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13)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13화(113/240)
113화 신전 부수기와 타워 디펜스 (4)
휘이이······.
머리를 쓸어 넘기는 적막.
그 가운데 놓인 것은 정체불명의 안광으로 뒤덮인 제우스의 모습이었다.
“아주 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의도하지 않게 좋은 구경을 했어.”
날렵한, 하지만 그러면서도 깊이감이 묻어나는 목소리.
조금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달라져 있었다.
찌이이이······.
찌이익.
놈이 팔을 움직였다.
그러곤 양팔과 옆구리를 관통한 기다란 창대로부터 천천히 몸을 꺼냈다.
고통이 만만치 않을 텐데도,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후우.”
자리에 남은 것은 피로 물든 세 자루의 성창뿐이었다.
놈의 양 팔과 옆구리는 너덜너덜하게 벌어져 있었지만, 무슨 수를 쓴 것인지 피가 쏟아져 나오거나 하지는 않았다.
‘출하.’
쐐애애액!
곧장 새 성창을 날려 보냈다.
5단계까지 강화된 성창이 놈의 심장을 노리고 들어갔지만······.
티이잉!
놈의 살갗을 뚫지 못한 채, 보란 듯이 옆으로 튕겨 나갈 뿐이었다.
‘······그새 위계가 올라갔다고?’
그것밖에는 설명할 도리가 없었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놈을 손쉽게 요리하던 무기였으니까.
날아들었던 공격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놈이 입을 열었다.
“반갑다. 나는 제우스라고 한다.”
간단한 소개.
하지만 동시에 종잡을 수 없는 소개였다.
내가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자, 푸른 안광을 끔뻑거린 제우스가 말을 이었다.
“이 몸의 주인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는 걸 말해 줘야겠군. 나는 본산에 속한 직계 4대손 제우스다. 이제 좀 알겠나?”
“······전혀 모르겠는데. 그럼 얘들은 뭐였는데?”
제우스와 한 차례 눈을 마주한 나는, 멀찍이 널브러져 있는 올림푸스의 신들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마찬가지로 주변을 둘러본 제우스가 은근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야······ 다차원에 넓게 흩뿌려진 올림푸스의 가맹(加盟)들이지. 우리가 자손 번식에는 나름 진심이거든.”
여전히 알 수 없었지만, 두 가지는 확실했다.
‘올림푸스’가 복잡하게 꼬인 개 족보라는 것.
그리고 이 우주에 수천, 수만의 제우스가 존재하리라는 것.
일단은 신중하기로 했다.
방계 제우스의 몸을 타고 들어온, 직계 4대손 제우스.
이 햄스터들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아직은 알 수 없었으니까.
“흠······.”
나와 이용수, 그리고 리디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제우스가 입을 열었다.
“저 친구는 마차 끄는 일을 하니 헬리오스가 좋겠고······ 저 입 매운 여인은 아테나가 제격이겠군. 어떤가? 너희도 우리 올림푸스의 일원이 되는 건? 나름 가족 같은 분위기의 좋은 일자리라고.”
올림푸스는 우리를 원하고 있었다.
남유럽의 각성자들처럼, 또 하나의 n번째 올림푸스를 만들려는 심산.
그 힘을 빌리면 하늘에서 벼락을 내리고, 바다를 가르는 것과 같은 신들의 힘을 다루게 될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미안하지만 가족 회사라면 이미 하고 있어서. 족보도 너네보다 훨씬 깔끔하고.”
힘을 빌릴 이유가 없었다.
우리는 이미 팍스FC의 힘으로 올림푸스를 찍어누른 상태였으니까.
대답을 들은 제우스가 너덜거리는 팔로 머리를 긁었다.
“······끄응. 문화의 차이를 모르는군. 그래도 이렇게 포기할 수는 없다.”
“어쩔 건데? 한 판 뜨기라도 할 거야?”
“아쉽게도 그럴 만한 상황은 못 된다. 나는 지금 그저 마이크를 빌린 것뿐이니까. 그래도······ 방법이 영 없는 건 아니야.”
제우스가 가만히 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결과······.
[올림푸스의 영역에 들어와 있습니다.] [영역효과, ‘프로메테우스의 족쇄’가 강화됩니다.]“······!?”
까드드드득!
수백 킬로그램짜리 추를 단 듯, 무거워진 발이 땅을 단단하게 파고들었다.
무겁게만 느껴지던 족쇄.
하지만 놈에 의해 강화된 뒤에는 아예 미동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눈앞의 공간이 길게 세로로 왜곡되었고, 그 중심부 터로부터 붉은색 파장이 피어올랐다.
그리고 그 결과······.
‘게이트 포탈······?’
곧 이어질 몬스터 웨이브의 통로.
그 붉은색 게이트가 눈앞에 보란 듯이 생겨났다.
눈을 마주치자, 제우스가 너스레를 떨었다.
“뭘 그렇게 놀라? 내가 만든 거 아니다. 뒷돈 조금 찔러넣었을 뿐이지.”
상공회의소가 지구에 만든다던 200개의 포탈.
제우스의 조작에 의해 그중 하나가 내 눈앞에 생겨난 참이었다.
지지지직······.
파드득!
공교롭게도, 상공회의소에 의해 예고된 시점이 다가오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새빨간 게이트.
그 시점을 똑딱거리며, 두 팔을 늘어뜨린 제우스가 말했다.
“올림푸스의 자녀가 될지 말지는 천천히 생각해 봐라. 가만히 서서 웨이브를 막다 보면 생각이 달라질 테니.”
옴짝달싹 움직일 수가 없었다.
아공간 포탈을 이용한 탈출도 불가능한 상황.
당장에 들이닥칠 저글링쯤이야 쉽게 처리할 수 있다곤 하더라도, 웨이브의 난이도가 점차 얼마나 성장하게 될지 나로서는 알 수 없었다.
‘그보다······ 내가 문제가 아니지.’
더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한국은 물론 일본과 중국, 미국과 유럽 등지에 동시다발적으로 시작될 몬스터 게이트.
나름 방비하고 왔다곤 하지만 머지않아 내 지원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올 테니까.
“그럼,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제우스는 너덜거리는 두 팔을 휘저으며 떠나갔다.
그러곤 혼절한 채, 바닥에 널브러진 올림푸스의 신들을 끌어모아, 그 위로 구름처럼 생긴 은은한 장막을 둘렀다.
곧 이어 들이닥칠 웨이브 중에도, 자신의 가맹만큼은 보호하려는 모양이었다.
“정겸 씨!”
그새 미노타우로스의 목숨을 끊어낸 이용수.
두 발이 묶였음에도, 조작 방법을 변경한 그가 기지를 발휘해 기간트를 운용했고, 멀찍이 떨어져 있던 리디아를 데리고 내 앞으로 다가왔다.
그러곤 멀찍이 떨어진 제우스와 올림푸스의 세력들을 의식하며, 떠듬떠듬 내게 목소리를 전해왔다.
“정겸씨, 제가 저놈을 처리해 보겠습니다. 그러면 족쇄도 분명······.”
“아뇨, 그래도 이건 안 풀릴 거예요. 애초에 쟤를 죽일 수도 없고요.”
마이크에 불과하다곤 했지만, 5강 성창으로도 죽일 수 없었던 제우스다.
이용수의 기간트로 잡을 수 있을 리가 만무한 상황.
더욱이, 족쇄의 원인은 그가 아니었다.
주변 곳곳에 퍼져 있는 올림푸스의 신전.
그렇게 형성된 ‘올림푸스의 영역’이 내게 족쇄를 부여하고 있었으니까.
“결국 방법은 두 가지뿐이에요.”
‘올림푸스의 영역’을 형성하는 신전들을 모두 파괴하는 것.
혹은 제우스의 말에 따라 올림푸스의 일원이 되는 것.
하지만 신전을 파괴하러 다니자니 두 발이 꽁꽁 묶인 상태였고, 난데없이 올림푸스의 휘하로 들어가는 것 또한 가당치 않은 일이었다.
“그럼 어떡하죠?”
기간트에서 머리를 내민 채, 망부석이 된 나를 걱정스레 바라보는 이용수.
하지만 아쉽게도 그의 걱정을 덜어줄 만한 시간이 없었다.
“준비하세요. 옵니다.”
붉은색 게이트 포탈이 몬스터를 토해내기 시작했으니까.
3차 자유 개척, 몬스터 웨이브의 시작이었다.
***
카가각!
카가가가각!
이용수의 기간트가 내 후방을 감싼, 임시 방편의 진형.
그 앞으로 천 마리의 저글링이 끝도 없이 밀려들었다.
콰아아아앙!
투두두두두!
다가오는 놈들을 향해 수십, 수백 발의 강화된 헬파이어 미사일을 발사했고,
이따금 빠져나오는 놈들을 이용수와 리디아가 소총으로 마무리했다.
아주 어렵지는 않은 상대.
당연하지만, 그것만으로 끝날 리가 없었다.
이건 고작 튜토리얼에 불과했으니까.
“계속해서 나오네요······.”
질린다는 듯 이용수가 말했고, 리디아 또한 이마를 부여잡았다.
저글링으로 구성된 웨이브가 끝나자마자, 1, 2, 3차 웨이브가 연달아 이어졌다.
고블린, 오크, 트롤.
마찬가지로 1천 마리를 채운 괴물들이 그 순서를 이었고, 매 단계가 거듭될 때마다 적들의 수준이 차츰 올라가는 것이 여실히 느껴졌다.
푸욱!
성창이 마지막 남은 트롤의 목을 꿰뚫을 때까지, 이렇다 할 위기는 없었다.
그저 은은한 미소를 띠며 우리를 관망하고 있는 제우스가 신경 쓰였을 뿐.
5차, 6차, 아니 10차 웨이브가 몰려온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막아낼 자신이 있었지만, 정작 문제는 우리가 아니었다.
“······한국은 괜찮을까요?”
이용수가 걱정스레 물었고, 리디아 또한 근심어린 표정이었다.
용산은 물론, 프라하에도 몬스터 웨이브가 진행되고 있을 테니까.
“······그러길 바라야죠.”
가족들에게서는 아직 별다른 소식이 없었다.
무소식을 희소식처럼 받아들일 수도 없는 상황.
여러모로 최대한 빨리 올림푸스와의 상황을 일단락 지을 필요가 있었다.
“그래도, 곧 만나게 될 겁니다.”
불안해하는 이용수와 리디아를 격려하며, 우리는 신중하게 4차 웨이브를 기다렸다.
“이상하네요. 이번 쉬는 시간은 유독 긴 느낌이······.”
그렇게, 묘한 적막이 흘러갔을 즈음.
마침내 4차 웨이브의 시작과 함께, 새로운 종류의 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하지만, 매번 천 마리씩 몰려오던 때와는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쿠웅.
쿵.
“······한 마리?”
단 한 마리뿐이었다.
지축을 울리며 걸어오는 거대한 체구의 오우거.
놈의 온몸에는 두꺼운 철판이 비늘처럼 뒤덮여 있었다.
우리는 황당함에 몸을 떨었다.
“······보스 스테이지까지 있다고?”
우어어어어어어어-!
강철을 두른 오우거가 괴성을 지르며 우리에게 달려들었다.
카아아아앙!
티잉!
이용수의 기간트가 놈의 주먹을 다급하게 막아 세웠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기간트의 양팔이 외장갑을 튕겨냈다.
꽈드드드득!
아슬아슬한 대치 상태.
하지만 균형은 명백히 오우거 쪽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이용수가 다급하게 말했다.
“시간이 없어요. 정겸 씨. 이 수준이라면 용산에 설치된 포탑도 가볍게 날려 버릴 겁니다.”
여기에만 오우거가 나타났을 리 만무했다.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는 몬스터 웨이브이니만큼, 지금쯤 팍스FC 휘하의 다른 단체들에서도 충돌이 벌어졌을 터.
3차 웨이브까지라면 몰라도, 이제 슬슬 위기에 봉착한 지역이 속출하고 있을 게 분명했다.
조금씩, 입이 말라오려던 찰나······.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주군.”
먼 여행을 떠나보냈던 카멜롯의 망령들이 마침내 내게 돌아왔다.
그들에게 올림푸스의 신전들을 찾아내라 일러둔 터였으니까.
“찾았어?”
“빠짐없이 찾았습니다. 마지막 신전 하나를 동굴 속에 숨겨두었더군요. 그것 때문에 시간이 꽤 걸렸습니다.”
“좋았어.”
마침내 걱정거리가 사라진 상황.
나는 강철 비늘로 팅팅 성창을 튕겨내는 오우거를 향해 H형강을 출하했다.
까앙!
까아앙!
까아아아앙!
한 개, 세 개, 아홉 개 혹은 그 이상까지.
떨어진 형강을 <상품 회수>로 다시금 회수해 가며, 강철을 두른 오우거를 곤죽이 될 때까지 짓이겼다.
쿠우우우······.
무너진 공사장처럼 쌓여있는 수십 개의 쇳덩어리.
그 아래로 거대한 몸집의 오우거가 싸늘하게 죽어 있었다.
짝짝.
박수 소리가 들렸다.
이 모든 광경을 목격한 제우스.
놈이 우리에게 다가와 감탄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걸어다니는 병기고가 따로 없군. 아무래도 조건을 바꿔야겠어.”
그러곤 여전히 너덜거리는 두 팔을 활짝 펼쳤다.
“단순히 일원이 되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본산의 직계로 넣어줄 테니······ 아예 내 아들이 되는 건 어떤가?”
“그딴 거 안 한다니까.”
파격적이면서도 뜬금없는 입양제의.
내 단호한 거절에, 제우스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대체 왜 고집을 부리는 거지? 어차피 넌 여기서 벗어날 수가 없어. 웨이브는 계속될 거고, 아무리 너라고 한들 언젠가는 숨이 끊어질 테니. 그에 비하면 올림푸스의 가계로 들어와 천수를 누리는 게 백번 나은 일이 아닌가?”
놈의 말대로였다.
나는 여기서 벗어날 수 없고, 웨이브에서는 점점 더 강한 괴물들이 건너오게 될 테니까.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발이 묶여 있는 한에서였다.
“이제 막 배송 출발했거든.”
지이이잉!
등 뒤로 열리는 여덟 개의 포탈.
그로부터 언데드가 된 가고일 백여 마리가 와르르 날아올랐다.
“······저건?”
제우스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가고일들의 손에는 저마다 ‘헬파이어’ 미사일이 들려 있었으니까.
망령이 된 기사들이 곳곳에 숨은 올림푸스의 신전들을 빠짐없이 확인하고 온 참.
제우스가 방비에 나서기 전, 단번에 수십 개의 신전을 폭파할 작정이었다.
“······안 돼!”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제우스가 구름 방벽을 세워 가고일들의 진로를 막아 세웠지만······.
퍼득.
퍼드득.
백여 마리에 달하는 가고일은 유유히 경로를 피해 신전이 세워진 곳곳으로 뻗어나갈 뿐이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뻐어어엉!
뻐어엉!
멀찍이 하늘로부터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폭탄이 투하되고, 하나둘 신전이 사라질 때마다, 내 발을 묶은 족쇄는 느슨해졌고, 제우스의 푸른 안광 또한 조금씩 흐릿해졌다.
상태창으로부터 올림푸스의 영역이라는 낱말이 사라졌고, 쓰러져 있던 남유럽 각성자들 또한 두르고 있던 올림푸스의 기운을 서서히 토해냈다.
이제야 비틀비틀 몸을 휘청거리기 시작한 제우스.
사라질 듯 말듯, 마지막까지 짜낸 힘으로 놈이 내게 말했다.
“아쉽게 됐구나. 다음에 꼭 데리러 오지.”
콰아아아앙!
그러거나 말거나, 주변으로는 불길이 치솟아 올랐다.
비정상적으로 성장한 히말라야산맥 곳곳으로 수십 개의 불기둥이 새카만 먼지구름을 만들어냈다.
오래된 형광등처럼 꺼질 듯한 눈빛으로 하늘을 바라보던 제우스.
땅 아래에서 솟구쳐 오르는 거센 불길을 바라보며, 놈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그렇군. 너는 프로메테우스였는가.”
“그딴 거 안 한다고······.”
풀썩.
제우스가 쓰러졌고,
차르륵!
내 발을 붙잡고 있던 족쇄 또한 감쪽같이 사라졌다.
“바로 가죠.”
곧장 이용수와 리디아를 불러세웠다.
이제 괴물들의 파도와 마주했을 가족들을 만나러 갈 시간이었으니.
신전 부수기와 타워 디펜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