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14)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14화(114/240)
114화 신전 부수기와 타워 디펜스 (5)
이곳은 용산에 있는 합동참모본부.
한강대로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선 포탈 이래로, 운양이 인사를 건넸다.
“그럼, 무사히 다시 뵙죠.”
“그러지요. 조심하시구랴.”
운양의 어깨를 토닥거리는 정겸의 아버지.
운양과 무림인들은 북경과 상해, 두 곳에서 진행될 두 개의 몬스터 웨이브를 막기 위해 서울을 떠나는 참이었다.
지잉.
정겸이 설치해둔 포탈을 타고, 도포 자락을 휘날리며 사라지는 무림인들.
일견 신비로워 보이는 그 모습을 정겸의 아버지와 김솔이 공연히 바라보았다.
“이젠 정말 다들 한 식구가 됐구나.”
아버지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멸망이 들이닥치고, 아공간 물류센터가 ‘집’으로 자리매김한 다음이다.
그들의 집과 마당은 무한정 넓어지고 있었고, 가족, 이웃이라 부를만한 존재들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었으니까.
가만히 귀를 후비고 있던 김솔이 물었다.
“다른 사람들은?”
“뭐, 다들 제 집들 지키러 갔지. 이젠 다 우리 앞마당 아니겠냐.”
정겸이 유럽으로 건너간 동안, 남은 팍스FC의 일원들은 저마다 방어해야 할 지역들을 배분했다.
팍스FC가 점유하고 있는 지역 중, 붉은색 포탈이 발견된 장소는 총 열일곱 곳.
한국과 일본이 각각 둘, 미국과 유럽이 각각 넷, 중국이 다섯 곳이었고, 마지막으로 엘븐하임에도 몬스터 웨이브의 징조가 포착됐다.
“잘들 할 거야. 다들 쟁쟁한 사람들이니까.”
비교적 사람이 적은 중국과 미국, 그 밖의 몇 개 도시에 대피령을 내렸고, 열일곱 지역 중 방어지역을 열 한 곳으로 좁혔다.
한국의 지역대표들, 그리고 각국의 각성자들이 저마다 국토를 수호하러 떠났고, 엘프와 드루이드들이 엘븐하임을 방어하는 한편, 김솔과 아버지는 용산을 방어하기 위해 남은 참이었다.
“그래서 우리끼리 막아야 한다는 거지?”
“저기 군인들이랑 성기사들이 도와준다더구나.”
정겸의 아버지가 턱짓하자, 강화된 소총으로 무장한 합참의 군인들, 그리고 커다란 ‘전투 망치’를 들쳐 멘 팍스맨 성기사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이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리고 그뿐만이 아니었다.
정겸이 떠나간 이후 홀로그램에 불과했던 포탑들 대부분이 완성됐으니까.
그 종류도 다양했다.
소총수들을 지켜줄 벙커부터, 화염방사기가 부착된 스플래시 포탑, 기둥처럼 굵직한 창을 발사하는 발리스타에, 적을 얼어붙게 만드는 특수 포탑까지.
그동안 레벨업을 거듭해온 성과가 한강대로를 기준으로 트로피처럼 세워져 있었다.
“근데 아부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어?”
김솔이 심드렁하게 물었다.
포탑이 건설되는 동안, 이미 수차례 홀로그램을 띄워 직접 맞붙어본 그녀였다.
튜토리얼 웨이브를 비롯해, 지금까지 상공회의소 시설에 의해 충분히 예고된 적수들.
합참의 군인들과 함께 실험해 본 결과, 저글링으로 시작해 고블린, 오크, 트롤에 이어지는 총 네 번의 웨이브는 다소 버겁기는 해도 시간만 충분하다면 얼마든지 해치울 수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아버지는 고개를 저었다.
“아슬아슬하게 이기는 것 정도론 안 돼. 아주 편하게 이긴 것처럼 보여야지.”
‘······왜?“
“정겸이가 보면 걱정할 거 아니냐.”
그러곤, 몇 년 전의 이야기를 다시 끄집어냈다.
“그거 기억나? 정겸이가 수능 끝나고 친구들이랑 배낭여행 간다고 나갔다가······ 너 몸살 났다고 그래서 집에 돌아왔었잖아.”
“······갑자기 그 이야기가 왜 나와?”
“걱정이 됐던 거지. 그때 집에 돌봐줄 사람이 아무도 없었으니까.”
“돌봐주긴 개뿔, 들어와서 잠만 자더만?”
딱히 병간호를 해 준 것도 아니었다.
그저 집에 돌아왔을 뿐.
오히려 다음날 김솔이 씻은 듯이 낫자, 정겸은 천하의 김솔을 걱정하다니 자신이 어리석었다며 후회막심한 표정을 지었더랬다.
“하여간 고놈 시끼는······.”
지금 떠올려도 열이 받친다며, 김솔이 한창 미간 주름을 잡으려던 찰나.
아버지가 천천히 말을 덧붙였다.
“솔아. 정겸이는 세상이 무너지건 말건 가족부터 챙길 놈이야. 실제로도 그랬고.”
“아직 철부지라 그렇지.”
“그러니 우리도 제 몸하난 스스로 지킬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정겸이가 편하게 쉬든, 밖으로 나돌아다니든 할 거 아니냐.”
공교롭게도 졸업여행을 떠났던 어느날 처럼, 이곳에는 정겸이 없었다.
곧 이어질 괴물들의 파도를 예고하며, 붉게 타오르는 게이트 포탈.
김솔과 아버지는 그 풍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카가가각!
카가각!
본격적인 웨이브가 시작됐다.
좁은 게이트 포탈을 비집고, 쏜살같이 빠져나오는 저글링 무리.
이를 향해 합참의 병사들이 강화된 탄환을 미친 듯이 쏟아부었다.
두두두두두!
두두두두!
저글링의 살갗을 찢으며, 때로는 불길을, 때로는 얼음을 피워내는 강화 탄환.
자그마치 천 마리에 달하는 저글링들이었지만, 단단한 벙커의 장갑이 병사들을 안전하게 보호해 주고 있었기에 그 발톱이 병사들을 할퀴는 일은 없었다.
케에에······.
이윽고 천 마리의 고블린이 나타났다.
총탄은 여전히 유효했으나, 영악한 고블린들은 포복하거나 죽은 동료들의 시체를 방패 삼아 차근차근 한강대로를 뒤덮어갔다.
놈들이 벙커 주변을 빼곡이 에워쌌을 즈음······.
쏴아아아!
화르르륵!
포탑이 길게 쏘아낸 화염이 고블린들을 단숨에 불살랐다.
웨이브는 곧장, 계속해서 이어졌다.
방패와 갑옷으로 무장한 오크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쿠어어어어!
더 강한 위계와 방패를 앞세워, 날아드는 화염과 총탄을 가뿐하게 막아냈다.
놈들이 한 발 한 발, 길목을 거슬러 올랐지만······.
쐐애애애액!
타아앙!
폭탄처럼 날아든 발리스타의 쇠창이 오크들의 방패를 꿰뚫는 한편, 이어진 총격이 오크들의 몸을 벌집으로 만들었다.
마지막 3차 웨이브로 나타난 트롤들도 동일한 전철을 밟았다.
총탄을 튕겨낼 만큼 질긴 가죽, 그리고 발리스타의 쇠창을 쳐낼 만큼 강한 순발력과 완력을 지닌 트롤들이었지만······.
“가자! 다 끝나간다!”
“와아아아!”
합참 본부의 두꺼운 철문을 박차고 나온 김솔,
그리고 커다란 망치를 든 팍스맨 성기사들이 트롤들의 길을 막아 세웠다.
타앙!
콰아앙!
커다란 몽둥이와 성기사들의 망치가 비등비등하게 뒤엉키는 듯했으나······.
포탑에서 뿜어져 나온 냉기가 트롤들의 몸을 굼뜨게 만들었고, 연이어 날아든 주먹과 망치에 무두질이 된 트롤들이 피를 토하며 납작하게 죽어갔다.
피 칠갑이 된 저글링과 검게 그을린 고블린, 온몸이 벌집처럼 뚫린 오크들과 푸른 반죽이 되어 버린 트롤들까지.
정겸의 가족과 팍스맨들로 이루어진 방어선은 강고했고, 그 결과 형형색색의 사체들이 한강대로를 빼곡하게 장식했다.
“후우······.”
김솔이 숨을 몰아쉬었다.
마지막 남은 트롤 한 마리를 고스란히 깔아뭉갠 참이었다.
좀처럼 괴물을 뱉어내지 않는 게이트 포탈을 바라보며, 천천히 평화로운 적막을 만끽하려던 찰나,
쿠웅.
쿠웅.
불길한 발걸음이 붉은색 포탈 너머로부터 들려왔다.
이윽고 나타난 것은 온몸을 비늘 갑옷으로 두른, 거대한 오우거였다.
다시 몸을 일으킨 김솔이 퉤하고 침을 뱉었다.
“······하여간 그러면 그렇지.”
잊고 있었다.
세상일이란 것이 그리 쉽지만은 않다는걸.
멸망이 들이닥치고, 정겸과 재회한 이후로 오히려 줄곧 잊고 있었던 감각이었다.
“같이 세지면 좀 좋아? 지 혼자 사기 스킬 얻어 가지곤.”
거의 모든 부분을 정겸에게 기대고 있었다.
아공간 물류센터의 복제 능력이 더없이 풍족한 자원을 보충해 주었고, AI팍스가 공격부터 보급까지 자잘한 수고를 도맡아 해결해 주었으니까.
타앙!
탕!
오우거는 간지럽지도 않다는 듯, 발리스타의 쇠창을 튕겨냈다.
길게 방사된 화염을 귀찮다는 듯 흩어 버렸고, 성기사들의 망치 또한 별달리 힘을 쓰지 못한 채 겹겹이 쌓인 쇠 비늘을 파르르 울릴 뿐이었다.
“······빡세네.”
정겸이 사라지자마자, 금세 다시 멸망으로 물들어 버린 세상.
착잡한 마음을 뒤로한 김솔이 발돋움했다.
콰득!
포탑의 외벽을 박차 날아올랐고,
오우거의 팔뚝에 올라타, 그 거대한 몸체를 산처럼 타고 올라갔다.
쐐애애애액!
타아앙!
몸에 달라붙은 벌레를 쫓듯, 육중하게 날아드는 오우거의 손길.
하지만 무공서를 통해 얻은 보법을 밟고, 배리어로 그 충격을 상쇄시켜가며 빠르게 움직임을 이어 나갔다.
“빈틈이 없네.”
오우거의 몸 곳곳을 돌아다닌 김솔이 포기했다는 듯 중얼거렸다.
그러곤 오우거의 목덜미를 덮은 강철 비늘을 움켜쥐었다.
꽈드드드득······.
두꺼운 나무뿌리처럼 좀처럼 빠져나오지 않는 비늘.
쿠어어어어어어!
고성이 들려왔고, 벼락처럼 떨어지는 손바닥을 몇 번이고 피해냈다.
그녀를 떨어내기 위해 오우거가 미친 듯이 몸을 흔들었지만······.
콰득!
악착같은 힘을 발휘해 강철로 된 비늘을 찌그러뜨렸고,
둥글게 말린 비늘을 손잡이처럼 움켜쥐었다.
더 이상 어깨에 붙은 김솔을 떼어낼 수 없다는 결론에 다다른 오우거.
전략을 수정한 놈이 대뜸 한강대로를 내달렸다.
두두두두두두!
타앙!
퍼어엉!
총탄이, 쇠창이, 폭탄이 날아들었지만, 그 무엇도 오우거의 비늘을 뚫지 못했다.
쿵쿵!
쿵쿵!
자신을 공격하는 벙커와 포탑들을 무시한 채, 맹렬히 돌진을 이어 나가는 오우거.
놈이 합참 본부로 향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은 김솔이 아연실색했다.
“······거기다 박으면 곤란한데?”
명실상부 팍스FC의 주요 거점 중 하나였다.
분명 머지않아 정겸이 돌아오겠지만, 이대로라면 반파된 채 덩그러니 놓여 있는 본부 건물을 보게 될 터.
웨이브를 말끔하게 처리해 녀석의 걱정을 지워 버리자던 아버지의 구상과는 달라도 너무나 다른 결과였다.
“안 되지. 안 돼.”
자동화된 물류센터처럼, 모든 일이 쉽게 쉽게 보이도록 해야 한다.
자고 일어나면 놓여 있는 마법 같은 택배 상자처럼, 세상이 그렇게 저절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이게 만들어야 한다.
무엇보다······.
“······세상이 요지경인데, 집구석이라도 멀쩡해야지.”
김솔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야 철부지 김정겸이 걱정 없이 밖을 쏘다닐 테니까.
쐐애애애액!
바람에 나부끼는 짧은 머리칼.
김솔이 다시금 힘을 주어 강철 비늘을 뒤집었다.
까드득!
그 아래로 울긋불긋한 오우거의 살점이 드러났다.
곧장 허리춤에서 꺼낸 단검을 찔러넣어 봤지만······.
콱콱!
오우거의 척력을 뚫어낼 수는 없었다.
“뭐가 이렇게 단단해?”
모골이 송연해졌다.
얼마 전 7위계를 달성한 김솔.
그녀의 공격이 통하지 않는다는 건, 오우거가 더 높은 위계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쐐애애애액!
합참 본부의 성채가 가깝게 다가오고 있었다.
머지않아 충돌이 예견된 상황.
그러던 중, 김솔이 발견한 것은······.
“······아빠?”
직접 포탑에 설치된 발리스타를 당겨, 오우거에게 성창을 겨누고 있는 아버지였다.
각성 능력을 이용해 건설한 포탑이었기에, 정겸이 강화한 성창과는 규격이 맞질 않았다.
자동 발사가 불가능하거니와, 명중률이 심하게 떨어진다는 걸 함께 확인했던 터.
하지만 아버지는 수동으로 시위를 당기며 억지로 오우거를 겨냥하고 있었다.
“아오!”
그녀가 재빨리 움직였다.
암벽등반을 하듯 오우거의 목을 타고 옆으로 넘어갔고, 목젖 부분을 덮은 비늘을 거칠게 움켜쥐었다.
쿵! 쿵!
오우거의 움직임에 따라 뒤틀리는 시선.
들이닥친 멀미를 가까스로 몰아낸 김솔이 손끝에 힘을 불어넣었다.
그리고 그 결과······.
콰아아앙!
증폭된 ‘배리어’가 폭발을 일으켰고, 김솔이 비늘과 함께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서둘러 뿜어낸 장막으로 충격을 흡수한 김솔.
그녀가 목격한 것은······.
“······잡았다.”
성창에 의해 목이 꿰뚫린 채, 허물어져가는 거대한 오우거의 모습이었다.
***
고작 10분이 지났을 즈음이었다.
그녀의 예상대로, 오래되지 않아 정겸이 용산으로 돌아왔다.
방금까지 전투를 치르다 온 것인지,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는 그.
싸늘하게 죽은 오우거 위에 앉아, 충분히 숨을 고른 김솔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뭘 그렇게 허겁지겁 들어오냐? 사내새끼가 간이 콩알만 해가지고.”
정겸이 그녀의 등 뒤로 놓인 오우거의 사체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러곤 그제야 안심이 된다는 듯, 한숨을 몰아쉬었다.
“뭐야, 어떻게······ 잘 잡았네?”
정겸의 얼굴에서 진한 안도감이 묻어나왔다.
걱정을 끼치지 말자던, 아버지의 바람이 달성된 순간.
하지만 어쩐지 열이 뻗쳐 오른 김솔이 힘이 다 빠진 주먹으로 정겸에게 알밤을 쥐어박았다.
빠악!
“아!”
“이눔 시끼가 지금 몇 시인데 이제 들어와?”
“갑자기 왜 이래?”
김솔이 모른 척 덧붙였다.
흥건하게 흘렸던 땀이 그새 다 말라 있었으니까.
“몰라 이 새끼야.”
신전 부수기와 타워 디펜스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