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0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00화(100/240)
100화 공동 묘지의 공집합 (2)
운양의 말처럼, 청심단의 효력은 확실했다.
물에 젖은 듯, 무겁기만 했던 팍스맨들의 몸짓.
그들에게 산처럼 쌓인 청심단을 제공했고, 사탕 먹듯 볼때기를 부풀린 모두가 신들린 듯한 움직임을 보여주었다.
슈우우욱!
타아악!
나름 상호작용까지 주고받을 수 있는 아공간 <실험실>.
팍스맨들의 공격을 허용한 흑마법사가 신음을 흘리며 풀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자, 잡았다!”
<합동 검무>가 자아내는 춤사위.
기사들이 알려준 동작 하나하나가 환각을 걷어내기 위한 계단이었고, 모든 퍼즐이 사다리처럼 이어진 결과, 홀로그램으로 재현된 가츠의 흑마법을 파훼할 수 있었다.
요컨대, 수십 번의 합공이 이뤄낸 쾌거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아직 한 가지 준비할 것이 남아있었다.
란슬롯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이제 모두들 오러만 개화하면 되겠군요.”
검무를 통해, 흑마법을 벗어난 팍스맨들.
하지만 그 곁에서는 기사들이 ‘오러’를 피워올리고 있었다.
비록 검무에는 참여하지 않았지만, 사실상 밥을 숟가락으로 떠먹여 줬다 볼 수 있는 상황.
오러는 흑마법사들의 숨은 ‘선’과 ‘매듭’을 드러내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였다.
하지만 기사들을 제외한 일행 중 오러를 피워낼 수 있는 사람은 아직 천외천 김솔밖에 없었다.
다행히, 우리 팍스FC의 임직원들에게는 강해지고자 하는 열의가 충만한 상태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병상에 누워있던 민우.
녀석이 내게 말했다.
“두 번 다시는 그딴 꼴 겪고 싶지 않다. 나중엔 다들 망치로 후두려 팼다며? 두고 봐. 나도 아주······.”
민우는 가고일에게 부상을 입었던 인천에서의 사건을 떠올리고 있었다.
자그마치 7위계의 척력을 두르고 있던 가고일이다.
차후 성기사들이 신성력이 깃든 워해머로 대처했던 걸 떠올려 본다면, 민우의 패배는 십분 이해할 만한 일이었지만, 녀석은 그 날의 굴욕을 가슴 깊이 새기고 있었다.
나는 민우의 어깨를 두드려주었고, 다음 순서로 넘어갔다.
세브란스를 비롯한 강남의 병원 세력들을 이끄는 송현구.
그가 다음 면담 상대였다.
“더 강해질 기회라면 언제든 달려오겠습니다. 이번에도 제대로 배워서 병원 식구들에게도 전해줄 생각이에요.”
“오······ 그것참 좋은 생각입니다. 병원 쪽에는 유달리 강화계 각성자들이 많기도 하니까요.”
지금까지의 상황을 미루어볼 때, 각성 능력은 묘하게 주변 환경과 영향을 주고받는 경향이 있었다.
내가 물류센터에서 물류센터 능력을 각성하고, 택배기사 이용수가 운전 능력을 각성하고, 공돌이 제임스가 메카닉 능력을, 중국 전통의 무술학파 일원들은 무림계 능력을 각성한 상황.
비슷한 맥락이라 해야 할지, 체육센터나 병원에서는 근력이나 순발력, 유연성과 관련한 신체 능력을 각성한 강화계열 각성자들이 많이 생겨나곤 했으니까.
심지어는 팔이나 다리에 장애를 가진 사람이 각성 능력을 얻어 되레 초월적인 신체를 얻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매번 고맙습니다. 현구 씨. 이제 강남만 떠올리면 마음이 참 든든해요.”
“뭘요, 정겸 씨. 아직 보답하려면 멀었습니다. 진성학 패거리에 휘둘리던 때를 생각하면······ 이번 싸움도 전심을 다해 돕겠습니다.”
송현구와 훈훈한 덕담을 나누며, 함께 전의를 다졌다.
마지막으로 이어진 천무지체 김솔과의 면담은······.
“······뭐 어쩌라고?”
“그러시겠지.”
일상적인 남매간의 대화로 가볍게 마무리 지었다.
.
.
.
더 강해지기 위해 ‘오러’를 개화하겠다 다짐한 팍스FC의 일원들.
당연한 말이지만, 오러를 개화하는 것은 그리 만만한 과정이 아니었다.
더더욱이······.
“아니, 김 소저······! 대체 이 불순한 기운을 뭐란 말입니까?”
“왜요?”
이렇게 사공이 많은 경우에는.
김솔을 보며 까무러치는 운양.
그녀의 손에는 기사들로부터 훈련받은 ‘오러’가 푸르스름하게 서려 있었다.
‘오러 소드’와는 또 다른, ‘오러 주먹’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무림인들은 도무지 그 기운에 적응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비워내고 다듬는 것이 아닌, 채워내고 덜어내는 힘이군요. 물론 음양의 조화를 완전히 잃어버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불순물을 포함할 수밖에 없는 구조적인 형태······.”
운양이 무림 버전의 전문용어를 줄줄 늘어놓았다.
바르나울의 환각을 제거하기 위해, 무림인들 또한 기사들의 검무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었지만, 아무래도 그 내력을 쌓는 과정이 달라도 많이 다른 모양이었다.
더욱이 그럴 필요도 없었다.
화아아악!
운양이 불어넣은 검기.
‘오러’가 아닌 ‘검기’였음에도, 흑마법사들의 동선을 추적하는 것이 가능했으니까.
하지만 무림인 중에서 검기를 다룰 수 있는 사람은 고작 대여섯 명에 불과했기에, 사실 도긴개긴 더 나아질 것이 없었다.
‘오러’인가, ‘검기’인가?
양자택일의 혼선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운기조식이 아니라, 마나연공을······.”
란슬롯을 비롯한 카멜롯의 기사들이 담배 연기처럼 떠다니며 중얼거렸고······.
“심장이 아니라, 여기! 여기 단전에 내력을 쌓아야······!”
운양을 비롯한 무림인들이 배꼽 아래를 팡팡 두드렸다.
한편, 팍스만들은 혼란에 빠졌다.
기사들을 따라 소드 마스터의 길을 밟을 것인가?
아니면 무림인들의 꿈을 따라, 절정, 초절정을 넘어선 생사경의 고수가 될 것인가?
모두가 진로 선택을 앞둔 원서철 수험생들처럼 게다리 스텝을 밟았고, ‘강함’을 둘러싼 두 가지 길이 바르나울이라는 거대한 적을 앞두고 충돌하고 있었다.
“그냥 둘 다 하면 되는 거 아냐?”
김솔이 코를 후비적거리며 나름 대안을 제시하기는 했으나, 심장에 마나를 쌓는 동시에 단전으로 내공을 운용하는 미친 작업이 가능할 리 없었다.
결국, 양자택일의 구렁텅이에서 우리를 구해준 것은······.
“······그냥 다들 잘하는 걸로 하세요.”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를 수밖에 없다는 만고불변의 진리였다.
사실 기사들은 물론, 무림인들 또한 사람들의 재능을 판가름할 만한 나름의 기준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기사들은 물체에 마력을 부과하는 마나 운용능력을 통해, 무림인들은 맥박을 통해 전해지는 혈맥과 기의 순환을 통해 사람들의 재능을 판가름하기 시작했다.
“소드 마스터가 될 상이요!”
“비와 위장이 실한 것을 보니······ 영락없는 소양인이군요. 우리와 함께 가야겠습니다.”
란슬롯과 운양은 각각 ‘그리핀도르’와 ‘슬리데린’을 외치는 마법 모자처럼 목청을 드높이며 백여명의 팍스맨 사이를 종횡무진했다.
대게 열에 아홉은 마나와 내공 중 하나에 치우진 재능을 가지고 있었고, 덕분에 오래 지나지 않아 백여명에 달하는 팍스맨들이 모두 저마다의 재능을 기준으로 일목요연하게 분류되었다.
물론······ 예외가 있긴 했다.
“봐라! 이게 바로 듀얼 코어다!”
“오오······!”
마나연공과 운기조식.
두 가지를 동시에 진행하는 기행을 벌이며, 김솔이 ‘나는 둘 다 하겠다’ 선언했고, 검사 클래스 각성자인 동시에, 운양의 수제자이기도 했던 민우가 같은 전철을 밟았다.
물론······.
“나도 해볼게.”
“우우······.”
“······?”
천재와 범재.
서로 다른 두 사람에 대한 반응은 사뭇 다를 수밖에 없었지만.
“······힘내라.”
나는 다시 한번 민우의 어깨를 두드려줄 뿐이었다.
***
마나와 내공.
오러와 검기.
마나연공과 운기조식 등등.
일대일 대응 쌍을 이루는 기사들과 무림인들의 개념이었지만, 적어도 서로 한 가지 개념만큼은 예외적이라 할 수 있었다.
기사들의 훈련을 보며, 무림에서의 ‘진법(陣法)’을 떠올렸던 운양.
하지만 그 차이를 부연하려는 듯, 그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
“진법에는 크게 두 가지 형태가 있습니다. 그 중 첫 번째는 인술진(人術陳)으로, 다수의 사람이 합공을 진행할 때 공유하는 세세한 전투 규칙 같은 거라 볼 수 있죠. 기사분들의 <합동 검무>도 그 영역을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흑마법사들의 환각을 물살처럼 거슬러 올라가는 기사들의 검무.
어쩌면 가볍고 아름다운 춤사위처럼 보일지 모르는 그 율동을 펼치기 위해서는, <검무>에 참여하는 인원들 개개인의 역량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한 사람의 실수만으로도 전체적인 과정이 어그러질 수 있으니까요. 앞 사람이 커다란 붓으로 그려낸 선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대로 이어받아야 하는 게 바로 저 검무입니다. 거기에 흑마법사들의 변주에 그때그때 대응해야 하니, 실로 만만치 않은 작업이기도 하죠. 한편, 두 번째는······.”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실질적으로 흑마법사들과 맞붙게 될, 팍스맨들의 임무였다.
그에 반해, 운양이 내게 전하고자 하는 것은······.
“기문진(奇門陣). 아예 환경을 구성해버리는 방식입니다.”
보다 심화된, 진법의 두 번째 의미였다.
“두 진법은 크게 보자면 사실상 같은 개념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술진 또한 여러 사람의 움직임을 통해 전장에서 모종의 환경을 구성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기문진에서는 사람이 아닌 그 밖의 요소들을 다루기 시작합니다. 결국······.”
“그쪽이 내 역할이겠네요.”
“그렇습니다.”
실상이 그랬다.
<출하> 능력을 통해, 그 누구보다도 강한 화력을 지니고 있는 나.
하지만 다른 각성자들처럼 유려한 칼춤을 출 능력은 가지고 있지 못했으니까.
물류센터의 관점에서 보아도 그렇다.
걷고, 뛰고, 근육을 움직이며 상품을 트럭에 싣고 내리고, 고객에게 택배 상자를 전달하는 팍스맨들.
하지만 내 역할은 그들이 더 빨리 이동할 수 있도록 물류망을 깔아주고, 더 좋은 배송 차량을 제공하는가 하면, 다수의 배송지를 연결하는 최적의 배송 루트를 설계해주는 등의 환경을 구성하는 일에 가까웠으니까.
신통방통한 기문(奇門)이란 아공간 포탈을 의미하는 것이었고, 팍스맨들로 가득 찬 거대한 진법(陳法)은 수천수만 개의 서로 다른 장소들이 실은 하나로 이어져 있다는, 파렴치하리만치 거대한 유통망으로서의 환상을 부여하는 일이었다.
누군가는 오러를, 또 누군가는 검기를 수련할 테지만······.
‘······나는 아니지.’
내가 다뤄야 할 대상은 여전히 사물, 장소, 그리고 환경에 관한 것이었다.
결국, 팍스맨들의 성장과 더불어 우리가 준비하고자 하는 전략은 간단했다.
“잘됐네요. 마침, 바르나울이 어디로 들어올지도 가늠이 된 상황이니······.”
놈들의 근거지가 될 병마용을 중심으로, 촘촘한 기문진을 펼쳐 놓는 것.
백여명의 팍스맨들, 그리고 수십 명의 무림인이 신명 나게 칼춤을 춰댈 테니, 나도 그에 발맞춰 화끈한 무대를 마련해줘야만 할 터였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 내가, 운양에게 재차 물었다.
“그래서, 어떻게 만들면 됩니까?”
“눈길을 사로잡는 사물을 여럿 설치하는 게 좋습니다. 이정표가 될 것 같은 물건일수록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길을 잃어버리게 만들 수 있거든요. 표지판이라든가, 장승이라든가, 석상이라든가······.”
“오······.”
마침 딱이었다.
아공간 루브르에 널리고 널린 것이 석상이었으니까
하지만 단순히 길을 잃게 만드는 것만으로는 조금 아쉬웠다.
풀썩 땅이 꺼지고, 옆으로 수십 자루의 창대가 날아들고, 머리 위로 도끼자루가 쏟아질 정도는 돼야 비로소 제대로 된 함정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뭐, 어려운 일도 아니지.’
조각상에 이런저런 장치를 가미하는 방법이 떠올랐다.
아공간에 그득그득하게 쌓여있는 다종다양한 마법 스크롤.
제임스의 실력이라면, 입에서 파이어볼을 뱉는 비너스 여신 같은 것도 뚝딱 만들어줄 수 있을 테니까.
“운양, 혹시 이런 것도······.”
곧장 그에게 내 생각을 공유했고, 운양은 흐뭇한 미소와 함께 대답했다.
“가능하다마다요. 그런 걸 일컬어······.”
그러곤 덧붙였다.
“기관진식(機關陣式)이라고 부르죠.”
공동 묘지의 공집합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