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1)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1화(11/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11편
(무한탄창의 거부(巨富) (1))
몇 시간이나 흘렀을까.
나는 흰 구스다운 이불 틈에서 눈을 떴다.
탄탄한 매트리스 쿠션 덕분인지, 뻐근하던 어깨가 기름칠이라도 한 것처럼 가뿐하게 움직였다.
침대 옆 탁자에는 투명한 물병이 놓여 있었다.
쪼르르···
병에 담긴 물을 따라 마시며, 나는 생각했다.
‘자취방에서 지낼 때보다 훨씬 좋은데···?’
누가 이걸 아포칼립스에서의 삶으로 보겠는가.
사우디 거부들의 지하 벙커도 이곳 팍스 풀필먼트 센터에 비비지는 못하리라.
니네 창고는 무한 아니잖아.
그렇게 일어나 차림을 정리하고 있자니, 똑똑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겸 씨, 접니다.”
“예, 용수 씨. 들어오세요.”
“집사람이 식사 준비를 하고 있거든요. 일어나셨으면 같이 드시면 어떨까 해서요.”
“좋죠.”
나는 대답과 함께 전투화 끈을 조였다.
빳빳한 새 양말의 감촉이 부드럽게 발을 감쌌다.
휴게실 바깥에서는 먼저 채비를 마친 이용수가 기다리고 있었다.
그를 따라 2층에 있는 식당으로 올라갔다.
그가 말했다.
“집사람이 신이 났습니다. 여기 주방에 없는 게 없다고···”
평소 수백 인분은 기본으로 하는 직원 식당이었다.
어지간한 장비는 모두 갖추어져 있을 터.
간혹 없다 해도 아래 물류센터에 널린 게 조리 도구였다.
달칵.
식당의 문을 열어젖히자,
킁킁.
코끝이 절로 반응했다.
주방 가까운 위치에 있는 식탁.
바로 그곳에 이용수와 나의 식사가 준비되어 있었다.
주방장 오지수가 오늘의 요리를 설명했다.
“이번에는 간단하게만 차려봤어요. 사실은 주방이니 프레시 센터니 돌아보다가 시간이 부족해져서··· 그래도 아침으로는 꽤 괜찮을 거예요.”
각자에게 주어진 넓적한 접시.
그녀의 말마따나, 복잡한 요리는 아니었다.
노른자가 살아 있는 달걀 프라이 세 개, 껍질 끝이 살짝 그을려 있는 독일 소시지, 두꺼운 베이컨 세 줄과 구수한 베이크드 빈, 마지막으로 수풀레처럼 촉촉한 팬케이크까지.
그녀가 이 장엄한 협주곡의 정체를 밝혔다.
“럼버잭 브랙퍼스트라고, 저희가 자주 해 먹는 거예요.”
“무슨··· 잭이요?”
옆에 앉은 이용수가 귓속말로 대처법을 알려주었다.
“···그냥 세상에 그런 게 있겠거니 하면서 드시면 됩니다.”
“아···”
과연 경험자답게, 연륜이 묻어났다.
어색한 표정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나란히 들었다.
“감사히 먹겠습니다?!”
“더 있으니 부족하면 말씀하세요.”
그녀는 방긋 웃으며 접시에 담긴 팬케이크에 메이플 시럽을 부어주었다.
포크로 촉촉한 팬케이크를 잘랐다.
그러곤 반쯤 터진 노른자와 베이컨, 베이크드 빈을 끼얹었다.
“···!”
팬케이크가 입 안에서 크림처럼 흩어졌다.
그 빈 자리를 채우는 베이크드 빈의 진한 맛.
마지막으로 단단한 베이컨이 식감을 채웠고, 마지막으로 잘 구워진 독일 소시지를 베어 물었을 땐···
“···미쳤다.”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놀라기엔 일렀다.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주인공이 남아 있었으니까.
툭.
오지수가 나와 이용수 앞으로 뜨끈한 블랙커피를 내려놓았다.
“제가 너무 갖고 싶던 커피머신이 물류센터에 있더라고요. 신혼살림 꾸릴 때 그렇게 사자고 조르던 건데···”
흰 찻잔에 담긴 커피가 뭉근하게 향을 피워 올렸다.
브런치 메뉴에 커피라니.
그야말로 화룡점정이었다.
후릅.
서로 짜기라도 한 듯, 동시에 잔을 들어 올린 우리 두 사람은···
“미쳤다.”
“미쳤다.”
그리 말할 수밖에 없었다.
***
1층으로 돌아온 나는 한껏 부풀어 오른 배를 탕탕 두드렸다.
단, 그 행복은 공짜가 아니었다.
[전력 가동 중단까지, 약 36 시간 남았습니다.] [가스/수도 공급 중단까지, 약 43 시간 남았습니다.]남은 시간은 하루 하고도 한나절 정도.
그리고 내 수중에 남은 마석의 양은··· 열여섯 개에 불과했다.
“은근 돈 먹는 하마네, 이거···”
레벨이 오른 것 자체는 좋았지만, 유지 비용이 껑충 뛰어버렸다.
이제 하루에 필요한 마석은 자그마치 여섯 개.
단순 계산해도 사흘 이상 버티기 어려웠다.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스킬도 강화하고··· 능력도 개방해야지.”
띠링!
팍스가 창을 띄워주었다.
—-[강화 가능 항목]—-
[비용 5]◈ 출하 소요 시간 [5초] [+]
◈ 출하 사정거리 [10m] [+] (단, 15m까지는 비용 1이 적용됩니다.)
◈ 출하 속도 [최대 100km/h] [+]
————————-
—-[개방 가능 항목]—-
[비용 50]◈ 동시 출하(2)
-최대, 네 개의 상품을 동시에 출하할 수 있습니다.
◈ 추적 배송
-출하된 상품이 설정된 목적지를 자동으로 추적합니다.
◈ 상품 회수
-별도의 포탈을 열어 상품을 회수합니다. (단, 아공간에 등록된 사물에 한합니다.)
————————-
아공간 레벨 2를 달성한 덕이다.
출하 스킬을 더 강화하거나, 새로운 능력을 개방할 수 있게 되었다.
다만···
“···가격이 이게 맞나?”
강화 비용은 5, 능력 개방 비용은 50.
자그마치 기존의 다섯 배로 튀어 올랐다.
하지만 가장 가관이었던 것은···
[레벨 3 격상을 위해서는 마석 1,000 개가 소모됩니다.]천 개.
기존 대비 열 배에 달하는 비용이었다.
“당분간은 꿈도 못 꾸겠네.”
그래도 언젠가는 가능할 것이다.
마석을 얻는 속도가 차츰 빨라지고 있었으니까.
더더욱이 이번만큼은,
“새 무기를 얻었으니까.”
나는 픽킹 스테이션에서 상품 하나를 주문했다.
덜컹!
별다른 포장없이 투명 비닐에 덩그러니 싸여 있는 물건.
물건을 묵직하게 받아들자, 팍스가 상품의 이름을 불러주었다.
[K2 소총, 가격이 설정되지 않았습니다.]추가로 이것저것 더.
[5.56mm NATO 탄, 10개 * 3세트] [STANAG 30개입 탄창] [K413 세열수류탄 * 3세트]비릿한 쇳내.
새삼 내 전력이 비약적으로 강해졌다는 게 느껴졌다.
이건 캠핑용 손도끼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진짜’ 살상용 무기였으니까.
철컥! 철컥!
5.56밀리 탄 하나하나를 탄창에 끼워 넣었다.
꽉 채우면 고장이 잦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나, 딱 스물여덟 발만 채워 넣었다.
그러곤 묵직해진 탄창을 팍스에게 내밀었다.
“혹시 이렇게도 출하가 가능할까?”
[두 상품을 합쳐 세트 상품으로 출하가 가능합니다.] [세트로 등록해드릴까요?]“그래 부탁해.”
[알겠습니다.]전투조끼, 전투화, 소총을 추가로 주문한 뒤, 이용수를 불러왔다.
“부르셨습니까?”
“이거 받으세요. 군대 다녀오셨죠?”
“아아, 그럼요. 다녀왔죠.”
그가 익숙한 솜씨로 소총을 받아들었다.
“이제 나가볼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위험할 수 있으니··· 여차하면 이걸로 싸워보죠.”
“소총이라니··· 이젠 정말 무서울 게 없네요.”
서서히 아포칼립스의 최강자로 거듭나고 있는 우리였다.
“그래도 방심하면 안 됩니다. 위험하다 싶으면 언제든 포탈로 뛰어드세요.”
“명심하겠습니다. 이제 와서 다칠 순 없죠.”
그 또한 의지를 다졌다.
밖으로 향하는 포탈이 열리자, 이용수가 말했다.
“다행히 이제 다 물러갔나 봅니다.”
구름떼처럼 하늘을 뒤덮던 놈들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그저 어둡고 푸른 초저녁의 하늘이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천천히 포탈 밖으로 발을 디뎠고,
휘이이-
황량한 바람이 불었다.
주변을 둘러보던 중, 뭔가를 발견했다.
“그 깡패들이네요.”
사령관, 연대장, 대대장, 그리고 그 밖의 졸개들까지.
놈들의 옷가지가 갈기갈기 찢겨 있었다.
그 위로 말라붙은 검붉은 핏자욱이 놈들의 시체를 대신했다.
“우선 여기서 빨리 빠져나가 보죠.”
서둘러야 했다.
시간이 되면 놈들이 돌아올 테니.
하지만 그렇게 채비하려던 찰나,
“···젠장.”
나는 우뚝 자리에 멈추어 섰다.
“왜 그러십니까?”
이용수가 물었지만,
위잉-
언제든 도망칠 수 있도록, 우선 포탈부터 열어두었다.
“놈들이 아직 떠나질 않았어요.”
“···놈들이요? 설마 아까 그 와이번들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아마도···”
불현듯, 아까 마주쳤던 드래곤의 눈빛이 떠올랐다.
“···여태 우리를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끼에에에에에에-!
끼에에에!
울창한 숲으로부터 소름끼치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퍼드득!
퍼득!
수 없이 겹치는 날갯짓 소리.
놈들이 하늘을 까맣게 채우기 시작했다.
이용수가 당장 포탈로 들어가자며 나를 채근했다.
“정겸 씨, 너무 빨리 나온 것 같습니다. 일단은···”
하지만 그래선 안 됐다.
“놈들은 계속 기다릴 겁니다. 다른 곳으로 나갈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그것이 내 아공간 능력의 가장 큰 약점이었다.
포탈의 위치가 안전하지 않다면, 역으로 아공간에 갇히는 신세가 되어버리니까.
하지만···
“놈들이 아직 모르는 게 하나 있죠.”
철컥!
포탈을 등지고, 날아드는 와이번들을 향해 총구를 들었다.
그러곤,
투다다다다다다-!
미친 듯이 총알을 갈겼다.
군 생활 내내 결단코 사용해본 적 없던 조정간 ‘연사’였다.
당연히 몇 초 만에 탄알이 바닥났고,
툭.
빈 탄알집이 땅으로 떨어졌다.
하지만,
슈슉!
갓 출하된 새 탄창이 내 손에 쥐어졌다.
미리 탄알을 끼워둔 스물여덟 발짜리 탄창이었다.
철컥!
탄알을 마저 장전했고,
투다다다다다!
다시 총알을 발사했다.
총알이 초저녁 하늘을 스쳐 지나갈 때마다,
끼에에엑!
끼엑!
하늘은 괴성을 되돌려주었다.
이용수도 하늘을 향해 매캐한 탄알을 쏘아 올렸고,
‘다중 출하’ 능력을 이용해 그에게도 5초마다 새 탄창을 전해주었다.
그렇게, 두 개의 소총이 불길을 토해냈다.
팅! 달칵! 텅! 덜컥! 땡그르···
발 밑으로 탄피와 빈 탄알집이 수북히 떨어졌다.
그리고 그건 와이번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끼에엑!
콰앙!
총알 세례를 받은 놈들이 연거푸 공터에 처박혔다.
그렇게 하나둘 모인 사체는 총성 소리에 맞춰 차츰 언덕을 쌓아나갔다.
놈들을 시원하게 벌집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지만, 나는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우두머리가 남아 있었으니까.
펄럭.
완전히 다른 존재감의 날개짓.
놈이 하늘로 떠올랐다.
흠칫.
순간 나는 몸을 떨었다.
놈의 샛노란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으니.
어쩐지···
나와 내 포탈을 번갈아 보는 것 같았다.
이용수가 희소식을 전했다.
“정겸 씨···! 저놈들 가는 것 같은데요?”
과연 그의 말대로였다.
검은 드래곤은 후욱 거친 콧김을 뿜으며 멀어져 갔고, 그 뒤를 공격을 멈춘 와이번 무리가 따랐다.
검은 드래곤.
괴물이라지만, 지성이 있는 놈이었다.
아공간 포탈이 있는 한, 나를 잡을 방법이 없다고 여겼는지도 몰랐다.
상황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살았네요.”
이제 남은 건 뒤처리였다.
이용수가 와이번들의 사체를 보며, 질린다는 듯 말했다.
“이거 언제 다 채취하나 싶네요. 최소 백 마리는 되는 것 같은데···”
“그거라면 제가 생각해둔 게 하나 있습니다. 우선은 50개까지만 빠르게 모아보죠.”
부족한 마석의 양은 서른네 개.
푹!
가슴을 가르고, 마석을 끄집어냈다.
대부분 3개, 이따금 4개의 마석이 나왔다.
“이제 됐네요.”
정확히 열 마리의 와이번을 도축하고 난 뒤, 마석 50개를 채울 수 있었다.
열 마리를 정리했는데도, 최소 수십여 구의 사체가 여전히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곧장 팍스를 불렀다.
[말씀하세요.]“이번에 개방할 수 있는 능력 중에 ‘상품 회수’라는 거 있지?”
[그렇습니다.]정확히는 이런 설명이었다.
◈ 상품 회수
-별도의 포탈을 열어 상품을 회수합니다. (단, 아공간에 등록된 사물에 한합니다.)
내가 주목한 것은 ‘아공간에 등록된 사물’이라는 문구였다.
원래는 출하한 물건을 도로 아공간으로 회수하는 쓸만한 능력이었다.
가격이 비싼 게 흠이었지만.
“마석도 회수가 가능할까? 이것도 아공간에 등록된 사물이기는 하잖아. 처음 각성했을 때 내게 마석을 주기도 했었으니까.”
[확인해보겠습니다.] [연산 중···]얼마간 뜸을 들인 팍스가 마침내 대답했다.
나는 주먹을 불끈 말아쥐었다.
“상품 회수, 바로 개방해줘.”
[마석 50개를 받았습니다.]나머지는 일사천리였다.
곧장 ‘상품 회수’를 발동했다.
회수의 범위는 출하 스킬의 사정거리인 10미터.
나는 수북히 쌓인 와이번들의 사체를 거닐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엄청난 장관이 펼쳐졌다.
“···세상에.”
이용수가 도무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내 머리 위로 생성된 회수용 포탈.
바로 그곳으로 탄피, 그리고 사용하고 남은 빈 탄창이 후루룩 빨려 들어갔다.
그리고···
뽁!
뽀옥!
마석들이 와이번들의 사체를 찢으며 날아올랐다.
슈우우우욱!
포탈이 마석을 빨아들였다.
마치 블랙홀처럼.
그렇게 빨아들인 마석의 양은···
자그마치 311 개에 달했다.
.
.
.
“바로 출발하십니까?”
“그래야죠.”
나는 팍스를 불러내, 상품 페이지를 살폈다.
와이번들에 의해 이용수의 트럭이 박살이 난 상태였지만, 군용 차량을 새로 출하해 타고 나갈 계획이었다.
나는 지도를 펼쳐, 목적지를 이용수에게 보여주었다.
강남 세브란스 병원.
큰누나가 근무하는 직장이었다.
세상이 요지경임에도, 분명 의료인의 사명 어쩌구를 운운하며 병원에 틀어박혀 있을 게 분명했다.
“꼭 살아 있어라. 김 씨스터 1호.”
이제 강남까지 차는 전속력으로 달릴 것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할일은 있었다.
‘마석 벌어야지.’
달리는 차 안에서 거리에 있는 괴물들을 향해 소총을 쏜다.
동시에 상품 회수를 통해 놈들의 마석을 쪽쪽 빨아들일 생각이었다.
그렇게 불러도 좋으리라.
아포칼립스의 콤바인.
그런 이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