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3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30화(130/240)
평가 (3)
이곳은 프리올로의 어느 한적한 주택.
인식 왜곡 효과가 부여된 곳으로, 평가요원 에반스가 근거지로 사용하는 장소였다.
“···거지 같은 인생.”
턱!
에반스가 테이블에 권총을 내려놓았다.
조금 전, 눈에 거슬리는 주민 한 명을 처리하고 온 무기.
총탄 없이 충격을 발사할 수 있는 4강짜리 무기로, 그가 몸담고 있는 ‘토턴 인베스트먼트’의 상징과도 같은 물건이었다.
끼익.
의자에 걸터앉은 그는 꺼질듯한 한숨을 내쉬었고, 그러자 지난 한 달간의 우여곡절이 파노라마처럼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후······”
토턴 인베스트먼트의 목적은 지구에서 발굴한 세력을 ‘사업체’로 키워내는 것.
마석부터 아이템, 필드 효과 등등 어마어마한 투자 비용이 들어가지만, 일단 투자에 성공하기만 한다면 그에 몇 배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었다.
이때, 비밀리에 그들의 잠재성을 평가하고 투자를 결정하는 것이 에반스와 같은 요원들의 역할이었다.
하지만···
“난들 이렇게 될 줄 알았느냐고.”
에반스가 투자한 지구의 세력들이 모조리 박살이 났다.
개중 가장 심각한 피해를 입은 곳은 다름 아닌 그리스의 아테네.
올림푸스까지 끌어 들여가며 지중해 해안에 과감한 투자를 쏟아부었지만, 난데없이 나타난 팍스FC가 아테네를 송두리째 먹어버린 참이었다.
“···망할.”
이제 에반스는 낙동강 오리알 신세였다.
실패한 투자자를 본사가 예쁘게 봐줄 리 없으니.
사실상 직책을 박탈당한 채, 다차원 너머로 추방될 것이 분명했다.
에반스는 런던에 있는 본사에 자신의 실패를 보고하는 대신, 아예 홀로 잠적해버리기로 결정했다.
토턴 인베스트먼트의 ‘투자금’을 가지고.
“···못 찾겠지?”
원래라면 투자에 사용되어야 할 자원들을 몸을 숨기는 데 쏟아부었다.
프리올로 주변으로 토템을 설치했고, 경보, 감청, 은신과 관련한 필드 효과를 써먹었다.
소위 ‘먹튀’였다.
공금을 가져다 자신의 성역을 건설한 참이었으니.
“개척이 마무리될 때까지만 버티면 돼. 어차피 주요 지역도 아니니··· 웨이브가 발생할 일도 없고, 고위계들이 들락거릴 일도 없어.”
충분히 현실성 있는 계획이었다.
7위계의 척력을 두른 에반스였으며, 동시에 그에게는 토턴의 권총이 있었으니.
“그때까지는 맛보고 즐기며 살면 되는 거지.”
에반스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암암리에 점령한 프리올로 마을.
그는 자신의 궁전에 서서히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으니.
그리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먹는 것에 관련한 것이었다.
“입맛이 고급이 돼서 정말 큰일이란 말이지. 런던에서 먹었던 것들을 생각하면··· 우욱.”
프리올로 주민들에게 준비하라 일러둔 매 끼니의 식사.
덕분에 이제는 완전히 이탈리아 현지인들의 입맛에 동화되어버린 에반스였다.
벌떡!
슬슬 허기를 느낀 에반스가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 보니 벌써 식사 때군.”
촤악!
정장 재킷을 걸치고, 바지 뒤에 권총을 찔러넣었다.
커다란 중절모를 눌러 쓴 에반스는 휘파람을 불며 주택을 벗어났다.
“오늘은 무슨 요리가 기다리고 있을까.”
마르코는 에반스가 가장 신뢰하는 요리사였다.
물론 재료 수급이 신통치 않아 매번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최소한 실망한 적은 없었기 때문.
그의 요리를 먹을 때마다, 다시는 런던으로 돌아가지 않겠노라 다짐했더랬다.
끼이이···
마르코의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가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지, 그렇지.”
그의 요구사항들이 빠짐없이 반영되어 있었다.
창문을 열어놓는 대신, 주방 외에 실내 불은 모두 꺼 놓을 것.
시간에 맞게 식지 않게 음식을 차려놓은 뒤, 식당 주변으로는 개미 새끼 하나 얼씬거리지 말 것.
에반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 주인장이 확실히 섬세하게 잘 챙긴단 말이지. 그런데···”
어쩐지 위화감이 들었다.
분명 평소와 다를 바 없지만, 뭔가 딱 하나 변한 듯한 어렴풋한 기분.
하지만······
“이야··· 이게 다 뭐야?”
식사가 차려진 테이블을 보자마자 그런 생각은 씻은 듯이 사라졌다.
왼쪽으로부터 마르코의 특제 까르보나라 파스타, 마르게리타 피자, 마지막으로 뜨끈한 에스프레소 커피가 모락모락 김을 피워올리고 있었으니까.
“흐흐, 마르코 이 귀여운 놈··· 대체 재료는 어떻게 구한 거야? 좋아··· 앞으로 넌 내가 무조건 챙겨준다.”
드르륵!
에반스는 서둘러 의자를 잡아끌었다.
그러곤 양손에 식기를 든 채, 꿀꺽 군침을 삼켰다.
그렇게, 가장 먼저 까르보나라에 깊게 포크를 찔러넣었을 즈음···
“······??”
지잉!
테이블 위로, 작은 푸른색 구멍 세 개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뭐야?”
그리고,
“아, 안 돼!”
까르보나라에는 우유와 생크림이, 마르게리따 피자 위로는 잘게 썰은 신선한 파인애플이 우수수 쏟아졌고, 진한 에스프레소 위로 시원한 생수가 콸콴 쏟아졌다.
“······”
철저히 ‘이탈리아’의 입맛에 길들여진 에반스.
그로서는 절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조합이었지만, 점차 그 수준을 벗어나고 있었다.
‘대체 언제까지?’
테이블을 뒤덮은 우유와 생수, 파인애플이 파도처럼 에반스를 덮쳤고, 간만의 포식을 기대하던 에반스의 양복을 제대로 적셔주었다.
얼굴 주변으로 신선한 우유가 방울방울 튀어 오르고, 잔망스런 파인애플 조각이 그의 행커치프 위로 팝콘처럼 쌓였을 즈음···
“저건······”
에반스는 눈앞에서 새로운 큼지막한 포탈이 생겨나는 것을 발견했다.
***
“안 돼!”
찌르듯 들려오는 놈의 절규.
아무래도 내가 준비해준 식사가 썩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
한편, 마르코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아공간에서 조카, 로렌조와 상봉하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내버려 둔 채, 다시 포탈 밖으로 빠져나갔다.
“식사는 잘했나?”
정겨운 인사말을 건네며.
우유와 크림으로 범벅이 된 놈이 한참이고 나와 눈을 마주쳤다.
등 뒤의 포탈과 나를 번갈아 보던 프리올로의 독재자는 돌연···
“파, 팍스FC!?”
“음?”
제 입으로 내 정체를 밝히고는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호······”
무슨 수를 쓴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사이 놈의 형상이 사라져 있었다.
분명 서로 눈을 마주했었음에도, 어떻게 생겼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상황.
주변을 살펴보자 그 사이 레스토랑의 문이 활짝 열려있었다.
“잔재주 부리기는······”
몸을 숨긴 채 다짜고짜 도망을 선택한 녀석.
하지만 도망갈 수 있을 턱이 없었다.
이미 <추적 배송>으로 쏘아낸 성창 한 자루가 놈을 쫓고 있었으니까.
철벅. 철벅.
우유와 크림, 파인애플 조각으로 뒤덮인 레스토랑 바닥을 걸으며 천천히 가게를 빠져나왔고···
“에이 양아치 같은 놈아. 밥값은 내고 가야 할 거 아냐.”
“끄흐으으윽···!”
날갯죽지에 성창이 꽂힌 채, 건물 벽면에 붙어 버둥거리고 있는 놈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타앙! 타앙!
놈이 나머지 한쪽 손을 들어, 내게 권총을 발사했지만···
“···너 이거 다 감당할 수 있겠어? 업보 쌓아서 좋을 게 없을 텐데.”
나는 이미 포탈을 방패처럼 펼쳐둔 터였다.
놈이 총을 사용한다는 사실쯤이야 이미 알고 있었고, 그 위력이 얼마가 됐든 비비탄 총이라도 맞기 싫은 것이 사람의 심리였으니까.
프리올로의 독재자라는 별명이 무색하게, 놈은 완전히 겁에 질려 있었다.
그제야 놈이 바닥으로 권총을 떨어뜨리곤 내게 빌기 시작했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시오.”
“어쩌면 그럴 수도 있지.”
핀셋에 고정된 나비처럼 몸을 부르르 떠는 독재자.
녀석에게 들어야 할 이야기가 아주, 아주 많았다.
“너 하는 거 봐서.”
***
“토턴 인베스트먼트···?”
“예, 그렇습니다···”
놈의 이름은 에반스.
투자사, ‘토턴 인베스트먼트’의 평가 요원으로 일하고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지구인이 아니었구나. 역시 단순한 각성자가 아니었어.’
에반스는 술술 정보를 털어놓았다.
지구에는 이미 수십 개 이상의 ‘투자사’들이 암약하고 있다는 것.
평가 요원들이 잠재성 있는 지구 세력을 발굴하고, 투자를 통해 사업체로 거듭나게 해준다는 것.
더 나아가···
“···사업체가 되면 본격적인 외부 활동이 가능해지니까요.”
‘사업체’가 타차원으로 진출하기 위한 최소한 기반이 된다는 것까지.
에반스가 애타는 목소리로 덧붙였다.
“대표님, 믿어주십시오. 저희는 지구인들을 도우려 다양한 지원을···”
“···개소리하지 말고.”
지구인들에게 ‘사업체’를 만들어주고, 마석, 아이템, 때로는 필드효과와 같은 무형의 자원까지 지원해준 투자사들.
일견 지구의 성장을 돕는 것처럼 보였지만, 사실 이들 또한 멸망의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다.
살아남고자 허우적대는 지구인들을 두고 돈놀이를 하는 것에 불과했으니까.
더욱이···
‘···그렇게 새로운 침략자를 키워내는 거겠지.’
얼마 전 기억이 떠올랐다.
인천에서 때려잡았던 사브로스 차원의 거대 뱀, 코스타스.
그때 녀석은 결국 우리가 언젠가 또 다른 차원을 사냥하고 있을 거라 예견했더랬다.
‘···그런 의미였나.’
지구를 침략하고 있는 상공회의소.
하지면 동시에, 놈들은 우리로부터 새로운 침략자를 길러내길 원했다.
“그건 그렇고······”
잠시 생각에 잠겼던 내가 에반스에게 물었다.
녀석은 나와 포탈을 보자마자 ‘팍스FC’를 외치며 줄행랑을 쳤었으니까.
“너, 나를 알고 있나?”
“···지구에 발 들인 투자사치고 팍스FC를 모르는 곳은 거의 없을 겁니다.”
전 지구적으로 비밀리에 활동하고 있는 투자사들.
하지만 지구의 옥석을 찾아다니고 있다는 놈들이 지금껏 내게 단 한 번도 접근한 적이 없다는 것만큼은 의아했다.
아직 팍스FC의 전력이 부족한 것인가 싶었지만, 에반스의 말을 들어보니 그건 또 아닌 모양이었다.
“바르나울 때문이지요. 아무리 팍스FC가 탐이 난다 한들, 바르나울에 척을 지고 싶은 투자사는 없을 테니까요.”
“아······”
유럽에서부터 시작해 줄곧 부딪혀 왔던 흑마법사들의 차원.
팍스FC와의 정면충돌은 아무래도 투자사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사실인 듯했다.
우주 마피아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있는 마당에, 팍스FC를 살갑게 대하기는 퍽 어려웠을 터.
“본사가 런던에 있다고 했었지?”
“예? 예! 맞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한들 참으로 서운했다.
지금껏 팍스FC를 사업체로 키워보려 갖은 노력을 하고 있었는데, 그깟 알력에 휘둘러 손을 내밀지 않았다니.
아무래도 내 쪽에서 먼저 이 친구들을 만나봐야 할 듯했다.
놈들이 그걸 바라든 바라지 않든 간에.
나는 바닥에 떨어진 에반스의 권총을 챙기며,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는 녀석에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죽이지는 않을 테니.”
“저, 정말입니까?”
“일단 나는?”
“······예?”
저벅저벅.
천천히 뒤로 물러나자, 주변에서 프리올로의 주민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골목과 골목, 나무와 수풀 사이에서 빠져나온 수십 명의 주민이 금세 에반스를 둘러쌌고, 너나 할 것 없이 모두가 에반스를 향해 뿌득 이를 갈았다.
“이 개 같은 새끼······”
“네가 내 동생을 죽였어. 알아?”
평화롭던 마을에 울타리를 치고, 입맛에 따라 가볍게 방아쇠를 누르던 독재자 에반스.
프리올로의 비극은 이제 그 주민들에 의해 정리될 참이었다.
“···자, 잠깐! 대표님! 대표님!”
놈에게 꽂혀있는 성창은 내일쯤 천천히 회수하기로 했다.
적어도 오늘은 이곳 사람들이 사용해야 할 테니까.
그와는 별개로···
‘사업체라는 게 그런 의미였을 줄이야.’
필드 효과가 전부가 아니었다.
침략에 휘둘리던 지구를 새로운 침략자로 만드는 것.
지구를 침공 해오는 적들과 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게 하는 것.
그리로 어쩌면···
“앞으로 침략자들을 역으로 침략할 수 있게 해줄지도.”
이를 위한 첫걸음이었다.
팍스FC를 등한시하던 투자사들.
그리고 그중 하나인 토턴 인베스트먼트가 위치한 런던.
놈들로부터 그 ‘투자’라는 걸 뜯어낼 작정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