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26)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26화(126/240)
126화.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4)
툭.
베론이 붙잡고 있던 뱀파이어가 목을 떨궜다.
그러자, 멀찍이 우리를 관망하고 있던 뱀파이어 남작이 입을 열었다.
“그거, 집사장인가?”
예상했던 대로 남작의 최측근이었던 모양.
놈의 얼굴은 분노로 물들어 있었지만, 고개를 떨군 집사장을 보면서도 별다른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저 품에서 꺼낸 줄 시계를 바라보며 짜증 난다는 듯 투덜거릴 뿐이었다.
“12시 반······ 덕분에 패턴이 깨져버렸구나.”
끼이이······.
녀석이 관뚜껑을 밀치며 몸을 일으켰다.
“불규칙한 수면 습관은 혈류량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지. 재생세포에는 명백히 수명이 존재하는데, 불규칙한 패턴은 재생세포에 피로를 누적시켜 뱀파이어의 수명을 갉아먹게 된다. 그건······ 성장기 뱀파이어에게 있어 치명적인 영향을 미치지.”
한창 생생 건강 정보통에나 나올 법한 내용을 중얼거리던 녀석은······.
“집사장!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작정이냐!”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외쳤다.
삐이이—–
“으윽······!”
두꺼운 이명이 귓가를 휘감았고, 심장의 혈류가 뒤집히는 듯 강한 압박감이 조여왔다.
마치 샌 채로 전기충격이라도 받은 느낌.
다행히 오래 할 수 있는 건 아닌지, 오래지 않아 남작이 다시 소리를 거둬들였다.
나를 비롯한 팍스맨 성기사들 모두가 너나 할 것 없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비틀거렸다.
그리고 그 결과······.
“죄송합니다. 주인님.”
등 뒤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숨이 끊어진 줄로만 알았던 뱀파이어들이 몸을 일으켰다.
후우웅!
베론이 뒤늦게 망치를 휘둘렀지만 소용 없었다.
집사장은 공중에 떠오른 채, 단단한 날개를 퍼덕이고 있었으니까.
우우웅······.
소리는 여전히 잔음처럼 남아 있었다.
새 힘을 얻은 뱀파이어들이 성기사들에게 공격을 감행했고, 나 또한 다시 기간트의 조수석에 올랐다.
“가시죠, 용수씨.”
“알겠습니다.”
이용수의 기간트가 땅을 박찼다.
.
.
.
캄캄한 어둠 속에 잠긴 언덕.
순간 모습을 감춘 뱀파이어 남작이 돌연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타아아앙!
“크윽!”
기간트에 커다란 발자국을 남긴 백작이 다시 하늘로 퍼드득 날아올랐다.
다른 뱀파이어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다.
쿵! 쿵!
이용수의 기간트가 반격에 나섰다.
위이잉!
달아오른 두 팔에서 새하얀 섬광이 새어 나와 남작의 눈을 괴롭혔고, 거대한 기간트 전용 ‘신벌’을 휘둘러 그대로 남작을 강타했다.
콰아앙!
정타는 아니었지만, 다리에 전해진 충격.
그대로 고꾸라진 남작이 뒤로 고꾸라졌다.
휘이이이잉! 타아앙!
곧장 이용수가 ‘신벌’로 바닥을 찍어버렸지만······.
“······.”
그새 자리를 피한 남작은 잔뜩 화난 표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을 따름이었다.
하등 종족이니 뭐니 떠들 거라 생각했는데, 놈은 생각보다 침착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그 정도인가. 알겠다.”
스스슥!
순간 사라진 남작의 신형.
나로서는 혀를 내두를 지경이었다.
‘저기서 더 빨라진다고······?’
타아앙!
콰앙!
이후, 몇 번의 합을 나누는 중에도, 남작은 단 한 번의 타격도 허용하지 않았다.
푸욱!
오히려 손톱을 찔러넣어, 움푹움푹 기간트의 흉부에 구멍을 낼 뿐.
놈이 날개를 펄럭거리며 이죽거렸다.
“고작 이 정도인가? 베르톨루스의 성역에 발을 들인 걸······ 후회하둭!”
콰아앙!
물론, 그 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
내가 날린 운철구가 놈의 얼굴을 그대로 찍어버렸으니까.
커다란 쇠공과 함께 데굴데굴 구르는 모습을 보니 아주아주 아파 보였다.
“아아아악! 이 새끼들이!”
슈슈슈슉!
‘오······?’
놀랍게도, 놈의 속도가 더 빨라졌다.
노련한 투우사처럼, 날개를 펄럭거리며 사방에서 날아드는 운철구를 하나하나 회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뻐어억!
“으윽!”
빠악!
“커헉!”
아무리 놈이 빠르다 한들, 실시간으로 꺾여 날아드는 쇠공을 피할 재간은 없었다.
운철구의 충돌을 이용한 새로운 공격 방법.
포탈에서 쏟아진 수십 개의 쇠공이 서로 비스듬하게 부딪히며 변칙적으로 방향을 전환했으니까.
터엉!
타앙!
슈우우우욱!
양방향에서 정면으로 추돌하지 않는 한, 운철구는 폭발하지 않았다.
일종의 당구처럼 3차원 공간에서 서로서로 구슬처럼 튕겨나갈 뿐.
물론 실제 내 당구 실력은 처참하기 그지없었지만······.
[예상 타격 확률은 77.61%입니다.] [예상 타격 확률은 88.49%입니다.] [예상 타격 확률은······.이러나저러나, 계산은 팍스의 몫이었다.
녀석이 남작과 운철구의 위치, 굴절에 따른 예상 경로를 실시간으로 계산했고, <추적배송>을 이용해 정확한 위치로 공을 출하했다.
그리고 그 결과······.
빠악!
“커흑······!”
뻑!
“어억!”
미천한 신분에도 불구하고, 고귀하신 베르톨루스 남작과 리드미컬한 피구 놀이를 즐길 수 있었다.
심지어 공놀이가 계속되면 계속될수록, ‘예상 타격 확률’ 또한 빠르게 올라가고 있었다.
“딥러닝이라고 들어봤나?”
“디, 딥······ 뭐?”
더는 버틸 수 없다고 여긴 것일까?
손톱을 세운 남작이 제 손에 흠집을 냈고······.
촤아악!
기다란 피를 채찍처럼 뿌려가며 날아드는 쇠공들을 잘라내기 시작했다.
한눈에 보기에도, 집사장에게서 보았던 것보다 한층 더 정교한 기술.
어쩌면 피의 소모량 또한 더 효율적일지 모를 일이지만······.
“······대체 언제까지?”
효율이고 자시고, 공은 무한으로 날아올 따름이었다.
딥러닝 피구에서 데드볼 야구로 종목이 바뀐 순간이었지만······.
“허억······ 헉!”
급격히 피를 소진하신 탓인지, 남작님께서는 더이상 놀이를 유지하실 여력이 없는 듯했다.
게다가······.
“대체 왜······ 너 같은 존재가 이런 하위 차원에 있는 거지?”
구차한 제안을 하시는 걸 보니, 더더욱 그랬다.
“자, 잘 들어봐라. 나와 함께 우리 가문으로 가자. 외지인은 대접받을 수 없는 곳이지만······ 내게서 진혈의 피를 물려받는다면 그건 또 이야기가 다르거든.”
남작의 손끝에서 뚝뚝 피가 떨어졌다.
다른 뱀파이어들과는 다른, 보랏빛이 섞인 귀족의 피였다.
“이 피! 이 피만 있다면 너도 다른 삶을 살 수 있다.”
“갑자기 종을 바꾸라고?”
“지금은 거부감이 있겠지. 하지만 수백 년의 삶을 생각한다면, 그깟 자잘한 일 따위는 아무 일도 아니었다는 걸 알게 될 거다······!”
슈우우욱!
촤하악!
꾸준히 날아드는 운철구를 잘라내며, 남작의 계속해서 말을 이어 나갔다.
“잘 생각해라! 그래봤자 하위차원, 결국 너희는 누군가의 노예가 될 운명이야. 남은 삶을 주인으로 살 것인지, 아니면 노예로 살 것인지······! 시야를 넓게 가지란 말이다······!”
“뭔 쌍팔년도 백세시대 자기계발 같은 소리를 하고 앉았어.”
뱀파이어가 된다면 놈의 말대로 편하게 살 수 있을지도 모른다.
수백 년 동안, 그것도 남의 피를 쪽쪽 빨아먹으며.
하지만 아무리 들어봐도 존재 자체가 민폐인 삶이었으며, 한 번 사는 인생 그렇게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아무리 그래도······.”
마지막 공격을 날려 보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꺾여 들어온 두 개의 공.
“사람을 가축으로 삼은 건 선 넘었어.”
꽈아아아아아앙!
충돌한 운철구가 남작을 커다란 폭발을 일으켰다.
후두두둑······.
운철 파편과 모래 먼지들이 땅으로 떨어졌고, 남작의 핏물이 후두두 주변을 적셨다.
그리고 그때,
“남작님!!”
가까스로 베론을 떨어낸 집사장이 서둘러 남작을 향해 날아갔다.
그리고 놀랍게도······.
“닥쳐라, 집사장.”
먼지 속에서 대답이 들려왔다.
“하지만, 남작님! 그건······!”
“닥치라고 했다. 지금 기분이······ 정말 더러우니까.”
터벅터벅.
남작이 우리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날개에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른 보랏빛이 감돌고 있었고, 반쯤 뜯겨져 나간 귀족식 정복 아래로 땡땡 부어오른 핏줄이 온몸을 뿌리처럼 덮고 있었다.
놈이 우리를 보며 말했다.
“······죽더라도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알고 죽어야겠지.”
화가나다 못해, 격노한 표정.
놈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뱀파이어들에게는 심장에 담아두는 별도의 혈액이 있다. 마실 수도, 만들 수도 없는 선조로부터 물려받은 고귀한 피······ 단 한 번 벽을 넘을 수 있게 해주는 그 소중한 자원을······ 이딴 병신같은 상황에······.”
분노에 찬 남작이 입술을 씹었고, 입 주변으로 피가 철철 흘러내렸다.
“너희가 내 여생을 망쳐버렸다. 너희 벌레들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그 기나긴 여생을······! ”
촤하아악!
남작의 몸 주변으로, 네 가닥의 피 채찍이 생겨났다.
피로 된 물방울이 놈의 몸 주변을 천천히 공전했고, 서서히 거센 파도처럼 쏟아져나왔다.
“용수 씨!”
“네! 일단 물러나겠습니다!”
쿠우웅!
뒤로 물러난 기간트가 새빨간 파도를 가까스로 회피했다.
놈에게 연달아 운철구와 성창을 던져넣었지만······.
슈우우우우욱!
타아아앙!
핏물에 녹아 없어지거나, 혹여나 도달하더라도 거짓말처럼 튕겨져나갈 뿐이었다.
틀림없었다.
“······그새 5위계가 되었구나.”
단 한 번, 벽을 넘을 수 있게 해준다던 선조의 피.
죽음의 위기 속, 놈은 그 소중한 자원을 사용한 게 분명했다.
자신의 남은 생을 저당 잡아서.
“아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
도무지 분노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베르톨루스 남작이 하늘에 포효했다.
쩌렁쩌렁한 초음파가 고막을 터질 듯 울려왔고, 다른 뱀파이어들마저 공포에 휩싸인 채, 가만히 몸을 떨었다.
“······너희를 죽이지는 않을 거다. 어떻게든······ 어떻게든 숨을 붙여 수백 년 내내 피를 뽑아주지. 네놈 새끼들의 팔다리를 잘라 술잔으로 들고 다닐 테다.”
놈은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다.
기나긴 시간을 사는 뱀파이어답게, 그 망가진 삶에 대한 분노 또한 천천히 풀어야겠다는 듯.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지금까지 사용해온 그 어떤 무기로도 놈을 잡을 수 없다는걸.
5위계의 강함은 6위계와는 감히 견줄 수 없을 만큼 압도적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팍스, 그거 준비해.”
[알겠습니다.]나 또한 새로운 물건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다름 아닌, 마력 회로를 각인한 운철구였다.
재료로보나, 가공 방법으로 보나 내가 동원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무기.
특히 회로에 각인된 조건은······.
‘······결국 쓰게 되는구나.’
‘운철구 그 자신을 파괴하는 것’이었다.
마력 회로를 그려 넣을 당시, 쿠퍼는 내게 다음과 같이 조언했더랬다.
“만들어는 드리겠지만······ 되도록 사용하시지 않기를 권하오.”
“왜요?”
“사물의 원망이라는 게······ 많이 사서 좋을 게 없거든.”
사물의 원망.
사뭇 낯설게 느껴지는 말이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지요. 반면, 사물은 우리를 통해서 생각할 수밖에 없는 수동적인 존재지만······ 그런 사물에게도 소원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오. 하지만 대표님이 부탁하신 마력회로의 조건은 그런 소원을 정면으로 배반하는 것이지.”
큼큼 목울대를 정리한 쿠퍼가 마저 말을 이었다.
“사실 이 ‘운철구’를 파괴하는 건 사실 제법 어려운 일이라 할 수 있소. 그런 내기에 성공하셨으니······ 회로가 그려진 운철구 또한 그에 맞게 변화하겠지. 이전에 성창이나 카멜롯이 완전히 다른 사물로 탈바꿈했듯이 말이지. 하지만 그때는 이미······.”
“······파괴되어버린 상태겠죠.”
“그렇소. 기대를 충족시켜주었다는 데에 따른 만족감, 하지만 동시에 자신을 파괴해버린 주인에 대한 원망이 동시에 나타날 거요. 대충 어떤 효과가 날지는 예상이 가지만······.”
내가 들은 이야기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파괴될 것을 목적으로 하는, 어느 한 사물의 파멸적인 운명.
“······출하.”
슈우우우우우웅!
그 운명이 각인된 두 개의 공을 양쪽에서 사출했고,
파각!
남작의 머리맡에서 동시에 충돌하며 두부 조각처럼 부서지기 시작했다.
약속을 지켰다.
하지만 파괴되어가는 운철구가 내게 해줄 수 있는 건 하나밖에 없었다.
‘······울부짖는 것, 그리고 폭발.’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귀를 뚫을 듯한 폭음이 날아들었다.
기존보다 몇 배는 되는 듯한 폭발력.
그 중심에서 피어난 것은······.
“말, 말도 안 돼······! 분명 필드 효과가······!”
남작이 비명을 질렀다.
날이 밝아오고 있었으니까.
“어째서! 어째서 태양이······!”
강렬한 폭발이 동반한 것은 다름 아닌 ‘빛’이었다.
우주에 뜬 태양에는 감히 비할 바가 못 되겠지만, 이 근방을 환하게 비추고도 남을 만큼의 빛.
화아아아아아악!
그 강렬한 빛 아래, 남작과 남은 뱀파이어들이 그림자처럼 지워졌다.
“아아아아아악!”
한낱 사물에도 감정이 있을까?
이날, 나는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