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01)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01화(101/240)
101화 공동 묘지의 공집합 (3)
“오케이. 이해했어.”
듬성듬성 그려진, 나의 아이디어 스케치를 받아든 제임스.
그가 흔쾌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오묘한 조화였다.
그리스 조각상들을 이용한 무림식 기문진법.
그 제작자가 미국인 기술자인 꼴이었으니.
비너스상에 강력한 라이트 마법을 심어 두 눈으로 조명을 비추는 경보장치를 만들기로 했고,
제임스 또한 스핑크스 석상에 성창을 발사할 수 있는 자동 발사 장치를 설치하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더욱이, 꼭 모든 함정이 석상으로 이루어질 필요는 없었다.
조각상이나 공예품, 그 밖에 눈에 띄는 지형지물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줄 생각이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진법을 헤매도록 하기 위한 이정표에 불과했으니까.
그밖에 다종다양한 수천 개의 부비트랩이 흑마법사들을 기다리고 있을 터였고, 그 모두가 운양이 말한 ‘기문진식’의 거대한 틀을 이루게 될 참이었다.
“이것저것 좀 많기는 하지만······.”
장치를 만들 수 있는 건, 비단 제임스뿐만이 아니었다.
쿠퍼를 비롯한 제작스 드워프들, 거기에 팍스FC의 훈련 프로그램을 이수한, 신인 기술자들이 손을 거들기로 했다.
“그 안으로 어떻게든 될 거요.”
내가 요구한 시간은 최대 3주였다.
바르나울의 침공이 시작되기까지 남은 시간은 대략 한 달가량.
진법에 완성된 함정들을 설치할 시간 또한 필요할 테니까.
“이제 다음 할 일은······.”
균열이 나타났다던 병마용갱.
그곳을 확인해보는 일이었다.
***
우우우웅.
다시 베이징에 설치된 아공간 포탈을 타고 나왔다.
그러곤 이용수가 모는 수송기를 타고 균열이 발견되었다는 중국 시안의 병마용으로 향했다.
수송기를 이용하니 대략 한두 시간 내로 도착할 수 있는 거리.
제임스가 제작했던 P-22를 타고 갈 수도 있었지만, 시간이 급하지 않은 만큼 비교적 안전한 기체를 타고 가기로 했다.
“꽤 오랜만이네요.”
조종 스틱을 쥔 이용수가 그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근래 줄곧 포탈을 타고 이동해 온 탓에, 운전대를 맡길 일이 좀처럼 없었으니.
물론, 그도 놀고 있는 건 아니었다.
비록 그 수가 많은 건 아니었지만, 운전이나 조작과 관련한 능력을 지닌 각성자들이 꾸준히 팍스FC로 흡수되고 있었고, 그들을 교육하고 훈련하는 일 또한 그의 역할이었으니까.
“택배기사 양성 프로그램이라고나 할까요.”
허허 우스개를 내뱉는 이용수.
실제로 나 또한 폭탄이나 중량 무기를 실은 채 하늘을 누비는 폭격기들을 떠올렸었다.
물류센터의 복제 능력을 사용한다면, 비행기든 폭탄이든 제한 없이 찍어낼 수 있을 테니까.
이용수가 훈련시키고 있는 각성자들 하나하나가 그 파일럿이 될 것이었고, 역사적으로 폭격기가 전쟁의 판도를 뒤집었던 것처럼, 우리 또한 비약적인 속도로 지구를 물들인 침략자들을 지워낼 수 있게 될 터였다.
내가 땅에 설치될 기문진법을 고민하며, 팍스맨들의 전투-물류망을 깔아두고 있는 지금.
이용수는 이미 사방으로 뚫린 물류망을 배경으로, 머지않아 하늘을 누비게 될 폭탄 배달부들을 양성하고 있었다.
어쩌면 이번, 바르나울과의 싸움에서 그들의 첫 ‘항공특송’을 기대해볼 수도 있겠지만······.
“그나저나, 아발론이 문제인데······.”
그와는 별개로, 나는 전혀 다른 종류의 ‘배송’을 두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상공회의소의 통폐합 기능을 이용해, 지구로 아예 끌어당기고자 하는 기사들의 고향.
하지만 바르나울의 은폐 탓에, 통폐합을 위한 정확한 좌표를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니까.
팍스가 바쁘게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지만, 아발론의 위치는 좀처럼 드러나질 않고 있었다.
그때였다.
잠자코 내 고민을 듣고 있던 이용수가, 불현듯 옛날이야기를 꺼내 든 것은.
“정겸 씨, 기억하시겠지만······ 제가 팍스 풀필 옆에 대현택배에서 일을 했었잖아요?”
“네네, 그랬죠.”
“그때 물류센터에서 한 번은 그런 적이 있었어요. 주문이 들어온 것도 확실하고, 자동분류기에서 지나간 기록도 뜨는데, 상하차하려고 보니 아무리 봐도 물건이 없는 거예요. 다들 분류기 시스템에 오류가 났구나 생각했었죠.”
그는 지금의 상황을 자신의 옛 경험을 비추어 보고 있었다.
감쪽같이 사라진 물건이 아발론이라면, 자동분류기에 발생한 오류는 바르나울의 은폐라고 할 수 있었다.
“그때 어떻게 해결했는지 아세요?”
“······어떻게 해결했는데요?”
“완전히 똑같은 주문을 임의로 한 번 더 넣었어요. 빨갛게 표시된 상자가 분류기를 통과해 컨베이어 벨트를 돌았고······. 결국 사라진 상자를 발견했었죠.”
끝끝내 되찾게 된 물건.
하지만, 거기에는 더 핵심적인 의도가 숨겨져 있었다.
“사실, 상품 하나쯤 누락되는 건 아무 상관 없었어요. 그보다는 자동분류기를 고치는 문제가 더 중요했죠. 그래서 정확히 어떻게 오류가 나타나는지 확인해보려고 했던 거고요.”
좋은 결말이었다.
사라진 물건을 찾아낸 것은 물론, 자동분류기의 오류를 고쳐 재발을 방지했으니까.
자신의 경험담을 우화처럼 풀어낸 이용수.
결국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한 달 뒤에 바르나울이 지구로 들어오는 게 분명하다면······ 그 정보를 토대로 놈들이 아발론이 있는 장소를 추적할 수 있지 않을까요?”
숨은 아발론의 위치를 찾아낼 방법이었다.
문제점은 그거였다.
흑마법에 의해 시시각각 좌표가 변하고 있는 아발론.
그 패턴을 파악해야만 아발론의 정확한 위치를 특정할 수 있었으니까.
바르나울이 지구를 아발론과 마찬가지로 식민지로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다면?
만약 놈들이 지구의 좌표에도 동일한 패턴의 흑마법을 동원한다면?
“······확실히, 그 방식이 겹칠 수도 있겠네요.”
망설이지 않고, 곧장 팍스를 불러냈다.
“아발론 아직 못 찾았지?”
[그렇습니다.]“혹시, 지구에 바르나울이 들어오는 시점에 맞춰, 아발론의 위치를 역산할 수 있겠어?”
[조건을 수정합니다.] [가변 규칙에 ‘바르나울의 진입’이라는 상수를 고정값으로 반영됩니다.] [연산 중······.]아무리 고성능 AI라지만, 그런 방법까지는 고려해보지 못한 모양이었다.
지식과는 달리, 지혜는 아직 인간들의 영역이었으니.
새로운 계산에 들어간 팍스가 얼마간 뜸을 들였고······.
[가능합니다.]마침내, 긍정적인 대답을 내어놓았다.
.
.
.
아발론의 통폐합이 유력한 상황.
이용수가 병마용을 향해 수송기를 몰고 가는 동안, 아공간으로 들어온 나는 란슬롯에게 물었다.
“그래서······ 아발론은 어떻게 생겨먹은 곳이야?”
아발론을 통폐합하는 것에 있어 마지막으로 고려해야 할 사항.
그건 다름 아닌 아발론의 크기와 지형이었으니까.
‘삼킬 때 삼키더라도······. 크기는 보고 삼켜야지.’
단순히 생각해봐도 그렇다.
아무리 통폐합 기능이 있다 한들, 지구보다 큰 차원을 들려올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하물며 그 크기가 비슷한 경우나, 대륙만 한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기존 지형 위로 타차원의 지형을 덧씌우게 되는 통폐합.
만약 지구의 환경이나 무고한 생존자들에게까지 영향을 주게 된다면 곤란할 테니까.
망령 상태의 란슬롯.
그가 안개로 싸인 얼굴을 양옆으로 흔들었다.
“그리 크지 않습니다. 지구로 따지자면······ 작은 도시 정도 되는 크기겠군요.”
란슬롯은 담담히 자신의 고향을 떠올렸다.
벌써 수십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생생하게 그 풍경을 기억하고 있는 듯했다.
“도시 전체는 둥근 원의 형태를 하고 있습니다. 이런저런 산악지형이 끼어있고, 중간중간 강물이 흐르는 곳도 있지만······ 결국 그 중심에는 해자를 낀, 왕성이 위치하는 구조지요.”
흔히 알고 있는 중세 도시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커다란 외성이 도시 전체를 감싸고, 그 중심부에 왕이나 귀족들이 머무르는 왕성이 자리 잡은 형태.
하지만 그 모습을 어렴풋이 상상해보던 나는, 한 가지 의문에 부딪혔다.
“잠깐······ 그런데 카멜롯은 지금 내 아공간에 있잖아?”
“맞습니다. 카멜롯이 아발론의 왕성이었죠. 아마 아발론의 중심은 텅 비어있는 상태일 겁니다. 그 주변에 거주하던 백성들은 모두 과거의 저희처럼 언데드가 되어 있을 테고요.”
다시 말해 아발론은 지금, 거대한 일종의 도넛 형태를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
그 모양을 보여주려는 듯, 제자리를 빙글빙글 맴도는 란슬롯.
어스름한 연기가 꼬리의 꼬리를 물자, 구름으로 만든 동그란 도넛 모양의 형태가 눈앞의 환상처럼 아른거렸다.
“바르나울은 남은 아발론을 완전히 공장지대로 바꿔버렸습니다. 과거 기사단 소속이었던 나이트건, 중심 시장가에서 상회를 운영하던 거상이건, 변두리에서 농사를 짓던 평범한 백성이건 모두 바르나울의 영원한 노예가 되어버렸죠. 노예로 쓸 수 없는 원혼들은 모두 흑마법 아이템에 실어 밖으로 추방한 참이고요.”
죽음으로 뒤덮인 도시.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죽음이 아발론을 멈출 수 없게 만들고 있었다.
그들 모두는 죽으래야 죽을 수 없는 언데드가 되어버렸으니까.
“크기로만 보자면······ 미국에 있던 라이시온 광산 수준의 크기일 겁니다.”
다행이었다.
눈대중으로도 엘븐하임보다 훨씬 더 작은 크기.
널리고 널린 중국 땅을 이용하거나, 여차하면 바다에 띄워버려도 괜찮을 것 같았다.
“확실히, 데려올 수 있겠어. 시기도 얼추 정해졌고······.”
다른 때를 생각할 수 없었다.
바르나울이 지구로 진입하게 될 바로 그 시점.
정확히 그때가, 바르나울이 자신의 내밀한 패턴을 드러낼 때가 될 테니까.
이제 남은 일은 하나뿐이었다.
아발론을 끌어당길 장소를 고르는 것.
그 구체적인 위치를 고민하기 시작했을 즈음······.
“정겸 씨, 병마용입니다.”
수송기를 몰던 이용수가 도착을 알려왔다.
.
.
.
균열이 나타났다는 소식을 전해온 운양.
하지만, 내가 병마용에서 발견한 것은 균열, 그 이상의 것이었다.
“······그 수준이 아닌데?”
그것이 내 감상이었다.
진시황의 병사들이 잠들어 있다던 고대 유적.
그 모두가 황금빛 장막 안에 둘러싸여 있었으니까.
새삼스러운 사실이지만, 아직 상공회의소는 바르나울의 침입을 공지하지 않았다.
최소한 지구인들에게나마 흑마법사들의 침공 소식은 베일에 싸여 있었고, 당최 누구 입맛에 맞춘 공정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놈들의 거점이 될 병마용으로의 침입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었다.
“아쉽군요. 병용을 미리 박살 내둘 수도 있었을 텐데요.”
아깝다는 듯, 입맛을 다시는 이용수.
누가 들으면 문화유산을 박살 내겠다는 파렴치한 주장이라 비난하겠지만, 그 토병에 죽은 원혼들이 덧씌워지는 아포칼립스 세계라면 그게 사리에 맞는 생각이었다.
“······그러게요.”
내 입장에서도 그랬다.
운양과 함께 준비하고 있던 대규모의 기문진법.
애당초 계획은 병마용 내부를 기관진식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미로로 꾸미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장막은 병마용갱과 서쪽에 위치한 박물관을 둥글게 감싸고 있었다.
외부로부터의 방문은 조금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결국······ 빙 둘러싸야 하나.’
장막을 따라 기다란 기문진을 형성하는 것.
애써 배운 진법을 써먹기 위한 방법은 그것뿐이었다.
하지만 한계 또한 명백했다.
사방으로 더 많은 출구를 허용하게 되는 것은 물론, 진법의 두께 또한 얇아지게 될 테니까.
팍스FC의 병력은 산산이 분산되는 데 반해, 수천에 달하는 병마용의 군세는 그 어느 위치로든 전력을 집중할 수 있을 터였다.
죽어도 죽지 않을, 흙으로 빚은 언데드.
무덤 밖을 뛰쳐나오려 아등바등하는 바르나울을 막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통폐합은 여기에 해야겠네.”
그 주변으로 거대한 울타리를 세우는 것이었다.
“아발론을 우군으로 들이고, 다 같이 중심을 치는 걸로.”
카멜롯 왕성을 상실한 아발론.
그 형태는 공교롭게도 가운데가 뻥 뚫린 도넛 모양이었으니까.
공동 묘지의 공집합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