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34)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34화(134/240)
팍스 인베스트먼트 (1)
휘이이······
[독점권]을 사용하여, 란슬롯과 함께 게이트 포탈을 넘어온 참.처음으로 보는 레텔 차원의 풍경은 황량함 그 자체였다.
란슬롯이 씁쓸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발론 못지않군요.”
“······마찬가지로 멸망한 차원이니까.”
내게 지역 독점권이 넘어왔다는 것.
그건 레텔 차원이 자신들의 땅을 지키지 못할 만큼 무너졌다는 것을 의미했으니까.
우리가 독점권을 확보하기 전까지, 분명 이 ‘테스티우스’ 지역은 ‘에메스’ 차원의 소유였을 터였다.
여신의 이름을 운운하며 잔인한 침략을 자행했던 놈들.
레텔인들이 겪었을 고초가 한눈에 그려졌다.
“아무래 그래도 그렇지, 완전히 작살을 내버렸잖아?”
거무죽죽한 그늘이 주변에 드리워 있었다.
말라비틀어진 나뭇가지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들이 주변은 물론 하늘까지 사방을 덮고 있었기 때문.
틈틈이 빛이 새어나오기는 했지만, 어둠을 지워내기엔 턱없이 부족한 양이었다.
한편 바닥은 온통 진흙으로 뒤덮여 있었다.
발이 푹푹 꺼지는 탓에 걷는 것조차 어려울 정도로.
진흙탕과 늪지대로 이루어진 주변을 둘러보던 중···
“주군, 저건······”
란슬롯이 우리가 타고 넘어온 게이트 주변을 가리켰다.
“끗! 끄으읏!”
대각선으로 배치된 두 개의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기괴한 웃음을 띄우는 게이트 핵.
게이트 포탈과 쌍을 이루는 상공회의소의 하수인이 모습을 드러낸 참이었다.
“···처리할까요?”
“아냐, 일단 둬.”
물렁물렁한 바닥의 질감이 마음에 드는지, 게이트 핵은 진흙밭을 즐겁게 뒹굴고 있었다.
젤리처럼 흐물거리는 콧대를 보고 있자니 조금씩 속이 울렁거리는 기분.
당장에라도 제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저 게이트 우리 거잖아.”
“그렇군요. 섣불리 없앴다가 독점권이 사라질 수도 있으니······”
아이러니하게도 지금만큼은 우리가 저 괴물의 주인일 터였다.
란슬롯이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고, 게이트핵은 뭐가 그리 기쁜지 늪지대를 누비며 흙탕물을 튀겼다.
띠링!
덜컹!
“끄끄읏!?”
일단은 놈을 가둬주었다.
저렇게 쏘다니다가 죽기라도 할 수 있었으니.
강아지 고양이는 물론, 파충류부터 곤충까지 세상에는 아주 다양한 종류의 반려생물들이 있으니, 그것이 눈코입을 비벼 먹은 젤리 날계란이라 해도 아주 이상할 건 없으리라.
“아주 이상합니다. 주군···”
“나도 알아, 인마······”
케이지에 가둔 게이트 핵을 뒤로 하고, 란슬롯과 나는 좀 더 넓은 공간으로 빠져나왔다.
동굴과 바위로 이루어진 주변은 조금은 걷어졌고, 비교적 탁 트인 평야 지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풍경이 썩 좋다고 할 수는 없었다.
수십 미터 바깥으로 희끄무레한 녹갈빛 늪지대가 주변을 해자처럼 감싸고 있었다.
그렇게 레텔 차원의 ‘테르티우스’ 지역을 탐사하던 중···
“······히익!”
우리를 보며 한껏 몸을 움츠리는 존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회색 피부를 제외하면 전체적인 외양은 우리 인간과 크게 다를 바 없었지만···
“뭐 저리 빼빼 말랐어···?”
처음 엘븐하임의 엘프들을 맞닥뜨렸을 때보다 한층 더 상황이 심각했다.
팔다리를 비롯한 온몸이 젓가락처럼 앙상한 것은 물론, 볼과 눈자위가 깊숙하게 파여있었다.
기아를 넘어 해골에 가까운 상태.
오래지 않아··· 우리는 이들이 정체를 가늠할 수 있었다.
“···이곳 레텔 차원의 사람들인 모양이군요.”
“아무래도 그런 것 같지?”
도망갈 힘조차 없었던 모양이다.
레텔인들은 세상을 잃은 듯 그저 자리에 털썩 무너져내릴 뿐이었다.
란슬롯이 덧붙였다.
“제압할 필요조차 없겠군요. 물론 애당초 이곳이 주군의 땅이긴 합니다만······”
그의 말대로였다.
상공회의소가 부여한 <독점권>.
그건 오로지 나만이 이 테르티우스에서 ‘경제 활동’을 할 수 있다는 뜻이었으니까.
그리고 상공회의소가 규정한 경제활동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목숨을 끊어내 그들이 품고 있던 마석을 갈취하는 것이었다.
“······”
파들파들 떨리는 레텔인들의 회색 피부를 보며, 나는 팍스의 설명을 떠올렸다.
토턴 인베스트먼트를 손에 넣어 팍스FC는 어엿한 사업체가 되었지만, 그중에서도 ‘투자사’라는 명함을 달고 있었다.
다른 차원들과는 달리 직접적인 전투와 학살이 아닌 ‘투자’를 통해 마석을 벌어들이는 형태.
따라서 ‘투자사’라는 조건 때문에 이들 레텔인들을 학살한다 한들 내게는 마석 한 개도 떨어질 일이 없었다.
‘애초에 그럴 마음도 없지만.’
나는 란슬롯과 함께 레텔인들에게 다가갔다.
우선은 이야기를 나눠보기로 했다.
.
.
.
하도 겁에 질려 있었던 탓에, 대화를 시작하는 데 꽤 시간이 걸렸다.
개중에 한 명이 눈을 질끈 감은 채 우리에게 다가왔고, ‘테레브 레텔’이라는 이름의 통성명과 함께 몇 차례 영양가 없는 대화가 오갔을 즈음···
테레브가 내게 물었다.
“···정말 안 죽이실 거예요?”
“그렇다니까···”
정확히는 희망 사항이었다.
이탈리아에서 에반스를 처리하고, 곧장 영국으로 넘어가 토턴 인베스트먼트를 완전히 도륙 냈던 참.
살려둘 가치가 없는 놈들이기는 했지만, 나라고 한들 살육이 즐거운 것은 아니었으니.
테레브에게 이곳 테르티우스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지 묻자, 그가 얄쌍한 팔을 휘적거리며 옛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입찰경쟁에서 줄곧 패배하면서···”
지구의 시나리오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입찰경쟁이 벌어지고, 패배한 지역들이 속출하고, 침략자들에 의해 점령된 지역들이 점차 암세포처럼 퍼져나갔다는 것.
더욱이 익숙한 것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사브로스···?”
“예, 지금은 레텔 차원 전체가 놈들로 뒤덮여 있거든요······”
테레브는 직접 보는 것이 빠르겠다는 듯, 나를 밖으로 안내했다.
포탈로부터 그리 멀지도 않은 지점이었다.
정확히는 처음으로 레텔인들을 마주했던 장소.
그가 ‘테르티우스’ 지역을 감싼 칙칙한 늪지대를 가리켰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기만 해도··· 그리고 저기도요.”
파르르 떨리는 손끝.
아니나 다를까, 늪지대에는 노란색 뱀눈을 둥둥 띄워놓은 파충류들이 호시탐탐 그들을 노리고 있었다.
그제야 주변 곳곳을 채우고 있는 동굴과 늪지대의 정체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인천에 게이트가 설치되었을 당시 생겨났던 동굴지대.
그러니까··· 이 모든 것은 사브로스의 테라포밍이었다.
철썩!
늪지대의 물살을 가르며 부글부글 거품을 띄우는 리자드맨들.
주변을 빙빙 도는 녀석들의 동선을 보며, 내가 테레브에게 물었다.
“왜 들어오지 않는 거지?”
사브로스의 리자드맨들이 사냥꾼이었다면, 이곳 레텔인들은 무력한 사냥감이었다.
하지만 리자드맨들은 입맛을 다시면서도 주변을 배회하기만 할 뿐, 진입해 들어오지는 않았다.
테레브가 양어깨를 붙잡은 채,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습니다. 여기 테르티우스는 몇 달 전만 해도 에메스 차원이 주둔하고 있던 곳이었는데··· 어느 날 훌쩍 떠나버리더니 그 이후로는 다른 차원들이 접근하질 못하더군요.”
사라진 에메스 차원과 덩그러니 남은 테르티우스 지역.
그건 우리가 입찰 경쟁에서 승리해 이곳 테르티우스의 독점권을 손에 넣었던 때임이 분명했다.
그 독점 권한이라는 것 때문에 테르티우스가 일종의 성역처럼 보호되었던 모양.
알게 모르게 이곳 레텔인들에게 도움으로 작용한 모양이었지만···
“리자드맨들 때문에··· 줄곧 여기에 갇혀 지냈어요. 테르티우스 안에 있던 식량도 며칠 내로 모두 거덜이 나버려서··· 음식이 궁해지니 살이 빠지고, 물이 오염되고 나니 피부도 잿빛으로 타들어 갔고요.”
힘든 시간을 보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심지어···
“그게 벌써 넉 달이 다 되어가는데···?”
“그런가요? 굶는 건 워낙 익숙해서···”
평범한 인간이라면 진즉 아사하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아무리 피골이 상접한다고는 하나, 우리의 시각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능력.
정체 모를 그 능력 덕분에, 레텔인들은 늪지대로 둘러싸인 테르티우스라는 외딴섬에서 몇 달간이나 생존해 있을 수 있었다.
확실히 이곳 테르티우스에서는 풀포기 하나 없이, 구멍이 숭숭 뚫린 바위 지형이 전부였으니까.
그리고 그때······
띠링!
[다차원 상공회의소에서 알려드립니다.] [‘테르티우스’ 지역에 대한 ‘사브로스’ 차원의 선전포고가 접수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일 뒤, 테르티우스 지역으로의 진입이 허가됩니다.]“흐이이익!”
테레브의 비명과 함께 날아든 상공회의소의 메시지.
늪지대에서는 기쁘다는 듯, 리자드맨들이 꼬리를 흔들며 진흙을 튀겨댔다.
“아무래도 우리가 들어와서 이러는 것 같은데···”
독점권에 의해 줄곧 보호되고 있던 이곳 테르티우스였지만···
우리가 그 권리를 행사하기 시작함과 동시에, 사브로스 또한 손을 뻗기 시작했다.
레텔 차원의 남은 한 조각을 마저 차지하기 위해.
“흐으으윽······!”
“흐윽!”
다시 시작될 전쟁을 예감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서러움을 삼키는 레텔인들.
그중에는 부녀자들은 물론, 노인과 어린아이까지 다양한 종류의 레텔인들이 섞여 있었다.
“까흐흑······!?”
띠링!
[츄파춥스 막대사탕 180개입, 558g, 가격은 18,450원입니다.]비통해하는 테레브에게 사탕을 물려주며, 나는 마저 말을 이어 나갔다.
“사브로스와 싸워본 적은 있나?”
“무, 물론이지요··· 사실 처음에는 전황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놈들이 식량 창고를 보이는 족족 늪지대에 빠뜨려버린 탓에······”
몇 달간이 굶주려 ‘있을 수 있었던’ 레텔인들.
아니나 다를까, 이들에게 있어서는 식량이 더할 나위 없는 전략 물자였던 모양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사브로스 또한 그렇게나 레텔인들의 밥줄을 끊는 일에 열중하지 않았을 테니까.
쭙쭙 얌전히 사탕을 녹이고 있는 테레브에게, 나는 마지막으로 물었다.
“다른 차원을 공격해본 일은?”
“···100년 전에는 그랬다고 들었어요. 지금이야 유명무실한 이름이지만, 그때만 해도 대단한 전투 민족이었다고··· 하지만 100년 전부터 레텔은 더 이상 다른 차원을 침략하지 않기로 결의한 상태입니다만···”
그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지만, 100년 전을 기점으로 침략자의 길에서 벗어난 레텔이었다.
어쩌면 그 때문에 지금처럼 사양길에 접어들었을지도.
나는 나머지 사탕봉지를 테레브에게 안겨주며 마저 덧붙였다.
“그 결의··· 끝까지 지키는 게 좋을 거야.”
“예? 예···”
싸움이 시작되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7일 뒤.
물론 직접 싸울 수도 있었지만, ‘투자사’ 권한으로 들어온 탓에 저 도마뱀들을 척살한다 한들, 돈 한 푼 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반대로 ‘투자사’로서 레텔인들의 성장을 돕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이들이 잃어버린 지역을 수복할 때마다, 사브로스의 파충류들을 처치하고 게이트핵을 파괴할 때마다 팍스FC에도 수수료가 흘러들어오게 될 터.
레텔인들에게 투자하겠다는 말에, 테레브는 그저 어안이 벙벙한 표정을 지어 보일 뿐이었다.
“저희한테요···?”
“그래.”
더욱이 그 투자금이 무한히 복사할 수 있는 아공간 물자인 이상, 내가 손해 볼 일은 없었다.
정말 만약에, 혹여나 레텔인들이 나를 배반한다 해도 제공해준 물자들을 상품회수로 되찾아버리면 그만이었다.
와르르르!
산더미로 쏟아지는 식량에 눈이 뒤집히는 테레브.
내가 그에게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무렴 맨몸으로 사브로스와 싸울 수는 없을 테니.
“혹시 원하는 종류의 무기가 있나? 칼이라든가, 창이라든가······”
“아··· 종류는 상관 없습니다. 최대한 무거운 것이기만 하면···”
“······무거운 거?”
황당한 소리였다.
개미처럼 얇은 팔다리를 후들거리던 레텔인들.
중량 무기라니 가당치 않은 소리였으니까.
터어엉!
별 생각 없이 바닥에 즉시 운철구 하나를 떨궈놓았다.
이게 내가 보유하고 있는 부피 대비 가장 무거운 무기였으니까.
“오···! 가, 감사합니다······!”
화색이 된 테레브가 즉시 운철구에 달라붙었다.
반쯤 허리를 숙인 채, 커다란 쇠공을 껴안는 그의 모습은······
완벽한 데드리프트, 그 자체였다.
팍스 인베스트먼트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