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3)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3화(13/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13편
(기울어진 저울 (1))
“금방 도착했네요.”
포탈에서 나온 내가 조수석에 자리를 잡으며 말했다.
“원래 거리상 아주 먼 곳은 아니니까요. 수류탄 나눠주신 게 컸습니다. 위험하다 싶을 때마다 한 발씩 던져가며 달리니··· 뒤따라오는 놈들 떨어내기엔 이만한 게 없더라고요.”
소총을 사용할 수도 있었겠지만, 운전 중에는 영 불편할 듯싶었다.
하여 나눠준 것이 수류탄이었다.
바깥은 완전히 깜깜한 밤이 되어 있었다.
군부대에서 빠져나올 때만 해도 서서히 어둑해지는 초저녁이었는데, 이제는 완전히 밤이 내려앉았다.
도심을 누비는 괴물은 많았다.
아직 몇 마리 차량을 뒤쫓는 놈들이 있기는 했지만, 나는 소총을 회수용 포탈로 집어넣었다.
그러곤 병원에 도착하기 전에 이용수에게 미리 언질을 해 두었다.
“당분간은 소총이나 수류탄은 넣어두죠. 병원에 어떤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니···”
한국은 총기 소유가 불법인 나라다.
이 용맹한 충무공의 후손들 대부분은 지금쯤 부엌칼이나 골프채 같은 걸로 멸망에 대처하고 있을 텐데, 대뜸 총기를 들고 나타났다간 괜한 오해와 경계를 살 여지가 있었다.
더욱이, 우리가 향하는 강남 세브란스 병원은 상당히 큰 대형병원이었다.
많은 인파가 모여있을 가능성이 컸고, 그만큼 변수도 많았다.
이런 시국일수록, 괴물보다 앞서 사람을 경계해야만 했다.
이용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시죠. 하기야, 어딜 가든 이상한 사람 한둘은 끼어있기 마련이니까요. 미리 조심해서 나쁠 건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 또한 힘의 여유에서 나올 수 있는 전략이었다.
총을 잠시 넣어둔다 한들, 매 초마다 날아가는 캠핑 도끼는 여전히 강력한 공격 수단이었으니까.
마침내 보이는 병원 건물.
환자들이 머무는 병동 건물부터, 진료시설이나 연구실이 몰려있는 건물까지.
모든 출입구를 여러 대의 버스나 앰뷸런스 차량이 바리케이드처럼 막고 있었다.
널찍한 지상 주차장을 빙빙 돌며 도끼를 던졌고,
퍽!
캐앵!
칵!
서성이던 괴물들을 처치했다.
후르르륵!
마석을 회수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렇게 병원의 지상 주차장을 한 바퀴 돌았을 때쯤,
건물로부터 두 명의 사내가 뛰쳐나왔다.
그들은 상당히 놀란 눈치였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지상 주차장의 괴물들을 몰살시켜버렸으니까.
스으응-
그들에게 창문을 내린 뒤 물었다.
“여기 김주연 간호사 있습니까?”
***
불 꺼진 병원 로비.
대기용 의자들에는 잠을 청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병원 마크가 새겨진 이불부터, 겉옷, 심지어는 수건까지.
온갖 물건들이 모두 침구로 쓰이고 있었다.
나는 이용수와 함께 소식을 기다렸다.
걸출한 전투력을 미리 보여준 덕일까.
어렵지 않게 병원에 들어올 수 있었고, 우리를 마중했던 사내들은 큰누나를 불러주겠다며 자리를 떠났다.
다행히, 큰누나는 살아 있었다.
‘역시 아직 병원에 있었구나.’
어릴 적 큰누나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그녀는 나보다 여덟 살이나 나이가 많았다.
내가 고작 일곱 살에 불과했던 어느 날 여름, 중학생이었던 큰누나는 내게 대뜸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당장 내일 세상이 멸망한다 해도, 오늘의 나는 아픈 사람들 대가리에 붕대를 감아줄 거야..”
뒤에 놓인 탁자에는 <사과나무 이야기>라는 작은 책자가 놓여 있었다.
의사가 되겠다는 꿈과 교훈적인 이야기가 섞인 순수하면서도 기괴한 발언이었다.
어릴 때라도 알 건 다 알았는지, 그때 그렇게 대답했던 것 같다.
“···누나 공부 못하잖아.”
“이놈 시끼가.”
의사가 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
큰누나의 성적표를 보며 한숨을 꺼뜨리던 어머니의 얼굴이 떠오른다.
하지만 김씨스터즈 1호 김주연은 의외로 의지가 강한 사람이었다.
고등학교서부터 성적이 수직 상승하더니, 목표로 하던 의대까지는 못 갔지만 간호대에 당당히 합격했다.
그렇게, 그녀는 사람들 대가리에 붕대를 감아줄 수 있게 되었다.
그 운명을 스스로 개척했다.
그때, 소리가 들렸다.
“김정겸!”
아주 오랜만에 만난 건 아니었다.
세상이 요지경이 되기 얼마 전에도 가족 모임에서 만났던 큰누나였으니.
그래도 여러 차례 죽을 고비를 거친 뒤여서일까, 유달리 그립게 느껴지던 그녀였다.
재회의 포옹을 나눴지만, 상황이 그리 여유롭지만은 않았다.
나는 서둘러 큰누나에게 말했다.
“환자가 있어.”
“뭐? 어디에?”
환자라는 말에, 그녀는 자동반사적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잠깐, 이리로.”
나는 큰누나를 인적이 드문 복도로 데려갔다.
그러곤 포탈을 열었다.
***
이곳은 물류센터 안.
‘찰리’는 흰 매트리스 위로 덩그러니 누워 있었다.
붕대에 둥글게 그려진 붉은 피.
그는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이 공간의 정체가 무엇인지, 내 능력이 무엇인지 설명할 겨를도 없이,
나는 곧장 큰누나에게 물었다.
“바로 꺼내야 할까? 밖에서 수술이라도···”
그녀는 말없이 감긴 붕대를 풀더니, 사이로 드러난 상처를 자세히 확인하며 말했다.
“이 사람 못 살아.”
“아···”
아무래도 저글링의 공격이 너무 깊었던 모양이었다.
착잡하게 결과를 받아들이려던 찰나, 큰누나가 마저 말을 이었다.
“원래대로라면.”
“···?”
그러곤 찰리의 복부에 가깝게 손을 가져다 대었다.
그러자 지잉하고 울리는 소리와 함께 광채가 손끝에서 뿜어져 나왔다.
그녀가 부연했다.
“힐러로 각성했거든. 쩔지?”
간호사에서 힐러로.
못 본 사이 큰누나는 성공적으로 전직을 마친 뒤였다.
지이잉-
큰누나의 치료는 20분 정도 계속됐다.
치료를 마친 그녀가 손을 거두며 말했다.
“아직 레벨이 낮아서··· 오늘은 이 정도가 한계야. 그래도 죽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말고.”
그 말을 듣고 나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급한 불을 끈 나는 이곳이 내 아공간이며, 물류센터를 통째로 들어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 큰누나는 맨입이 아니었다.
언제 끓인 것인지 오지수가 뜨끈한 소고기뭇국을 대령해 왔으니까.
큰누나는 냉큼 맑은 국물에 뜨끈한 햇반을 말았다.
그러곤 프레시 센터에서 가져온 포장김치를 죽죽 찢어가며, 무뚝뚝한 목소리로 말했다.
“김정겸, 사랑한다.”
웃지 않는 그녀의 입술에는 김칫국물이 짙은 립스틱처럼 묻어있었다.
큰누나가 주방장 오지수를 바라보며 또한 덧붙였다.
“뉘신진 모르겠지만, 사랑합니다.”
초면에 실례도 이런 실례가 없었다.
모르긴 몰라도 더럽게 배가 고팠던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세상에서 먹고 마시는 일이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니까.
찰리의 치료도 해결이 되었고, 만나려던 큰누나도 만났다.
이제 함께 작은 누나를 찾으러 가면 될 일이었지만, 그녀는 고개를 저었다.
“미안. 지금 여기가 그럴만한 상황이 아니야.”
“무슨 일이 있길래?”
“이곳 병원에만 800명 정도가 모여 있어. 지속해서 관찰이나 투약이 필요한 환자들도 있긴 한데···”
환자들을 두고 갈 수 없다는 식의 이야기를 하려나 했다.
큰누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하지만, 상황은 좀 더 복잡했다.
“아무튼, 내가 없다고 해서 누가 죽고 이런 상황은 아니야. 문제는···”
그녀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
한편, 내과 과장 진성학은 한밤중 날아든 소식에 잠을 쫓을 수밖에 없었다.
어느덧 그의 방처럼 쓰이게 된 병원장실에는 약무국장 구민철과 영양팀장 박종현이 자리해 있었다.
그야말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약무국장 구민철이 말했다.
원래는 병원 내에서 의약품을 담당하는 직책이었지만, 지금은 진성학의 휘하에서 수용 중인 환자들이나 각성자들을 관리하고 있었다.
“보초를 서던 각성자들에게 들어보니 전투력이 상당하다더군요. 허공에서 도끼를 소환하는 능력이라던데··· 지상 주차장에 있던 괴물들을 전부 쓸어버렸답니다. 차림새도 그렇고, 군용 차량을 몰고 온 걸 보면 어디 특수부대 군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영양팀장 박종현이 조급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과장님, 그게 사실이라면 최대한 우리 편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하지만 내과과장 진성학은 끌끌 혀를 찼다.
“가당치도 않은 소리. 그 자식 하필이면 김주연이 동생이라며? 우리를 고깝게 보기나 하겠나?
“···그럼 어떻게 해야?”
“걱정할 필요 없어. 어차피 먹고 잘 곳 필요해서 온 걸 텐데, 이곳 식량은 우리가 꽉 쥐고 있잖아?”
“아-! 그건 그렇죠. 다 먹자고 하는 짓이니···”
영양팀장이 호들갑스럽게 맞장구를 쳤다.
병원의 영양팀은 환자들의 병원식을 만들고 식자재를 관리하는 업무를 했다.
그리고 이를 알고 있던 내과 과장 진성학은 병원을 접수하기에 앞서, 바로 이 영양팀장부터 구워삶았다.
사태가 벌어진 이튿날, 난데없이 병원에 식량 배급제도가 생긴 것은 내과 과장의 재빠른 전략이었다.
그것은 권력이 될 터였고, 실제로도 그랬다.
하지만 내과과장 진성학의 무기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정 말을 안 듣는다 싶으면··· 뭐, 작업해버리는 수밖에 없지.”
“가능할까요? 환자가 아니라 약을 쓰기도 어려울 텐데···”
“밥에 섞어서 주면 돼. 혈관 주사보다 효과는 좀 떨어지겠지만.”
진성학 또한 각성자였다.
능력은 <정신 세뇌>.
상대를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드는 강력한 능력이었지만, 그만큼 제약도 컸다.
상대의 의식적인 저항을 뚫어내야 했는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진성학은 병원에서 취급하는 마약성 진통제를 활용했다.
그들의 의식이 흐릿해지는 그 틈새를 노릴 수 있도록.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입원 환자 중 각성자들을 골라 링거에 약을 타 세뇌를 걸었고, 자신의 하수인으로 만들었다.
약품들을 관리하는 약무국장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세 사람의 공모관계는 아주 촘촘하게 짜여 있었다.
이 멸망을 기대하기라도 했던 것처럼.
진성학이 대화를 정리했다.
“아무튼 조금만 더 고생하자고. <정신 세뇌> 레벨만 올라가면 약이니 뭐니 그런 거추장스런 짓거릴 할 필요도 없으니까. 항상 하는 말이지만··· 아무리 멸망한 세상이라 해도 힘센 바보들보다는 우리처럼 머리 좋은 사람들이 지배자가 되어야 하는 법이야. 다가올 세상에도 그게 유익하지 않겠나?”
“흐흐. 정말 그렇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웃었다.
***
“···세뇌?”
황당한 소식을 들은 내가 되물었다.
큰누나가 끄덕이며 대답했다.
“확실해. 그렇지 않고선··· 사람들이 그렇게 하루아침에 바뀔 리 없어.”
전날만 해도 반갑게 인사를 나누던 환자들이었다.
하지만 이튿날 보자마자 학을 떼더니, 돌연 내과과장 패거리를 지지하기 시작했다.
“뭔가 제약이 있는 것 같기는 해. 일단 나나 간호국 사람들이나 모두 멀쩡하거든. 이상해진 건 입원 환자들뿐이야. 그중에서도 특히 각성자들.”
문제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내과 과장 진성학 패거리는 식량을 빌미로 남은 각성자들에게도 정찰대와 보초 임무를 강요했다.
그러곤 그 과정에서 얻게 된 마석까지 깡그리 거두어 갔다.
더 강한 각성자들에게 우선해서 분배하겠다는 명목이었지만··· 당연히 제대로 분배가 이뤄질 리 없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미 완전히 균형이 넘어간 상태더라고.”
그 결과 놈들이 하라는 대로 정찰대에 차출당하고, 마석을 빼앗기며, 애걸하며 주는 밥을 얻어먹는 신세가 되었다.
들고 일어나고 싶어도, 세뇌된 각성자들 탓에 그 누구도 쉽사리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큰누나가 말했다.
어딘가 결심에 찬 목소리였다.
“놈들 몰래 마석을 모으고 있어. 치유 능력 레벨이 올라간다면 세뇌된 각성자들을 치료할 수 있을지도 몰라. 지금도 약물 중독같은 건 치료가 가능하거든. 그러니까···”
잠시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너는 솔이랑 엄마아빠한테 먼저 가봐. 나도 여기서 어떻게든 살아남아 볼 테니까.”
하지만 그건 안 될 말이었다.
남은 가족들을 구하는 것도 시급하지만, 큰누나를 뻔히 아는 위험 속에 내버려 두고 갈 수는 없었다.
하물며 레벨을 올려 세뇌를 치료하겠다는 계획은 막연한 기대일 뿐, 확실히 보장된 계획이라 보기 어려웠다.
주변적인 이유지만, 찰리의 치료 또한 마무리되지 않은 터였다.
잠시 생각을 정리한 뒤, 내가 대답했다.
“최대한 빨리 해결하자.”
“어떻게?”
당장 놈들이 쥐고 있는 무기는 식량이었다.
다음으로는 세뇌된 각성자들로 만든 정찰대.
이 둘을 이용해 마석을 수급하며, 차츰 힘의 불균형을 가중시키고 있었다.
따지고 보면, 결론은 간단했다.
“균형을 깨버리면 되는 거잖아? 자원으로든, 힘으로든.”
내겐 그럴만한 능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