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28)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28화(128/240)
128화. 평가 (1)
메인터미널, 서브터미널, 마지막 대리점으로 이어지는 팍스FC의 삼중 체계.
하지만 아직 딱 하나, 분류되지 않은 공간이 남아 있었다.
“여기도 정리가 필요하지.”
그곳은 다름 아닌 내 아공간.
괴물에 의해 위협받을 일도, 누구에게 빼앗길 걱정도 없는 무적의 장소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리는 필요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포탈과 연결되어 있는 만큼, 내 아공간은 모든 터미널을 아울러 연결해주는 ‘허브 터미널’이 되어줘야 할 테니까.
더욱이, 아공간 7레벨에 이르러 딱 좋은 정리 수단을 확보한 참이었다.
띠링!
—
◈ 카테고리 파티션 (New!)
-아공간을 여러 개의 섹터로 분할할 수 있습니다.
-섹터마다 별개의 입장 권한을 부여할 수 있으며, 시설이나 사물을 임의로 배치할 수 있습니다.
—
그저 모양뿐인 칸 나누기가 아니다.
각 섹터는 서로 완전히 차단된 별개의 공간이었으며, 가장 중요하게는 개별 섹터마다 별도의 입장 권한을 부여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까지는 어쩔 수 없이 팍스FC에 속한 사람 또는 이종족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지.”
국통사의 지휘부를 따로 떼어 군사 관련 섹터로 분류했고, 자재 창고와 제작자들의 공방을 하나로 묶어냈으며, 실험실과 형수의 연구실을 독립적으로 따로 떼어냈다.
이 섹터들은 각각 팍스FC의 ‘부서’를 맡아줄 터.
이제야 좀 정리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지만······.
“그래도 다 같이 모이는 장소 하나쯤은 있어야 하니까.”
그래도 물류센터만큼은 만인의 광장으로 남겨두었고, 그 중심에는 ‘역천의 카멜롯’과 이제는 완연한 청년기의 나무가 된 세계수를 옮겨두었다.
그렇게 아공간 능력을 ‘조직 개편’이 진행되고, 각 섹터에 속한 이들에게 재미 삼아서라도 부서명을 제출해보라고 일러두었을 즈음······.
“······.”
아공간에 두 개의 불행한 소식이 발생했다.
-♩ ♬ ♪ ♬
첫째는 글렌과 가스펠 사제들의 김정겸송이 아공간 내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다는 것.
-키임♩정 ♬ 귀어어엄 -♪ ♬
둘째는 지금 그것을 엘븐하임의 엘프들이 노래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두 귀를 쫑긋 세운 엘리, 그녀가 지휘자처럼 나무젓가락을 휘적거리며 말했다.
“자, 우리 다 같이 엘븐하임을 구해주신 정겸 씨에게 감사의 노래를 부릅시다.”
따단!
-키이이이잌♩정 ♬ 켜어어어엌 -♪ ♬ – !
칠판을 긁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리.
온몸에 한기가 찾아들며, 양팔에 오소소 닭살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화생방 상황에 준하는 속도로 빠르게 귀를 틀어막으려던 중, 란슬롯이 칼자루를 덜걱거리며 미친 듯이 내게 달려왔다.
“주군! 큰일입니다! 엘프들이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냥 노래 부르는 거잖아······.”
“저런 개같은 목소리로 감히 주군의 이름을 입에 올리다니요! 역모를 품은 게 아니고서야, 제정신으로 저런 짓을 할 리가······!”
“쟤네 원래 제정신 아니야······.”
조금 전만 해도, 엘븐하임이 <엔터테인먼트 부서>라는 이름으로 제출한 종이에 박박 엑스자를 그려넣었던 참이었다.
노력은 가상하지만, 무조음악의 창시자가 오더라도 저 엘프들에게는 견주지 못할 터.
아니나 다를까······.
“쟨 또 왜 저래?”
엘프들의 노래를 들은 세계수의 잎이 온통 노랗게 시들어 있었다.
제법 두껍게 자란 밑줄기가 무색하게 엘프들의 노래에 고통을 호소하며, 단 하나의 잎새만을 남겨놓고 있는 세계수.
그런 세계수 옆에는 전담 사육사 리디아가 나름의 응급조치로, 사탕발린 말을 속사포로 이어가고 있었다.
“아이 예쁘지, 아이 예쁘다. 하나도 안 아프다. 우리 세계수 다 나았네! 너무 멋지다. 너무 멋져. 세계수 넌 너무 멋져. 화분이 봐도 반하겠어. 세계수 넌 정말 잘생겼고 생장도 잘하고 뿌리부터 열매까지 완벽해. 그게 바로 PERPECT 그게 바로 인생의 진리지.”
“······.”
화아악!
시들······.
화아악!
시들들······.
마지막으로, 녹색과 갈색을 파노라마처럼 오가는 ‘마지막 잎새’를 보며, 뒤틀린 황천의 사디스트, 윌그라임이 박수를 쳐댔다.
짝짝!
“그렇지! 그거야! 더 큰 고통! 더 큰 상처! 세계수 성장에 극강의 효율을······!”
“······.”
왜 다들 섹터를 구분해주었음에도 물류센터에 모여있는 걸까?
형형색색의 사물들로 범람하는 명절날 물류터미널의 풍경처럼, 어쩌면 우리들 또한 각양각색으로 저마다 아우성을 녹여내고 있는지도 몰랐다.
단단한 위계와 깎아지른 듯한 위험으로 점철된 세계.
어쩌면 유일하게 평평한, 이곳 물류센터까지 흘러내려온 것일지도.
-······!
소란스러운 만인의 광장을 뒤로하고, 나는 아공간의 또 다른 섹터로 향했다.
따로 만들어둔 조용한 밀실.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난민들이 날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
“정말 감사합니다. 뭐라 말씀을 드려야 할지······.”
이탈리아에서 건너온 생존자들이었다.
일단 팍스FC의 전통에 따라 밥부터 배불리 먹여주었고, 그중 대표자라 할 수 있는 로렌조와 따로 이야기하기 위해 이제 막 테이블에 앉은 참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오셨다고요?”
“예, 내륙은 아니고, 시칠리아섬에 있는 프리올로라는 작은 마을입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마을이었지만, 시칠리아 섬의 동쪽 해안에 위치했다는 것으로도 대략적인 그림이 그려졌다.
곧장 그에게 물었다.
“거기서 정확히 어떤 일이 있었던 겁니까?”
“아마 처음에는 여러분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겠죠. 괴물들이 나타나고, 각성자들이 나타났으니까요. 작은 마을이라 그런지 괴물이 많지 않아 근근히 버텨내기는 했지만, 점점 시간이 갈수록 방어선이 무너져내리고 있었습니다.”
멸망에서의 스테레오 타입이었다.
특별히 강한 각성자가 있지 않은 한, 지구 대부분의 지역은 타차원의 세력들에 의해 밀리는 싸움을 하고 있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낯선 외지인이 마을로 들어왔습니다. 마을 주변으로 기둥처럼 생긴 토템들을 설치하기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그 이후로는 괴물들이 들어오지 않더군요.”
토템을 이용해 영역을 만든 외지인은 깨끗하게 괴물들을 몰아내 버렸다.
그것이 그의 특별한 각성 능력이었을지, 아니면 사업체에서 비롯된 필드 효과였을지 이런저런 추정을 하려던 중······.
로렌조가 말을 이었다.
“문제는 그다음부터였습니다. 마을이 안전해지자마자······ 자신을 위해 매일 삼시세끼를 준비해 놓으라 하더군요. 거기까지는 그러려니 했습니다. 마을을 지켜주고 있었으니, 그럴만한 대가라고 생각했죠. 하지만 더 좋은 메뉴를 마련하라는 둥, 식사 장소를 제대로 꾸며놓으라는 둥······ 점점 이상한 요구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창고에 쌓아둔 밀 포대가 있어서 식량 자체는 모자라지 않은 상황이었는데도······ 놈의 취향에 맞는 식재료를 찾기 위해 마을 사람들이 모여 주변 지역으로 원정을 나갈 정도였죠.”
“······그렇게까지요? 무리한 요구라면 거절할 만도 했을 텐데요.”
“그럴 뻔했지요. 그러다 어느 날 마을 사람들끼리 모여 있던 자리에서 누군가 불만을 토로한 적이 있었어요. 과수원을 하시는 어르신이었는데, 이건 아니라며······.”
로렌조가 섬뜩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그러곤 다음 날 아침에 미간에 구멍이 뚫린 채로 발견되셨죠. 그게 놈의 메시지였어요. 너희가 언제 어디서 이야기하든······ 놈은 다 들을 방법이 있고, 벌할 준비 또한 되어 있다는 뜻이겠죠.”
“저항해본 적은요?”
“저는 겁이 많아 그러질 못했지만······ 딱 한 번 마을에서 내로라하는 각성자 네 명이 모여서 함정을 판 적이 있어요. 녀석이 식사를 하던 중에 기습하기로. 둘은 8위계에, 나머지 둘은 자그마치 7위계 각성자였죠. 결과적으로는······.”
“다 죽었어요. 놈은 식당 분위기가 최악이라며 주인장 머리에 총알을 박아놓고 떠났고요.”
차츰 악랄해져 가는 ‘외지인’의 만행.
로렌조가 이제는 지긋지긋하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
“그전에도 밥 한 끼 먹을 때마다 맛이 어떻게, 분위기가 어떻게 꼭 한마디 덧붙이던 녀석이었지만······. 그날 이후로는 아예 모든 걸 평가하기 시작했어요. 음식의 수준은 물론, 저희가 입고 다니는 옷가지, 청결, 품행, 정말 상상도 못 할 것들로 트집을 만들어 점수를 매겼습니다. 요구사항은 점점 날이 갈수록 많아졌고······ 나중에는 아예 우리더러 흥미를 돋울만한 즐길 거리를 만들어두라고 하더군요. 정 모르겠으면 서커스라도 하라며······ 말이 됩니까? 다들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버거운 상황에······.”
녀석은 홀로 깔끔한 정장을 입은 채, 안주머니에서 꺼낸 수첩에 끊임없이 마을 사람들의 평가 점수를 적어 내려갔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단순한 점수가 아니었다.
점수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진 사람은 즉결로 처형되었고, 어쩌다 그를 만족시키기라도 한다면 좋은 점수를 부여해 마을 사람들 간의 위화감을 조성했다.
로렌조가 말했다.
“마을 사람들 또한 서로를 전혀 믿지 못하게 됐어요. 과수원 어르신이 살해된 것만 해도······ 마을 사람 중 누군가가 놈에게 어르신을 고발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으니까요. 누구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전혀 없었지만······ 의심이란 게 사람을 그렇게 만들더군요.”
“그렇군요······.”
어쩌면 하나의 작은 독재국가를 연상시키는 시칠리아의 작은 마을.
이제 남은 이야기는 어떻게 그곳으로부터 탈출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쉽지 않았습니다. 아까 말씀드렸다시피······ 마을 전체가 놈의 토템에 둘러져 있으니까요. 정확한 원리는 모르겠습니다만, 그 사이를 지나칠 때마다 놈에게 무슨 신호가 가는 것 같았습니다. 탈출을 시도하다가 토템 주변에서 머리가 꿰뚫린 사람이 열 명도 더 되거든요.”
필드 효과에 대한 정황이 우수수 쏟아지고 있었다.
그것도 최소 두 가지가 중첩된 효과였다.
괴물들이 마을 내로 접근할 수 없도록 결계를 두른 것과 동시에, 내부의 사람들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그들을 감시하고 있었으니.
놈을 붙잡아봐야겠다는 생각이 점차 강하게 찾아들고 있었다.
“그럼 로렌조 씨는 어떻게 빠져나온 겁니까?”
“정말이지 천운이었습니다. 놈이 토템의 위치를 바꿨거든요. 얼마 전부터 생선요리를 해오라고 생떼를 부렸습니다. 그건 저희도 어쩔 수 없다고 했죠. 사방이 가로막힌 탓에 바다로 나갈 수가 없었으니까. 그제야 놈이 육지에 세워져 있던 토템 일부를 해안선으로 옮겨 부표처럼 띄워놓더군요.”
마침내 생겨난 감시망의 틈새.
로렌조와 일행들은 그 틈새를 영리하게 파고들어 섬으로부터 탈출한 터였다.
“수면 아래로 잠수해서 토템의 감시망을 피해 나왔습니다. 미리 보내두었던 보트로 옮겨타서 이동한 끝에······ 이곳까지 오게 됐죠.”
로렌조의 스펙타클한 탈출서사
어쩐지 익숙한 동네 어딘가가 떠올랐지만, 이제 내게 중요한 것은 역으로 프리올로로 들어가는 방법이었다.
“마찬가지로 수면 아래라면 발각되지 않고 갈 수 있겠군요.”
“거길 가시겠다고요?”
다짜고짜 쳐들어가 깽판을 쳐버리는 것도 좋겠으나, 나의 주된 목적은 놈을 생포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놈이 눈치 빠르게 달아나 버릴 수도 있었으니.
“네. 몰래 갈 겁니다.”
오랜만에 다시 잠수함을 꺼내 볼 차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