일관적인 증언을 고려해볼 때 그녀가 몰래 아이를 가질 수 있었던 시기는 한정된다.
그러므로 우민희가 가려는 체크 포인트엔 우민희의 아이가 없을 가능성이 높다.
과연 우민희가 찾은 곳은 한때는 고급이라는 딱지가 붙었겠지만 현재는 버려진 아파트였다.
그것도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는.
이런 곳에 대체 무슨 볼일이 있는 걸까.
“101동 1902호였지. 아마?”
그녀는 구체적인 호수까지 휴대폰에 넣어두고 있었다.
터벅- 터벅-
사람의 흔적은 없지만 폐허를 걸을 땐 늘 주의를 곤두세워야 한다.
언제 어느 곳에서 기습이 올 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만이 아니다.
뮤테이션, 좀비도 좁은 실내에서는 요주의 대상이다.
스르릉-
한 손에 도끼를 들어 다른 손에 든 권총을 받친 채 좁고 어두운 비상구 계단을 올랐다.
임무 중엔 말이 없는 건 예나 지금이나 한결 같은 습관이다.
입을 연 것은 목적지인 19층에 도착한 뒤였다.
“여기에 뭐가 있는 거지?”
아이는 아닐 것이다.
아무리 강심장인 인간이라고 하더라도 이런 사람이 없는 곳, 그러므로 사람 눈에 잘 띄는 곳에 아이라는 손이 많이 가고 노출 가능성이 높은 것을 키우기 어려울 것이다.
내 물음을 받은 우민희는 입바람으로 앞머리를 후하고 불며 가볍게 말했다.
“취미 생활?”
역시 아이가 아니었다.
문은 열려 있었다.
정확히는 누군가가 문을 강제로 열고 딴 흔적이 세월의 먼지 속에 뚜렷이 남아 있었다.
문이 열리자 희미한 시체 냄새가 코끝에 닿았다.
적어도 1년 이상은 방치된 시체에서 날 법한 악취다.
중국 시절에 보았던 갖가지 시체들을 떠올리며 무기를 든 채 신중하게 실내로 발걸음을 옮겼다.
“경계할 거 없어. 아무도 없을 거야.”
우민희가 확신을 담아 말했다.
과연 그러했다.
실내, 거실 쪽엔 말라비틀어진 백골이 살점이 말라붙기 전까지 남긴 검은 흔적을 배경으로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하나, 둘, 셋, 그리고 넷.
“이건?”
약탈자에 당한 건 아니다.
가지런히 놓인 시체의 배치,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술병, 악취를 배가시켰을, 아마 방 전체를 밀폐했을 유리창과 비닐, 번개탄을 피운 흔적.
자살이다.
그중 둘은 아이로 보인다.
“보다시피.”
우민희가 어느새 마스크로 입을 가린 채 무심하면서도 흥미를 담은 눈동자로 현장을 천천히 돌아 본다.
“전쟁 후 아마 1년 뒤쯤에 죽은 사람들이야. 정확히는 대피소 체제로 돌아가면서 모든 사람을 대피소 안에 밀어놓고 있을 때.”
우민희가 허리를 숙이더니 뭔가를 들어 올렸다.
레고 장난감. 말에 탄 기사다.
아마 부모로 추정되는 백골 사이에 놓인 작은 인골의 물건으로 보인다.
“모두가 대피소로 순순히 떠난 건 아니었어. 어떤 사람들은 모종의 예감을 느꼈지.”
그녀가 말을 내려 놓았다.
“대피소로 가더라도 결코 좋은 미래가 펼쳐지지 않으리라는 걸.”
“······.”
“그래서 먼저 목숨을 끊은 거지. 당시 이웃집에 악취가 난다는 민원이 여럿 들어왔어. 하지만 엘레베이터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상황에서 곧 비울 아파트에 투입할 행정력은 없었지. 그대로 방치했고 이렇게 남았지.”
“그래도 스케빈저는 왔다갔군.”
이미 문이 강제로 열려 있었다.
벽걸이 TV가 있던 자리에 못 박힌 자국만 덩그러니 남아 있고 서랍이란 서랍은 모두 열린 채 내용물이 대부분 털려 있었다.
우민희가 차갑게 웃었다.
“남들은 시체 냄새를 맡으면 피하지만 걔들은 진짜 스케빈저처럼 시체 냄새가 나면 먼저 둘러보는 애들이니까.”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가려는 나머지 장소도 전부 이런 곳이냐?”
그런 느낌이 들었다.
우민희가 고개를 살짝 들어올린 채 눈동자만을 움직여 날 응시했다.
우아하고 서구적인 용모인 그녀는 확실히 정면보다는 옆 모습이 좀 더 매력적이다.
“응.”
곁눈질을 보내며 그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왜 이런 곳을 찾는 거지?”
이쯤 되면 목적이 궁금해진다.
김다람에게 갖가지 욕을 먹고 있지만 그중에 시체성애자라는 욕은 없었다.
필경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냥. 보고 싶어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가족의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사진으로 본 적은 있지만 직접 가서 보는 것과 사진으로 보는 것과는 느낌이 다르잖아?”
그녀가 더 이상 말하고 싶지 않아 하는 심기를 노골적으로 드러내기에 더는 묻지 않고 다음 장소로 향했다.
이번에도 역시 피난소 체제로 전환 당시, 피난소 가기를 거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가족의 유해가 널린 장소였다.
어김없이 스케빈저가 다녀갔지만 침투형의 둥지가 가까이 있어서인지 – 현재는 제거된 상태다 – 전에 다녀간 곳보다는 적게 털어갔다.
두 번째 가족은 제법 유복한 집으로 보였다.
갖가지 악기가 있었고 깨진 액자 안엔 세계 각국에서 찍은 화목한 가족의 모습이 프레임 안에 담겨 있었다.
우민희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모르고 또 자기도 모를 한 가족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길게 이어진 침묵은 그녀가 먼저 깼다.
“예전엔 말이지. 이 사람들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한 시절도 있었어. 왜, 이렇게 잘 살던 사람이 그 피난소. 응? 어디서 온 지도 모를 수준 낮은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산다는 게 녹록한 일은 아니잖아? 잘사는 사람들 모인 동네에선 덜하지만 이런저런 계층이 섞인 곳에선 집단 린치 사건이 심심찮게 보고됐거든. 뭐, 강간이나 납치 같은 건 차치하고서라도.”
그녀가 액자 하나를 건드렸다.
엠구의 집마냥 기울어진 피사의 사탑을 배경으로 찍은 가족사진이었다.
끝을 날카롭게 간 의수의 손가락으로 건드리자 못에 걸어놓은 부분이 노후화됐는지 액자는 바닥에 떨어졌다.
당연한 일이지만 나도 우민희도 그 액자를 원래대로 걸어놓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가 돌아섰다.
“그런데 말이지. 선배.”
우민희가 작은 방에 모인 시체들을 보았다.
“······지금은 좀 다른 거 같아.”
그녀가 뭘 말하려는지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는데, 뭐, 대부분 좋지 않은 일이겠지. 하지만 거기서도 사람들은 살고 또 웃을 수도 있잖아? 요즘 바깥을 보면 드는 생각이야. 전쟁이 시작된 지 5년도 지난 지금 시점에서 느낀 생각이라고.”
역시 이런 흐름인가.
“살아 있다는 건 가능성의 또 다른 표현이지.”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의견에 동감을 표했다.
그건 이 박규 스스로 증명했다.
절망의 나락에서 스스로를 유폐했지만 결국 염원하던 적을 내 손으로 쓰러뜨렸다.
자포자기한 상태로 스러졌다면 영혼을 구원받을 일 없이 내 시체는 미래인이나 우주인에게 발견됐겠지.
“사는 게 낫다고 생각한다.”
우민희가 날 쳐다보았다.
그녀가 미소 지었다.
“그치?”
그녀가 집을 나섰다.
“우리 여기까지 돌아봐. 미안해. 이상한 거 구경하게 해서.”
“아니, 괜찮아.”
지나가는 말로 우민희가 중얼거렸다.
“······우리 가족이 선배 반만 닮았다면.”
우민희의 가족은 전쟁 중에 죽은 것으로 알려졌다.
대피 경고를 무시한 채 집 안에 있다가 핵 공습의 후폭풍에 휘말려 흔적도 없이 소멸했다는 것이 내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실과 달랐던 모양이다.
하지만 우리 사이에 긴말은 존재할 수 없다.
여전히 그녀도 나도 서로에게 좁혀지지 않는 거리감을 느끼고 있을 테니까.
어쩌면 둘 다 조심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몸에 새겨진 상처와 고통이 조심성이라는 흉터로 남은 것일지도 모를 일이겠지.
가장 중요한 문제가 하나 남았다.
“내 아이 말이야.”
우민희가 어두운 계단으로 내려가며 말했다.
“제주에 있어.”
제법 명랑해진 발걸음.
여행은 이제 시작됐을 뿐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