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House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448)
아포칼립스에 집을 숨김-448화(448/466)
448 178. 여행 (2)
한때 대한민국의 모든 자원을 제주로 실어 나르던 시절이 있었다.
육중한 수송기가 무리지어 지나가고 있노라면 방공호 안에서 인터넷에 열중하던 나조차 슬그머니 방공호 밖으로 나와 비행운을 만들어내며 남쪽으로 향하는 수송기 행렬을 지켜보곤 했었다.
부우우우우웅—
제주로 가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처음 갈 때와는 모든 면에서 환경이 변했다.
제주도, 나도, 그리고 건너편에 좌석을 한껏 젖힌 채 안대를 주섬주섬 쓰고 있는 우민희도.
그녀가 왜 자신의 자식을 내게 보여주려는지는 여전히 의문이다.
대체 그녀는 내게 뭘 말하고 싶은 걸까.
딸이라고 주장하는 미지의 아이를 통해 내게 뭘 암시하고 싶은 걸까.
잠시 후 수송기가 뜨고 곧 우리는 제주 상공에 도착했다.
엎어지면 코가 닿을 거리.
이렇게 가까운 섬이 그토록 멀게 느껴진 것이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다.
다시 찾은 제주는 여전히 황량했다.
섬 전체를 구분 지은 거벽과 콘크리트 구조물이 여전히 아름다웠던 섬에 흉측하게 남아 있고 버려진 도시는 섬에 쓸쓸함을 더한다.
하지만 변화도 있다.
새가 있다.
한때 한 마리의 새도 남기지 않았다고 전하던 그 죽음의 섬에 어디선가 새들이 날아들었고 우리의 날개 옆에서, 혹은 아래서 자유롭게 창공을 누비고 있다.
그 아래 펼쳐진 대지를 본다.
섬 전체에 서려 있던 불길한 회백색의 색채가 걷히고 그 빈자리를 우리에게 친숙한 지구의 색채가 다시 채우고 있다.
한라산 아래 불길하게 서린 안개도 걷히고 일렁거리는 균열의 흔적도 말끔하게 사라졌다.
강한민이 해냈다.
그는 기어코 균열을 닫았고 제주에서 몬스터를 몰아냈다.
물론 그 과정 중에 어마어마한 희생이 있었던 건 사실이다.
이 섬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강제로 배를 타고 본토로 끌려가고 있는 것도 사실이고 사람이 떠난 섬엔 어웨이큰 적성만을 가진 아이들이 다음 세대를 위한 전사로 키워지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
우민희의 아이는 그러한 시설에 있다고 한다.
펑!
먼 곳에서 느닷없는 포성이 터졌다.
조종석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방금 이거 무슨 소립니까?”
여객기와 다르게 군수송기는 조종석과 짐칸 – 화물칸이 개방되어 있다.
40대 중반으로 보이는 조종사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일본 놈들 때려잡는 소립니다.”
“일본?”
부조종사가 몸을 돌리며 조종사를 대신해서 설명했다.
“아실지 모르겠지만 최근 일본이 완벽하게 무너졌어요. 불과 작년 상반기만 하더라도 동아시아에 남은 유일한 정상 국가랍시고 떠들고 다녔지만 사실은 안에서 곪을 대로 곪고 있었고 결국 전면적인 붕괴로 이어진 거죠.”
비행기의 승객은 우리뿐이다.
드넓은 수송기 내부는 텅 비어 있다.
비행 스케쥴 자체가 우리를 내려주고 제주에 쌓인 물자를 다시 실어 본토로 보내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종사가 기수를 틀었다.
기울어진 실내 안에 널브러져 있던 작은 쓰레기가 기체가 쏠리면서 옆으로 날아가는 가운데 우리는 조종사가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한 것을 볼 수 있었다.
군함과 선박이다.
펑! 펑!
대한민국 군함이 발포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봐도 상대방 선박은 전함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평범한 여객선이다.
하지만.
쾅!
무자비한 포격이 일으킨 물기둥 속에서 여객선은 표류하다가 이내 선체에 포탄을 맞고 옆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민간인 탄 배가 아닌가요?”
조종사가 답했다.
“맞습니다. 그런데 자업자득이죠.”
그가 코웃음을 쳤다.
“일본 놈들도 몇 년 전에 부산과 목포에서 일본으로 넘어가려던 사람들 물고기 밥으로 만들었으니까요.”
들은 적이 있는 이야기다.
내가 궁금한 건 다른 사안, 외교적인 문제다.
“일본 정부는 가만히 있습니까?”
조종사가 크게 웃었다.
“괜찮아요. 아무 문제 없어요.”
“왜 그런가요?”
어떻게 그렇게 확답을 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일말의 의문도 담기지 않은 어조로 조종사가 웃음기가 남은 목소리로 말했다.
“쟤들은 비국민이니까요.”
비국민.
국민이 아니라는 소린가.
“아름다운 나라, 일본을 제 발로 떠난 놈인데. 비국민 아니겠습니까?”
무심한 포성 속에서 우리는 활주로로 진입했다.
실시간으로 살육이 벌어지는 가운데 대한민국에 남은 유일한 낙원에 다시 찾아온 기분은 한마디로 정의내릴 수 없었다.
“박규 헌터님. 그리고 우민희 소장님.”
확실히 제주에서 사람은 모두 빼내고 있는 건 사실이었다.
공항조차 최소한의 인력만을 두고 있었다.
드넓은 공항 로비를 오가는 것들의 태반은 로봇이었다.
“에덴에 가시는 거죠?”
우리를 맞이한 여직원이 우소장에게 정중하게 물었다.
우민희는 얕은 한숨을 내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먼저 발걸음을 옮긴 후 여직원에게 물었다.
“실례지만 에덴이 뭐죠?”
대충 무엇인지는 짐작이 간다.
확실히 하고 싶다.
어림짐작으로 놔둔 채 넘어가고 싶지 않다는 게 내 성격이다.
그녀는 내 물음이 이해가 안 가는지 잠시 기계적으로 웃는 얼굴로 날 빤히 쳐다보더니 이윽고 머리가 돌았는지 미소의 농도를 진하게 높이며 대답했다.
“아이들이 있는 곳이에요.”
그녀가 명함을 내밀었다.
김유람이라는 이름 위에 기관이 명칭이 적혀 있었다.
[ Elemantary Defence school of Exceptional Nation ]아마 이 복잡한 영어의 약어로 보인다.
앞서가던 우민희가 차갑게 한마디 했다.
“엉터리로 끼워서 맞춘 이름이야.”
어떤 의도로 만든 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관이 약칭이 에덴이라는 건 명확한 사실로 보인다.
시설의 이름이 “에덴”이라는 건 여러 가지로 생각할 거리를 던진다.
“······.”
특히 강한민이라는 영원히 닿을 수 없을 것 같은 녀석과 연결되어서 말이다.
제주로 향하는 수송기에 올라타기 전, 내 나름의 루트를 통해 현재 내 주변에서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간략하게나마 조사했다.
강한민과 우민희 사이에 접촉이 있었던 건 명백한 사실이다.
그 둘이 어떤 지점에 합의를 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들 사이에 모종의 거래가 있었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보를 제공한 건 나의 오랜 인터넷 친구 디펜더 남매였다.
*
디펜더 남매와는 늦어도 보름에 한 번 정도는 실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식사 자리를 가지고 있다.
아무리 절친한 인터넷 친구라고 하지만 마음이 멀어지면 거리도 멀어지는 법, 이런 식으로라도 자리를 가져주는 게 어렵사리 마련한 관계를 길게 유지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인간관계도 유지보수가 필요하다.
폭스게임이 한 말 중 유일하게 와닿는 말이다.
정작 본인은 그 유지보수를 제대로 안 해서 남아난 사람이 하나도 없지만 어떤 의미로 폭스게임이라는 모순적인 인물의 특징을 여실히 드러내는 것 같아 적절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몬스터의 위협에서 해방되고 주변 상황이 안정됨에 따라 새로운 서울에서 생산하는 물자는 안정적으로 증가했고 그 결과 다방면에서 생활 수준이 나아졌다.
디펜더가 팀장으로 있는 “팀 디펜더”는 그 임무 특성상 다른 전투 조직보다 좋은 대접을 받는다.
광신도 사냥이라는 건 중국 공산당의 가장 열렬한 당원도 손사래를 치며 빠져나오려고 발버둥 친 일이다.
위험한 건 둘째 치고 신념과 양심의 경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일을 누가 하고 싶을까.
그런데 더러운 일을 한다는 건 그만큼 많은 기회나 재화를 얻는 걸 말한다.
“제주 쪽. 위원회라고 하나. 거기 위원 애들 몇 명이 우리와 친해지고 싶어 해.”
귀하디귀한 전쟁 전 생산 탄산 음료를 손에 든 채 홍다정이 입을 열었다.
그녀가 코웃음을 쳤다.
“더러운 일을 해줄 손이 필요한 모양이지.”
확실히 다정이는 통찰력이 있다.
디펜더도 나름의 통찰력이 있지만 그녀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졌고 또 여성 특유의 직감이 있다.
“지금은 선거한답시고 시선을 돌리고 있지만 그게 얼마나 가겠어? 조만간 또 자기들 마음대로 하겠지. 예전에 서울 말아먹은 것처럼 말이야.”
확실히 현재 디펜더, 아니 그의 집단은 사실상 국가가 용인한 테러 단체다.
대한민국 해방 당시 횡행하던 백색 테러 단체의 연장선이라고 할까.
공산당보다는 광신도가 더 쉽고 설명이 필요없는 적이라는 점에서 그들은 백색 테러 단체보다 우월한 입지를 가진다.
하지만 그러한 테러 단체의 결말은 대체로 배드 엔딩이다.
홍다정의 손에 들린 콜라 캔을 보며 입을 열었다.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는 게 좋지 않을까?”
“주는 건 거절하지 않으려고. 하지만 너무 친해지지도 않을 거야.”
홍다정이 디펜더를 보자 디펜더가 고개를 끄덕였다.
“내 동생 말 들으려고.”
“잘 생각했다.”
디펜더가 주위를 둘러보았다.
홍다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어떤 기계 장치를 꺼내 주위를 휘저었다.
아마 도청 장비 감지 장비로 보인다.
홍다정이 너스레를 떨었다.
“최근 우리도 조직이 커지다 보니 말이야. 예전처럼 모두를 신뢰할 순 없거든. 되도록이면 의심은 안 하려고 하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도 없잖아?”
잠시 이어진 침묵 속에서 디펜더가 비로소 입을 열었다.
“우소장 말이야. 강한민을 찾아갔다는 이야기가 있어. 확실한 소스야. 우리에게 친한 척을 하려는 인간이 직접 한 이야기니.”
“그게 누구지?”
“말해줘도 모를 거야. 위원회 중에서 이름이 공개되지 않는 멤버 중 하나거든.”
“히든 클래스.”
홍다정이 덧붙였다.
“히든 클래스?”
“자기들끼리 그렇게 부른다고 하더라고. 위원회 중에서 이름 석자 알려진 놈은 쩌리고 알려지지 않은 놈이 진짜라고.”
“그래도 그 이름 석자 듣고 싶긴 하네.”
디펜더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대답했다.
“김소욱. 직함은 없어. 위원회 명단에도 없을 거야. 하지만 엄연한 위원회의 실세지.”
“그래?”
들어본 적이 있는 이름이다.
그래, 필크럼을 혹사시킨, 그 잡웨이큰 애송이 중 하나와 이름이 같다.
동명이인일 가능성도 있겠지만 일단은 그 이름 석자만 다시 복기하는 걸로 만족하는 게 좋겠지.
“잘은 모르겠지만 우소장과 강한민은 정말로 사이가 안 좋다고 하더라고. 우소장이 본토에 남은 가장 큰 이유가 강한민이 제주에 있기 때문이라고. 그런데 그 여자가 강한민을 찾아갔어. 히스토리를 아는 김소욱은 신이 나서 떠들 수밖에.”
디펜더가 아는 건 거기까지다.
아무리 그가 떠오르는 어용 폭력 단체의 수장이라고 하더라도 정부 최고위층 간의 대화 내용을 알 방법은 없다.
중요한 건 하나다.
우민희가 직접 강한민을 찾아갔다는 것.
그것은 아마도 우민희가 강한민에게 일련의 부탁을 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어쩌면 우리를 태운 이 비행기도 그러한 부탁의 결과일지도 모를 일이겠지.
이제 부탁의 결말을 눈으로 확인할 때가 왔다.
여전히 우민희의 “의도”는 알 수 없고 강한민의 “계획” 또한 오리무중이다.
하지만 그간 잠깐이나마 우민희와 같은 시간을 보냈기에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민희는 뭔가를 결심한 것 같다.
그런 느낌을 도처에서 풍기고 있다.
폐허의 아파트를 찾은 것도 어쩌면 그 결심의 일환인지도 모른다.
무엇이 그녀를 움직였는지는 알 수 없겠지만 이미 차는 시설로 진입하고 있었다.
“여기가 에덴입니다. 극소수만이 아는 극비 시설이지요.”
비밀 시설이라고 해서 전부 다 지하 깊숙한 곳에 하이테크 장비로 범벅이 된 비밀 기지에 있는 건 아니다.
에덴이 자리 잡은 곳은 한때 수많은 선택받은 시민으로 북적거렸을 시가지다.
내가 살던 곳과는 다른 구역이지만 아마 가까이 있었을.
곳곳에 걸린 빛바랜 간판들만 봐도 알 수 있다.
[ 용길 PC 방 ] [ 제주 원조 흑돼지구이 ] [ 놀이방 칡 ]이러한 시설들은 이제는 운영되지 않는다.
“여기가 에덴입니다.”
대한민국의 미래세대를 위한 전사들의 양성소는 옛날 학교로 쓰던 낡아가는 건물에 자리 잡고 있었다.
보안 시설답게 총기를 든 병사들이 삼엄한 경계를 펼치고 있었고 곳곳에 본격적인 보안 장비 및 무인 살상 장비가 설치된 것이 보인다.
살얼음을 걷는 듯한 분위기 속에서 우리는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 E.D.E.N ]제법 멋들어지게 쓴 간판이 우리를 반긴다.
그 너머에서 우리를 맞이하는 건 아이들의 웃음소리였다.
우민희의 얼굴을 보았다.
굳어 있는 무표정.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복도 너머엔 커다란 창이 나 있고 그 안에 여러 아이들이 교사들의 지도를 받으며 활달하게 놀고 있었다.
“자, 그럼 이젠 뭘 해야 할까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사람, 손 들어 주실래요~?”
“저요!”
“저요~!”
“나! 나!”
그렇게 여러 개의 반으로 나뉜 방들을 보았다.
교육시설이라기보다는 어린이집에 가까운 풍경.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국가가 관리하는 어린이 위탁시설로 밖에는 보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평범한 사람도 의아함을 느낄 구석이 이곳에 있다.
아마 그 사람은 나와 같은 질문을 던졌을 것이다.
“왜 여자애들밖에 없지?”
우민희가 냉소를 머금은 채 날 보았다.
“알면서 왜 물어? 선배도 알잖아. 그 정도는. 응? 선배가 가지고 온 자료에 나와 있잖아?”
역시.
그런 건가.
여기에 있는 아이들.
전부 어웨이큰의 자식이라는 건가.
겉보기에 지능의 저하나 기타 기형의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그런 아이들은 이미 걸러졌거나 아니면 부모 중 하나만 어웨이큰이거나.
“······이 시설이 만들어진 지 얼마나 됐지?”
우민희가 답했다.
“5년 전.”
“전쟁이 시작 되는 시점이네?”
“그 이후일 거야. 계획이 잡힌 건.”
고개를 끄덕였다.
당시만 하더라도 어웨이큰만이 균열에 대항할 유일한 해답으로 여겨졌었다.
이런 식의 국가 단위로 운영하는 어웨이큰 유소년 양성시설을 만드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흐름이겠지.
그런데 아이들을 보면서 느낀 또 하나의 의문이 있다.
뭐라고 해야 하나.
전부 다 같은 생김새는 아니지만 다 닮아있다.
그중 몇 명은 내가 아는 한 사내를 빼다 박은 것처럼 닮아 있기까지 했다.
날 관찰하던 우민희는 그런 내 의문을 알아차린 모양인지 코웃음을 치며 갈고리로 이루어진 손가락을 오므랐다 폈다.
“눈치챈 모양이네. 선배.”
그녀가 의외라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사람을 잘 관찰하지 않는 성격으로 아는데.”
“방공호에 살다 보면 싫어도 그런 취미를 가지게 되지.”
“그래.”
그녀가 돌아섰다.
어째서인지 그 모습은 평소에 느낄 수 없었던 쓸쓸함을 축 늘어뜨린 어깨에 품고 있었다.
뒷짐을 진 채 그녀가 천천히 걸었다.
소리가 나지 않도록 의족을 감싸고 있는 천 조각이 문득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엄마는 엄마라는 건가.
미소를 머금을 분위기는 아니지만 작은 미소가 입가에 깃드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우민희가 말했다.
“여기 있는 아이들. 다 같은 아빠를 두고 있어.”
“······누구지?”
“선배가 예상하는, 아니 이미 알고 있을 사람.”
강한민.
그 녀석의 아이들인가.
그가 말한 아담과 이브라는 건 이걸 의미하는 건가.
아닐 것이다.
분명 비슷한 테마다.
구상이다. 유추 가능성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것은 그가 말한 아담과 이브는 아닐 것이다.
일차원적이고 저열한 발상이고 무엇보다 이 방식으로는 균열과 몬스터를 이겨낼 수 없다.
그는 다른 것을 보고 있다.
아직 내가 보지 못한.
[ 5H-032 ]소용돌이치는 생각 속에서 그녀가 한 교실 앞에 멈춰 섰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투명한 눈으로 유리창 너머의 아이를 주시했다.
비슷하게 생긴 아이들 가운데 유독 달라 보이는 아이가 하나 있었다.
허무한 눈으로 그 아이를 보며 우민희가 말했다.
“단 하나를 제외하고.”
그 소녀가 우리의 시선을 느꼈는지 이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소름 같은 것이 등줄기를 타고 올랐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우리를 바라보는 아이는 오싹할 정도로 우민희와 닮아 있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