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02)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02화(102/240)
102화 공동 묘지의 공집합 (4)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근 한 달의 시간을 보내고, 어느덧 바르나울의 진입을 하루 앞두게 된 시점.
“······장족의 발전이군요.”
팍스맨들의 훈련을 지켜보던 란슬롯이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물우물.
청심단을 사탕처럼 문 팍스맨들.
<검무>는 예리해졌고, 검이나 주먹에 실린 오러 또한 눈에 띄게 선명해졌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마석의 소모와 더불어, 각성 능력의 경험치가 요구되기 시작한 레벨업.
기사들이 가르친 마력과 오러, 그리고 무림인들이 설파한 내공과 검기는 팍스맨들의 성장에 탁월한 촉매로 기능했고, 그 결과 실제로 레벨업과 위계 상승의 결과로 이어졌으니까.
김솔과 운양이 나란히 7위계로 올라섰고, 백민우와 송현구 또한 그 목전까지 레벨을 끌어올리는가 하면, 상당수의 팍스맨들이 10레벨을 달성해 8위계의 척력을 두르게 됐다.
“드디어 오러 유저의 경지에······.”
“아닙니다. 이건 마땅히 ‘절정’의 경지라 불러야······.”
물론 그 경지를 부르는 표현은 저마다 달랐지만······.
“······뭐, 모로 가도 서울로만 가면 되지.”
아무쪼록 상당한 전력 상승을 일궈냈다는 점은 분명했다.
이제 병마용을 두르고 있는 기문진과 팍스맨들이 구축할 인술진을 가다듬고, 또 한편으로는 병마용을 감싸며 들어올 아발론과의 통폐합을 대비하면 될 터.
사방에서 싸움이 벌어지겠지만, 그 싸움에 참여하게 될 세력 또한 각양각색이었다.
하물며 엘프와 드루이드들까지 지원을 자처한 상황이니까.
“한 번쯤 정리를 해야지.”
그 일환이었다.
엘븐하임에 모여, 팍스FC의 종합적인 전략을 수립하기로 한 것은.
***
그렇게 도착한 엘븐하임의 갈라돈 의회.
겉으로 보기엔 영락없는 경로당이었지만, 의회라는 이름이 허명은 아닌지 제법 쓸만한 회의실이 마련되어 있었다.
“어서들 오세요.”
엘븐하임의 의장, 엘리가 우리를 맞이했다.
내가 먼저 김솔과 란슬롯을 데리고 회의실로 들어섰고, 뒤따라 들어온 민우와 송현구, 운양과 무림인들, 거기에 대수림의 핀드릭까지 하나둘 자리를 꿰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기사 반응이 아주 좋았습니다. 직접 문의해온 차원들도 몇 개 되고요.”
파리에서 만났던 수달, 해리스도 있었다.
‘에코스’의 예술부 기자였던 해리스.
녀석도 아발론의 통폐합을 위해 한 손을 거든 참이었다.
파리에서 본 ‘작품’을 토대로 기사를 작성해준 덕에 지구의 평가 등급이 [B-]로 상향되었고, 무리 없이 아발론과의 통폐합을 진행할 수 있게 됐으니까.
다만, 잠시 아공간에 머무르던 녀석을 다시 불러낸 것은 정보를 얻기 위함이었다.
해리스는 소문으로나마 바르나울이 가지고 들어올 전력을 알고 있었으니.
뒤뚱뒤뚱 얇은 세 가닥 수염을 흔들며 해리스가 회의실로 들어왔고······.
“······오, 해리스 님! 이쪽에 앉으세요. ♬”
“······고, 고맙습니다.”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엘리가 그의 의자를 빼주었다.
얼떨떨한 표정으로 자리에 앉는 해리스.
어딘가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진 탓에, 내가 엘리에게 물었다.
“······엘리, 원래 목소리가 그랬던가요?”
“제 목소리가♬ 어때서요?♪”
“······.”
가슴에 손을 얹고는, 뮤지컬처럼 노래하듯 천연덕스럽게 대답하는 엘리.
다만, 일반적인 뮤지컬과 차이가 있다면······.
‘귀가 썩어버릴 것 같아.’
노래를 더럽게 못 한다는 점이었다.
‘······갑자기 왜 이러는 거지? 소리를 이용한 공격인가?’
난데없이 우리의 귀를 더럽히기 시작한 엘리였다.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저의에 엘븐하임과의 동맹마저 의심되는 상황.
하지만 오래지 않아, 이어지는 엘프들의 행각을 통해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덜컹!
갑작스레 열린 회의실 문.
그 틈으로 커다란 액자를 든 에단이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에단?”
“아, 신경 쓰지 마시고, 하던 이야기 마저 하세요. 회의실 벽이 좀 칙칙한 것 같아서.”
재빨리 회의실 내부를 스캔한 그가 테이블 한쪽에 앉아 있는 해리스를 발견했고, 은근슬쩍 그 맞은편에 있는 벽에 가져온 그림 액자를 걸어두기 시작했다.
그러곤, 누군가 꼭 좀 들으라는 듯 홀로 중얼거렸다.
“우리 엘프들이 워낙 크리에이티브-한 탓에······ 회의실에 이런 그림 하나쯤은 있어야 집중이 되곤 하거든요. 보시면 아시겠지만, 우리 엘븐하임의 아름다운 풍경을······.”
원색의 크레파스로 그려진 그림을 가리키며, 엘프들의 창조적인 혼을 강조한 에단이었지만······.
‘······저딴 게 풍경이라고?’
회의실에 있던 그 누구도 그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화폭에 담긴 것은 형형색색으로 물든, 정체 모를 곤죽 그 자체였으니까.
잿빛에 가까운 보라색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자아냈고, 중간중간 새로 추정되는 생물체가 썩은 얼룩처럼 묻어있었으며, 힘 조절을 못 한 것인지 종이 곳곳에는 구멍이 뚫려 있었다.
미술은커녕, 현대미술 할애비가 와도 용납할 수 없는 그림.
존재 자체만으로도 극독한 죄를 짓는 듯한 흉물이 우리의 시선을 더럽히고 있었다.
그때 문득, 엘리가 했던 말이 메아리처럼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다.
-엘프들은 문화예술을 사랑해요.
‘사랑이라는 게······ 짝사랑이었어······?’
시와 문학, 미술과 연극 등등 다방면의 예술에 관심을 보이던 엘프들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실력만큼은 그들이 보여준 사랑에 정확히 반비례하고 있었다.
다름 아닌 예술부 기자인 해리스에게 본인들의 예술을 인정받고 싶었던 모양이었지만······.
“······우욱.”
정작 해리스는 벽으로부터 애써 시선을 피한 채, 새어 나오는 구역질을 애써 참아내고 있었다.
“다들 모였는가? 내가 회의자료를 준비해왔네. 아, 앞에 적힌 내용은 그냥 심심풀이로 보게. 회의 내용이 너무 딱딱한 듯싶어서.”
마지막으로 엘프 장로 윌그라임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가 <회의자료>를 빙자한 종이를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었고······.
<소년 엘프, 로난의 역경>
나는 지옥의 묵시록을 받아든 것처럼, 눈을 질끈 감을 수밖에 없었다.
그 와중에도 나는 볼 수 있었다.
뻥 하니 뚫린 앞니와 함께 나타나는 에단의 환한 미소,
건강하게 그을린 채, 선명하게 갈라지는 엘리의 삼두근,
노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굵직한 두께를 자랑하는 윌그라임의 종아리까지.
그저 홀로 바랄 뿐이었다.
엘프들이 부디 자신들의 진짜 적성을 깨닫기를.
.
.
.
잠깐의 혼란은 빠르게 진정되었다.
바르나울과의 싸움이라는 무거운 주제가 놓여 있었으니.
엘프들로부터 받은 충격이 만만치 않은 해리스였지만, 애써 정신을 차린 그가 우리에게 주의를 덧붙였다.
“고위계 흑마법사들이 여럿 모이면 흑마력의 뫼비우스를 형성할 수 있습니다. 흑마력의 출력이 대폭 증가하고, 그 힘에서 비롯된 언데드들이 끊임없이 되살아나겠죠. 결국 배후에 숨은 흑마법사들을 처리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 될 겁니다.”
가츠와 싸울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죽은 원혼들을 이용해 죽은 언데드를 되살렸던 바르나울.
원혼을 집어삼키는 ‘악마 포식자’를 이용해 대처할 수 있었지만, 지금처럼 방대한 흑마력을 이용할 뿐이라면 이야기가 달랐으니까.
‘······언데드의 재생을 막을 수는 없겠구나.’
수천에 달하는 병마용의 병사들을 생각하면, 가뜩이나 숫자로는 열세인 상황이었다.
하물며 그런 놈들이 죽여도 죽여도 끝없이 되살아나게 되는 상황.
물론 팍스맨들을 추가적으로 동원한다면 어느 정도 전력 차이를 메꿀 수 있겠지만, 안타깝게도 우리가 상대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시체를 다루는 네크로맨서들이었다.
‘사망자라도 한둘 나오는 순간에는······.’
죽은 자를 하수인으로 되살리는 흑마법사들이다.
자칫 한 번이라도 흐름이 넘어가게 된다면, 바르나울의 군단은 걷잡을 수 없이 불어나게 될 공산이 컸다.
잘 훈련된 소수의 인력들로 맞붙는다는 전략만큼은 그대로 고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
결국, 우리가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저희가 아발론의 병력을 끌어오겠습니다.”
아발론의 언데드들.
마찬가지로 죽지 않는 전력이었다.
이야기를 꺼낸 것은 란슬롯이었다.
아발론은 다름 아닌 기사들의 고향이기도 했으니.
하지만 그때, 운양이 의문을 제기했다.
“······그들이 정말 우리 편이 되어줄까요? 바르나울의 지배를 받고 있었을 텐데······.”
“통폐합으로 지구로 떨어지게 된다면 바르나울과의 직접적인 연결이 끊어질 겁니다. 물론······.”
란슬롯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곤, 씁쓸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 관성이 남아 있기는 하겠지요.”
그것이 설득이 필요한 이유였다.
흑마법사가 주입한 ‘사념’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언데드들.
과거 카멜롯의 기사들이 주인에 대한 ‘복종’을 중심으로 움직였던 것처럼, 아발론의 백성들 또한 바르나울이 설정한 특정한 사념에 따라 움직이고 있을 테니까.
“그래도 우리를 공격하거나 하지는 않을 겁니다. 바르나울은 아발론을 군대로 쓸 생각이 없었거든요. 그저 공장을 돌리는 노예로 쓰려했죠.”
불행 중 다행이라 할까.
바르나울이 아발론을 통해 얻고자 했던 것은 영토도, 군대도 아니었다.
아발론에 각인된 사념은 ‘전투’가 아닌 영속적인 ‘노동’이었고, 그 명령이 뼛속 깊이 각인된 아발론의 언데드들은 죽지도 못한 채, 그 명령을 착실하게 이어 나가고 있을 터였다.
“우리를 공격하지는 않겠지만······ 도우려 하지도 않을 겁니다. 흑마법사들이 새겨놓은 ‘일하라’는 사념이 남아 있을 테니까요.”
“기사들처럼 살려내는 건 어떨까요? 흑마법의 사념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테니······.”
민우가 다른 방법을 제안해봤지만······.
“그건 어려울 겁니다.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이번에는 드루이드, 핀드릭이 고개를 저었다.
세계수와 드루이드들이 있으니 아발론의 백성들 또한 되살려낼 수는 있겠지만, 그 많은 사람을 하나둘 살려내는 동안 바르나울이 가만히 앉아 기다려줄 리 만무했다.
하물며, 그렇게 되살린다 한들 문제는 여전했다.
살아난 그들이 전투 중 죽어 시체가 되기라도 한다면, 되레 바르나울의 전력을 키워줄 위험이 있었으니까.
결국······.
“어떻게든 언데드인 상태에서 설득을 해야 한다는 거네.”
“맞습니다. 주군.”
우리가 살려내야 할 것은 비단 그들의 육신뿐만이 아니었다.
아발론의 백성들은 수십 년째 바르나울의 톱니바퀴가 되어 있었고, 어느덧 꼭두각시 사물이 되어버린 그들에게 정신적인 생명까지 일깨워줄 필요가 있었으니까.
물론, 그것 하나에만 목을 맬 필요는 없었다.
우리는 이미 바르나울과의 전투를 충실하게 준비해온 터였으니까.
“해보죠, 뭐. 그것만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진법의 설치가 끝난 터다.
이미 그 주변으로는 팍스FC의 기술자들이 만든 기관 장치가 촘촘한 기문진을 형성하고 있었다.
이용수가 이끄는 라이더들이 공중 폭격을 감행할 예정이었고, 전투 망치를 든 성기사들이 길을 여는 동안, 운양을 비롯한 팍스맨들이 인술진을 펼치며 흑마법사들의 숨은 위치를 추적해 나갈 것이었다.
나는 기사들과 함께 움직이기로 했다.
아발론의 상황 또한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문제였으니까.
‘어차피 포탈로 꾸준히 오가면 될 테니.’
바로 내일이었다.
병마용과 아발론, 두 개의 무덤이 하나로 겹쳐지는 날.
두 개의 벤다이어그램이 동일한 동심원을 공유하고 있었고, 그 주변을 진법이니, 흑마법의 사념이니 하는 복잡한 수식들이 감싸며 거대한 마법진을 이루고 있었다.
바르나울의 흑마술과 팍스FC의 물류망이 얽히며 크고 작은 불꽃이 사방으로 비산할 테지만······. 아무리 그 수식이 복잡하다 한들 결국 둘 중 하나의 결과로 이어질 터였다.
무한한 죽음으로 이어지거나, 유한한 생명으로 이어지거나.
“······한번 붙어 보자고.”
곧 이어질 싸움으로부터 결정될 터였다.
공동 묘지의 공집합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