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03)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03화(103/240)
103화 공동 묘지의 공집합 (5)
쿠구구구······!
지축을 울리는 진동 소리.
황금빛 장막이 거둬지며, 잠들어 있던 무덤 속 영혼들이 깨어났다.
절그럭. 절그럭.
아니, 사실은 영혼이 아니었다.
무겁고 질척한 몸을 끌어올린 병마용의 토병들.
그들을 휘감은 것은 원혼도, 사념도 아닌, 흑마법사들의 짙은 악의에 불과했으니까.
6위계에 달하는 10명의 흑마법사들이 공중 위로 거대한 보랏빛의 문양을 내던졌고, 하늘 위로 두둥실 떠 오른 흑마력의 기운이 땅속 깊이 묻혀 있던 오래된 유물을 건져 올렸다.
탁! 터억!
짧은 보폭을 내디디며, 좀비처럼 걸어 나오는 병마용의 토병들.
눈썹 한올 한올이 정교하게 새겨진 토병들의 얼굴이 흑마법의 기운을 받아 기이하게 뒤틀렸다.
“지금까지는 예상했던 경로대로 움직이는 것 같군요. 무난히 진법이 설치된 방향으로 이동할 것 같습니다.”
드루이드, 핀드릭이 내게 말했다.
대수림과 엘븐하임에 공간 왜곡을 넣어 천혜의 요새를 만들었던 그들이다.
운양이 진법의 이론을 알려줬다면, 드루이드들은 진법의 실전 그 자체.
병마용 주변으로 예닐곱 개가량의 예상 경로를 지정했고, 경로를 따라 미로처럼 이어지는 정교한 기문진을 구축해둔 터였다.
딱히 의식이랄 게 없는 토병들이었지만, 나름의 인지력은 있는 모양이었다.
차곡차곡 무덤을 기어 올라온 놈들이 기문진의 입구에 세워진 석상 앞을 기웃거렸고······.
타악!
콰드득!
비너스상의 입술에서 나온 ‘매직 미사일’, 그리고 <보르게제의 검투사>의 손에서 빠져나온 ‘아이스 스피어’가 놈들의 몸통을 꿰뚫었다.
토병들의 몸에는 흑마력으로 만든 방어막이 둘려 있었다.
마법스크롤의 화력이 부족하기는 했지만, 서서히 놈들의 발목을 잡는 것 정도는 충분했고, 그 결과 좁디좁은 골목에 그럴듯한 병목현상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위로,
콰아아아아앙!
하늘을 누비는 십수 대의 폭격기가 강화된 헬파이어 미사일을 투하했다.
활활 불길에 구워지는 토병들.
순간 자기(瓷器)로 변한 놈들의 이마가 윤기로 번들거렸다.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최소 백여 명의 이르는 휘하의 흑마법사들을 앞장세웠고, 새하얀 뼈로 이루어진 하운드독과 거대한 크기의 언데드 트롤을 풀어놓았다.
슈화아아아악!
화아아악!
지상의 흑마법사들이 하늘을 수놓은 십수 대의 폭격기를 향해 공격을 쏘아 보냈지만······.
슈우우우웅!
타앙!
함께 타고 있던 엘프들이 바쁘게 활을 들어 날아드는 공격을 격추시켰다.
꽈아아아아앙!
다시금, 무난하게 땅을 때리는 헬파이어 미사일.
진법을 이용해 놈들을 몰아넣고, 바로 그 자리에 위력이 큰 공격을 몰아넣는 전략이 무난히 먹혀들고 있었다.
토병들의 팔다리가 사방으로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누가 보더래도 바르나울이 한창 두들겨 맞고 있는 상황.
하지만 그런데도, 우리 중 그 누구도 상황을 낙관하지 못했다.
시체들의 시체가 돌탑처럼 쌓인 봉우리.
파악!
그 중심을 또 다른 토병의 손이 짚고 올라왔으니까.
꾸드드득!
꾸드득!
점토 찰흙처럼 뭉치고 쪼개지고, 덧붙여지며 새로운 형상으로 거듭난 토병들.
“징글징글하네······.”
놈들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
바르나울이 지구에 들어온 불청객이었다면, 당당하게 초대장을 받아 들어오게 된 손님도 있었다.
[계산 완료됐습니다.] [‘아발론’의 ‘지구’ 차원으로의 통폐합을 진행합니다.]쿠구구구구구······.
아발론과의 통폐합 과정.
조금 전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충격이 파도처럼 밀려들었고, 주변에 세워져 있던 갖은 건물과 집들을 바깥으로 밀어내며, 거대한 도넛 모양의 지형이 모습을 드러냈다.
“도착입니다. 여기 내려드리면 되는 거죠?”
“예, 딱 좋네요.”
우리가 도착한 곳은 병마용의 남쪽 끝.
그러니까, 곧장 아발론으로 들어갈 수 있는 입구였다.
정확히 따지자면 입구라 보기 어렵긴 했다.
가운데가 뻥 하니 뚫린 채, 도넛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아발론.
우리는 정확히 그 중심으로부터 빠져나온 참이었으니까.
“괜찮겠습니까? 아무래도 저도 같이 가는 편이······.”
“용수 씨는 라이더들을 통제해주셔야죠. 그리고 아발론에 차나 비행기가 흔한 것도 아니니······.”
우리와 함께 싸워줄 수 있도록, 아발론 사람들을 설득하러 가는 길이었다.
흑마법의 사념을 벗겨내야 하는 세밀한 작업이니만큼, 초장부터 낯선 외계의 운전 수단을 보여주며 산통을 깰 필요가 없었다.
“정 그렇다면······. 알겠습니다. 조심, 또 조심하셔야 합니다.”
이용수와 인사를 나눈 나는, 란슬롯의 어깨를 텅텅 두드렸다.
애당초 아주 크지는 않은 아발론이었다.
‘기사 보법’을 사용하는 란슬롯의 속도로도 충분히 돌아볼 수 있었기에, 그의 갑옷에 포탈 좌표를 찍어 란슬롯을 버스처럼 타고 가기로 했다.
탓!
가볍게 발을 뻗어나가는 란슬롯.
얼마나 빠른지, 발걸음 하나하나마다 세찬 파공음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얼마나 들어왔을까?
란슬롯의 등 뒤로 붙은 포탈을 통해, 점차 늘어가는 아발론의 풍경을 눈에 담아가던 중······.
“······뭐야 이게?”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우리가 지나온 장소.
도넛처럼 뻥 뚫려 있어야 마땅한 아발론의 중심부.
당연히 비어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버젓이 거대한 성이 세워져 있었으니까.
“······카멜롯?”
몰라볼 수가 없었다.
눈부시게 하얀 성벽과 금실로 자수를 놓은 푸른색 휘장.
바르나울의 저주를 걷어낸 역천의 카멜롯과 완전히 똑같은 형상이었으니.
“······바르나울이 만들어 놓은 환영일 겁니다.”
란슬롯이 씁쓸하게 덧붙였다.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아발론의 왕성.
하지만 바르나울은 마치 그것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듯, 거대한 환영을 아발론의 중심부에 뻔뻔하게 세워두고 있었다.
반면······.
카멜롯 성의 화려한 환영과는 대조적으로, 척박한 현실이 조각난 틈새처럼 눈을 스치고 들어왔다.
드르륵. 드르륵.
그림자처럼 비치는 수십 개의 공장 굴뚝.
무언가 꾸준히 나르고 있는 화물용 케이블카.
거기에 건물마다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는 컨베이어 벨트까지.
아발론 차원 전체가 바르나울의 완벽한 공장이 되었다는 말은 과연 허풍이 아니었다.
생명의 흔적이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폐건물과도 같은 풍경이었지만······.
“감사합니다. 주군.”
목적지를 향해 내달리는 중에도, 란슬롯은 내게 감사를 건넸다.
“정말 저를 아발론으로 데려다주실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이것이 가능한 일일 것이라고는······.”
타닥!
그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으면서도 꾸준히 주변을 곁눈질했다.
그도 그럴 것이, 자그마치 수십 년 만에 돌아온 고향이었으니까.
.
.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골목과 골목을 지날수록 아발론 백성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해골이라는 것만 빼면 다들 보기보단 멀쩡하네.”
그들 모두가 해골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들이 화물용 케이블이든, 자동 컨베이어든 곳곳으로 뻗은 공장 시설에 잎사귀처럼 매달려 있다는 것이었는데, 조금도 쉬지 않고 손을 놀리며 정체 모를 부속품을 조립하고 있었다.
“저게 바르나울이 아발론에 부여한 사념이라는 거지? 미친 듯이 일하는 거······?”
“맞습니다. 분명 아발론 어딘가에 저 사념을 퍼뜨리는 사물이 숨겨져 있겠죠.”
결국, 그게 우리의 임무였다.
바르나울이 아발론에 부여한 사념의 전모를 확인하는 것.
그리고 그렇게 부여된 사념을 퍼뜨리는 사물을 찾아내고 파괴하는 것.
그들을 옥죄는 사념만 사라진다면, 아발론의 언데드들을 든든한 조력자로 얻을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였다.
“다 왔습니다. 바로 이 집입니다.”
살아생전 줄곧 존경받는 기사였던 란슬롯.
그의 종자를 만나러 온 것은.
허름하기 짝이 없는 집이었다.
반파된 지붕이 하늘을 향해 훤히 뚫려 있었고, 구멍을 지나는 커다란 물레방아가 집안으로 자그마한 원료들을 쉴 새 없이 실어 나르고 있었다.
“······.역시 여기 있었구나. 루크.”
아발론의 기사단장, 란슬롯이 그의 종자를 찾아왔고······.
터엉!
“······주인님?”
란슬롯을 발견한 루크가 열중해서 조립하던 부품을 툭 하니 떨어뜨렸다.
“주인님! 대체 어떻게······!”
“······이야기하자면 길다. 루크.”
달그락달그락 뼈를 흔들며 뛰쳐나오는 루크.
그가 감격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바르나울의 이야기가 사실이었군요······. 그냥 돌아오신 것도 모자라 아예 소생까지 하셨다니······ 실로 감개무량합니다. 저희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던 모양이에요.”
감동스런 재회의 순간이었지만······.
란슬롯은 훌쩍 걸어들어온 위화감을 놓치지 않았다.
“그게 무슨 소리인가? 바르나울의 이야기라니.”
“모르셨습니까? 바르나울이 생산량만 채우면 팬드래건 전하와 기사분들을 풀어주겠다고 약속했었으니까요. 혹시 팬드래건 전하를 모시고 오신 겁니까? 다른 기사님들하고요?”
그게 아발론의 백성들이 공장 일에 열두하고 있는 이유였다.
아서와 기사들을 풀어주겠다는 바르나울의 거짓말.
그러한 감언이설에 의지한 채, 잔뜩 기대를 품은 루크였지만······.
“다른 기사들도 모두 살아 있다. 하지만······.”
란슬롯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서는 죽었어. 새빨간 거짓말이다.”
“······그럴 리가요! 주인님께서도 이렇게 멀쩡히 살아 돌아오셨는데요!”
“바르나울은 우리를 풀어준 적이 없다. 아이템에 실어버린 채 외차원으로 팔아버렸지. 이렇게 되살아난 것 또한 모두 다른 분의 은덕이었을 뿐이야.”
란슬롯이 단호한 눈빛으로 사실을 전했다.
하지만 루크는 못 본 체 시선을 돌린 채,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들어오는 부속을 쉬지 않고 조립할 뿐이었다.
한참이나 입을 다물고 있던 루크가, 마침내 입을 뗐다.
“어쩌면 주인님 말씀처럼 바르나울이 우리를 속였을지도 모르죠. 실제로 약속했던 할당량을 야금야금 올려놓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약속이 진짜일 수도 있잖아요? 만약 정말이었다면요?”
벌써 수십 년의 세월이 지난 참이다.
사념이라는 이름 아래, 지독한 흑마법의 희망 고문에 절어있던 아발론.
루크에게는 더 이상 현실을 직시할 만한 능력이 없었다.
“제가 멈추면 B 생산라인이 동시에 마비돼요. B 라인에 있는 다른 사람들 생각도 물어봐야 하지 않을까요? 그리고,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카멜롯 성 근처에서 팬드래건 전하를 봤다는 사람도 한둘이 아니고······. ”
“진짜였을 리가 없어. 바르나울의 허상이었겠지.”
“아뇨, 팬드래건 전하는 살아계십니다. 살아계실 수밖에 없어요. 차라리······.”
절그럭. 절그럭.
새하얀 두개골을 흔들며, 미친 듯이 부정하던 루크는······.
“수십 년 만에 나타난 내 주인이 허상이라는 편이, 더 신빙성 있는 추측 아닐까요?”
“······.”
자잘한 기계 부속을 조립하며, 싸늘하게 쏘아붙였다.
란슬롯은 더 이상 대답하지 않았다.
끼이이······.
있으나 마나 한 루크의 현관을 걸어 나올 뿐.
주변 곳곳으로 연결된 공장 설비들을 보며, 그가 나지막이 말했다.
“틀림없이 공장입니다. 공장을 파괴해야 해요.”
란슬롯은 ‘공장’을 바르나울의 사념이 담긴 사물로 지목하고 있었다.
흑마법에 휘둘린 그들은 아직 아서가 살아 있다는 몽상에 빠져 있었고, 그를 구하기 위해 수십 년간 죽지도 못한 채 영원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진정해. 아발론 전체에 깔린 공장이라며. 파괴하는 동안 아발론 사람들이 우릴 가만히 두겠어?”
“그건······.”
알게 모르게, 란슬롯은 흥분해 있었다.
그리움에 사무치던, 수십 년 만에 재회한 종자.
그가 자신을 귀신 취급하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내가 봤을 땐 없애야 할 건 공장이 아니야. 그보다는······.”
나는 손가락을 들어, 아발론의 중심 지역을 가리켰다.
여전한 위용을 드러내고 있는 카멜롯 성의 신기루.
저 번듯한 형상이 아서가 살아있을 것이라는, 아발론 사람들의 환상을 유지해주고 있었으니까.
“저걸 없애야지.”
“······하지만 저건 환영일 뿐입니다. 파괴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니에요.”
“파괴할 수는 없지만, 빼앗을 수는 있어.”
나는 곧장 팍스를 불러냈다.
아발론 사람들을 현혹하는 ‘카멜롯의 환상’.
어쩌면 그것을 ‘카멜롯’이라는 거대한 카테고리에 넣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카테고리 수용>으로 아공간에 저 환상을 집어넣을 거야.”
모든 것이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비누 거품처럼 한순간에 녹아 없어질 카멜롯 성.
그림자처럼 드리울 텅 빈 공백의 자리가 아발론의 백성들에게 아서의 죽음을 알려줄 테니까.
“이제 알게 되겠지. 눈치 볼 것 없이 싸워도 된다는 걸.”
공동 묘지의 공집합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