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36)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36화(136/240)
136화. 팍스 인베스트먼트 (3)
레텔인들이 몸을 회복한 지 어느덧 일주일.
시간은 훌쩍 지나갔다.
“오······.”
푸석한 회색빛의 피부는 온데간데없었다.
얄팍하기만 했던 팔다리는 튼실한 근질이 채워졌고, 이제는 완연한 구릿빛 피부가 레텔인들의 전신을 덮고 있었다.
몸에서 자연적으로 새어 나오는 연한 기름 탓에, 빛을 비출 때마다 레텔인들의 선명한 복근이 계곡처럼 굽어져 들어갔다.
‘선명도가 장난이 아니네······.’
고작 일주일만의 쾌거.
더욱이 이는 비단 ‘패션 근육’이 아니었다.
사브로스와의 전쟁에 대비한 순도 100퍼센트 짜리 ‘실전 근육’이었으니까.
이를 증명하려는 듯, 테레브가 비장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
그가 도착한 곳은 운철구 앞.
따지고 보면 내가 처음으로 레텔에 투자한 ‘보급품’인 셈이었는데, 레텔인들은 이것이 후손들에게 내려진 시험이라며 운철구를 신성시여기기 시작했다.
‘그냥 꺼내 본 건데.’
숨겨진 전말은 안중에도 없었다.
테레브가 성큼성큼 운철구에 다가섰고, 수백 명의 레텔인들이 꿀꺽 침을 삼켰다.
그러곤 테레브가 시험에 통과하기를, ‘선조’들의 진정한 후계자로 인정받기를 진심으로 갈망했다.
“후웁······.”
두꺼운 가죽 벨트를 허리에 찬 채, 커다란 운철구를 움켜쥐는 테레브.
그의 허벅지, 팔뚝, 어깨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흐으읍!”
그가 내쉬는 호흡과 함께 질끈 눈을 감았다.
발바닥 전체로 지면을 누르며, 무게를 뽑아냈고······.
“드······ 들었다!”
좌중이 감탄했지만, 테레브는 긴장의 끝을 놓지 않았다.
시험은 그저 드는 것만으로 끝이 아니었으니까.
대관절 누가 정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충 돌아가는 꼬라지를 보니 그랬다.
십, 구, 팔, 칠······ 마음속으로 천천히 그 숫자를 되뇌었을 즈음······.
“십!”
쿠우우우웅!
운철구가 바닥을 강타했고, 그 단단하던 에메스 차원의 고무 장판이 한순간에 박살이 났다.
“······테레브!”
온 힘을 쏟아 넣은 테레브가 비틀비틀 뒤로 물러났고, 그의 친구들이 시험을 치른 영웅을 부축했다.
부축을 받은 채, 내 앞으로 절뚝절뚝 걸어오는 테레브.
그는 완전히 녹초가 된 표정으로 내게 말했다.
“이제야 당신의 진정한 후손이 되었군요. 위대한 선조시여······.”
“와아아아아아!”
시험에 통과했다는 테레브의 선언.
좌중에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둥! 둥!
헹가래와 함께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수십 명의 레텔인들이 케틀벨 스윙으로 영웅의 승전을 치하했다.
그러곤 모두가 감격스런 표정을 지으며, 지그시 나를 바라보았다.
이 모든 것이 당신의 시선 아래 이뤄졌다는 듯이, 당신의 아들딸들이 자랑스럽지 않으냐는 듯이.
‘뭔데 이게.’
거듭 말하지만, 단 하나도 내가 시킨 게 없었다.
***
레텔인들의 성장은 확인했지만, 아직 사브로스와의 실전이 남아 있었다.
‘아무리 강해졌다 한들······ 장담할 수는 없는 문제야.’
서서히 흐릿해지는 장막 너머로, 늪지대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리자드맨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드레이크나 인천에서 상대했던 코스타스와 같은 거대한 뱀들도 있었는데, 모두가 예외 없이 단단한 갑피를 두르고 있었다.
그 두꺼운 껍질 아래로는 대형 파층류 특유의 강력한 근력을 가지고 있을 터.
“확실히······ 인천에서 봤던 놈들보단 강해.”
레텔은 이미 한차례 멸망한 차원이었다.
오랜 시간에 걸쳐 침략을 당한 만큼, 더 강한 병력들이 침공해 왔을 터.
같은 사브로스라도 지구에 비해 더 강한 괴물들이 진입해 있을 공산이 컸다.
“방심하지 말고.”
“······새겨듣겠습니다. 선조님.”
테레브가 고개를 끄덕였다.
첨벙첨벙, 당장이라도 덮칠 듯 물살을 가르는 사브로스의 파충류들.
비약적인 근성장을 이뤄낸 레텔인들이었지만, 자칫하다간 뱀에 뒤덮인 라오콘 상의 비극을 되풀이하게 될지도 몰랐다.
“부담 없이 싸워봐. 정 안 되겠다 싶으면 내가 지원할 테니.”
“절대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선조님.”
눈빛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이는 테레브.
이제는 나도 설명을 포기한 상태였다.
지이이······.
두꺼운 황금빛 장막.
장막을 사이에 두고 상체를 드러낸 레텔인들과 도마뱀들이 긴장어린 대처를 이어갔고······.
슈우우······.
화아악!
“열렸다!”
카아아앙!
장막이 거둬지자마자, 서로를 향해 달려들었다.
격돌하는 튼실한 근육과 단단한 갑피.
사브로스에서 또한 특별히 우두머리를 골라 선두로 보낸 모양이었다.
타악!
테레브와 리자드맨 우두머리가 서로의 주먹을 맞잡았다.
그러곤 온몸을 부들부들 떨어가며 힘을 겨루기 시작했다.
“흐읍!”
그 결과, 낮은 스쿼트 자세로 돌연 허리를 굽힌 테레브는······.
촤아아아아아악!
“맙소사.”
그 즉시 리자드맨의 양팔을 좌우로 뜯어버렸다.
“카아아아아아악!”
노란 뱀눈을 까뒤집은 채, 기다란 입에서 거품을 흘리는 리자드맨 우두머리.
그것이 신호라도 된 것인지, 레텔인들이 남은 사브로스의 병력들에 일제히 달려들었다.
“와아아아아!”
듣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쭈뼛 곤두서는 레텔인들의 함성.
그제야 나는 깨달았다.
‘잘 싸우네.’
조금도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
푸욱!
“커윽!”
빠악!
“꽥!”
운철로 된 바벨을 창처럼 집어던졌다.
덤벨을 후려쳐 파충류들에게 뇌진탕을 일으켰다.
단숨에 사브로스의 병력을 쓸어버린 레텔인들.
지역에 있던 모든 병력이 몰려왔던 덕에, 한 번의 전투만으로 지역 하나를 수복할 수 있었다.
팍!
“끄에엑!”
띠링!
[투자 수익금으로 마석 6,654개가 지급됩니다.]테레브가 지역에 설치된 게이트 핵을 처리했고, 적지 않은 양의 마석이 내 계좌로 들어왔다.
레텔인들이 리자드맨들을 처리할 때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정확한 계산 방법은 알 수 없었지만 레텔인들이 마석을 벌어들일 때마다 그중 일부가 내게 배분되는 구조인 듯했다.
주르륵.
거무죽죽한 늪지대 주변으로 퍼져나가는 황금빛 노른자.
화아아아아악!
게이트 핵이 사라짐과 함께 테라포밍으로 형성되었던 사브로스의 동굴지대가 빠른 속도로 게이트로 빨려 들어갔다.
그 결과, 점령한 지역은 물론 테르티우스 지역까지 뻗어있던 늪지대가 자취를 감췄고, 뽀송한 흙바닥이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지구랑은 확실히 차이가 있네.”
지구에 비하면 레텔 차원의 크기는 현저히 작았다.
레텔은 총 여섯 개의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는데, 그 모두를 합치더라도 경기도만도 못한 크기에 불과했다.
‘이제 남은 일은······.’
여섯 개의 지역 중, 남은 네 개의 지역을 차례로 수복하는 것.
그리고 결과적으로는 틀뢴에 있다던 레텔인들의 성지인 <힘의 전당>을 되찾는 것.
싸움을 마무리한 레텔인들은 숨을 고르고 있었고, 나는 다음 전투가 시작되기 전 사브로스가 남겨놓은 흔적들을 살폈다.
그리고······.
까드드득!
테레브가 불끈거리는 근육으로 벌려 준 바위틈.
그로부터 익숙한, 하지만 완전히 풍화되어버린 한 시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상공회의소?’
아공간에 들어있는 상공회의소의 시설과 동일한 생김새.
하지만 특유의 푸른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고, 척력을 잃은 것인지 곳곳이 깨지고 녹슬어 있었다.
규모로 보자면 일본에서 손에 넣었던 ‘지부급’ 크기.
망가진 지 아주 오래된 것으로 보아, 사브로스의 ‘선전포고’는 다른 별도의 상급기관에서 중개해 줬던 모양이었다.
그리고······.
아무렇게나 방치된 상공회의소의 시설을 보며, 나는 묘한 감회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그냥 버려놓고 가는구나.”
대체 이 세계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는 것일까?
모두가 둥글게 이어져 있는 지구와 달리, 레텔은 파편처럼 조각나 있는 작은 세계였다.
사브로스에 장악되어 더 이상 수익을 내지 못하는 불모지였으며, 상공회의소는 일말의 미련도 없이 시설을 버려둔 곳이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지구에서도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지.”
일본 지부, 거기에 유럽 본부까지 아공간에 넣었다.
지역을 관리하는 두 개의 시설이 송두리째 사라졌음에도, 상공회의소는 그 원인을 파악하려는 일말의 노력조차 하지 않을 만큼 무심했다.
대체 얼마나 몸집이 거대하기에, 하부 조직들이 통째로 날아가는데도 눈 깜짝하지 않는단 말인가?
사뭇, 상공회의소의 정체가 막연하게만 느껴졌지만······.
“차차 알아가면 되니까.”
언젠가는 그 퍼즐을 맞출 수 있을 터였다.
여섯 조각으로 이뤄진 레텔 차원을 하나로 수복하고, 또 그렇게 완성된 조각들을 수십 수백 개 모아 나가다 보면.
지구에 들이닥친 침략자들을 모조리 걷어내다 보면.
언젠가 이 멸망의 정체를 제대로 직시할 날이 올지도 몰랐다.
.
.
.
“음······?”
“선조님, 이제 오십니까!”
테레브를 비롯한 레텔인들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닥.
탁!
모락모락 연기를 피워올리는 모닥불.
그 가운데, 꼬챙이에 끼워져 지글지글 구워지고 있는 고기의 정체는······.
“······사브로스?”
사브로스의 리자드맨이었다.
그러니까······.
“선조님도 같이 드시지요! 근육 성장에 이보다 더 좋은 양분이 없습니다!”
레텔인들을 위한 특제 프로틴이었다.
정확히는 그들이 처치한 적들로 만든.
패배한 적들을 불에 구워 먹는다니, 세상에 야만 전사가 따로 없었다.
“난 됐다. 많이들 먹어라.”
“아······ 이게 참 좋은 건데······.”
도마뱀 고기를 씹으며 싱글벙글 웃는 레텔인들.
이제 막 사브로스와의 1차전이 끝난 상황이었다.
오늘 밤이 지나면, 레텔인들은 남은 4개 지역을 되찾기 위한 싸움을 이어 나갈 터.
‘성장에는 최상의 조건이네.’
본진에서는 유물과 유적을 이용한 쇠질을,
전장에서는 늪지대 위에서 피지컬을 겨루며 유산소를 했으며,
전투 후에는 도마뱀들을 구워 단백질을 섭취했다.
그야말로 근성장의 로열로드.
아이러니하게도, 사브로스는 레텔인들을 위한 최고의 성장 파트너라 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맡겨둬도 괜찮겠지.”
내가 직접 나선다면, 아니 어쩌면 강화 무기만 내어주더라도 이제 사브로스의 병력들을 무난히 처리할 수 있을 터였다.
하지만 사브로스를 통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는 레텔인들이었기에, 남은 전투 또한 고스란히 그들의 몫으로 남겨주기로 했다.
‘좋은 투자였어.’
팍스 인베스트먼트의 첫 투자.
일종의 불쏘시개라 할 수 있었다.
물류센터에서 비롯한 몇 종류의 자원이 레텔인들을 되살려냈고,
그 결과 사브로스와의 전황을 180도 뒤집을 수 있었으니.
“······영광입니다. 선조님.”
남은 싸움을 맡기겠다는 말에, 테레브는 오히려 감동한 표정이었다.
선조인 내가 그들의 능력을 인정했다는 뜻으로 받아들인 모양.
감격이 벅찬 얼굴로 울먹이며, 그는 레텔 차원을 대표해 내게 거듭 감사를 전했다.
“아니 뭐, 너네가 한 건데······.”
투자의 성공 여부를 떠나, 레텔인들의 선전은 나로서도 기쁜 일이었다.
사브로스에 의해 짓밟힌 이들의 처지는 비단 지구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
이들이 작게나마 멸망을 걷어냈다는 것만으로도 내게는 큰 위안이었다.
그리고, 이때······.
띠링!
팍스가 새로운 소식을 전해왔다.
“······무슨 일입니까, 선조님?”
“별일 아니야. 주기적으로 있는 일이지.”
그 소식이란, 또다시 몬스터 웨이브가 들이닥친다는 것.
이제는 잊을 만 하면 찾아오는 행사로, 지구가 아직 전쟁 중에 있음을 알려주는 명백한 증거였다.
“선조님. 저희가 도울 수 있습니다. 맡겨만 주신다면······.”
“너희는 나머지 지역을 마저 탈환해야지. 사브로스에게 대비할 틈을 주면 안 돼.”
머지않아 지구 곳곳으로 밀려들어 올 괴물들.
하지만 우리는 이미 몬스터 웨이브에 대항할 만한 새로운 수단을 얻은 상태였다.
팍스FC는 이제 어엿한 사업체가 되었고, 덕분에 곳곳에 ‘필드 효과’를 깔아둘 수 있게 되었으니까.
“잘 싸우고 있어라. 잠시 집에 좀 다녀올 테니.”
또 다른 전리품을 확인할 차례였다.
초원의 움직이는 둥지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