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35)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35화(135/240)
135화. 팍스 인베스트먼트 (2)
“끄흐으윽!”
허리를 굽힌 채, 데드리프트 자세로 힘을 주는 테레브.
하지만 아무리 자세가 완벽하다 한들, 그 얄쌍한 몸으론 운철구를 들어 올릴 수는 없었다.
잠시 운철구와 씨름하던 테레브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고, 허탈하다는 듯 너털웃음을 흘렸다.
“죄송합니다. 옛날 생각이 나서 그만······.”
살며시 눈물을 훔치는 테레브.
그 목소리에서 사라져 버린 옛 힘에 대한 향수가 물씬 묻어나왔다.
하지만······.
“내가 잘못 본 거 아니지?”
“저도 봤습니다. 주군.”
절망하는 테레브를 뒤로하고, 나는 란슬롯과 수군거렸다.
어마어마한 무게의 운철구.
그 거대한 쇠공이 잠시나마 들썩거리는 것을 두 눈 똑똑히 목격한 참이었으니까.
일단은 밥부터 먹여주기로 했다.
사브로스 차원이 가장 먼저 공략했다던 식량 창고.
아무래도 잘 먹는 것만큼은 레텔인들의 성장에 있어 필수 불가결한 요건임에 틀림없었으니.
“그냥 우리 먹는 거 줘도 되겠지?”
브리또를 찹찹 뜯어먹던 마농족들, 산채비빔밥을 주식으로 삼은 엘프들을 떠올리면, 외계인들이나 지구인들이나 식성에서는 특별히 다를 바가 없었다.
하물며 피부색과 체형 빼고는 우리와 크게 차이가 없는 레텔인들이었으니.
띠링!
[GAP 인증 완숙 토마토, 1kg, 1개 가격은 7,950원입니다.] [발효종 통밀잡곡빵, 1개, 600g, 가격은 11,500원입니다.] [서울우유, 1800mL, 1개, 가격은······.]혹여나 체할까 싶어 담백한 음식들을 종류별로 양껏 출하해 주었고, 음식을 보급받은 레텔인들은 거듭 내게 고개를 숙이며 눈물과 함께 음식들을 입안에 쑤셔 넣었다.
“오······.”
효과는 빠르게 나타났다.
눈에 띄게 양 볼에 살이 차올랐고, 회색 피부가 점차 건강한 갈색으로 바뀌었다.
푸석푸석하기만 하던 피부에도 조금씩 기름이 번들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렇다 한들······.
“끄흐으으응!”
운철구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음식의 효과가 있었는지, 확연하게 힘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차차 강해지겠지.”
천 리 길도 한걸음부터다.
지금은 단계별 성장이 필요한 시점.
이제야 비로소 반격의 첫 단추를 꿴 레텔인들이니, 그에 맞춘 훈련이 필요할 때였다.
덜컹!
덜컹!
[고밀도 크롬도금아령 8kg, 2개, 가격은 112,000원입니다.] [와이드 그립 중량봉, 가격은 106,650원입니다.] [고무 홈짐 헬스 중량 원판, 10kg, 2개, 블랙, 가격은 72,000원입니다.]연신 울리는 주문 메시지.
1kg부터 20kg까지 다양한 무게의 덤벨과 바벨 원판을 출하해 주었을 즈음······.
“어떻게 이런······.”
가만히 자리에 멈춰 선 테레브가 원판을 매만지고 있었다.
어딘가 그리운 표정으로.
“왜 그래?”
“그게······ 외람된 말씀이지만 사실 저희 레텔인들의 유물과 모양이 너무나 흡사하네요. 이렇게 새것 같지 않다는 점만 빼면······.”
“······.”
덤벨과 바벨이 유물이라니, 정말 어지간했다.
사용 방법을 알려줘야 하나 고민하던 중이었는데, 그럴 필요조차 없는 모양.
레텔인들은 집 나간 강아지라도 되찾은 것처럼 화색을 띠며 저마다 덤벨과 바벨 원판을 받아 갔다.
음식을 먹어서 그런지, 조금은 힘이 난 모양이었다.
“그나저나, 바닥이 이래선 너무 불편하겠는데.”
사브로스의 테라포밍으로 인해 온통 진흙이 되어버린 바닥.
나는 에메스의 자재 창고에 있던 두껍고 판판한 고무 느낌의 바닥재를 꺼내 들었다.
그러곤 곳곳에 바닥재를 깔아주며, 레텔인들이 힘을 기를만한 환경을 마련해주었다.
그렇게, 이곳저곳에 바닥을 깔아주고 있을 즈음······.
“저, 죄송한데······.”
“음?”
“한 장만 더······ 받아 갈 수 있을까요?”
쭈뼛쭈뼛 내게 부탁하는 레텔인들.
이미 상당한 양의 바벨 원판을 보급해줬음에도, 레텔인들은 ‘더 많은 무게’를 원하고 있었다.
“······또?”
“예······ 10kg 두 개만 더······ 괜찮을까요?”
원판을 찾는 레텔인들이 점점 늘어갔다.
이미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수백 명에게 20kg 원판을 네댓 개씩은 건네준 참인데도, 내 앞에는 레텔인들로 이루어진 대기열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한편······.
“크흐흐윽! 고작 이것도! 이것도 못 들다니······!”
몸무게가 50kg은 될까?
빼빼 마른 레텔인 한 명이 바닥에 흉악하게 생긴 덤벨을 내려놓고 울고 있었다.
원판의 개수로 보아, 200kg에 육박하는 무게.
이 외계인들이 밥 먹자마자 3대 500을 치고 있었다.
또 다른 레텔인들이 수군거렸다.
“엄마, 아빠 지금 저것도 못 드는 거야?”
“조용히 하렴. 전사들 앞에서 아빠를 모욕할 셈이니?”
수백 명의 땀샘에서 피어오르는 향상심.
그 열광의 도가니에 정신이 아득해지고 있을 즈음······.
“저······.”
“테레브?”
마침내 문제가 발생했다.
눈앞에 선 열 명가량의 레텔인들.
테레브를 비롯해, 가장 성장세가 두드러지던 인물들이었다.
“혹시 더 무거운 원판은 없을까요? 봉 길이가 더 길다거나······.”
‘미친······.’
성장 속도가 산업혁명 급이었다.
바벨 양쪽으로 20kg짜리 원판을 가득 채웠음에도 근육에 자극을 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 것.
결국 남은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어쩔 수 없지.’
직접 만들어줄 수밖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건, 내 아공간에 있는 ‘운철’ 뿐이었다.
.
.
.
다른 금속보다 월등하게 무거운 질량을 가지고 있는 운철이다.
아공간 내 사물을 분류하고, 편집하고, 중첩할 수 있는 <실험실> 능력.
레텔인들에게 운철구는 아직 무리였지만, 바벨봉과 원판 정도는 들 수 있을 터.
특별한 기능이랄 게 없이, 모양만 바꾸면 되는 일이었기에 제임스나 쿠퍼의 도움 없이 실험실의 능력만으로 만들 수 있었다.
하지만······.
“기왕 밀어주는 거······ 아예 제대로 밀어줘볼까?”
덤벨과 바벨, 그리고 원판.
프리웨이트를 위한 조건이 완성된 참이었지만, 정신이 아득해질 만큼 사치와 풍요를 제공하는 물류센터의 주인답게, 레텔인들을 ‘아주 제대로’ 운동시켜보고 싶었다.
그래서였다.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렛풀다운······ 레그프레스······ 스미스머신······.”
인체공학의 발달과 함께 탄생한 기계장치들.
근성장의 현대적인 오페라를 자아내는 이 기물들을 ‘운철’로 만들어보기로 한 것은.
나는 곧장 제임스를 찾아갔고, 즉시 확답을 들을 수 있었다.
“그야 쉽지. 금속 주물도 정겸이 다 해줄 거라며?”
“그렇지. 실험실 능력으로 깎아내면 되니까.”
작업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실험실>로 운철구를 가공해 기구들의 뼈대를 만들었고, 에메스 자재창고에 있던 건축용 케이블을 활용했다.
마지막으로 블럭 사이즈의 운철을 만들어 기구에 무게를 더해줄 중량 블럭 차곡차곡 쌓아주었다.
“금방 될 줄은 알았지만······ 두 시간만에 만들 줄이야.”
“뭘, 재료도 다 있어서 끼워맞추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너스레를 떠는 제임스.
십수 종류의 튼튼한 운동 기구들이 완성되었고, 그렇게 레텔인들에게 운철로 만든 바벨 원판과 운동 기구들을 출하해줄 때였다.
“이······ 이건!!”
흰번뜩 뜬 눈으로 모여든 레텔인들.
몇 시간 전, 지구의 운동기구를 나눠줬을 때보다 한층 더 강한 반응이었다.
“이번엔 왜 또 그래······?”
레그 익스텐션, 핵 스쿼트 머신, 숄더 프레스 머신 등등.
기계들의 웅장한 자태 앞에서, 레텔인들은 도무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유적?”
“예! 유적입니다!”
나는 흥분한 테레브로부터, 그 전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브로스가 점령한 곳 중, ‘틀뢴’이라는 이름의 성역이 있습니다. 저희 레텔인들이 고대로부터 수호해 온 선조들의 성역인데······ <힘의 전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지요. 틀림없습니다······! 이건 <힘의 전당>에 있던 유적들이에요!”
아무래도 그 <힘의 전당>이라는 곳에는 바벨과 덤벨로 이루어진 ‘유물’, 그리고 운동 기구들로 이루어진 ‘유적’들이 가득 들이차 있는 것이 분명했다.
물론 그 정체를 이해하기란 어렵지 않았다.
‘그냥 헬스장이잖아······.’
대대손손 근성장의 DNA를 이어온 레텔인들을 보며, 나는 감히 혀를 내두르지 않을 수 없었다.
더욱이, 레텔인들의 감탄은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그랬군요······ 이제야,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새것으로 돌아온 유물과 유적들.
녀석들이 내 ‘정체’를 의심하기 시작했으니까.
덥썩!
테레브가 내 두손을 맞잡았다.
그러곤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내게 말했다.
“대표님은 다차원 우주의 시간축을 초월해 저희를 구하러 오신······ 우리의 선조님이셨군요!”
“선조······ 뭐?”
“선조님! 아아! 위대한 중량별의 선조시여······!”
중량별은 또 무슨 소리일까.
정체를 알 수 없는 오해에 손사래를 쳤지만······.
“아냐, 나는 그런 게······.”
“압니다. 숨기시는 이유가 있는 거겠죠. 시간선을 넘어오신 만큼 제약이 따를 테니까요.”
“아니라고.”
“아아! 이 어리석은 후손들이 당신을 몰라뵀다니, 얼마나 서운하셨을까요!”
도무지 말을 들어 처먹질 않았다.
100% 흡사한 헬스 기구들이 내가 그들의 선조임을 드러내는 인증 수단이 되어버린 셈.
테레브는 여전히 침을 튀기고 있었다.
“저희가 모를 줄 아셨습니까? 새것 같은 유물과 유적들! 초월적인 중량을 가진 아령들! 선조들의 증거가 이토록 뚜렷한데······!”
살아 숨 쉬는 유물과 유적들이 갖춰진 순간.
테레브가 벅찬 가슴을 부여잡으며 내게 말했다.
“의식! 선조님께 의식을 드릴 차례입니다! 선조님!”
.
.
.
“······.”
화르륵!
판판한 검은색 고무바닥 주변으로, 규칙적으로 세워진 횃불들이 거세게 타올랐다.
둥! 둥! 둥!
어디서 꺼내온 것인지, 레텔인들이 북을 두드려 심장을 울렸고,
“후읍!”
“끄흐으으윽!”
심장 소리에 맞춰, 레텔인들은 쇠질을 이어 나갔다.
훅훅, 렛풀다운을 당기며, 테레브가 내게 말했다.
“유물들이 갖춰졌으니, 이제 레텔은 하루가 빠르게 강해질 겁니다! 아아······ 선조시여······!”
테레브는 이 의식이 쇠질을 통해 조상들의 존재를 느끼는 것이라 설명했다.
무거운 중량을 치며, 사라진 그들의 무게를 느끼는 것이라고.
레텔인들은 선조의 힘을 빌어 자신의 한계를 돌파했고, 나날이 늘어가는 중량을 체감하며 매 세트마다 선조에게 감사 인사를 드렸다.
끼익!
“후욱! 선조시여!”
끼이익!
“후욱! 선······조시여······!”
하늘과 땅을 오가는 바벨과 덤벨.
신성한 의식 속, 가쁜 호흡이 무르익어 갈 즈음, 레텔인들이 소리쳤다.
“선조께서 보고 계신다! 선조께서 우리와 함께 계신다!”
“와아아아아!”
땀에 젖은 레텔인들이 내게 몰려들었고, 불끈거리는 근육으로 나를 집어 목마를 태웠다.
레텔인들의 말라비틀어진 팔은 이미 두껍게 부풀어 있었고, 나는 원시인 추장처럼 시선을 흩뿌리는 것만으로 레텔인들의 무게를 들어주는 이적을 행하고 있었다.
“위대한 선조의 행차시다! 모두들 바벨을 들어라!”
“버텨라! 봉 무게는 조상님께서 들어주신다!”
“오우! 오우우우!”
불끈불끈 대흉근으로 땀을 튀기는 레텔인들.
사브로스의 도마뱀들과의 싸움을 일주일 앞둔 지금,
‘미친······.’
근성장의 롤러코스터가 출발했다.
팍스 인베스트먼트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