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29)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29화(129/240)
평가 (2)
우우웅···
낮은 구동음을 울리는 잠수함.
“거의 다 왔습니다. 그쪽으로 쭉 가시면······ 아, 정확합니다! 저 부표예요!”
시칠리아 섬의 동부 해안, 프리올로로 향하는 길.
그곳에서 탈출해 온 로렌조가 잠망경을 들여다보며 길을 안내했고, 이용수와 선원들이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잠수함을 운전했다.
부표는 항구로부터 꽤 멀리까지 떠밀려 있었다.
물고기를 잡기 위해 토템의 영역을 의도적으로 넓혀놓은 것.
덕분에 로렌조가 그러했듯, 나 또한 수월하게 잠입해 들어갈 수 있었다.
촤아아악!
수면 아래로 숨어 들어간 잠수함이 토템 영역 안쪽으로 진입했고, 해수를 배출하며 두둥실 위로 떠 올랐다.
출입용 해치를 열고 망루로 올라서자 드넓은 바다 위에 홀로 우뚝 서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상품회수.”
화아악!
잠수함과 함께 내부에 있던 일행들을 모두 아공간으로 수용했다.
디딜 곳이 없어진 탓에 첨벙 물속으로 빠져들었지만, 구명조끼의 힘을 빌려 50미터 떨어진 항구 해안 쪽으로 천천히 헤엄쳐 들어갔다.
아무쪼록 나는 초대받은 손님은 아니었고, 이건 명백한 ‘잠입’이었으니까.
어쩌면 기사들에게 이 땅을 조사해보라 시킬 수도 있었지만, 아직 아공간 포탈이 설치된 장소가 아닌 만큼 이번에는 내 눈으로 한번 확인해보기로 했다.
“후우······”
부두의 구석진 자리에 도착한 뒤, 머리 위로 생수를 출하해 몸을 씻어냈다.
지리산 공기를 출하해 머리를 말린 뒤 새 옷을 꺼내입자, 몸을 두르고 있던 소금기를 감쪽같이 지워버릴 수 있었다.
“여기로 가면 된다는 거지?”
내 손에는 로렌조가 그려준 간략한 약도가 그려져 있었다.
로렌조가 미처 데리고 나오지 못했다던, 그의 삼촌이 있는 가게.
그의 고집이 하도 완고했던 탓에, 로렌조는 내내 아쉬움을 삼켰더랬다.
우선은 그를 만나보기로 했다.
낯선 외지인이 혼자 배회하고 있다면 여러모로 눈에 띄게 될 테니.
***
약도를 따라 도착한 곳은 구석진 골목에 자리한 레스토랑이었다.
기껏해야 주민 1천 명 수준의 마을이라 크기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괴물들의 출몰에 허리째 부러지는 도심의 빌딩에 비하면 제법 고스란히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건···”
식당의 정문 아래, 대리석 타일에는 세 개의 선명한 총알 자국이 남겨져 있었다.
대리석이 갈라지지 않은 것으로 보아, 꽤나 진귀한 묘기.
어쩌면 프리올로의 독재자가 남긴 것일지도 몰랐다.
놈 또한 총을 사용한다 했으니.
딸랑.
문을 열자 손님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늘진 주방 안쪽에서 얼추 쉰이나 예순쯤 되었을 듯한 백발의 남성이 천천히 걸어 나왔다.
내가 그에게 말했다.
“로렌조의 소개로 왔습니다. 여기···”
나는 로렌조가 그려주었던 약도를 건네주었다.
거기에는 로렌조의 필체로 그의 삼촌에게 전하는 말이 적혀있었고, 덕분에 백발의 중년은 더 이상 나를 의심하는 일 없이 두꺼운 손을 내밀었다.
“반갑네. 마르코라고 하네.”
“김정겸입니다.”
드르륵!
악수를 주고받은 뒤, 마르코는 곧장 주방 가까운 편에 놓인 의자를 잡아끌었다.
“일단 앉으시게. 마침 식사 준비를 하던 참이었으니.”
“아, 저는······”
“부담 갖지 마시게. 여기 다른 건 몰라도 먹을 건 충분히 있어. 세상이 요지경이라 항구에 선적하려던 밀 포대가 산더미처럼 쌓였거든··· 안 먹으면 버리는 거요. 뭐, 그래봤자 재료는 단조롭기 짝이 없지만.”
마르코는 성큼성큼 주방으로 걸어 들어갔고, 빨간 벽돌로 만든 화로에 불을 지피기 시작했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지, 얼마 지나지 않아 화르륵 불길이 타올랐다.
‘······분위기가 엄청 좋네.’
그를 기다리는 동안 천천히 가게를 둘러보았다.
원목 구조가 고스란히 비쳐보이는 천장, 벽면에는 짙은 녹색 페인트가 공간을 두르고 있었고, 하늘하늘 휘날리는 얇은 커튼 사이로, 십자 모양의 창살 너머에서 은은한 햇빛이 부드러운 먼지를 머금고 비쳐 들어왔다.
갑자기 홀로 유럽 여행이라도 온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래서인지, 서서히 배가 고파오기 시작했다.
적당히 팬을 달군 마르코가 주방에서 말했다.
“맛이 아쉬워도 그러려니 하게. 소금 친 올리브유에 볶은··· 그냥 기름 파스타에 불과하니까.”
그의 목소리에서 아쉬움이 묻어났다.
아무렴 밀이 포댓자루로 쌓여있다고 한들, 이런 상황에 다른 부재료를 찾기는 쉽지 않았을 터.
그는 비록 최선을 다하고 있었지만, 사라진 재료 탓에 동선이 엉키는 것인지 이따금 같은 자리에 멍하니 멈추어 섰다가, 다시 황급히 움직이기를 반복했다.
그러며 홀로 중얼거렸다.
“하다못해 달걀이라도 있었으면······”
벌떡!
나는 즉시 주방으로 향했고, 안주머니에 손을 휘휘 집어넣었다.
그러곤 주머니 안에서 출하된 물건을 마르코에게 전해주었다.
띠링!
[동물복지 유정란, 6구, 가격은 3,800원입니다.]“저, 어르신. 사실 마침 제게 신선한 유정란이······”
“······고, 고맙네?”
얼떨떨한 표정으로 달걀을 받아든 마르코.
탁!
작은 그릇에 담긴 유정란을 휘휘 저으며 그가 말을 이었다.
“허허··· 이게 얼마만의 달걀인지···! 귀한 재료를 제공해줬으니, 내 정말 기깔나게 만들어주겠네! 달걀 하나 생겼다고 욕심이 나다니 나도 참 주책이구만. 그래도··· 아쉬운 건 아쉬운 거야. 치즈만 있었어도 자네에게 이탈리아의 정수를 맛보게 해줬을 텐데.”
벌떡!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어르신. 사실 마침 제게 페코리노 로마노가······”
“······??”
띠링!
[페코리노 로마노 치즈, 150g, 가격은 7,160원입니다.]“베이컨도 있으면 좋긴 한데······”
“그것참 우연히 마침 제 주머니에 베이컨 스테이크가······”
띠링!
[존쿡델리미트 컨츄리 베이컨 스테이크, 1kg, 가격은 23,150원입니다.]“······”
화르륵!
치이이이······
몇 분도 채 지나지 않아 이탈리아식 정통 까르보나라를 완성한 마르코.
그가 내 앞에 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자네 대체 정체가 뭔가?”
“···작게 마트 하나 하고 있습니다.”
“어디 가서 못 먹고 죽을 일은 없겠구만······”
그건 내가 할 말이었다.
우유도, 크림도 없이 오직 계란과 치즈만으로 꾸덕한 맛을 낸 마르코의 까르보나라.
이건 멸망 전후를 통틀어 내게 역대급 파스타였으니까.
‘이 양반들······’
그제야 왜 그 독재자라는 놈이 삼시세끼 식사를 요구하는지 이해가 됐다.
‘···지나치게 요리를 잘하는 게 분명해.’
사실 이 정도 맛이라면 내가 프리올로의 왕관을 썼더라도, 똑같이 식사를 요구하지 않았을까?
아무렴 제 변덕에 따라 사람 머리에 총알구멍을 내는 짓 따위는 하지 않았겠지만.
마르코와 식사를 마친 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꺼내려던 찰나···
드르륵!
“식사 다 들었으면 따라오게.”
그는 돌연 몸을 일으키며 밖으로 나가버렸다.
.
.
.
그가 향한 곳은 가게 뒤편으로 이어진 드넓은 풀밭.
거리상으로도 100여미터 이상 떨어진 장소였다.
“여기선 말을 조심해야 해. 어떻게 되든 다 놈의 귀에 들어가거든.”
그러곤 듬성듬성 주택과 가게가 들어선 프리올로의 전경을 바라보며, 또한 덧붙였다.
“그래도 건물 주변만 벗어나면 괜찮은 모양이야.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 알아낸 사실이지.”
낮말 듣는 새처럼, 밤말 듣는 쥐처럼 마을 사람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파악하고 있던 독재자.
그것이 그의 각성 능력인 것일까?
녀석의 정체를 묻는 말에, 마르코는 고개를 저었다.
“우리 중 누구도 놈의 정체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네. 무슨 능력 같은 건지는 몰라도, 나는 물론이고 마을 사람 중에 놈의 얼굴 하나 제대로 기억하는 사람이 하나 없거든. 평소에는 깨끗한 정장 차림에 손바닥만 한 수첩을 들고 중얼거리며 돌아다니는데··· 음식 맛이 어떻네, 생긴 게 어떻게, 좀 씻으라는 둥 사람들 평가질하고 돌아다니는 게 놈 주특기지. 심하면 머리에 총 맞는다는 이야기는······ 자네도 로렌조한테서 들었을 테고.”
후우.
마르코가 작은 한숨을 내쉬며 덧붙였다.
“다행히 나는 밥 하는 재주가 있어서 나름 예쁨 받는 편이야. 최근에 식당 주인 중 하나가 죽어버려서··· 더더욱 그렇게 됐지. 로렌조를 따라 나가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네. 나는 계속 있어도 죽을 일이 없거든.”
그제야 레스토랑 현관 바닥에 쏘아져 있던 탄흔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미슐랭 쓰리 스타.
그것이 독재자가 마르코에게 남겨놓은 평가 점수였던 것.
“왜 그렇게까지 평가에 집착하는 겁니까?”
“이 마을 전체를 자신만의 천국으로 개조하려는 거지. 얼마나 집요하냐면··· 가게 인테리어부터 마을 조경까지 사사건건 간섭하지 않는 게 없어. 그리고······ 그밖에 뭔가 더 있었던 것 같기는 해.”
“그밖에 뭔가라면······”
내 질문에, 마르코는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대답했다.
“지나가듯 한 말이긴 했지만··· 나한테 다른 차원으로 가서 요리를 해볼 생각이 없냐는 소리를 했어. 그런데 농담치고는 뭔가 이상하지 않나? 다른 차원이라니······”
슥슥 머리를 긁는 마르코.
어쩌면 그의 말대로 그건 정말 농담이 아닐지도 몰랐다.
‘다른 차원으로 나간다고···?’
놈의 정체가 한층 더 궁금해졌다.
토템을 세워 몬스터를 내쫓고, 토템을 감시 장비로 활용하고, 마을 전체를 도청하는 것은 물론, 누구도 자신의 얼굴을 기억할 수 없에 만드는 기이한 묘기까지.
이 모두가 모종의 ‘필드 효과’인지, 아니면 놈의 진기명기 한 ‘각성 능력’인지조차 모를 마당에, 심지어 다른 차원으로의 이동까지 운운하고 있었다.
‘······평범한 각성자가 아닌 건가?’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녀석의 흐릿한 형상을 머릿속으로 떠올리고 있을 즈음.
타앙-!
“······!”
마을 반대편에서 총성이 울렸다.
***
마르코와 함께 곧장 소리가 난 곳으로 향했다.
혹여나 정체가 보일까 최대한 조심했지만, 이미 주변으로 마을 사람들이 혼란스럽게 모여든 덕에 그리 어렵지 않게 무리에 섞여들 수 있었다.
“······!!”
웅성거리는 사람들.
그 중심에는 머리에 구멍이 뚫린 채 창백하기 굳어버린 시체가 놓여 있었고, 그 위로 [F-품행불량]이라고 쓰인 메모장이 턱 하니 올려져 있었다.
다른 경우를 생각할 수 없었다.
독재자가 또 한 명의 사람을 숙청했다는 것 외에는.
‘기묘하네···’
이곳은 과수원길로 이어지는 마을 외곽.
아직 비가 마르지 않아 주변이 온통 진흙밭이었음에도, 놈의 발자국 하나 발견할 수 없었다.
“쯧쯔······”
마르코가 혀를 찼다.
그러곤 이제는 자포자기했다는 듯, 천천히 몸을 돌렸다.
“곧 놈의 식사 시간이네. 나도 저 꼴이 되지 않으려면··· 식사 준비를 제대로 해야겠지. 재료 고맙네. 덕분에 며칠은 시간을 벌었어.”
자신은 죽을 일이 없다며 자부하는 마르코였지만, 사실 그건 확신할 수 없는 문제였다.
언제 또 이 독재자 놈이 변덕을 부려 총부리를 들이밀지 알 수가 없었으니.
딱히 깽판을 치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이곳 프리올로 사람들은 모두 무고한 이들이었으니.
딱 하나 깽판 칠 만한 게 있다면··· 그건 놈의 소중한 식사 시간뿐이었다.
독재자의 까다로운 입맛을 상상하며, 나는 마르코에게 덧붙였다.
“이번 식사는 제가 한 번 준비해보죠.”
그게 놈의 마지막 콩밥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