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04)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04화(104/240)
104화 공동 묘지의 공집합 (6)
“이게 무슨 상황이야?”
바르나울의 10명의 흑마법사들로 이루어진 집단, <밤의 형제들>.
그 우두머리인 플로란이 황당하다는 듯 말했다.
“······이게 맞아? 우리가 이렇게 빌빌거리는 게?”
6위계에 달하는 고위 흑마법사들.
비록 최고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바르나울 최고의 유망주들로 평가받는 그들이었다.
이들의 역할 또한 중요했다.
개척이 시작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직 상공회의소의 규제가 강하게 부여돼 있는 하위 차원들.
<밤의 형제들>은 그런 하위 차원을 전담하는 바르나울의 특수 조직에 가까웠고, 지금껏 수십 개에 달하는 하위 차원들을 바르나울의 식민지로 복속시켜왔으니까.
사정을 조금이라도 아는 차원 존재라면, 마땅히 <밤의 형제들>을 두려워했다.
상공회의소의 규제를 받는, 머나먼 이야기 속 고위 흑마법사들과는 달리, 10명의 6위계 흑마법사들로 구성된 <밤의 형제들>은 눈 앞에 들이닥친 현실적인 위협 그 자체였으니까.
하지만······.
“이럴 시간이 없다. 한 시라도 빨리 세계수를 뽑아버리고 드루이드 놈들을 잡아 죽여야······.”
이번만큼은 그들도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수천 개의 토병들이 일제히 도열해 있었고, <밤의 형제들>이 피워올린 흑마력의 뫼비우스가 두둥실 떠오른 채, 토병들에게 흑마력을 전해주고 있었다.
무한은 아니지만, 무한에 가까운 띠가 토병들에게 끊임없는 흑마력을 보충해주고 있는 상황.
원래라면 동쪽으로 뻗어나가, 한국을 점령하고, 결과적으로는 엘프들이 있다는 태평양의 엘븐하임을 불태울 계획이었지만..
파사삭!
콰아아앙!
수천의 토병들은 병마용을 벗어나는 족족 길을 잃어버리거나, 부서졌다가 재생되기를 무한히 반복하며 흑마력을 축내거나, 그도 아니라면 좁은 길목에 콩나물 시루처럼 모여 도미노처럼 쓰러지기 일쑤였다.
“······이 새끼들 대체 주변에 뭔 짓을 해놓은 거야?”
환영인사도 이런 환영인사가 없었다.
문 밖으로 나가자마자 벌집이 되는데, 돌아보면 서 있는 곳이 문앞인지 창문인지도 알 수가 없는 상황이라 할까.
전투원으로 차출한 하급 흑마법사들이 언데드들을 부리며 전투를 보조하고 있었지만, 놈들이 세워놓은 기괴하면서도 방대한 방어진을 뚫어내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다른 방법을 동원할 수밖에.
쿠웅!
밧줄을 들춰맨 언데드 트롤이 깊은 구덩이를 밟고 올라왔다.
그러곤 텅- 하니 시체 한 구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츠츠츠······.
금루옥의(金縷玉衣)를 입은 채, 보랏빛 연기를 내뿜는 시체.
무언가 불만을 토로하는 듯, 그 보랏빛 연기가 혼란스럽게 요동쳤다.
“조금만 기다려. 너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니까. 그리고 어차피 다 되살아는데 뭐가 그렇게 불만이야?”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투덜거리며 말을 받는 플로란.
그가 모종의 소통을 주고받는 이 시체의 정체는 다름아닌, 진시황이었다.
“네 사념이 다듬어져야 한다고. 대충대충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 말이야.”
그가 실제로 어떤 인물인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플로란이 재료로 삼은 것은 진시황에 관해 널리 알려진 세간의 평가와 야사들.
잔학함으로 무장한 채, 무한한 삶을 탐닉했던 비정한 군주의 사념을 바로 이 병마용 위로 피워내고 있었다.
“나도 마음이 급하다고.”
흑마법사들의 천적인 드루이드와 세계수가 한 차원에서 동시발견된 상황.
본 차원에서도 지구의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이제 막 개척이 시작된 하위차원에 불과했다.
심지어 가장 마음에 드는 병마용이라는 요람을 고른 터.
그런데 그 무덤에 갇힌 채 두드려 맞기만 한다면, 단순한 망신을 넘어 흑마법사로서의 인생 경로가 제대로 꼬여버릴 터였다.
“그건 안 되지. 안 될 일이지.”
드루이드와 엘프들을 몰살하고, 세계수를 멸종시키고, 그만한 효용까지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된 이상 지구까지 식민지로 삼아야 수지가 맞을 것 같았다.
그때, 뫼비우스에 흑마력을 보충하고 돌아온 다른 <밤의 형제들>이 플로란에게 다가왔다.
“어떻게 되어 가? 이제 그 놈 슬슬 일어날 때가 됐나?”
형제들이 옥의로 덮인 진시황의 시체를 보며 물었다.
“거의 다 됐지. 밖은?”
“똑같지 뭐. 전투 흑마법사들한테 좀 더 밀어 붙이라고 할까?”
“아냐, 됐어 그러고 보니······ 여기 토병 중에 재밌는 놈들이 좀 섞여 있더라고.”
플로란이 씨익 미소를 지었고, 언데드 트롤들이 그의 주변으로 몇 개의 토병을 질질 끌고 들어왔다.
쿠웅!
나란히 도열하자 다른 토병들과의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손가락을 펼치고, 공을 굴리고, 춤을 추는 듯한 자세의 토병들.
죽은 진시황의 오락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기예꾼’들의 조각이었다.
“뭐, 놈들도 슬슬 막기가 버거워질 거야.”
남다른 특성을 지니고 있는 새로운 토병들.
하지만 여전히 무한히 되살아날 기예꾼들의 토병을 바라보며, 플로란이 씨익 웃음을 지었다.
***
아발론 중심부에 떠 있던 카멜롯의 환상.
팍스에게 요청하자마자, 거대한 신기루가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췄다.
“······성이······! 왕성이!”
“안 돼! 안 돼······! 팬드래건 전하!”
아발론의 백성들이 우왕좌왕 움직였다.
이제야 비로소 공장의 생산 라인이 멈췄고, 자리를 이탈한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누군가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길게 턱뼈를 늘어뜨렸고, 또 누군가는 눈물 한 톨 나오지 않는 해골의 텅 빈 눈자위를 비집으며 꺼이꺼이 말라 비틀어진 울음을 터뜨렸다.
“환상이 사라지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바로 정신을 차리지는 못하는군요.”
란슬롯이 말했다.
진짜 환상은 그들의 마음속에 있었을 것이다.
그게 정리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한 거겠지.
그리고······.
그때였다.
“······음?”
덜그럭! 덜그럭!
발굽 소리와 뼈다귀 소리가 한 데 섞인 소리.
전신 갑옷을 두른, 수십의 기마병이 우리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두두두두!
주변으로 자욱한 먼지가 피어올랐고, 사이사이 투구를 쓴 해골들이 커다란 사각 방패 사이로 뾰족한 창끝을 내밀었다.
그러곤 우리를 확실히 포위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해골마를 탄 대장 해골 하나가 고삐를 쥔 채 우리 앞으로 다가왔다.
“······란슬롯 경.”
“······베론.”
“난데없이 경의 이야기 들리기에······ 설마설마 했는데 정말 돌아왔군요. 그것도 살아서······.”
아무래도 란슬롯과는 일면식이 있는 사이인 듯했다.
너나할 것 없이 울부짖는 아발론의 백성들을 보며, 베론이 란슬롯에게 물었다.
“왕성이 사라진 이유······ 혹시 경과 관련이 있습니까?”
잠시 물끄러미 베론을 바라보던 란슬롯이, 무거운 입을 열었다.
“너는 경비단장이니 더욱 잘 알고 있겠지. 너, 마지막으로 왕성에 들어가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하나?”
“······왕성에 말입니까? 직접?”
란슬롯의 질문에, 베론은 당황스런 표정이었다.
이미 우리는 그 답을 알고 있었다.
허상으로 채워져 있던 아발론의 중심.
당연히 수십 년 동안 왕성의 땅을 밟지 못했을 테니까.
하지만 그 사실을 부인하려는 듯, 베론이 떠듬떠듬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야, 지금 왕성은 경비단 대신 바르나울이 통제하고 있기 때문에······ 저는 바깥 지역의 치안을······.”
“80년 동안? 이봐, 베론 경비단장.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나?”
80년.
란슬롯과 기사들이 아발론을 떠나온 시간이었다.
숫자로 들으니 그제야 감이 오는 것인지, 베론이 당혹스런 표정과 함께 홀로 중얼거렸다.
“그건······ 잠깐, 그게 80년이나 됐다고?”
서서히 카멜롯의 환상이 사라진 것이 효과를 발휘하고 있었다.
원래라면 조금 전 만났던 란슬롯의 종자 루크처럼, 주변에 주어진 명명백백한 증거들까지 끝끝내 부인하려 들었을 테니까.
물론, 여전히 힘든 일이라는 데에는 변함이 없었다.
그 괴로움을 잊으려는 듯, 베론이 옆에 선 나를 보며 란슬롯에게 물었다.
“그런데······ 이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를 갖춰라. 내가 모시는 주인이시니까.”
낯선 사람에 대한 충성 선언.
경비단장 베론이 화들짝 놀라, 버럭 소리를 질렀다.
“란슬롯 경, 당신······! 주인이라뇨. 이건 반역입니다!”
“아니, 베론. 아서는 죽었고, 아발론의 왕위 또한 끊어졌다. 그러니 새로운 분을 모시게 됐을 뿐이야.”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십시오. 아서 님은······.”
그 말을 하던 중에도 베론은 멈칫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낀 것이 분명했다.
“아서가 죽은 이유는 바르나울이 아서의 원혼을 다룰 수 없었기 때문이야. 거기에는 조금의 뒤틀림도 존재하지 않았으니, 흑마법사들이 사념으로 빚어낼 재료가 애당초 존재하질 않았지.”
란슬롯이 천천히, 베론을 마주 보며 덧붙였다.
“카멜롯에서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그날. 나는 아서의 죽음을 똑똑히 목도했다. 아서가 내게 아발론을 지켜달라는 유언을 남긴 것도, 그렇게 죽은 아서의 시체를 활용하지 못한 흑마법사들이 홧김에 그 시체를 소멸시켜버렸던 것도 모두 기억하고 있지. 내 팔뚝만 보더라도······ 아서와 공유하고 있던 맹세의 언약도 고스란히 사라져버렸어.”
얼떨떨한 기색의 베론.
그가 몽롱하기만 했던 지난 80년을 회고하는 동안, 란슬롯도 기나긴 세월을 되짚었다.
“나 또한 너희처럼 80년의 세월을 허비했다. 아서를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이 사념이 되었고, 바르나울은 그 후회를 재료로 나를 해골로 일으켰지. 뒤늦은 소원이 되레 내 자유를 빼앗았어. 카멜롯에 갇힌 채 수십 년간 이런저런 침략자들의 손에 놀아났고, 우리 아발론과 사정이 다를 바 없던 무고한 사람들을 베어 넘겼다. 심지어는 기사왕을 자처하는 자유개척 네크로맨서에게 붙잡혀 기사놀이를 하며 다른 차원을 정벌하기까지 했지. 모든 게 엉망진창으로 무뎌져 있었어.”
베론의 턱이 살짝 벌어졌다.
그러곤 아발론의 중심지를 돌아보던 중, 자신의 눈자위처럼 텅 빈 채 사라져 버린 카멜롯 왕성을 바라보았다.
허전하기 짝이 없는 검은 안개 주변으로 병마용 위로 바르나울이 띄워놓은 흑마력의 고리가 8자 모양으로 은은하게 떠올라 있었다.
“대체······ 그럼 대체 어떻게······.”
그가 나와 란슬롯을 번갈아보았다.
그러곤, 얼떨떨한 표정으로 내게 물었다.
“······저희는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과거, 왕을 섬기던 란슬롯이었다.
그런 그가 이제는 나를 섬기고 있기 때문이었을까?
베론은 이제야 아서가 죽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인식한 모양이었지만, 누군가 그들을 끌어줘야만 한다는 생각만큼은 버리지 못한 듯했다.
스스로 생각할 힘을 잃어버린 채, 아서와 비슷한 위치에 선 내게 판단을 되묻는 베론.
아발론은 그만큼이나 약해져 있었다.
그런 그에게 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카멜롯의 공백을 가리킬 뿐이었다.
“미안하지만, 나는 너희의 왕이 아니야. 이제 아발론에는 왕성도, 왕도 없으니까.”
“아······.”
그제야 쓸쓸한 기색으로 고개를 떨구는 베론이었지만······.
“그래도, 뭘 해야할지는 감이 오네.”
그렇다고 안 도와주겠다는 말은 아니었다.
“다들 아서가 죽었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거 아냐? 그럼 장례식을 해야지. 아무리 늦었어도.”
병마용으로부터 자잘한 폭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팍스맨들의 함성, 기문진 곳곳에 설치해놓은 기관이 마법 스크롤을 찢으며 불과 화살을 내뿜는 소리가 드문드문 전해져왔다.
누구도 모를 수가 없었다.
우리가 치열한 전장 속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을.
베론은 잠시 우두커니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곤, 무슨 말인지 알겠다는 듯 내게 대답했다.
“그럼 조문객들을 모아야겠군요. 모두 하나같이 죽어있는 마당에 조문객이라······ 꼴이 참 우습겠지만요.”
“그럼 더 좋지. 혼자 죽은 게 아니구나 하고 얼마나 위안이 되겠어?”
베론이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
“왕실 묘지에 세워진 종탑을 울리겠습니다. 백성들에게 왕족의 장례를 알리는 메시지거든요. 지난 80년간 울린 적이 없는 종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두 번이나 울릴 겁니다.”
두 번 울리는 부고.
어쩐지 심상치 않은 울림에, 내가 되물었다.
“······그건 무슨 뜻인데?”
“아발론 전체에 내려지는 동원령입니다. 한 명도 빠짐없이 무장하라는 뜻이죠.”
란슬롯이 그 궁금증을 해소해주었다.
공동 묘지의 공집합 (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