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25)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25화(125/240)
125화.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3)
베르톨루스 성채가 와르르 부서진 직후.
부우웅!
돌덩이를 때려 맞은 말벌집처럼 수백 마리의 박쥐들이 우리를 향해 쏟아졌다.
주변을 밤으로 물들이는 필드 효과가 여전히 적용되고 있었고, 박쥐들은 여느 때처럼 불빛을 향해 불나방처럼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지금만 해도, 우리 뒤편에 열린 포탈에서 빛이 쏟아져나오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서 와라, 이놈들아.”
콰아아앙!
기간트의 팔이 제트 엔진을 가동하며 상공으로 치솟았다.
제트엔진으로부터 뻗어 나오는 새하얀 불꽃이 박쥐들을 멈춰 세웠고······.
키이이이이잉!
팔은 뜨겁게 달궈지며 새하얀 광채를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결과, 수백 마리의 박쥐들이 하얗게 달궈진 로켓 펀치를 너나 할 것 없이 바짝 따라붙었다.
지난번 조명에 그러했던 것처럼, 놈들은 광원을 없애기 위해 몰려들었다.
이 칙칙한 성역에서 단 한 치의 빛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슈우우우웅!
로켓펀치가 밤하늘의 유성처럼 꼬리를 그렸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대신, 먼 포물선을 그리는 형태였지만.
모든 박쥐를 긁어모은 기간트의 팔이 마침내 특정 구간을 빠르게 스쳐 지나갈 즈음······.
“출하.”
꽈아아아아아아앙!
두 개의 운철구가 부딪히며 사방으로 파편이 날아들었다.
핑! 피잉!
카아악!
매캐한 약에 맞은 듯 후두둑 떨어지는 박쥐들.
이용수가 익숙하게 기간트의 팔을 거둬들였다.
.
.
.
우리 앞에 선 것은 깨끗한 정장 차림의 뱀파이어였다.
‘남작님’이니, ‘주인님’이니 하는 소리를 지껄이는 것으로 보아, 놈의 집사 정도 되는 모양.
더욱이 다른 뱀파이어들에게 이런저런 지시를 전달하는 것을 볼 때, 하인 중에서도 수장격쯤 되는 놈인 것 같았다.
“주, 주인님!”
성이 무너진 직후, 뱀파이어 집사는 서둘러 자신의 주인에게 되돌아가고자 했다.
하지만······.
“이 박쥐 새끼가 가긴, 어딜가!”
“못 가게 막아!”
삽시간에 성기사들이 모여들었던 탓에, 속수무책으로 우리와 합을 겨룰 수밖에 없었다
그 선두에서 놈에게 망치 휘두르는 것은 다름 아닌 아발론의 경비단장 베론이었다.
“이······익! 이거 놔라!”
“주인이 걱정되는 모양이군. 그 기분은 내가 잘 알지.”
베론은 누구보다도 이번 전투에 진심이었다.
카멜롯의 기사들이 아테네의 몬스터 웨이브를 막으러 떠나있었다면, 아발론의 경비단은 부다페스트의 남은 웨이브를 막고 있었다.
이곳 루마니아에서 흘러든 추가 웨이브를 마저 정리하고 난 뒤, 어제 막 아공간으로 복귀했던 베론.
그날 저녁, 나는 그에게 뱀파이어들이 루마니아인들을 가축으로 삼고 있다고 전해주었더랬다.
“남일 같지 않군요. 가축이라······.”
바르나울에 의해 노예로 살았던 지난 80년.
이제는 인간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그 세월에 대한 기억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던 그였다.
그런 그의 눈에 루마니아 사람들에게서 과거 아발론의 모습이 비쳐보이는 것은 당연한 일.
이제는 그도 알고 있었다.
단순히 살아남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그때는 아서가 살아있기만 하다면 다 괜찮다고 여겼습니다. 저희도 언데드가 되어버리긴 했지만······ 존재 자체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팍스FC와의 조우 이후, 그가 얻게 된 것은 비단 새로운 생명뿐만이 아니었다.
“그저 숨이 붙어있다고 살아있는 게 아니더군요. 노예든, 가축이든······ 모두 교묘하게 위장된 죽음의 또 다른 형태에 불과했습니다.”
죽은 것만도 못하게 살아가는 삶.
어쩌면 그것 또한 삶이겠으나, 그걸 두고 살아있노라 부를 순 없을 터였다.
베론이 나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대표님께서 엘븐하임에 아발론 사람들의 거처를 마련해주셨던 그날, 저는 깨달았습니다. 태어나고, 먹고 자고, 명령에 따르는 것을 넘어선 삶의 또 다른 영역이 존재한다는 것을요.”
그것은 다름 아닌 문명의 영역이었다.
두 다리 뻗고 누울 수 있는 집, 걱정 없이 꺼내먹을 수 있는 식사, 안전이 보장된 장소.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는, 정말이지 많은 것들이 갖춰져야만 했다.
그리고······.
“저는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발론이 그 삶을 되찾은 것은 자그마치 80년 만의 일이었다.
“변소라는 일상적인 장소에서 발견한······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위대한 문명의 물줄기를······.”
“······.”
삶의 전환점을 상징하기엔 지나치게 변변찮은 경험이었지만······.
아무쪼록 그가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
“팍스FC를 필요로 하는 존재는 많고도 많을 겁니다. 허락만 해주신다면······ 그걸 전하는 것을 제 앞으로의 소명으로 삼고 싶습니다.”
“······그럼 받아.”
나는 가만히 그에게 운철로 만든 ‘신벌’을 쥐여주었다.
“이건······.”
란슬롯처럼 지휘능력을 가지고 있던 베론.
그는 팍스FC의 썩 괜찮은 성기사 단장이 되어줄 테니까.
***
콰아아앙!
이러나저러나, 베론과 뱀파이어 집사 간의 싸움은 계속되고 있었다.
“더러운 가축 놈 주제에······.”
아직은 7위계 상위에 머물러 있는 베론.
그보다도 더 높은 위계를 가진 것인지, 발길질에도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는 뱀파이어였지만······.
빠아아악!
“커허억!”
5강까지 강화된 ‘신벌’을 맞고도 무사할 수는 없었다.
충격에 날아간 뱀파이어가 돌바닥에 나뒹굴었고, 이내 쿨럭쿨럭 피를 토하며 힘겹게 몸을 일으켰다.
날개로 몸을 방어했기에 죽지는 않았지만, 여간 고통스러운지 입술을 피가나도록 씹고 있었다.
“이 새끼······.”
펄럭!
마침내 성기사들의 손길에서 벗어난 뱀파이어.
놈이 기회를 놓칠 수 없다는 듯, 땅을 박차고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가 초음파 같은 목소리를 뿜어냈고, 성기사들과 사투를 벌이고 있는 다른 뱀파이어들에게 자신의 명령을 하달했다.
“망치를 조심해라! 최대한 근접전을 피해!”
펄럭!
펄럭!
그의 말에 따라, 수십 마리의 뱀파이어들이 일제히 하늘로 날아올랐다.
“근력은 우리와 동급인 수준으로 봐야 한다! 척력으로 방어할 만한 수준이지만······ 저 망치는 아니다. 최대한 거리를 벌리고 피를 이용해 싸워!”
그 말을 끝으로, 뱀파이어 집사는 양손을 마주잡았다.
그러곤 뾰족한 오른쪽 손톱을 이용해, 왼손에 깊고 넓은 상처를 만들어냈다.
뚝.
뚝.
왼손을 따라 떨어지는 핏물.
뱀파이어 집사가 우리를 향해 크게 왼팔을 휘둘렀다.
“너희는 가축으로서도 가치가 없다. 죽어라!”
촤하아아악!
고작 몇 방물에 불과했던 피였다.
하지만 아래로 떨어지면 떨어질수록 그 양이 파도처럼 불어났고, 전위를 지키고 있던 성기사들이 서둘러 방진을 구축했다.
파바바바바박!
바위를 때리듯, 크게 튀어 오르는 붉은색 물살.
운철을 덧댄 4강 수준의 방패였음에도, 놈의 피에 닿은 즉시 속절없이 녹아버렸다.
“너희는 한 놈도 살아 돌아가지 못할 거다. 감히 하등한 가축 주제에 뱀파이어에게 싸움을 걸어온 이상······.”
놈들은 이제 감을 잡은 듯했다.
충분히 거리를 벌리고, 피를 뿌려 싸운다면 어렵지 않게 성기사들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는 심산.
하지만······.
“준비!”
성기사들의 침착한 목소리.
공교롭게도, 이쪽에서도 준비된 것이 있었다.
골렘 코어를 장착한 열네 대의 기간트.
아직은 수리된 코어가 부족해 그 이상 만들지는 못했지만, 이것만으로도 뱀파이어들과의 싸움에 충분한 변수를 만들어줄 수 있을 터였다.
“2호기! 앞으로!”
열네 대의 기간트는 모두 구조적으로는 동일했다.
다시 말해, 이용수의 기간트처럼 조수석이 있다는 소리.
타닷! 탁!
가뿐히 튀어 오른 베론이 망치를 들춰 맨 채, 기저귀처럼 생긴 조수석 안장에 올라탔고······.
“발사.”
“발사!”
파아아아앙!
로켓펀치가 그러했듯, 이번에는 등 뒤의 조수석이 하늘로 솟구쳤다.
“으랴아아아아아!”
“뭐, 뭐야 저게!?”
거대한 전투 망치를 들고 날아오는 기저귀 성기사.
놀라자빠지는 집사 뱀파이어의 표정이 과연 볼만했다.
기간트가 조수석을 발사하고, 그렇게 날아간 성기사가 뱀파이어의 두개골을 부수고, 그 다음 다시 골렘 코어를 이용해 조수석을 끌어당기는 방식이었다.
간단히 말해 일종의 ‘성기사’ 발사 장치를 만든 셈.
“아공간 포탈만은 못하겠지만······.”
단, 그 사정거리는 고작 수십 미터였고 기간트의 개수 또한 열네 대에 불과했지만, 이것만으로도 전장의 흐름은 바쁘게 전환되고 있었다.
제공권을 장악했던 뱀파이어들이었지만, 언제부터인가 성기사들이 하늘을 누비기 시작했으니.
“저 박쥐 새끼들의 두개골을 부숴라!”
“예! 단장님!”
슈우우우우욱!
“으아아! 꺼, 꺼져!”
뱀파이어들은 질색하며 소금처럼 피를 뿌리고, 또 뿌리기를 반복할 뿐이었다.
.
.
.
싸움은 점입가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성기사들이 뱀파이어들과 겨루는 동안, 나는 꾸준히 흘러나오는 박쥐들을 소탕해가며 이용수와 함께 무너진 성채에 다다르고 있었다.
“어디 보자······.”
놈들이 가축으로 삼았던 루마니아 사람들.
그들은 물론, 뱀파이어 집사가 애타게 찾던 남작인지 뭔지 하는 놈 또한 여기 어딘가에 있을 테니까.
놈을 잡아 이 모든 사태의 죄를 철저하게 물을 작정이었다.
그리고······.
“히, 히익!”
오래지 않아 몇 개의 동으로 이루어져 있는 공장식 단지를 발견했고, 그것이 뱀파이어들이 만든 ‘축사’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축사에는 최소 수백 명의 피해자가 온 몸에 바늘자국을 남긴 채, 무너진 뱀파이어 성을 겁에 질린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지이잉!
나는 곧장 포탈을 열었다.
그러곤 강남의 송현구에게 부탁해, 그들이 뭐라 울부짖든 말든 모조리 세브란스 병원으로 옮겨 넣었다.
“뭐, 가보면 알게 되겠지.”
장원을 벗어나면 필시 죽는다는 노예식 세계관이 그들 머릿속에 박혀 있겠지만······.
간호사들에게 등짝 얻어맞으며 병원 밥 몇 그릇 주워 먹다 보면 알아서 개량이 될 터였다.
그리고 추가로 이동을 이어가던 중······.
“······여기는?”
인간이 세웠다고는 보기 어려운, 검은 직사각형 모양의 건물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전방으로 포탈을 방패처럼 세운 나는, 이용수와 함께 천천히 건물 안으로 진입했다.
무슨 마법이라도 쓴 것인지, 내부는 꽤나 서늘하게 유지되고 있었다.
뱀파이어들의 시설답게 내부에는 단 한 개의 조명도 존재하지 않았는데, 뒤에 있던 이용수가 커다란 랜턴을 앞으로 비춰주었다.
그렇게 확인한 것은······.
“정겸 씨, 이건······.”
양옆으로 길게 늘어선 진열장.
서슬 퍼런 고리에 빼곡하게 걸려있는, 투명한 포장 용기에 담긴 인간들의 혈액이었다.
랜턴의 불빛이 새빨간 혈액을 통과한 탓에 건물 내부는 금세 새빨간 불빛으로 채워졌다.
“혈액 보관소네요. 하기야······.”
이상할 것도 없었다.
놈들이 사람들의 피를 갈취한다는 것쯤이야, 얼마든지 예상하고 있던 바가 아니던가?
따지자면 이것이 뱀파이어들의 ‘사업 아이템’일 테니까.
하지만······.
“직접 보니 또 다르네요. 이것 참······.”
정육점 고기처럼 나란히 걸려 있는 혈액팩들을 보고 있자니,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이 찾아들었다.
나는 이용수와 함꼐 그대로 혈액보관소를 빠져나왔다.
어느덧 캄캄한 밤에 적응된 눈으로 보기엔, 하늘을 누비는 뱀파이어들의 수가 현저하게 줄어 있었다.
“저기 베론이 오는군요.”
이용수가 손으로 저 멀리를 가리켰다.
팍스FC의 성기사 단장, 베론이 곤죽이 된 뱀파이어 집사의 머리채를 잡고 질질 끌고 오고 있었다.
사람들을 가축으로 부린다는 말에 분개했던 베론.
아발론의 80년 세월이 지금 지구에서는 여전히 벌어지고 있었다.
이런 꼴을 당하고 있는 걸 보면 정말 그랬다.
“여기 계셨군요, 대표님.”
베론이 뱀파이어 집사를 툭하니 떨궈놓으며 내게 부복했다.
“베르톨루스 남작이라는 놈이 이 장원의 주인이라더군요. 이 놈을 통해 정확한 위치를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적의 수뇌를 추적하기 위한, 기특한 생각이었지만······.
“아니, 그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나는 옆으로 시선을 던지며, 베론을 일으켜줄 뿐이었다.
덜컹!
관뚜껑을 열고 일어난 한 마리의 뱀파이어.
놈이 우리를 향해 새빨간 안광을 내뿜고 있었으니까.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