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33)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33화(133/240)
스타팅 포인트 (3)
쉬이이이익!
빨려 나갈 듯한 바람 소리와 함께, 웨스트민스터 홀 내부에 소란이 일었다.
항상 덩그러니 공터만을 남겨놓곤 했던 아공간.
하지만 이번에 빨아들인 것이 토턴 인베스트먼트의 이면 공간이었던 탓인지, 놈들의 사업체를 아공간에 수용한 다음에도 궁전의 모습은 여전히 남아 있었다.
“이··· 이게 무슨······?
한편, 토턴은 얼이 빠진 표정이었다.
요원들의 전용 책상과 칸막이 등등, 놈들의 사무 공간이 한순간에 사라졌으니.
토턴을 비롯한 요원들이 웨스트민스터 홀의 벽면과 바닥을 부단히 매만졌지만, 딱딱한 벽면은 더 이상 그들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건······”
그제야 비로소 토턴과 (구) 토턴 인베스트먼트의 임직원들은 실감한 듯했다.
자신이 회사를 빼앗겼고, 실직자 및 빈털털이가 되었다는 사실을.
그리고 젊은 사업가답게, 토턴은 상당히 눈치가 빠른 놈이었다.
“대, 대표님! 살려주십시오!”
어쩜 이리 하는 짓이 똑같을까.
놈이 에반스처럼 내 바짓가랑이를 붙잡았다.
그러곤 이것이 목숨을 건 마지막 도박이라도 되는 양, 내게 열변을 토하기 시작했다.
“제가 대표님을 돕겠습니다···!”
“···돕는다고?”
“그렇습니다! 사업체를 굴리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지만··· 투자사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일반적인 사업체들과는 운영 방식이 완전히 다르니까요! 제가··· 제가 아주 잘할 수 있습니다!”
생의 의지가 대단한 놈이었다.
한순간에 내게 모든 것을 빼앗겼음에도, 조금의 불쾌감도 남겨놓지 않은 채 내게 알랑방귀를 뀌고 있었으니까.
젊은 나이에 성공 가도를 달리려면, 과연 이처럼 엎드릴 때 엎드릴 줄 아는 미덕을 갖춰야 하는 것일지도.
“분명··· 분명! 저희가 필요하실 겁니다!”
마지막으로 놈이 부르짖었지만···
“토턴, 세상이 변했다. 이제 인간이 설 자리는 없다고.”
띠링!
[그렇습니다.]고개를 끄덕이는 팍스.
나는 이미 너무나 많은 시대의 변화를 겪어온 터였다.
무인자판기, 바둑왕 알파고, 로봇 카페, 마지막으로 최첨단 AI까지.
바야흐로, 인간 시대의 끝이 도래했다.
“그··· 그런······”
토턴의 눈이 사색으로 물들어가는 가운데, 팍스가 다음 프로세스를 제안했다.
띠링!
각성 시스템부터, 상공회의소 시설, 이제는 토턴 인베스트먼트까지.
내가 물류센터를 아공간에 넣은 첫날부터, 팍스는 진화에 진화를 거듭하고 있었고, 그곳에 토턴의 하찮은 잔머리 따위는 끼어들 틈이 없었다.
곧장 팍스에게 대답했다.
“진행해.”
[알겠습니다.] [업데이트 진행 중······]토턴과 요원들은 진즉 바닥에 권총을 내려놓은 채 얼어있었고, 나는 운철구를 천장 위로 빙빙 돌리는 한편, 포도봉봉을 출하해 목을 적시면서 천천히 업데이트가 완료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띠링!
[업데이트가 완료되었습니다.]팍스가 모든 준비를 마쳤다.
이제 거대한 웨스트민스터 홀은 재판장이 될 터였고, 업데이트를 마친 팍스가 증거자료를 제시해줄 것이었다.
내가 팍스에게 말했다.
“토턴 인베스트먼트가 지구에서 진행했던 사업들 기록을 나열해 줘.”
[알겠습니다.] [토턴 인베스트먼트가 지구 개척 사업에 등록한 것은 입찰경쟁 직후로···]팍스가 남은 기록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주었고, 그 결과···
“너희 사브로스에 투자한 적 있었네?”
“그, 그건······!”
입찰 경쟁 당시 인천을 점령한 채, 용산까지 진격해왔던 도마뱀들.
바로 그 사브로스가 토턴 인베스트먼트로부터 투자받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지구를 지원하고 있다느니··· 헛소리를 하더니, 순 새빨간 거짓말이었구만.”
투자는 상대를 가리지 않는다.
그저 돈 벌어다 줄 놈의 편을 드는 것이 투자자들의 생리.
아무래도 지구로 진입한 투자사라 한들, 꼭 지구인들에 투자해야 하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대표님, 제 말 좀 들어보십시오. 저희는···”
“사브로스가 팍스FC랑 부딪힐 줄은 몰랐다고?”
제 말을 고스란히 빼앗긴 것인지, 토턴의 입이 홀쭉해졌다.
내가 놈 대신 마저 말을 이었다.
“우리가 이렇게 성장할 줄 몰랐던 거겠지. 그땐 팍스FC라는 이름 자체도 존재하질 않았으니까.”
사브로스와 맞붙었던 것은 입찰경쟁 직후.
그 당시 나는 팍스FC는 커녕, 그냥 ‘서울대표’라는 이름으로 불렸다.
사브로스와 서울과의 결투에서 토턴은 사브로스에 베팅했던 것이고, 패배한 대가를 치를 뿐이었다.
비록 그 대가로 제 목을 내놓게 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겠지만.
물론 토턴의 죄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놈은 ‘투자’라는 명목으로 팍스FC와 내게 목줄을 채우려 했고, 아공간 능력이 아니었다면 우리는 토턴 인베스트먼트의 수익 사업에 이끌려 다차원 곳곳을 침략자로서 누벼야 했을 테니까.
나는 담담히 선고를 내렸다.
“처리해라.”
“예, 주군.”
쐐애애액!
란슬롯이 토턴에게, 다른 기사들이 요원들에게 달려들었고, 토턴과 요원들은 입술을 잘근 씹으며 바짓단에 숨겨놓은 권총을 꺼내 들었다.
퉁! 퉁!
총격이 홀의 샹들리에를 흔들었지만, 정말이지 의미 없는 발버둥이었다.
나는 따듯한 뱀파이어 남작의 날개를 이불처럼 둘렀고, 기사들 또한 바삐 몸을 움직이며 총격을 회피했으니.
이면 공간이 사라진 이상, 벽면으로 숨을 수도 없는 상태.
촤아아아악!
스겅!
“끄륵······”
이날, 토턴 인베스트먼트의 요원들은 지독한 투자의 실패를 피로 갚아야 했다.
부서진 조각상 크롬웰의 머리 옆으로 데구르르 굴러떨어지는 토턴의 머리.
상공회의소와 함께하는 숫자놀음에 조금만 더 초연했더라면, 조금은 더 오래 생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모두 처리했습니다, 주군.”
“수고했다.”
란슬롯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러곤 피와 돈으로 점철된 투자자들의 삶을 애도하며, 진심 어린 명복을 빌어주었다.
“다음 생에는 돈 계산 따위는 할 줄도 모르는 이세계 농노로 태어나기를······”
정말 그러길 바랐다.
.
.
.
전리품은 토턴 인베스트먼트, 즉 ‘사업체’ 뿐만이 아니었다.
투자 기관이니만큼 놈들은 상당한 양의 자산을 가지고 있었고, 아공간에 빠짐없이 쓸어 담은 덕에 그 모두는 자연스레 나의 소유가 되었다.
“횡재다, 횡재야.”
내게 건넨 30만 개가 과연 적지 않은 출혈이기는 했는지, 남아 있는 마석의 양은 대략 20만 개에 불과했다.
하지만 물론 잔고가 5만 개까지 떨어졌던 걸 감안한다면 이만해도 감지덕지한 수입.
더욱이, 마석 외에도 자잘하게 챙길만한 것들이 있었다.
“···드디어 얻었구나, 필드 효과.”
하물며 하나가 아니었다.
필드 효과는 그 자체로 아이템과 같은 자산의 일종이었고, 토턴 인베스트먼트는 그러한 필드 효과를 일종의 투자금 명목으로 수십 종류나 보유하고 있었으니까.
“좀 골라 쓰기는 해야 할 것 같지만···”
물론, 그 모두가 올림푸스의 ‘프로메테우스의 족쇄’나, 게한나의 ‘영혼 추적자’처럼 강력한 효과를 지니고 있는 건 아니었다.
비를 내린다거나, 움직임을 느리게 한다든지 하는 소소한 효과에 그치는 것들이 대다수.
실질적으로 몬스터 웨이브에 도움을 줄 수 있을 만한 것들은 얼마 되지 않았을뿐더러, 사업체마다 적용할 수 있는 필드 효과의 수 또한 제한되어 있었기에, 다음에 다시 차차 확인해보기로 했다.
마지막으로···
“감사합니다, 주군···!”
바닥 곳곳에 떨어진 요원들의 총을 모조리 회수했고, 카멜롯의 기사들에게 한 정씩 나눠주었다.
점점 검술에 능숙해지고 있는 기사들이었던 만큼, 거기에 더해 총까지 주어진다면 훨씬 더 다양한 전술을 구사할 수 있을 터였다.
이곳은 다름 아닌 런던 웨스트민스터 궁전.
거무죽죽한 핏빛 가죽 코트를 걸친 채, 기다린 장검을 매고 팽그르르 권총을 돌리는 기사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절로 감탄이 새어 나왔다.
“아무리 내 새끼들이라지만···”
장검, 뱀파이어, 롱코트, 런던, 권총, 비밀요원 등등···
늠름한 기사들의 자태를 보며 나는 혀를 내둘렀다.
“너무 멋있다.”
.
.
.
“주군, 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움직이실 생각이십니까?”
궁전을 빠져나오며, 란슬롯이 내게 물었다.
사업체란 상공회의소로부터 거래와 통행을 인정받은 단체.
다시 말해, 그들로부터 ‘침략자’라는 직함을 받아들였다는 걸 의미했으니까.
어쩌면 우리 또한 팍스FC의 화력을 바탕으로 ‘입찰 경쟁’이니, ‘자유 개척’이니 하는 상공회의소의 사업에 참여해 마석을 벌어들일 수 있을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지구가 우선이야.”
내 목표는 내 가족, 내 나라, 내 땅을 지키는 것.
마석을 벌어들이고, 레벨업을 하는 등 꾸준히 전력을 강화해오던 참이었지만, 그래봤자 이 모두는 외부의 침략 세력들로부터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과정에 지나지 않았다.
더욱이···
“우리는 침략자가 아니니까.”
“···그랬지요.”
이 또한 중요한 이유였다.
마석을 얻기 위해 무고한 생명들을 학살하는 비극을 되풀이할 수는 없었으니.
특히 그런 점에서 투자사의 도움 없이 ‘사업체’를 손에 넣은 것은 실로 중요했다.
타차원을 침공해 마석을 벌어들이라는 투자사의 압박으로부터 자유롭게, 우리의 신념대로 움직일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것만으로 모든 일이 해결되지는 않을 터였다.
“그래도··· 계속해서 침공해 오는 놈들이 있겠지. 그럴 땐 역으로 들어갈 필요가 있을 테고.”
그것만 해도 비약적인 발전이었다.
지금까지는 지구로 들어온 타차원의 침공에 맞서는 것이 고작.
애당초 전장이 이곳 지구였던 탓에, 적들을 전멸을 시켜버린다 한들 우리 입장에서는 본전치기에 불과했으니까.
어쩌면 기나긴 싸움의 종지부를 찍을 때가 왔는지도 몰랐지만···
“그렇군요. 그러면 혹시 바르나울로도···?”
“원한다고 해서 마음대로 갈 수 있는 건 아닌 모양이야. 더욱이 바르나울처럼 몸집이 큰 녀석들은 더더욱······”
팍스로부터 대략적인 설명을 들은 터였다.
지금의 사업체로는 상공회의소가 주도하는 개척 사업에 참여하거나, 상위 차원의 초대가 있을 때 방문할 수 있는 것이 고작.
에메스, 사브로스, 바르나울 등등 원하는 차원을 콕 집어 방문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무렴, 상공회의소는 철저한 침략집단이었을 뿐, 언제든 탈 수 있는 버스 터미널 같은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뭐··· 그래도 여기는 확실히 갈 수 있다고 하더라고”.
나는 평범하기 짝이 없는 서류 파일철을 꺼내 들었다.
에메스 차원과의 입찰 경쟁에서 승리했을 당시 얻었던 물건.
퍽 오래간만에 종이에 쓰인 글씨를 천천히 읽어내렸다.
[레텔 차원, ‘테르티우스’ 지역 독점 사업권]고작해야 지역 하나에 불과하기는 하지만, 우리로서는 바깥을 향해 첫발이라 할 수 있었다.
서서히 눈앞에 드리우는 레텔 차원의 포탈을 바라보며, 란슬롯이 물었다.
“주군, 이건······”
“이쪽도 동병상련이겠지. 원래는 에메스 놈들의 소유였던 지역이니까.”
침략자들의 차원으로는 아직 갈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리처럼 피해를 입었던 레텔 차원과는 만나볼 수 있었다.
입찰경쟁이 꽤나 오래전 일이었던 만큼, 이들의 상황이 어떨지는 알 수 없었지만···
[사업자 등록 확인되었습니다.] [입장이 허가되었습니다.]“나쁜 놈들 전에··· 착한 놈들 한번 보고 오자고.”
‘사업체’를 얻은 덕분에 마침내 길이 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