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32)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32화(132/2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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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널찍한 홀, 단상에 앉은 남자가 침음했다.
이곳은 웨스트민스터 홀.
궁전의 상징적인 장소이지만, 정확히 같은 곳은 아니었다.
상공회의소의 조사 임무를 대행한다는 명목하에 제공받을 수 있는, 투자사들만의 이면 공간이었으니까.
투자사의 대표, 토턴이 눈앞에 선 요원에게 물었다.
“아직도 소식이 없다고?”
“···예, 그렇습니다.”
페르메곤과 상공회의소 유럽본부가 하도 게걸스럽게 유럽을 헤집은 탓이다.
토턴 인베스트먼트는 그들을 피해 북유럽과 지중해 주변으로 사업을 벌이고 있었는데, 최근 이탈리아에 있던 요원 에반스로부터 갑작스레 연락이 끊어진 참이었다.
“에반스 이 새끼는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올림푸스의 부탁으로, 토턴은 가맹이 될 만한 그리스의 각성자들을 물색해주었더랬다.
씨 뿌리기에 진심인 올림푸스이니만큼 영업은 저들이 알아서 했지만, 토턴 또한 그리스 각성자들의 성장을 기대하고 있던 상황.
하지만 올림푸스와 팍스FC가 맞붙었다는 보고를 끝으로, 에반스는 더 이상 아무런 소식도 전해오지 않았다.
“젠장···”
토턴은 애가 탔다.
다른 지중해 동쪽 세력들의 성장이 영 지지부진했기 때문.
에반스가 들고 간 투자 자원들만 생각하더라도, 이대로라면 심각한 적자를 면치 못할 터였다.
주먹을 불끈 쥔 토턴이 나지막이 읊조렸다.
“······팍스FC만 손에 넣었더라도.”
“어쩔 수 없지 않았습니까? ···녀석들은 이미 바르나울과 충돌한 상태였으니까요.”
요원 한 명이 토턴을 위로했고, 토턴 또한 생각이 다르지 않은지 맞장구를 쳤다.
“내 말이. 상대는 좀 봐가며 덤벼야 할 것 아냐···?”
팍스FC가 유럽에서 페르메곤과 충돌하기 시작했을 즈음, 이미 그들과의 접촉을 준비하고 있던 토턴이었다.
그 당시만 해도 이미 팍스FC는 수백 명 이상의 세력을 거느린 채 압도적인 전력을 구가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중간에 바르나울이 끼어들게 되면서, 상황은 180도 급변했다.
“대표님, 없던 일로 치시죠. 행여 바르나울과 충돌이 없었다 해도··· 저 날 뛰는 꼴을 보십시오. 분명 다루기 쉽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에도 요원이 그를 위로했지만, 토턴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건 틀린 말이지. 투자금 받아 처먹어 놓고 어딜 감히.”
분명 팍스FC는 강력하다.
하지만 한번 투자가 이뤄지면 투자사에 종속될 수밖에 없는 것이 차원 존재들의 운명이기도 했다.
“놈들은 시장의 생리를 모르는 시골 촌뜨기들에 불과해. 그저 살아남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겠지. 그러니··· 지금이 둘도 없는 투자 타이밍이라는 거고.”
투자금이 됐든 투자 자원이 됐든, 갚으면 좋고 못 갚으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지금이야 급한 마음에 부랴부랴 투자사들과 손을 잡을 테지만, 나중에서야 그 악랄한 계약조건들을 다시금 확인하게 될 테니까.
강력한 페널티와 함께 중도에 투자금을 ‘회수’ 당하는 불상사를 겪고 싶지 않다면, 상공회의소와 투자사들의 입맛에 따라 또다른 침략자들로 거듭날 수밖에 없었다.
“뭐, 아쉽긴 하지만··· 되도록 팍스FC와 엮이는 일은 피하는 게 좋겠지. 아무리 돈이 좋아도 바르나울과 척을 질 수는 없으니···”
“맞는 말씀입니다.”
토턴이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지금까지 그가 깔고 앉아 있었던 회색 조각상을 걷어찼고, ‘파삭’하는 소리와 함께 그 머리가 떨어져 나갔다.
궁전 정원에 있던, 17세기 영국 위인의 조각상이었다.
“우리에게 영웅은 필요 없어. 돈 벌어다 줄 노예들만 있으면 되지.”
불편한 감정과 초조함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가까스로 마음을 추스리며, 나머지 요원들로부터 보고를 전해 들으려던 찰나···
“대표님! 침··· 침입입니다!”
요원 하나가 급박한 소식을 전해왔다.
토턴은 머리가 하얘졌다.
요원들이 아니고선 결코 들어올 수 없는 이 이면 공간에, 대체 누가 들어왔단 말인가?
그 정체는···
“뭐? 어떻게···? 누가?”
“그게··· 팍스FC입니다···!”
익숙하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세력이었다.
***
티잉! 팅!
총격을 튕겨내는 뱀파이어 코트.
기존에 기사들이 입고 있던 철갑보다 가벼우면서도, 방어력은 한층 더 강화된 물건이었다.
퉁! 퉁!
요원들이 또 다른 권총을 꺼내 들어 양손으로 부지런히 총을 발사했지만, 그런다 한들 뱀파이어 코트를 뚫을 순 없었다.
오히려 란슬롯을 비롯한 기사들이 기둥에 몸을 숨겨가며 거리를 좁혀온 탓에, 기다란 칼날에 자상을 입을 뿐.
하지만···
카아앙!
특수한 재질로 되어 있는지, 놈들의 정장에서 또한 칼끝이 들어가질 않았고, 카멜롯의 기사들은 옷깃을 여미며 잠시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머리! 안되면 머리나 다를 노려라!
놈들 또한 코트의 정체를 알아차렸고, 이번에는 머리와 다리에 집중적으로 총격이 날아들었다.
기사들은 조금씩 주춤하는 듯했지만···
“다시 간다!”
란슬로의 지휘하에, 열두 명의 기사들이 칼끝에 오러를 불어넣었다.
바르나울과의 결전 이후 기사들은 오러 수련을 하루도 멈추지 않았다.
그리고 그 결과, 무기를 가리지 않고 오러를 두르는 것만으로도 최소 4강 이상의 공격력을 발휘할 수 있게 되었다.
탁! 탓! 촤아악!
날렵한 움직임으로 총탄을 방어해가며 빠르게 접근한 기사들.
마침내 권총을 든 요원들의 손목과 목을 잘라내고, 물러나려던 놈들의 발목을 베어나갈 즈음···
“일단 빠진다! 안쪽으로 숨어!”
요원들이 하나둘 벽면에 달라붙기 시작했다.
에반스의 권총을 이용해 들어온 정체 모를 차원 공간.
이를 이용한 것이 요원들의 모습이 벽면에 2차원 그림처럼 녹아들었고,
카아앙! 카앙!
아무리 베어낸다 한들, 애꿎은 궁전의 벽만 긁어댈 뿐이었다.
물론···
꽈아아아아아앙!
“커허어어억!”
건물을 벽째로 날려버리는 쇳덩어리 앞에서는 그깟 차원쯤이야 아무 의미가 없었지만.
꽈아아앙!
꽈아앙!
그렇게, 벽면 곳곳에 숨은 요원들을 운철구를 날려 모기 때려잡듯 처리하고 있을 즈음···
“머, 멈추시오!”
노크의 효과는 확실했다.
안쪽에서 또 다른 문이 열렸고, 빨간색 행커치프를 꽂은 남자가 헐레벌떡 달려 나왔으니까.
“사업! 우리 사업 이야기를 합시다···!”
놈이 뛰쳐나온 곳은 이곳 궁전의 상징이라고도 할 수 있을 웨스트민스터 홀.
놈의 등 뒤로는 아치형 뼈대로 이루어진 가지런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새하얀 빛을 내뿜고 있었다.
그 빛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인류의 오래된 경구를 떠올렸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고대 문헌학적인 해석에 따르면···
-갈겨라. 그러면 말이 통할 것이다.
나는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
“원하시는 게 뭡니까···?”
가슴팍에 빨간색 행커치프를 꽂은 채, 포마드 머리를 빗어넘긴 토턴이 내게 물었다.
녀석은 이곳 토턴 인베스트먼트의 대표로, 깔끔한 정장 차림이 상공회의소의 직원들을 떠오르게 했지만, 은은한 염세에 찌들어 있던 녀석들과 달리 열정과 활기가 뿜어내는 녀석이었다.
인간으로 치자면 가파른 성공 가도를 달린, 중견 기업의 대표와도 같은 인상.
나 또한 팍스FC의 대표로서 대답했다.
“너희를 통해 사업체가 될 수 있다고 하더군. 우리가 사업 확장에 한창 열을 올리고 있어서 말이야.”
들릴 곳이 아주 많았다.
입찰 경쟁 때부터 지구를 점찍고 들어오던 놈들부터, 바르나울처럼 전면전을 펼쳤던 놈들까지.
오는 정이 있으면 가는 정이 있다고, 이번에는 우리가 놈들의 본토에 몽둥이찜질을 해줄 차례였으니까.
한편···
“그건···”
토턴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놈의 심히 고민이 되는지 산만하게 주변을 두리번거리다가도, 수첩을 꺼내 이런저런 내용을 적었다가 벅벅 긋기를 반복했다.
투자사의 대표답게 리스크와 이익을 면밀하게 저울질하고 있는 모양.
하지만 오래지 않아 돌연, 결심했다는 듯 수첩에 구두점을 찍은 녀석이 내게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저희가 팍스FC를 사업체로 만들어드리죠.”
“대, 대표님!”
그의 옆에 붙어있던 요원 하나가 그를 만류했지만, 토턴은 마음을 굳혔다는 듯 손바닥을 세워 녀석을 제지했다.
그러곤 내게 물었다.
“저희 투자사를 통해 사업체를 신청하실 수 있는 건 사실이지만··· 그러더라도 상공회의소의 심의를 통과하셔야 합니다. 혹시··· 팍스FC의 조직 구성과 사업에 대해 간단히라도 설명해주실 수 있을지요?”
제리코에게서 이미 들었던 요건이었다.
그에 따라 구성 조직을 가다듬고, 나름의 사업 아이템까지 준비했던 터.
나는 토턴 대표에게 팍스FC의 터미널 분류와 깔끔하게 가공된 괴물들의 부산물에 관해 이야기해주었다.
“음··· 어느 정도 구색은 갖춰져 있군요. 하지만 원자재 산업인데다가, 애당초 지구에 기반한 자원이 아니기 때문에 반려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 부분은 저희가 서류에서 잘 꾸며드리죠. 물론 심사 결과까지 시간은 좀 걸릴 수 있습니다.”
토턴은 난감해 하면서도, 어떻게든 해결해보겠다며 의지를 보였다.
그러곤 이쪽이 더 중요하다는 듯, 이번에는 한층 신중해진 목소리로 말했다.
“팍스FC가 지구에서의 개척 사업은 물론, 향후 다른 차원으로의 개척에도 협력할 것이라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뭐, 이 부분은 어려운 일은 아니니 저희와 차츰 준비해보시죠.”
간단히 말해, 너희가 침략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라는 것.
토턴은 과거에 타차원과 협력한 적이 있거나, 상공회의소의 개척 프로그램을 적극 활동했던 경력이 있다면 상공회의소로부터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덧붙였다.
인신공양을 일삼던 1군단이나, 제국을 꿈꾸던 유신각성회, 타차원마저 등쳐먹던 미국 남부 세력들에게나 해당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그다음은···
“마지막으로 등록 비용으로 마석 30만 개가 필요합니다. 혹시 팍스FC의 보유금은 얼마나 되는지···”
아무래도 놈은 아직 제 위치를 잘 모르는 모양이었다.
능청스럽게 남의 지갑 사정을 물어보는 걸 보면.
“뭔 개소리야? 투자자라며? 당연히 니들이 내야지.”
“네···? 아, 아무리 그래도 30만 개 전부를······!”
황당하다는 듯, 벌떡 몸을 일으킨 토턴.
하지만 한참이고 나와 눈을 마주한 녀석은 그제야 새삼 자신들의 위치를 확인한 듯했다.
카멜롯의 기사들의 검날이 번뜩이고. 공중으로는 새카만 운철구가 모빌처럼 떠다니고 있었으니.
“끄으······”
다시 수첩을 집어 들었던 녀석은 이제는 다 틀렸다는 듯, 수첩을 바로 구겨버렸다.
제 딴에 하는 나름의 분풀이인 모양이었다.
“···알겠습니다. 전액 투자를 지원해드리죠······”
띠링!
[‘토턴 인베스트먼트’에서 마석 300,000개 투자를 제안했습니다.] [수락하시겠습니까?]각성 시스템으로부터 메시지가 떠 올랐고, 제안을 수락함과 동시에 차원 계좌의 잔고가 순식간에 불어났다.
“······”
절망한 듯 고개를 푹 숙인 토턴이었지만, 얼핏 녀석의 미소를 본 것 같았다.
분명, 놈도 믿는 구석이 있을 것이다.
에반스가 내게 말해준 것처럼, 투자금을 받은 순간 팍스FC는 계약에 의해 투자사에 영원히 휘둘리는 운명이 될 테니까.
그게 토턴이 내게 순순히 마석을 넘겨준 이유이리라.
다가올 자신의 운명은 예상하지 못한 채.
“그럼 이제 남은 일은···”
오늘 바로, 팍스FC는 사업체로 올라설 것이다.
왜 멋대가리 없게 상공회의소의 심사를 기다린단 말인가?
눈앞에 멀쩡히 활동하고 있는 ‘사업체’, 토턴 인베스트먼트가 놓여 있는데.
아공간 8레벨에 다다르기 위한 마석의 개수는 50만 개.
방금 토턴의 ‘투자’ 덕분에, 그 조건이 달성된 참이었다.
띠링!
[남은 마석은 541,339개입니다.]두둑해진 지갑을 펼치며, 나는 곧장 쇼핑에 나섰다.
다차원으로 뻗어나가기 위한 ‘사업체’라는 이름의 첫 발판.
그러니까···
“팍스야, 먹어.”
[알겠습니다.]팍스FC의 첫 ‘해외직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