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15)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15화(115/240)
115화 신전 부수기와 타워 디펜스 (6)
슈욱!
곧장 포탈을 타고 넘어갔다.
용산에서 가족들과의 해후를 마쳤지만, 다른 지역에서 몬스터 웨이브는 여전히 진행 중이었으니까.
서울, 상하이, 엘븐하임 등등은 어렵지 않게 웨이브를 막아냈지만, 부산, 시카고, 오사카 같은 대다수의 도시에서는 아직 치열하게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정겸 씨!”
“됐다! 이겼어!”
곧장 포탈을 타고 넘어가 화력을 지원했고, 내가 나타나자마자 가까스로 웨이브를 막고 있던 각성자들이 쾌재를 내질렀다.
쐐애애액!
까아앙!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괴물들의 파도.
성창을 발사해 트롤들의 살갗을 꿰뚫었고, 형강을 쏟아 거대한 오우거를 반죽처럼 눌러버렸다.
오래 지나지 않아, 일행들이 지키던 열한 곳의 전투를 모조리 승리로 이끌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끝이 아니었다.
“아예 방치된 구역도 있다는 거죠?”
“네. 인구도 적고, 특별히 중요한 시설이 있는 곳도 아니라······ 물론 사람들은 모두 대피시켜둔 상태입니다.”
일행들이 병력을 집중하기 위해, 아예 텅 비워둔 남은 여섯 개의 도시.
그 나머지까지 모조리 청소를 마친 뒤, 나는 <3차 자유 개척>의 방식을 나름대로 유추할 수 있었다.
“꼭 저들끼리 같은 편은 아니었구나.”
1차, 2차, 3차로 나뉘어 들어오는 몬스터 무리는 완전히 별개의 세력들이었다.
예컨대 웨이브를 타고 들어온 고블린들이 점령에 성공했다면, 다름 아닌 그들이 다음 차례로 들어오는 오크들을 방어해야 하는 형태.
대부분은 주변이 쑥대밭이 된 채, 오우거 한 마리만 덜렁 남아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따금 트롤이나 오크들이 최종 승리자가 된 곳도 있었다.
“그래도 이제 나가주셔야지.”
트롤이 남든, 오우거가 남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모두 하나같이 내가 던진 성창에 머리가 꿰뚫린 채, 생을 달리했으니까.
그렇게, 몬스터 웨이브는 잠시 휴식기에 접어든 듯 보였다.
아공간에 수용된 상공회의소 시설을 통해서도, 당장에는 아무것도 조회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레드 게이트, 그러니까 붉은색 게이트는 여전히 남아있었다.
언제든 또다시 새로운 적들이 밀려들리라는 사실을 짐작게 한 채.
.
.
.
몬스터 웨이브와는 별개로 한 가지 일이 더 남아 있었다.
리디아를 따라 넘어갔던 중부 유럽.
산맥 곳곳에 깔린 신전들을 파괴하는 한편, 올림푸스의 신을 코스프레하는 컨셉충 각성자들을 박살 낸 참이었으니까.
나름 멸망한 세상에 적응한 각성자들답게, 올림푸스의 각성자들은 제법 쓸 만한 장비들을 가지고 있었다.
“차례로 아스트라페······ 트라이던트······ 아이기스······ 이런 이름인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볼 수 있었던 거창하기 짝이 없는 이름들.
하지만 실상은 남유럽 각성자들이 괴물을 처치하던 중 얻은 전리품에, 제우스 4센지 4센티인지 하던 놈이 특수한 효과를 부여해준 아이템에 불과했다.
“······이젠 하다 하다 아이템까지 코스프레냐.”
그 배경이 어떠했건, 세 가지 모두 나름 ‘에픽’ 등급의 아이템이었다.
부여된 효과를 면밀히 살펴본 나는, 나름 어울리는 동료들에게 아이템을 배분했다.
“받으시고······.”
“감사합니다, 주군!”
전격 능력을 증폭시켜주는, ‘아스트라페’라는 이름의 피뢰침처럼 생긴 단검은 전기 채찍을 사용하는 카멜롯의 기사, 라이오넬에게 넘겼고,
“또 받으시고······.”
“허허, 이거 재밌는 물건이군요. 꼭 마쎄라티 생각이 나는데요.”
지나치게 길고 두꺼웠던 탓에, 정작 포세이돈에게는 기우제 지팡이로 쓰이던 ‘트라이던트’를 기간트를 운용하는 이용수에게 넘겼으며,
“거듭 받으시고······.”
“오, 미친 개꿀!”
세로로 길쭉한 커다란 타원모양의 방패, ‘아이기스’를 팍스FC의 전담 탱커 김솔에게 넘겼다.
어린이날 선물이라도 받은 듯, 깡충깡충 뛰며 한껏 들뜬 세 사람.
옹기종기 모여 기쁨을 나누던 중, 이용수가 내게 다가와 물었다.
“정겸 씨, 그러고 보니······ 그 올림푸스 각성자들은 어떻게 됐습니까?”
“아 걔들이요?”
아이템의 원래 주인들이 궁금해진 모양.
나는 입술을 매만지며 대답했다.
“지금쯤 술 깨고 있을 거예요.”
***
“허어억!”
깊은 잠에 취해있던 제우스.
화들짝 정신을 차린 그가 자신의 팔과 복부를 연신 더듬었다.
“······살아있네?”
분명 팍스FC와 전투를 벌이던 중, 놈이 쏘아낸 창에 몸통이 꿰뚫렸던 터.
하지만 그새 치료를 받은 것인지, 상처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
“여기가 어디지?”
온통 황량한 논밭이었다.
주변에는 다른 올림푸스의 각성자들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었고, 하나둘 이마를 부여잡고 미간을 구기며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제우스가 옆에 쓰러져 있던 포세이돈을 흔들어 깨웠다.
“이, 일어나봐.”
“으으······ 이게 무슨 냄새야?”
은은하면서도 구수한 향기.
농촌 특유의 거름 냄새가 그들에게 밀려들고 있었다.
단연코 살면서 전혀 맡아본 바가 없는 냄새였다.
“머리가······ 너무······.”
“어디 물 없나? 죽겠네, 진짜······.”
이들은 전례 없는 취기를 경험하고 있었다.
올림푸스가 부여해준 ‘신의 육체’를 믿고 특제 ‘넥타르’를 걱정 없이 입에 털어 넣었던 그들.
하지만 신전이 모조리 파괴되며 연약한 인간의 육신으로 돌아왔고, 상상조차 하기 어려운 강력한 숙취가 전신을 찍어누르고 있었다.
“아으으······.”
그렇게 바닥에 널브러져, 지렁이처럼 흙바닥에 볼을 부비고 있을 즈음······.
“오, 일어났구나?”
누군가 나타났다.
올림푸스의 각성자들은 두 눈을 의심했다.
‘엘프······?’
판타지 영화에서나 보던 고귀한 엘프가 그들 앞에 서 있었으니까.
다만, 묘한 이질감이 드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구수한 느낌이 들지? 앞니는 얻다 팔아먹은 거고?’
왜 자신들이 흙바닥에 나뒹굴고 있는지, 왜 갑자기 엘프가 나타났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올림푸스의 각성자들이었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엘프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내 이름은 에단이야. 엘븐하임의 전사장을 맡고 있지. 정겸 씨로부터 너희에 대한 처분을 일임받았어.”
각성자들은 그제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들이 팍스FC와의 전쟁에서 패배했다는걸.
꿈처럼 몽롱하기만 했던 어젯밤의 기억이 생생한 현실로 다가온 순간이었다.
‘그렇지, 우리 졌었구나.’
눈앞에 들이닥친 아득한 현실.
무슨 처우를 받게 될지는 차마 가늠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었다.
‘······무조건 진다.’
눈앞의 엘프가 자신들보다 훨씬 더 강하다는 사실을.
그들은 올림푸스의 힘을 상실한 상태였으니까.
맞서 싸우는 것은커녕, 도망치는 것조차 가능할지 확신할 수 없는 상황.
불안한 표정으로 처분을 기다리는 그들이었지만······.
에단은 어린아이처럼 맑은 미소로 그들의 마음을 녹여주었다.
“근데 너희······ 온몸에 독소가 가득하네. 이것부터 정화해야겠는데?”
‘아아······!’
앞니 빠진 해맑은 미소로 ‘정화’를 제안하는 엘프.
심각한 숙취로 인해, 당장이라도 속을 게워낼 듯한 올림푸스의 각성자들이 화색이 되었다.
“조금만 기다려.”
에단은 수풀이 우거진, 2-30미터가량 떨어진 수풀로 다가갔고, 거기서 식물의 줄기를 따 길게 길게 엮어나가기 시작했다.
비록 그 모양새가 엉성하기는 했으나······ 나름 아름다운 기예라 할 수 있었다.
“그래, 뭐가 됐든 엘프들이야.”
“생각보다 친절한데?”
“휴! 살았다, 진짜 죽을 뻔했는데······.”
올림푸스의 각성자들은 저마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그들에게 날아든 것은······.
촤악!
“아악!”
세계수 줄기를 길게 엮어 만든, 에단의 특제 ‘채찍’이었다.
“자자! 얼른 움직이자! 땀 흘리는 것만큼 독소 빼는 데 좋은 게 없거든.”
“······!”
여전히 앞니 빠진 미소를 하고있는 에단.
각성자들의 시선 속, 그 미소가 양옆으로 울렁거리며 기이하게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마, 말도 안 돼······.’
“너는 돌 큰 거 보이면 주워서 밖으로 빼내! 그쪽 너! 너는 여기 와서 묘목 심어보고.”
촤악!
촥!
“아아악!”
아찔한 타격에 허리가 활처럼 휘는 올림푸스의 각성자들.
그들의 이마에서는 구슬땀과 같은 ‘독소’가 맺혀 나오기 시작했다.
“저기 푯말 보이지? 오늘 안으로 저기까지 다 심는 거야.”
“저, 저걸 다 말입니까?”
촤악!
촤악!
구렁이처럼 자유자재로 채찍을 휘두르는 에단.
그가 웃는 얼굴로 그들에게 대답했다.
“정겸 씨가 그러시더라구. 너희가 ‘일’이라는 걸 제대로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고······ 너희가 그렇게 불행한 환경에서 자란 줄 미처 몰랐지 뭐야······ 자, 내가 차근차근 알려줄 테니까······.”
사실이 그랬다.
올림푸스의 일원들 모두 부유한 재벌 3세 출신들로, 살아생전 손에 물 한 방울 묻혀본 경험이 없었으니까.
낮에는 학교 다니되, 밤에는 광란의 파티를 벌이는 것이 그들이 가지고 있던 유일한 삶의 형태였다.
“아, 그런 이야기도 하셨어. 신이 되기 전에 사람이 먼저 돼야 한다고······.”
촤아악!
에단이 채찍을 휘두르며 덧붙였다.
“아악! 인권······! 인권은요······!”
“하하, 무슨 소리야. 사람이 돼야 인권이 있지!”
그들은 깨달았다.
녹읍으로 둘러싸인 구수한 논밭.
그 위에 떠 오른 화창한 미소 속에 지옥이 숨겨져 있었음을.
***
이곳은 엘븐하임의 갈라돈 의회.
창고로 쓰던 공간을 급하게 치웠더니, 취조실 느낌이 물씬 났다.
“들여보내.”
덜컹!
방 안으로 들어온 것은 한때, ‘제우스’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청년이었다.
온몸이 땀으로 흥건하게 젖어 있는 한편, 고된 노동으로 인해 두 다리가 당장에라도 무너질 듯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끼이익!
친절이 맞은편 의자를 꺼내주었고, 한껏 의기소침해진 ‘제우스’가 다소곳이 의자에 앉았다.
“그래, 원래 이름이 뭐였다고······?
“제······ 제리코입니다.”
제우스가 아닌, 제리코.
나름 ‘제’ 씨라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었다.
“헉!”
그가 두 눈을 휘둥그레 떴다.
테이블에는 따끈따끈한 로스트 치킨과 볼로네제 스파게티가 모락모락 김을 피워올리고 있었고, 내 쪽에는 뜨겁게 달군 뚝배기에 뽀얀 국물의 설렁탕이 놓여있었다.
숟가락으로 딱 맞게 토렴 된 밥알을 건져 올리고, 그 위로 싱싱한 깍두기를 얹었다.
입안 가득 채운 달큰한 한 입.
아삭아삭하게 씹히는 깍두기가 설렁탕의 기름기를 말끔하게 날려버렸다.
“너한테 물어볼 게 있어서 말야.”
“어······ 어떤 거죠······?”
“너희가 속해있던 올림푸스. 대체 뭐하는 단체지?”
나를 꼭 데리러 오겠다던 제우스 4센티.
또다시 만남을 예고한 만큼, 놈들의 정체를 파악해둘 필요가 있었으니까.
킁킁 새콤한 스파게티 냄새를 맡으며, 제리코가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정확히는 단체가 아닌······ ‘사업체’입니다. 저희도 고작 가맹으로 속해있던 것뿐이라 아주 잘 알지는 못하지만······.”
“사업체?”
“예, 보통은 저희 같은 가맹 단체를 늘려서······ 마석을 가맹비로 받아 가는 식입니다. 대신 보셨다시피······ 올림푸스와 관련한 이런저런 능력을 지원해주고요.”
방법이 달랐을 뿐, 역시 다른 침략자들처럼 마석을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각성자들을 성장시키고, 지구에서의 영역을 확대하면서 점점 더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 터.
‘그래서 그렇게 날 데려가려고 난리를 피웠구나.’
다른 이유가 없었다.
내가 올림푸스의 일원이 된다면, 어마어마한 가맹비를 뜯어낼 수 있었을 테니까.
물론 내가 놈들의 성전을 깡그리 날려버린 탓에, 더 이상 지구에서는 장사를 못하게 되었지만.
올림푸스가 거대한 ‘사업체’라는 것.
놈들이 지구 곳곳에 ‘가맹점’들을 세워 마석을 거둬들이려 한다는 점까지 확인했지만, 아직 한 가지 신경 쓰이는 것이 남아 있었다.
“일단 거기까지는 알았고······, ‘프로메테우스의 족쇄’인지 뭔지 했던 거. 그건 대체 뭐야?”
꽤 위협적으로 느껴졌던 족쇄였다.
유럽에 깔린 성전을 빠짐없이 파괴할 때까지, 아공간 포탈을 넘나들 수 없었으니까.
저도 모르게 스파게티에 시선을 두고 있던 제리코.
녀석이 화들짝 놀라 대답했다.
“그, 그건······ ‘사업체’를 통해 발휘할 수 있는 효과입니다. 일종의 ‘필드 효과’ 같은 거죠. 사업체의 규모가 클수록, 거기에 속한 가맹들의 힘이 강할수록 점점 더 효과가 증폭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이놈들이 다짜고짜 프라하에 신전부터 건설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올림푸스의 ‘필드 효과’가 있다면 한층 더 유리한 싸움을 벌일 수 있었을 테니까.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제우스, 아니 제리코의 응큼한 속내.
나는 놈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빠악!
“아악!”
채찍을 주었으니, 이제 당근이었다.
나는 스윽 녀석의 앞으로 스파게티 그릇을 밀어 넣으며 마지막으로 물었다.
“그 사업체라는 거. 어떻게 만드는 건데?”
“마, 만드시게요?”
“묻는 말에나 대답해.”
관심이 생겼다.
어느덧 100개가 넘는 산하 단체를 거느린 팍스FC.
하지만 사업체가 아닌 탓에, 필드 효과 같은 이점을 누리고 있지는 못했으니까.
‘어떤 효과가 주어질지는 모르지만······.’
제리코는 ‘필드 효과’가 사업체의 성격에 따라 결정된다고 덧붙였다.
팍스FC의 무한한 잠재력을 감안한다면, ‘프로메테우스의 족쇄’ 이상의 강력한 효과를 기대해볼 만할 터.
간단한 상상이었다.
사업체가 된 팍스FC가 지구 전체를 포탈로 뒤덮어버린다면?
이로 인해 전 지구에 팍스FC의 ‘필드 효과’가 적용된다면?
‘어쩌면······.’
정말 가능할지도 몰랐다.
지구를 난공불락의 성읍으로 만들어내는 일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