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24)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24화(124/240)
124화.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2)
“끄응······.”
천천히 기지개를 켠 진혈귀, 베르톨루스 남작.
그는 5위계에 다다르기 위해, 한창 바이오리듬 관리에 열중이었다.
성장에 가장 중요한 것은 충분한 수면과 영양 공급.
관리만 잘한다면 천년 가까이 생존하는 뱀파이어들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지금과 같은 동면기는 평생을 위한 성장판과도 같은 시기였으니까.
“오후 한 시 기상, 오후 다섯 시 수면.”
전설적인 뱀파이어, 공작 드라칸이 밝혀낸 수면 사이클의 황금비율.
드라칸 공작은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불과 200살에 불과했던 자신의 직계 뱀파이어들을 5위계까지 성장시켰더랬다.
하지만······.
“그것도 이젠 옛말이지.”
그것이 벌써 천오백 년 전의 일이었고, 노하우와 세월이 쌓여감에 따라 귀족들 사이에서는 암묵적인, 하지만 더 엄격한 기준이 세워졌다.
“······나도 곧 200살이구나.”
그 기점은 200살 성년의 나이.
4위계는 엘리트 취급을 받았고, 5위계 문턱까지는 그냥저냥 한 흡혈귀 취급을 받았지만, 그 아래로는 영락없이 머저리 병신 취급을 받았다.
베르톨루스로서는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다.
벌써 190살이 되었음에도, 그는 여전히 6위계에서 허덕이고 있었으니까.
“절대 뒤처질 수 없어.”
며칠 전, 자신보다 10살이나 어린 사촌 동생이 4위계에 등극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조급해진 남작은 지구에서의 장원 계획을 새로 수립했고, 하루 여섯 시간이나 깨어있던 기존의 나태한 생활 습관을 버리기로 결심했다.
“무조건 다섯 시, 늦어도 여섯 시 전에는 자는 거야.”
그는 하루 네 시간이라는 짧은 활동 시간을 알차게 활용하기로 했다.
가축들로부터 뽑아온 혈액팩을 고루 섭취했고, 잔혈귀들과 혼혈귀들에게 루마니아 장원의 운영 계획을 꼼꼼하게 전달했다.
루마니아 장원의 체계가 서서히 자리 잡기 시작했다.
이 기세를 몰아 장원의 확장을 노려보려던 참이었지만······.
“······뭐가 뚫렸다고?”
“트란실바니아에 있던 레드 게이트 방면입니다. 담벼락은 원래처럼 다시 복구를 해놓은 상태인데······ 침입자들이 박쥐들과 싸우던 중 자취를 감췄습니다.”
갑작스런 불청객의 소식에 잠이 훌쩍 달아나 버렸다.
장원을 확장해도 모자를 판에, 외부의 침입을 허용했다는 뜻이니까.
“스트레스받지 말자. 스트레스받으면 잠도 잘 안 오고······.”
중얼중얼 스스로 되뇌는 베르톨루스 남작.
집사장이 그런 그를 다독였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지요. 주인님.”
잔혈족 뱀파이어 집사장.
비록 진혈족인 남작만큼 강하지는 않았지만, 배 이상으로 나이가 많았던 덕에 마찬가지로 6위계 상위에 달하는 힘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이, 위계를 가진 것은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 성이 어떤 성인지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집사장이 그들이 머무는 성채를 가리켰다.
두꺼운 넝쿨로 둘러싸여 있었지만, 사실 이건 평범한 넝쿨이 아니었다.
꿀렁꿀렁.
새빨간 피가 순환하는 혈관이었고, 이는 베르톨루스의 성이 일종의 생명체라는 것을 의미했다.
다시 말해······.
“그래봤자 하위차원 놈들입니다. 박쥐에 내빼는 놈들이 어떻게 6위계의 벽을 넘겠습니까?”
베르톨루스 성에는 척력이 둘러져 있었다.
그것도 6위계에 달하는 강력한 척력이.
아무리 뱀파이어들의 담벼락을 무너뜨렸다지만, 놈들이라 한들 이곳 베르톨루스 성채만큼은 어찌할 수 없을 터였다.
“으으······.”
“벌써 다섯 시군요, 어서 주무십시오. 제가 주인님의 수면을 필사적으로 지켜드리겠습니다.”
“알겠다. 집사장. 그렇다면야······.”
천천히 눈을 감는 베르톨루스 남작.
집사장이 천천히 그의 관뚜껑을 닫아주었다.
“숙면하십시오. 주인님.”
예정된 기상 시간은 내일 오후 1시.
집사장은 관 주위로 널브러져 있는 혈액팩을 주워 담았고, 잰걸음으로 조용히 침실을 벗어났다.
“나오셨습니까.”
“그래.”
회랑에는 잔혈귀와 혼혈귀들이 일제히 도열해 있었다.
위엄 섞인, 하지만 침실까지는 닿지 않을 위엄 어린 목소리로 집사장이 말했다.
“기분이 좋지 않으시더군. 내일은 특히 더 신선한 것으로 준비해야겠어.”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집사장을 비롯한 수십 마리의 흡혈귀들이 서로 시선을 주고받았다.
그러곤······.
파악!
기둥 사이사이로 뚫린 공간으로 저마다 날개를 펼치고 날아올랐다.
주인의 아침 식사를 준비하기 위해.
***
“확실히 모양이 나오네.”
나는 엘븐하임에 도열한 성기사들을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운철로 빚어진 검은색 전투망치는 이제 팍스FC의 큰 전력이 되어줄 테니.
새 망치에는 ‘신벌(神罰)’이라는 이름을 붙여 주기로 했다.
무엇에 심취한 것인지는 몰라도, 성기사들은 ‘신의 이름으로!’라는 말을 으레 입에 올리곤 했었으니까.
더욱이, 완성된 것은 성기사들의 새 전투망치뿐만이 아니었다.
“벌써 고쳤다고?”
“오우 정겸, 수리는 이미 오래전에 끝났다고. 지금은 재밌는 물건을 만들고 있었지.”
제임스와 세공사 브로크에게 맡겨 두었던 골렘 코어.
그들은 코어를 수리하는 것을 넘어 아예 활용하는 데까지 나아가 있었다.
“아무래도······ 직접 보는 편이 낫겠지?”
백문이 불여일견이었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드워프들의 공장 뒤편으로 그를 따라 들어갔다.
.
.
.
“오······.”
한 대의 기간트가 자리하고 있었다.
기존에 사용하던 것과 조금은 다른 모양새.
별달리 특별한 점은 발견할 수 없었지만, 제임스는 자신만만한 표정이었다.
“몇 번 테스트를 해 보니······ 저 코어에는 회로에 연결된 다른 부속을 끌어당기는 능력이 있더군. 그게 골렘들이 재생됐던 이유일 테고.”
부서지고 부서져도, 끝끝내 코어를 중심으로 몸을 수복하던 스톤 골렘들.
그 재생의 신비가 골렘의 코어에 숨겨져 있었다.
“확인해 보려면 파일럿이 필요한데······.”
“아, 그래. 잠시 기다려.”
곧장 아공간에 있던 이용수를 데려왔다.
잠깐 짬을 내어 딸 유정이와 놀아주고 있던 모양이었는데, 유정이는 아빠가 가 버리는 게 싫다며 고집스럽게 그를 따라 나왔다.
다리에 엉겨 붙은 유정이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용수가 멋쩍게 웃었다.
“하하······ 죄송합니다.”
“제가 더 죄송하죠. 놀아줄 시간도 부족할 텐데.”
다행히 유정이도 기대가 되는지, 아빠가 로보트에 탑승할 거라는 말에 순순히 그를 놓아주었다.
“아빠 잘하구 와!”
“그래그래.”
제임스가 이용수에게 바뀐 조작법에 관해 설명해 주었고, 몇 번 고개를 주억거린 이용수가 기간트에 탑승했다.
부우우웅!
세차게 떨리는 구동음.
살아있는 듯 움직이는 기간트의 팔다리를 보며, 유정이가 까만 눈동자를 빛냈다.
제임스가 설명을 덧붙였다.
“그 골렘들처럼 만들 수는 없었어. 회로만 해도 수천 가닥이었는데······ 그걸 하나하나 부속에 연결할 순 없었거든, 그 회로 중에 멀쩡한 게 몇 개 되지도 않았고. 그래도 대여섯 개 정도는 써먹을 수 있었지.”
기간트가 한쪽 팔을 하늘로 치켜들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콰아아앙!
“······??”
“아빠?”
갑자기 팔 한쪽이 하늘로 발사됐다.
슈우우우욱-!
로켓처럼 불길을 내뿜으며 하늘을 날아가는 기간트의 팔.
대체 왜 갑자기 팔을 날려 먹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저게 무슨······.”
“노우, 이걸 봐야 해.”
제임스의 강조에 유정이와 나는 다시 기간트로 시선을 고정했고, 그제야 기간트에 적용된 골렘 코어의 효과를 확인할 수 있었다.
슈우웅······.
육안으로 충분히 확인할 수 있을 만큼, 그리 멀지 않은 거리.
하늘에서 우뚝 멈춰 선 기간트의 팔은······.
슈화아아악!
카아아아앙! 철컥!
갑자기 빠른 속도로 돌아와 다시금 팔뚝에 결속되었다.
그러니까 이건······.
“로, 로켓펀치······!”
“아빠!”
로봇을 둘러싼 사나이들의 로망의 그 자체였다.
과연 실제 전투에서 어떤 실용성이 있을지는 미지수였지만······.
사실 그딴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세상에, 로켓 펀치가 아닌가?
그래도 마침 좋은 생각이 하나 떠올랐기에, 곧 있을 싸움을 대비해 제임스에게 한 가지 추가적인 기능을 의뢰했다.
“그거야 어려운 일이 아니지. 그보다······.”
고개를 끄덕이는 제임스.
하지만 놀랍게도, 그가 개량한 것은 골렘 코어뿐만이 아니었다.
“정겸도 가서 타 봐.”
“······타 보라고?”
“그래, 이제 정겸도 탈 수 있어. 조수석을 만들었거든.”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기능이었다.
제임스가 설치한 조수석 덕에 나 또한 기간트의 기동성을 활용할 수 있게 된 상황.
이제는 이용수와 일심동체로 움직이며, 포탈의 출하 스킬로 싸울 수 있을 터였다.
“어디 그럼······.”
기간트에 부착된 손잡이를 사다리처럼 잡아 올라갔다.
목 뒷부분에 다다르자 양쪽 다리를 넣을 수 있는 안장이 있었는데, 등 쪽에 자리를 잡았음에도 전방은 물론 옆쪽으로도 넓은 시야가 확보돼 있었다.
“제임스······.”
다만······.
“······꼭 이렇게 만들었어야 했나?”
“오우, 정겸. 그게 최대의 효율을 고안해서 만든 디자인이라고. 물론······ 어머니들의 사랑을 모티브로 인체공학적인 구조로 설계하긴 했지. 편안하지 않아?”
편했다.
그것도 아주아주.
기저귀를 찬 것처럼 양쪽 다리가 바깥으로 삐져나와 있었고, 사이에 지암벨이라도 달아놓은 것인지 부드러운 승차감이 느껴졌다.
그렇게 나는 납작 개구리처럼 기간트의 넓은 등짝에 업혀 있었다.
“으아아아앙!”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유정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의 등 뒤에 매달려 있는, 기저귀를 찬 낯선 남자.
그로부터 모종의 불길한 감정을 느낀 것이 분명했다.
갑작스러운 울음에, 기간트를 운전하던 이용수가 서둘러 유정이를 달랬다.
“유정아, 그런 거 아니야. 응?”
“······.”
뭐가 그런 게 아니라는 걸까?
유정이의 울음과는 별개로 나도 한 가지 부탁할 게 있었다.
“용수씨.”
“예, 예?”
“둥가둥가 하지 말아주세요. 기분 이상해지니까.”
몸에 배기라도 한 듯, 이용수가 기간트의 무릎을 튕겨내고 있었으니까.
이용수가 땀을 뻘뻘 흘리며 유정이를 달래고, 지금까지의 소란이 조금씩 사그라질 때쯤······.
“왜 이렇게 시끄러운가 해서 나와봤더니······.”
공장에 있던 쿠퍼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기간트라······ 나랑 생각이 맞을 줄은 몰랐구만.”
“생각이 맞다뇨?”
“나도 그사이 만든 게 있거든. 한번 보시겠소?”
쿠퍼가 손가락을 튕기자, 세 명의 성기사들이 포장에 싸인 기다란 물체를 낑낑대며 끌고 왔다.
훌렁.
이제 갓 완성되기라도 한 듯, 쿠퍼가 포장을 펼치자 새카맣고 기다란 망치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건······.”
“알아보시겠지? 그야, 크기만 늘렸으니까.”
몰라볼 리가 없었다.
이건 성기사들에게 쥐여준 새 전투망치, ‘신벌’이었으니까.
다만 그 크기와 두께가 압도적으로 컸다.
그러니까······.
“기간트에게도 이 망치가 들려있으면 참 좋을 것 같아서 말이오.”
메카 크루세이더의 탄생이었다.
***
이튿날 아침.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는 고요한 적막에 싸여 있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지구인들의 기준에서 아침이었다.
뱀파이어들에게는 모든 시간이 밤이었고, 그중 상당수를 잠으로 보내야 했으니.
하지만 성혈이나 진혈과는 달리, 잔혈이나 혼혈은 이 잠의 구속으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편이었다.
“······아직은 별일 없는가.”
그래서였다.
집사장을 비롯한 잔혈족과 혼혈족 뱀파이어들이 교대해가며 경계를 서고 있는 것은.
어제 오후 들이닥쳤던 괴한들을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더욱이······.
“컨디션을 잘 챙기셔야 해. 특히 지금 같은 시기에는······.”
충성스러운 집사장은 베르톨루스 남작이 5위계에 다다르기를 간절히 소원하고 있었다.
좀 더 신선한 피가 도움이 될지 몰랐다.
하여 혼혈족들을 이끌고 새벽 사이 루마니아의 중부 지방을 다녀왔고, 거기에서 젊은 처녀 하나를 생포해온 터였다.
몇 시간 뒤, 주인에게 바칠 아침 식사.
장기적으로 보면 살을 찌워 가축으로 삼는 편이 나았지만, 가끔은 원기 회복이 필요한 법이었으니까.
어느덧 오후 12시에 가까운 시간.
“흐아아암······.”
집사장이 하품을 꺼뜨렸다.
사실 그 또한 조금은 무리하고 있었다.
진혈만큼은 아니지만, 그 또한 나름 긴 시간의 수면이 필요한 잔혈이었으니까.
“······식사만 전해드리고 눈 좀 붙일까.”
하지만······.
“어······?”
성채 주변으로 우후죽순 생겨나는 푸른색 포탈이, 그의 태평한 생각을 박살 냈다.
“몬스터 웨이브? 아니야 이건······.”
필드 효과가 덕에 주변은 밤처럼 깜깜했지만, 집사장은 뱀파이어 특유의 시야를 통해 포탈을 빠져나오는 일단의 무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새카만 망치를 든 이백 명의 성기사, 그리고 뒤따라 들어오는 십수 대의 기간트를.
“이 미친 새끼들이······.”
집사장의 표정이 악귀처럼 물들었다.
주인의 잠을 방해하는 것.
그것만큼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으니까.
슈와아아악!
집사장이 적들의 선봉부대 앞으로 쏜살같이 날아갔다.
포탈에서 빠져나온 그 밖의 다른 부대들이 성채에 다다르고 있었지만, 집사장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6위계의 척력을 두른 베르톨루스 성채.
하찮은 인간들 따위에 무너질 성이 아니었으니까.
탁!
까맣게 내려앉은 밤하늘.
빠르게 적들 앞에 착지한 집사장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소란 피우지 마라. 남작님 주무셔야 하니까.”
“······.”
하지만 대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잠깐의 적막이 흐르던 중, 기간트의 등에 올라탄 한 남자가 손목에 찬 스마트 워치를 보며 말했다.
“시간 됐다.”
그리고······.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투캉! 타아앙!
함성소리와 함께, 팍스맨 성기사들이 ‘신벌’을 휘둘러 성채를 가격하기 시작했다.
“······말이 안 통하는 놈들이군.”
이제 남작이 잠에서 깨는 건 기정사실.
남은 것은 이 불청객들을 얼마나 빨리 청소할 수 있는지가 관건이었지만······.
“······어?”
집사장은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었다.
우르르르르르르릉!
강고하기 짝이 없었던 베르톨루스 성채.
그것이 무너지는 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으니까.
“저······ 저게 왜······?”
거기에 더해, 성기사들의 거센 육성마저 들려왔다.
“미라클 모닝이다! 새끼들아!”
자명종 소리 같은 망치 소리와 함께.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