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27)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27화(127/240)
127화.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5) / 5,264자
빛과 함께 뱀파이어들이 최후를 맞이한 직후.
나는 이용수와 함께 죽은 뱀파이어들의 흔적을 찾고 있었다.
“이게 전부인 모양이네요.”
얇고 넓은 뱀파이어 남작의 날개를 집어 들었다.
강렬한 빛에 의해 흔적도 없이 불태워진 뱀파이어들.
그 와중에도 이 날개만큼은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으니까.
“확실히······ 괜히 단단했던 게 아닌 게 아니었군요.”
기간트의 주먹은 물론, 5강까지 강화된 ‘신벌’의 충격마저 상쇄시키던 뱀파이어의 날개.
쿠퍼에게 가져간다면 좋은 아이템으로 만들어줄지도 몰랐기에, <포탈 운송>을 이용해 날개를 포탈 안쪽으로 던져 넣었다.
“그럼 다음은······.”
남작과 결투를 벌였던 언덕을 천천히 내려왔고,
놈들이 세워두었던 축사가 다시 눈에 들어왔다.
더 이상 이곳에서 인간이 사육되는 일은 없을 것이었지만······.
문제는 혈액 저장고였다.
‘그래도 갖다 쓰기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버리기도 찜찜하고.’
루마니아 사람들의 혈액이 차곡차곡 쌓여 있는 창고.
운철구를 둘러싼 묘한 감정 때문이었을까, 혈액팩에 담긴 피들이 마치 살아있는 생명처럼 느껴졌으니까.
그래도 의료진들에게 분명 필요하리라는 생각에, 팍스에게 물었다.
“이거, 아공간에 넣을 수 있어?”
조금 머리를 굴렸다.
아공간 내에서는 일종의 사물로 인식된 사람.
부분 등록이 가능한 <실험실>의 기능을 활용한다면, 그 사람의 일부를 이루는 혈액 또한 따로 등록이 가능할 테니.
띠링!
[해당 대상을 개별 상품으로 지정하면 가능합니다.] [대상의 이름을 ‘혈액(A)’로 설정하시겠습니까?]다행히 반응은 긍정적이었다.
종류별로 구분할 필요는 있었지만, 병원에 공급할 피가 무한정 확보된 셈.
복제된 피인 만큼 찝찝한 감정도 조금은 지워낼 수 있을 터였다.
다만······.
[아공간에 등록되지 않은 사물입니다.]단 하나, 수용할 수 없는 혈액팩이 있었다.
조금씩 보랏빛이 맴도는 새로운 피, 다시 말해······.
“진혈······?”
뱀파이어의 피였다.
.
.
.
이제 남은 문제는 딱 하나였다.
“왜 아직도 밤이야? 오후 4시인데.”
필드 효과가 여전히 적용되고 있었으니까.
뱀파이어들을 고스란히 태워버렸음에도 낮은 돌아오지 않고 있는 상황.
어리둥절해 하는 내게, 베론이 의견을 제시했다.
“대표님, 저길 보시지요. 그리고 저기도요.”
그가 가리킨 장벽과 도심 곳곳에는 종탑이 세워져 있었다.
아서를 위한 장례식 종을 울렸던 베론.
아무래도 내내 이곳에 종탑들을 눈여겨 봤던 것이 분명했다.
“확실히 비정상적으로 많기는 하네.”
신전을 필드 효과의 트리거로 사용했던 올림푸스, 어쩌면 종탑도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을지 몰랐다.
“일단 부숴보자.”
곧장 성기사들에게 종탑을 파괴하라 지시했고, 수십 명의 성기사들이 도심 곳곳에 세워진 종탑으로 몰려들었다.
우르르르르!
칙칙한 회색빛 벽돌이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누런 종이 댕그르르 바닥으로 떨어져 내렸지만, 기이하게도 아무런 소리도 울리지 않았다.
그렇게, 마지막 하나까지, 모든 종탑을 남기지 않고 파괴했지만······.
“······이래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놈의 해는 도무지 뜰 기미가 보이질 않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으으······.”
머리가 지끈거리며 웅웅 울리는 느낌이 찾아들었다.
이용수 또한 머리를 부여잡고 있는 것으로 봐서는, 이 공간에 뭔가 남아 있는 것이 분명했다.
일종의 ‘필드 효과’처럼.
“일단 벗어나는 게 좋지 않을까요? 앞으로 웨이브를 처리하는 게 조금 까다로워지기는 하겠지만요······.”
이용수의 말이었다.
우리의 머리의 통증은 점점 심해지고 있었으니.
“아뇨, 일단 그 전에······.”
트리거로 추정되는 종탑을 모조리 때려 부순 참.
어쩌면 그 트리거가 우리의 머릿속까지 옮아온 것은 아닐까?
쩌렁쩌렁한 초음파 소리로 우리의 고막을 괴롭혔던 남작의 능력을 떠올리며, 나는 이용수에게 대답했다.
만약 우리가 귀신에라도 쓰인 것이라면······.
“퇴마 의식을 한 번 치러보죠.”
불러올 만한 사람이 있었으니까.
미국 북부 그룹을 이끌고 있던 프리스트, 글렌.
그에게 연락을 넣었다.
***
“정겸 씨, 괜찮으십니까?”
“예, 그런데 저 사람들은······?”
글렌은 한달음에 달려왔고, 게다가 홑몸도 아니었다.
치렁치렁한 로브를 걸친 십수 명의 동행인을 가리키며 글렌이 덧붙였다.
“제가 양성한 사람들입니다. 모두 신성력을 다루죠. 분명 도움이 될 겁니다.”
간단히 말해, 글렌 주교를 주축으로 한 사제단이었다.
주변에는 성기사들이 널려 있으니 나름 재미있다면 재밌는 그림.
어둠이 내려앉은 주변을 우두커니 지켜보던 글렌이 마저 말을 이었다.
“이 주변 전체에 사특한 주술이 걸려있군요. 인식의 파장을 공명시켜 왜곡된 효과를 일으키는 겁니다. 머리도 그래서 아프신 걸 테고요.”
“그럼 어떻게 하면 됩니까?”
“다른 소리로 기존 파장을 대체하면 됩니다. 그리고 이럴 땐······.”
따악!
글렌이 손가락을 튕겼다.
“신성력이 담긴 노래가 최고죠.”
사락.
글렌의 신호에 따라, 사제단이 천천히 후드를 내렸다.
그러곤 딱딱 손가락을 튕기고 몸을 흔들며 다 함께 조화로운 화음을 내기 시작했다.
‘······여기서 아카펠라를 한다고?’
사뭇 당황스러운 순간이었지만, 어쨌든 노래는 감미로웠다.
글렌도 강렬한 테너 음을 내며 끼어들었고, 리드미컬한 박자와 부드러우면서도 선명한 음색이 마음을 사로잡았다.
“뭐야?”
“무슨 소리지?”
웅성웅성.
싸움으로 인해 지쳐있던 성기사들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희생자들의 피를 보았을 때 느꼈던 분노, 5위계에 다다른 남작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긴장감이 사르르 녹아들기 시작했다.
그렇게 인상적인 인트로가 끝나갈 즈음······.
“김~~~♬”
“······?”
“정귀엄♪~~~ 김~~~ 정겨어어엄~♬”
“······???”
가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고음과 저음을 오르내리며 유린당하는 내 이름.
황당한 표정으로 글렌을 바라보자, 그가 어깨를 으쓱했다.
“······훈련을 저걸로 해서 어쩔 수가 없어요.”
“애초에 왜 제 이름을······?”
“처음에는 ‘팍스’나 ‘팍스FC’로 하려고 했는데······ 너무 단음으로 끊어져서요. 신성력을 내뿜으려면 긴 호흡으로 된 가사가 필수적이었습니다.”
가사의 내용이 어쨌건, 머리의 통증은 씻은 듯이 사라져 있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하늘을 덮고 있던 컴컴한 어둠이 서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효과가 있으니까 더 열받네.’
글렌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사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죠. 이미 팍스FC와 정겸씨는 사람들에게 큰 위안을 주고 있잖아요. 사실 우리 모두 종교도, 인종도, 문화도 각기 다르지 않습니까? 모두를 묶어줄 수 있는 공통의 문구가 필요했어요.”
그게 팍스FC, 다음으로 내 이름이었다.
다만 발음 탓에 내 이름이 선정된 것.
사무치는 낯간지러움에 더 이상 이 노래를 즐길 수 없었지만······.
“얼씨구 좋고!”
다른 사람들은 달랐다.
팍스맨 성기사들이 껄껄거리며 군무를 추었다.
“······.”
그제야 싸움이 일단락되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천천히 이곳 루마니아에 아공간 포탈을 설치했고······.
“와아아!”
“포탈이다!”
신이 난 성기사들이 몰려들어, 포탈을 둥글게 둘러싼 채 또다시 춤을 이어 나갔다.
팍스FC니, 포탈이니, 김정겸이니 하며 왁자지껄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도 어쩔 수 없는지 피식 웃음이 흘러나왔다.
모두가 다 같이 합창했다.
“김~~♪ 정귀어엄~~♬”
그래도 저건 좀.
***
루마니아의 상황을 정리한 뒤.
나는 이용수와 함께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를 거쳐 올림푸스의 근거지가 있었던 아테네에 도달했고, 두 지역에 각각 아공간 포탈을 설치했다.
루마니아의 트란실바니아, 불가리아의 소피아, 마지막으로 그리스의 아테네까지.
총 세 개의 도시가 추가로 팍스FC의 지역이 되었고, 결과적으로 팍스FC가 관리하는 레드 게이트의 수는 22개까지 불어났다.
“······대리점이 또다시 늘어났네.”
침략자들을 한차례 걷어버린 참이었지만, 동시에 지켜야 할 장소 또한 늘어나 버렸다.
새로 점령한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만 해도 대리점 급 이상으로 보기는 어려웠으니까.
그리고 이 넓은 땅을 지키기 위해서는 점점 더 많은 전력이 필요해질 터였다.
‘필드 효과라도 있었다면······.’
사업체가 활용하는 필드 효과.
그것만 있다면 대리점 대다수를 서브터미널 급까지 성장시킬 수 있을지도 모를 일.
하지만······.
“대체 어떻게 하는 거냐고. 사업체······.”
그 방법은 여전히 오리무중이었다.
물론 뱀파이어들에게서도 그 단서는 찾을 수 있었다.
놈들은 혈계를 중심으로 한 가계 조직을 갖추고 있었고, 거대한 장원을 설치해 인간들의 피를 모으는 한편, 종탑을 설치해 필드 효과를 형성했으니까.
그리고······.
“그건 우리도 마찬가지지.”
메인, 서브, 대리점이라는 터미널의 명확한 구분은 물론, 아공간 포탈이라는 나름의 상징물까지 지니고 있었다.
제리코로부터 전해 들었던 사업체의 조건을 나름 갖춘 셈.
하지만 그럼에도 별다른 소식을 접할 수 없었다.
의문이 들었다.
과연 상공회의소가 식민지에 불과한 우리에게 사업체라는 명함을 내려줄까?
그리고 동시에······.
‘우리는 계속 이렇게 가만히 막기만 해야 하는 걸까?’
그때였다.
“주군, 전해드릴 소식이 있습니다.”
레드 게이트를 방어하기 위해 아테네에 도착해 있던 카멜롯의 기사들.
란슬롯이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무슨 일인데?”
“해안으로 보트를 타고 넘어와 구조를 요청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들어보니······ ‘이탈리아’라는 나라에서 왔다고 하더군요. 일단은 식량을 내어주고 별도 공간에서 감시하는 중입니다.”
이태리인들의 등장이었다.
생각해보니 유럽 등지를 휘젓고 다니면서도 정작 이탈리아는 제대로 둘러본 적이 없었다.
“이탈리아 상황이 많이 안 좋은가 보네. 배까지 타고 넘어오는 걸 보면.”
“그게······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몰라도 괴물은 없다고 합니다. 오히려 예전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고 하더군요. 일부지만 전기가 들어오는 구역도 있다고요.”
“엥?”
상당히 양호하게 들리는 이탈리아의 상황.
의아해진 내가 그에게 물었다.
“말이 이상하잖아. 그럼 왜 보트 타면서까지 빠져나와?”
“도시에 군림하는 녀석이 있다고 합니다. 사람들을 하인이나 장난감처럼 부린다는데······ 그 정체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다고 하더군요. 놈의 폭정이 견디기 어려워 넘어왔다고 합니다.”
이탈리아에 나타난 독재자.
멸망한 세상이니만큼 썩 보기 어려운 군상은 아니었지만······.
“딱 한 명이라고?”
“예, 대신 총을 쓴다고 하더군요.”
혈혈단신, 거기에 총을 사용한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멸망 직후, 현대 화기가 대부분 무용지물이 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미국인들처럼 총과 탄약을 강화해서 쓰고 있는지도 모를 일.
턱을 짚으며, 내가 대답했다.
“사실 그보다 더 신경 쓰이는 건······.”
다름 아닌, 괴물이 없다는 것.
놀라운 이야기였다.
꼭 몬스터 웨이브가 아니더라도, 사방 천지에서 괴물들이 출몰하는 것이 요즘 세상이었으니까.
하물며 그 안전한 용산에서도 괴물의 사체 정도는 드문드문 발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영역 내에서 전혀 괴물을 볼 수 없다는 것은······.
“······일종의 필드 효과일지도 모르겠네.”
“제 생각에도 그렇습니다. 주군.”
어쩌면 놈이 사업체를 만들기 위한 방법을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더욱이 사람들을 제 장난감처럼 부리며 폭정을 일삼고 있다고 하니······.
“그 사람들 어디 있다고? 일단 만나봐야겠다.”
정의 구현은 덤이었다.
평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