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16)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16화(116/240)
116화. 정복 전쟁 (1)
“허업······ 후웁······!”
제리코가 허겁지겁 입 안으로 뜨끈한 스파게티를 밀어넣었다.
입 사이로 모락모락 새어나오는 뿌연 연기.
한창 입을 오물거린 녀석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일단은······ 조직 구성이 체계적이야 해요. 올림푸스만 해도 보기보다 나름 짜임새가 있었거든요. ‘본산’이 있고, 그 아래 바로가 저희 같은 ‘가맹 단체’, 또 밑으로 내려가면 지역 신전이랑 소속원들, 이런 식이었죠.”
“그거야 뭐.”
팍스FC를 ‘사업체’로 만들기 위한 첫 걸음.
크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이미 팍스FC 휘하에는 100여 개 이상의 산하 단체가 소속돼 있었고, 나름 지역별로, 세력별로 구별도 잘 되어 있는 상태였으니까.
물론 좀 더 체계적인 느낌을 주기 위해, 전반적인 명칭은 통일할 필요가 있었지만.
“그 다음은······.”
진짜 본론은 다음이었다.
체계적인 이름으로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사업체’.
다음으로는 그 사업체가 가지고 있는 내실을 보여주어야 했으니까.
“이름이 사업체인 것처럼······ 매출이 있어야 해요. 즉, 돈을 벌 수 있어야 한다는 거죠.”
상공회의소다운 조건이었다.
영리 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단체.
그것은 놈들이 다차원 전체에 부과하고 있는 일종의 지상명령에 다름이 아니었으니.
사업체에게 요구되는 그러한 영리 활동의 목표를, 제리코가 다시 한번 간단하게 정리해주었다.
“팍스FC만의 확실한 사업 아이템이 있어야 해요.”
올림푸스에게는 그게 있었다.
놈들은 유럽 곳곳에 신전을 세워 신도들을 모집하는 한편, 그들의 신앙심을 자원으로 삼아 마석을 대신 벌어다 줄 ‘신’을 만들어냈으니까.
익숙한 비유를 하자면, 일종의 매니지먼트 사업이라고 봐도 무방할 터였다.
<스타 올림푸스>, <올림푸스 101>, 어쩌면 그런 이름으로 불러도 좋을.
팍스FC만의 사업 아이템.
이것만으로도 고민이 길어질 터였지만, 그 다음도 문제였다.
“그래서 그 다음은 뭔데? 사업 아이템을 찾으면 짠하고 사업체가 되어 있는 거야?”
“헤헤······ 그건 저도 잘······ 아시다시피 저희도 일개 가맹이었을 뿐이라······.”
“······.”
민망하다는 듯, 뒤통수를 긁는 제리코.
나는 가만히 책상을 탕탕 두드렸다.
낌새를 챈 것인지, 제리코가 황급히 스파게티를 흡입했고, 로스트 치킨의 닭다리를 집어들어 미친 듯이 입에 쑤셔넣었다.
덜컹!
그 사이,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에단이 들어왔고, 구릿빛 팔뚝을 앞세워 제리코를 거칠게 끌어냈다.
“이만 가지. 밭일이 아주 많이 남았어.”
“자, 잠깐만요! 형님! 형님······!”
지이익.
십일 자 모양의 스키드 마크를 남기며 사라지는 제리코의 두 발.
남은 건 어두운 적막뿐이었다.
***
제리코와의 대화를 마치고 용산으로 돌아온 나.
한강대로를 기준으로 싸늘하게 죽은 괴물들의 사체를 둘러보며, 나는 깊은 고민에 빠졌다.
“······사업 아이템이라.”
그게 당면한 과제였다.
구체적으로 어떻게 사업체를 설립할 수 있느냐의 문제를 떠나, 제리코의 말마따나 확실한 사업 아이템을 보유하고 있어야 했으니.
“따지자면 많기는 한데······.”
수십 종류의 사업 아이템이 후보로 떠올랐다.
아공간 포탈을 이용한 유통업,
아버지와 팍스맨 기술자들을 동원한 토목 건설업,
이용수와 운전 각성자들을 앞세운 운송업,
물류센터의 무한 재고를 활용한 제조업,
프레시 센터에서의 식품업,
훈련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 교육사업,
마지막으로 엘프들의 파멸적인 재능을 앞세운 문화산업까지.
“······마지막은 빼자.”
실로 다방면으로 활약하고 있는 팍스FC였지만, 여기에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모두가 인간들의 차원에서 도움이 되는 거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상공회의소가 인정할 만한 사업 아이템을 확보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다차원 전체에 통용될 수 있는 사업이어야 한다는 뜻.
본디 전쟁이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니던가?
지구가 타차원들의 침략을 극복하고, 그 이상의 압도적인 전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놈들보다 더 많은 자본을 갖춰야만 했다.
다름아닌 ‘마석’이라는 이름의 자본을.
합참본부 옥상에 선 채, 이제는 싸늘한 바람만이 나부끼는 한강대로를 바라보던 나.
“음?”
불현듯, 옥상에 또 다른 누군가 있다는 걸 발견했다.
가만히 주시해보니, 과연 땅딸막한 키의 난쟁이가 대로를 보기 위해 깡충깡충 제자리에서 뛰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나는 성큼 다가가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쿠퍼!”
“아, 오셨소?”
그는 드워프, 쿠퍼였다.
몬스터 웨이브가 종료됐다기에 직접 보러 나온 모양.
내가 인사를 건넸음에도, 그는 줄곧 대로변에 늘어진 괴물들의 사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에휴 아까워라······ 아까워.”
“아깝다니요?”
아쉬움이 뚝뚝 묻어나오는 쿠퍼의 표정.
한숨을 길게 내쉰 그가 내게 대답했다.
“부산물 말이오. 저게 다 자원이고 돈이거든······ 뭐, 그림의 떡이긴 하지만······.”
“부산물이라면······ 괴물의 사체를 말하는 겁니까?”
“그렇지요. 저기에 뭐가 더 있소?”
지금껏 생각해보지 않은 문제였다.
썩어 문드러지며 파리 몰이나 했던 것이 고작이었던 괴물들의 사체.
그게 박테리아의 먹이나, 땅 거름 이상의 자원이 될 수 있으리라곤 미처 상상해보지 못했으니까.
“사체를 어디다 쓰려고요?”
“물론 버리는 게 대부분이긴 합니다. 대신 일부 장기나 뿔, 가죽 같은 것들이 장비를 제작할 때 꼭 필요할 때가 있소. 뭐, 꼭 대장간에서만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나 같은 쇠쟁이들이 떠올리는 쓸모야 그게 우선이지.”
괴물들의 사체를 아이템 재료, 혹은 그밖의 자원으로 사용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런 만큼, 가만히 발을 동동 구르는 쿠퍼의 모습이 의아할 따름이었다.
“그럼 가서 채취하면 되잖아요?”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소. 정확한 지점에, 정확한 타이밍에 채취하질 않으면 재료의 효과가 사라져버리거든. 보통은 백 번에 아흔아홉 번은 실패하는 작업이라······ 숙련된 전문가가 아닌 이상 건드리지 않는 게 보통이오. 괜히 몸만 상하고 건지는 것도 없거든.”
“그렇군요······.”
그게 쿠퍼가 언감생심으로 괴물들의 사체들을 바라보고 있는 이유였다.
잠시나마 부산물을 이용한 사업 아이템을 고민했던 탓에, 이젠 나 또한 비슷한 처지가 되었지만.
“후우······.”
“후······.”
무겁게 내려앉는 실망감과 탈력감.
그렇게 쿠퍼와 함께 턱을 받친 채, 멍청하게 한강대로를 내려다보고 있을 찰나,
“······저건 또 누구지?”
누군가가 트롤의 사체로 접근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저 사람은 분명······.”
틀림없었다.
엘븐하임의 거름밭에서 시원하게 볼일을 처리했던 아발론 청년.
그가 몇 사람의 아발론 사람들을 이끌고 한강대로로 향하고 있었다.
마침내 트롤과 오우거에 사체에 다다른 그들은······.
“뭐, 뭐야?”
슈와아악!
대뜸, 괴물들의 사체를 향해 칼을 휘둘렀다.
그 중심에 그림 그리듯 십자 형태로 그려진 빗금.
가운데 모인 점을 기준으로, 아발론 사람들이 저마다 긴 송곳과 칼날을 박아넣기 시작했다.
“트, 틀림없소. 저건 분명······!”
드워프, 쿠퍼가 탄성을 내질렀다.
아발론 사람들이 하고 있는 건 아무리 봐도 ‘도축’이었으니까.
신들린 듯,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칼과 송곳을 휘두르는 그들.
놀랍게도 사체에서는 단 한 방울의 피도 새어나오지 않았고, 바닥에는 반듯하게 잘린 살점과 앙상한 뼛조각, 그리고 몇 개의 장기들이 바둑알처럼 질서정연하게 놓여있었다.
“부산물을 채취하는 거요. 맙소사! 전문 발골사들이 여기 있었다니······!”
모르는 눈으로 보기에도, 아발론인들의 실력은 탁월했다.
툭툭.
두드린 것만으로도 오크들의 갑옷이 스르르 벗겨졌고,
슈컹! 스윽!
이음새를 찔러넣을 때마다, 강철 오우거의 비늘이 하나씩 뜯겨져 나왔다.
그렇게 머지않아 우리가 보게 된 것은······.
“세상에.”
산더미처럼 쌓인 몬스터들의 부산물.
그러니까······ 팍스FC의 사업 아이템이었다.
.
.
.
곧장 그림이 그려졌다.
앞으로도 숱하게 이어질 몬스터 웨이브.
레드 게이트마다 방어시설과 병력들을 배치해둔다면, 앞으로도 꾸준히 괴물들의 부산물을 확보할 수 있을 테니까.
“대단한 사람들이구만. 우리로서도 선뜻 엄두를 못 내는 일인데······.”
아발론 사람들의 솜씨를 여지없이 목격한 쿠퍼가 혀를 내둘렀다.
“아까 이래저래 쓸모가 많다고 했었죠? 팔 수도 있고.”
“물론이요. 아이템의 성능을 결정하는게 재료뿐만은 아니지만······ 아무쪼록 저 부산물들이 꼭 필요한 재료라는 건 부정할 수가 없지. 우리처럼 제작에 진심인 차원에 갖다 팔아도 될 테고······ 뭣하면 상공회의소 쪽에서 직접 매입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고 들었소.”
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 부산물이 ‘사업 아이템’이 될 수 있다면, 팍스FC를 사업체로 만들고, 더 나아가 지구 곳곳에 강력한 필드 효과를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
“부산물이 제법 돈이 되는 물건이라면······ 아예 아공간에 넣어 복사하는 건 어떨까요?”
부산물을 가만히 바라보던 내가 쿠퍼에게 물었다.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다.
마석을 모아 아공간 8레벨에 다다른다면, 부산물을 집어넣어 복사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쿠퍼는 고개를 저었다.
“당장에는 좋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부산물의 종류는 널리 알려진 것만 100여 종이 넘소. 여기 모인 건 고작해서 대여섯 개뿐이지.”
“그 말씀은······.”
“아이템의 세계가 실로 오묘해요. 절대적인 우위란 것이 없는 상성의 세계라, 같은 종류의 무기가 많아질수록 같이 약화되기 마련이거든. 그리고 점점 더 좋은 부산물들이 많이 나올 텐데······ 지금 능력을 써버리면 아깝지 않으시겠소?”
간단한 이야기였다.
가위바위보에서 가위만 팔아먹으면 당장은 좋을지 몰라도 가위가 똥값이 된다는 소리.
그렇다고 가위바위보 세 개를 골고루 아공간에 담자니, 부산물의 종류가 100여 개가 넘어가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쿠퍼는 한 가지 가정을 추가로 덧붙였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내가 모든 종류의 부산물을 수집했을 경우를.
“모든 부산물을 수집한 뒤에, 그걸 아공간에 넣어 무한으로 찍어내게 된다면······ 어쩌면 정말이지 이 우주에선 신과 같은 존재가 될지도 모르겠구만.”
당장은 부산물을 아공간으로 수납하는 일은 미루되, 종류별로 모아두기로 했다.
그렇다고 꼭 나중만을 바라볼 것도 아니었다.
부산물은 당장에 드워프들이 탐내는 필수 제작 재료였으니까.
‘그래서였나? 그렇게 아발론으로 호들갑을 떨었던 게······.’
문득 지구에서 아발론을 지워버리려 했던 바르나울의 흑마법사들이 떠올랐다.
물론 아발론에 세워져 있던 공장들은 폭발에 휘말려 사라졌고, 놈들이 만들었다던 흑마법 아이템의 최종 공정이 뭔지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적어도 원자재 가공이라는 기초적인 사업 모델은 고스란히 전해 받은 느낌이었다.
‘반쪽짜리다 보니, 이대로 사업 아이템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문제는 차차 확인해가면 될 터.
지금으로서는 아발론 사람들이 중요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아직 뭔가 ‘더’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 밖에도, 당장에 해야할 일이 따로 있었다.
아직 지구에는 타차원에서 넘어온 손님들이 드글대고 있었으니까.
지구에 제집 안방처럼 둥지를 튼 녀석들부터, 아예 사업체를 꾸려놓은 파렴치한 놈들까지.
‘싹 다 회수해야지.’
머지않아 팍스FC만의 필드 효과를 얻게될 터였다.
그때를 위해서라도, 최대한 지구의 많은 장소에 팍스FC의 깃발을 꽂아두어야 하지 않을까?
“마음을 굳혔구만.”
내 표정을 읽었는지, 나지막이 덧붙이는 쿠퍼.
나 또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엘븐하임처럼 본의 아니게 통폐합으로 들어온 경우를 제외한다면, 타 차원의 존재들이 지구로 들어오는 경로는 크게 세 가지 종류로 구분할 수 있었다.
무차별적으로 진입해 들어오는 1, 2, 3차에 걸친 <자유 개척>.
입찰 경쟁에서 승리한 이후, 해당 지역을 점령한 <입찰 경쟁>.
올림푸스와 같이 가맹이다 뭐다하는 방식으로 지구의 각성자들과 손을 잡는 <연계 사업>의 사업체들.
<입찰경쟁>과 <연계사업>을 통해 들어온 차원들 대다수는 점차 지구에서 자신들의 위치를 굳혀가고 있었다.
어쩌면 그중 상당수가 올림푸스처럼 사업체를 완성하여 ‘필드 효과’까지 만들어냈을지도 모를 일.
놈들이 지구에 쌓아올린 성읍을 상상하며, 내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더이상 막기만 하지는 않을 겁니다.”
멸망의 새로운 경지.
이제야 세계가 한 눈에 보이기 시작했으니까.
“놈들이 빼앗아 간 우리 땅이니까요.”
이번엔 우리가 먼저 공격에 나설 차례였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부터 팍스FC가 벌일 정복 전쟁의 서막이었다.
지옥불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