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화(1/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1편
(핵가족의 아포칼립스 (1))
여느 때와 다름없던 2023년의 봄.
우리 가족에게 핵 공격이 날아들었다.
콰앙!
진짜 핵이 터진 건 아니다.
단지 우리 김씨 일가가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을 뿐.
시작은 첫째 형의 결혼이었다.
이어서 두 명의 누나, 김씨 시스터즈 또한 독립을 선언했고, 이에 질세라 부모님까지 본가를 돌연 의정부로 옮겨버렸다.
마지막으로, 갓 전역을 하고 돌아온 나는···
“···진짜 너무한 거 아니냐고.”
학교 앞, 텅 빈 오피스텔로 홀로 떨궈졌다.
북적거리던 2남 2녀의 다복한 가정은 그렇게 원심분리가 되었다.
“···외롭네.”
그때 느꼈다.
핵가족 시대를 받아들이기엔, 나는 너무 구시대적인 인간이었다는 걸.
하지만 그때만 해도 괜찮았다.
완전히 새로운 시대를 맞이해야 할 줄은 미처 몰랐으니까.
***
복학까지 남은 시간은 넉 달.
물류센터 택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가장 큰 이유는 용돈벌이였지만, 내심 사람 냄새도 좀 맡았으면 했다.
텅 빈 자취방은 아무래도 적응이 되질 않았으니.
하지만 이곳조차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고 있었다.
“사람이··· 없네···”
사람이 나르는 택배는 끝났다.
바야흐로 지금은 물류 혁신 시대.
위잉- 위잉-
내 눈앞에는 백 개가 넘는 선반들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정체는 빌어먹을 ‘자동화 시스템’.
그렇다.
내가 들어온 곳은 평범한 물류센터가 아니었다.
이곳의 이름은 팍스 풀필먼트 센터(PAX Fulfillment Center)
줄여서, 팍스 FC라 불렸다.
포장된 소포를 받고, 또 전달하는 기존의 물류센터와 달리, 이곳 팍스 FC에는 온갖 물건들이 이미 진열되어 있었다.
간단하게는 식료품부터 어린이 장난감, 사무용품, 심지어는 건축 자재까지.
주문이 들어오면 AGV(Automated Guided Vehicle) 로봇이 알아서 물건을 가져다주었고, 나는 준비된 박스에 넣어 포장하기만 하면 됐다.
-김 씨! 간다, 받아!
-하나둘!
이런 소리는 더 이상 들어볼 수 없다.
탑처럼 쌓인 택배 상자도, 핏줄 돋은 근육의 씰룩거림도 마찬가지다.
땀내 나는 사나이들의 물류센터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것이다.
띡- 띡-
AGV가 가져온 참치캔의 바코드를 찍으며, 나는 속 편히 투덜거렸다.
“정 없다, 정 없어.”
띠링!
[등록되지 않은 상품입니다]“당연히 그러시겠지, 이 놈 시끼야.”
내 유일한 말 상대는 센터에 탑재된 AI, 팍스(PAX)였다.
주문 접수부터 재고 계산, 심지어는 무게 측정을 통한 검수까지.
이놈이 관여하지 않는 게 없었다.
알파고 보다 몇 세대 발전된 AI라나 뭐라나.
물론, 그래도 완벽한 건 아니었다.
“김정겸 님.”
누군가가 나를 불렀다.
사막에 뜬 신기루처럼, 저 멀리서 한 남자가 걸어왔다.
내가 대답했다.
“아, 네. 신 과장님.”
“참치캔 재고가 없는데 팍스한테서는 자꾸 남아 있다고 떠서요. 재고 넣는 쪽 가서 확인 한번 해주실래요?”
“아··· 네네. 지금 하고 있던 건 어떻게 할까요?”
“내가 일단 잡고 있을 테니 다녀와요. 재고 입력된 건데도 빠져있는 거 아닌지 잘 좀 봐줘요.”
“알겠습니다.”
더 이상의 대화는 없었다.
우리는 철저한 비지니스 관계였으니까.
신 과장은 말없이 바코드 스캐너를 잡았고, 나는 창고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윽고 도착한 창고는 어두운 그늘에 가려져 있었다.
조립식 판넬 문짝을 열어젖혔다.
“어디 보자···”
창고에는 포장된 생수통 몇 개와 이런저런 잡화가 담긴 상자들이 곳곳에 널려 있었다.
몇 개를 헤집다 보니, 오래지 않아 문제의 참치캔 박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웃차.”
그렇게 박스를 들고 돌아가려던 찰나,
휘이이이-!
거센 바람이 불었다.
그러더니,
콰앙!
바람과 함께 판넬 문이 거세게 닫혔다.
참치캔을 내려놓고 문고리를 잡아보았으나,
철컥.
“미친?”
열리지 않았다.
뚜르르···
스마트폰을 꺼내 신 과장에게 전화를 걸어 봤지만, 그 역시 받지 않았다.
나는 망연히 구석에 걸터앉았다.
적막에 싸인 창고.
한창 일하다 온 참이라 그런지, 멈춰 있는 창고의 풍경이 꽤 새삼스러웠다.
119에 신고라도 해야 하나?
“에이, 안 오면 신 과장이 찾으러 오겠지.”
본의치 않은 사고다.
문은 열리지 않고, 신 과장도 전화를 받지 않으니 별수 있겠나.
덕분에 20분은 느긋하게 쉬다 들어갈 수 있겠다.
형광등 불빛 아래, 돌처럼 굳은 상자들이 스산했다.
스마트폰을 꺼내 서울에 있는 작은 누나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김정겸 : 사진>
<김정겸 : 창고에 갇힘>
<김정겸 : 관리자 기다리는 중>
금세 답장이 돌아왔다.
<김씨스터2 : ㅋㅋㅋㅋㅋㅋ>
<김씨스터2 : 알바한다는 게 방 탈출이었냐>
소소하게 진행되던 대화였지만,
<김씨스터2 : 야 너 빨리 나와>
<김씨스터2 : 지금 밖에>
<김정겸 : 왜?>
돌연, 분위기가 변했다.
뚜르르르르-
작은 누나로부터 전화가 걸려 왔지만,
< ☎ 김씨스터2호 ☎ >
뚝.
내가 받기도 전에 끊어져 버렸다.
뚜우- 뚜우-
다시 걸어도 신호가 가질 않았다.
“···뭐야?”
그때,
콰아아앙!
폭음이 들렸다.
아예 지면이 부르르 떨리는 수준이었다.
탁!
창고를 비추던 형광등이 꺼졌고, 붉은 적외선 비상등이 들어왔다.
빨간 조명으로 물든 창고 속.
불안감이 엄습했다.
“···?”
위잉! 위잉!
따르르르르르릉!
사이렌 경보가 울렸다.
안전 교육 때 외에는 들어본 적 없는 소리.
앞서 있었던 폭음 탓인지 그 소리가 유난히 불길하게 들렸다.
벽면에 붙은 스피커에서도 불이 들어왔다.
-전 직원, 지금 당장 하역장으로 대피하세요! 다시 한번 전달합니다. 전 직원 지금 당장 하역장으로···!
몸을 벌떡 일으켰지만,
“젠장.”
철컥!
다시 잡은 문고리는 여전히 요지부동이었다.
쾅쾅쾅쾅!
“여기 사람 있어요!”
두드리고, 발로 차보기도 했지만, 별거 아니라 여긴 판넬문은 상상 이상으로 단단했다.
이미 대피를 마친 것인지, 아무리 목청을 틔워봐도 누구도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119··· 119···”
다급히 전화를 걸었지만.
뚜- 뚜-
걸리지 않았다.
통화권 이탈을 나타내는 표시가 휴대폰 상단에 떠올라 있을 뿐.
“전쟁이라도 난 거야 뭐야···”
그렇게 발을 동동 구르던 찰나.
드디어 문으로부터 기별이 있었다.
쾅! 탕! 텅!
“······?”
도무지 사람의 손으로 두드리는 소리라고 볼 수 없는 묵직한 소리.
그 충격을 증명하듯 판넬 문짝이 안쪽으로 움푹 들어와 있었다.
‘···사람이 아니다.’
위험을 감지하자, 몸이 우뚝 굳어버렸다.
숨마저 죽여가며 가까스로 존재감을 지워내자,
크르르···
짐승 같은 으르렁 소리와 함께,
터벅··· 터벅···
놈의 발걸음 소리가 차츰 문에서 멀어졌다.
털썩.
긴장이 풀리자마자 쓰러지듯 주저앉아버렸다.
“어떡하냐···”
아무 방법도 없었다.
그저 가만히 있는 것밖에는.
***
“······”
그렇게 3일이 지났다.
먼지 쌓인 창고 속.
바닥을 나뒹구는 생수통들.
허기를 참지 못해 열어젖힌 참치캔 여덟 개가 비린내를 풍겨올 때쯤.
한 가지 변화가 찾아왔다.
[당신은 선택받았습니다] [각성한 능력을 확인하세요]만화나 소설에서나 봤음직한 푸른 창이 내게 나타났다.
그 안에는 내가 얻게 된 초능력에 대한 설명이 쓰여 있었다.
[나만의 아공간]레벨: 1
내용: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아공간에 담을 수 있습니다.
아공간.
소설에서 본 적이 있었다.
어떤 물건이든 원하는 대로 넣었다 뺐다 할 수 있는 가상의 공간.
저 빌어먹을 판넬 문도 아공간에 넣어버리고, 이따금 지나다니며 그르릉 소리를 내는 저 괴물 놈도 넣어버리면 모든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닐까?
하지만 그리 호락호락한 문제가 아니었다.
[저장 가능 횟수 : 1]딱 하나.
열하나도 아니고, 두 개도 아닌,
딱 하나의 사물만 아공간에 담을 수 있었다.
저 빌어먹을 문을 넣어버릴까?
그러자니 곧 다가올 괴물에게 목이 뜯길 것 같았고, 괴물을 담자니 애당초 탈출 자체가 불가능했다.
“다른 쓸만한 물건은···”
창고에 있는 모든 상자를 열어봤지만, 나오는 것이라곤 참치캔, 생수, 운동화, 여름우비, USB 메모리가 전부였다.
이딴 건 담아봤자 아무 쓸모가 없었다.
손바닥만 한 상자를 흔들었다.
속에 담긴 USB 메모리가 덜컹거렸다.
그러던 중,
“···잠깐.”
한 가지 생각에 다다랐다.
아공간 능력으로 담을 수 있는 대상은 단 하나뿐이다.
하지만 이 상자를 담는다면 그 안에 담긴 USB 메모리도 함께 담길 터였다.
안에 다른 사물이 들어있기는 하지만, 상자 자체는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여기 물류창고를 통째로 넣어버리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바로 이곳, 팍스 FC 센터.
지상 5층으로 지어진 이 물류센터는 공교롭게도 박스 같은 육면체의 형태였다.
“시험해볼 여지는 충분해.”
띠링!
[저장할 대상을 입력해주세요]떠오르는 메시지에 이곳 팍스 풀필먼트 센터를 상상했다.
기우와 달리···
[대상이 지정되었습니다. 저장하시겠습니까?]메시지는 긍정적이었다.
곧장 대답을 보냈다.
‘예.’
[저장을 시작합니다]“욱!”
속이 메스꺼웠다.
뒤집힐 듯 울렁거림이 찾아들었고, 머리가 팽하고 도는 바람에 다리를 휘청거렸다.
그렇게, 고통스런 감각이 차츰 사라질 때쯤.
“와······”
나는 감탄했다.
이곳 물류단지에는 A동부터 F동까지, 총 여섯 개의 물류센터가 나란히 위치해 있다.
그 중, 팍스 풀필먼트 센터가 사용하는 건물은 C동.
주변으로 고개를 돌리니 왼쪽으로 B동, 오른쪽으로는 D동이 눈에 들어왔다.
하지만 정작 팍스 FC가 위치해 있던 C동 자리에는···
“···아무것도 없잖아?”
벌판 위에 나 혼자 덩그러니 놓여져 있을 뿐이었다.
건물이 사라졌다.
정말로 내 아공간에 물류센터를 넣어버린 것이다.
띠링!
[저장을 완료했습니다.] [저장된 대상에서 시스템 작동에 적합한 운영체제를 발견했습니다.] [운영체제를 업데이트합니다.] [업데이트 진행률 6%···]드디어 밖으로 빠져나왔다.
헌데, 바깥 사정 또한 그리 좋아 보이질 않았다.
“상태가 왜들이래···?”
배송차량들은 하나같이 어딘가 찌그러져 있었고, 심지어 몇 개는 완파되어 도로 한복판을 나뒹굴고 있었다.
B동 D동에도 파괴의 흔적이 역력했다.
그을린 자국과 함께, 곳곳에 유리창이 박살 나 있었다.
당연한 말이지만 인적은 없었다.
한바탕 재앙이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하지만 아니었다.
재앙은 현재진행형이었으니까.
쿵. 쿵.
팍스 풀필먼트 센터가 사라진 공터의 반대쪽 끝.
무거운 발걸음이 지축을 흔들었다.
“저건··· 오크?”
2미터가량의 거대한 몸집.
양옆으로 거칠게 삐져나온 이빨.
판타지 영화에서나 보던 녹색 거인은 어째서인지 나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지난 3일 내내, 문 앞을 서성이던 녀석이 분명했다.
“젠장!”
살아야 한다.
나는 서둘러 반대 방향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녀석이 울부짖었다.
크와아아아!
내 돌발행동이 녀석의 심기를 자극한 모양이었다.
놈이 대뜸 나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으아아아!”
미친듯이 뛰었다.
분명 전속력으로 뛰고 있음에도, 등 뒤의 오크는 점차 가까워지기만 했다.
“제발··· 제발!”
도망친다 한들 희망이 있을까?
확신은 없었지만, 무작정 발을 내디뎠다.
크와악!
그렇게, 오크의 성난 울음소리가 지척에서 들려올 때쯤.
띠링!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시스템이 복구되어 아공간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메시지가 떠올랐다.
[진입하시겠습니까?]나는 미친듯이 ‘예’라고 외쳤고···
푸른색 포탈이 나를 감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