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38)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38화(138/240)
138화. 초원의 움직이는 둥지 (2)
휘이이······.
드넓은 초원에 바람이 불었다.
드문드문 깔린 구름 아래로 내리쬐는 태양.
평소라면 한적하기 그지없을 땅이었으나, 오늘만큼은 커다란 두 개의 그림자가 초원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말했다.
“저하, 너무 무리한 공격이었습니다. 게이트를 지킬 인력도 충분히 않은 터인데······.”
“그건 이제 그만 문제 삼기로 하지 않았나. 게이트 핵을 지키는 건 나 혼자로도 충분해. 지금은 무엇보다 ‘매’를 길들이는 것이 급선무야.”
푸드덕.
그의 말에 반응한 듯, 날갯짓 소리가 들렸다.
정확히는 우르족의 왕세자, ‘바트’의 품에서 난 소리였다.
바트가 군사에게 덧붙였다.
“이 놈이 더 넓은 땅을 원하니······ 별수 있겠나.”
우르족의 상징이라고 부를 수 있는 ‘방랑의 매’.
매를 훈련시키기 위해서는 첫째로 광활한 대지가 필요했기에, 바트는 무리해서라도 넓은 영토를 선점하고자 했다.
이미 ‘몽골’이라 불리는 지구의 크나큰 땅을 점령한 상태였지만, 녀석은 ‘방랑의 매’라는 이름에 걸맞게 그 이상의 땅을 요구했으니까.
푸드득.
타닥!
툭.
매가 움직였기 때문일까.
바트의 몸을 감싸고 있는 포대기 곳곳에서 짐승들이 하나같이 몸부림쳤다.
어딘가 불편하다는 듯, 둘러맨 천 사이사이로 고개를 빼 드는 짐승들.
각양각색의 울음이 새어 나왔지만······.
“갈!!”
바트의 꾸짖음에 화들짝 놀란 짐승들이 다시 그의 품속으로 숨어들었다.
호통 한 번으로 단숨에 짐승들을 제압하는 바트를 보며, 군사가 흡족하다는 듯 덧붙였다.
“과연 우르의 혈족다우신 함성입니다. 정신들을 못 차리는군요.”
“······됐다. 의미 없는 아첨은.”
‘지배의 함성’.
우르족들이 짐승들을 다스리기 위해 사용하는 수단이었다.
마력이 담긴 고성을 단숨에 의식에 주입하여, 강력한 지배력을 발휘해 짐승들을 길들이는 능력.
단, 모든 짐승에게 통용되는 능력은 아니었다.
정신이 발달한 지적 존재일수록 이 ‘지배의 함성’은 무용지물이 될 때가 많았으니까.
따라서 충분히 강하면서도 이지가 없는 생물들을 찾아 테이밍하는 것이 우르족들의 주된 전략이었다.
요컨대 거느린 짐승들을 이용해 전투에 나서는 것이 이들의 가장 큰 전투력이라 볼 수도 있었지만······.
군사의 말에 따르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었다.
“아첨이라니요. 함성이 이만한 효력을 보이는 것은 저하의 힘에 따른 결과입니다. 제 식견을 믿으시지요. 저하는 훌륭한 ‘둥지’로 성장하고 계시다는 걸요. 짐승들은 무엇보다도 든든하고 안전한 둥지를 찾는 법이니까요.”
거대한 몸, 그리고 온몸을 커튼처럼 둘러싼 신묘한 천.
우르족은 본신의 힘과 넓은 공간을 지닌, ‘걸어 다니는 둥지’였고, 그 힘과 체구에 따라 더더욱 많은 짐승을 거느릴 수 있었다.
군사의 찬사가 이어졌지만······.
바트는 시큰둥하게 대답할 뿐이었다.
“그래봤자 이 작은 새 하나 길들이지 못한 애송이에 불과하다. 여전히 나를 주인으로 인정하지 않는 걸 보면······ 아직 안전한 둥지를 찾지 못했다고 여기는 거겠지. 나를 인정하지 않는 게다.”
‘방랑의 매’는 짐승 중에서도 특별했다.
‘지배의 함성’이 먹히지 않는 대신, 특별한 방법으로 사육할 수 있었으니까.
‘매’ 또한 다른 짐승들처럼 안전한 둥지를 원하는 건 같았지만, 그 요구 조건이 터무니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대륙 하나를 통째로 활동 범위로 삼는 방랑의 매.
녀석들은 그중에서도 가장 안전하고, 강한 둥지를 원했으니까.
“지금도 계속해서 날뛰는 군······ 제 집이 아니라 이거지.”
매가 바트를 따르지 않는 이유는 분명했다.
아직 주변을 충분히 둘러보지 못했다는 것.
따라서 바트를 주인으로 삼는 일을 잠시간 보류하겠다는 것.
“아직 새끼가 아닙니까? 오랜 시간 같이 하다 보면 저절로 저하를 따르겠지요.”
“그렇게 억지로 정을 붙여봤자 무슨 의미가 있겠나······? 아버지께서 날 어떻게 보시겠어?”
바트의 감정이 격해졌다.
그리고 이때라는 듯, 방랑의 매가 발버둥과 함께 그의 품속을 벗어났다.
푸드드득!
날갯짓 소리와 함께 날아가는 방랑의 매.
고고히 멀어지는 매를 바라보며, 군사가 바트에게 물었다.
“······다시 잡아 올까요?”
“놔둬라. 여간 성에 안 차는 모양인데······ 실컷 둘러보고 오라고 해.”
지이이······.
고향, ‘우르’로 열린 게이트를 곁눈질하며 바트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잘 되었다는 듯이.
“멸망이 얼마 남지 않은 땅이다. 아무리 둘러본다 한들······ 뭐 얼마나 대단한 게 있겠나?”
“그렇군요. 저하께서는······.”
“그래. 꼼수를 부리고 싶지는 않지만······ 이렇게라도 길들여야만 하니까.”
방랑의 매를 길들이는 건 우르 족에게 있어 지도자의 후계를 잇는다는 것을 상징했다.
매의 주인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은, 적어도 그가 대륙을 통틀어 가장 강력한 ‘둥지’가 되었음을 의미하는 것이었으니.
그것이 바트가 하루라도 빨리 매를 길들이고자 하는 이유였고, 이제 막 초기 개척을 벗어난 지구야말로 이를 위한 최적의 환경이라 할 수 있었다.
바트가 커다란 팔로 팔짱을 끼었다.
가슴팍에 옥죄인 짐승들이 작은 비명을 질러가는 사이, 청량한 몽골의 바람이 그의 머리 두건을 휘날렸다.
“그러니 녀석도 곧 알게 될 거다. 이 넓은 땅을 샅샅이 뒤져봤자······ 둥지를 틀만한 주인은 나밖에 없다는 걸.”
***
침공 소식을 들은 직후, 나는 곧장 포탈을 타고 베이징으로 향했다.
콰아아앙!
까아아아아악!
운양과 인사를 나눌 시간도 없었다.
무엇보다 지금 그는 여유가 없을 테니.
사방에서 짐승들이 몰려드는 탓이었다.
“다 때려 잡아라!”
“와아아아아!”
베론을 비롯한 팍스맨 성기사들이 ‘신벌’을 휘두르며 앞장섰고, 강화 소총으로 무장한 합참본부의 병력이 후방을 지원했다.
한편, 나는 이용수와 함께 최대한 빠른 속도로 베이징 시내를 벗어났다.
적들이 베이징에서 교전을 벌이는 사이, 우리는 몽골에 있다던 놈들의 본진을 타격할 계획이었으니까.
변종 늑대, 뿔 소, 머리 없는 독수리.
방금 전까지만 해도 몬스터 웨이브에서 출현했던 놈들이 몇 배나 불어난 숫자로 베이징에 몰려들고 있었다.
하지만······.
“어째······ 그 테이머라고 하는 놈들은 보이질 않네요?”
이용수가 물었다.
사방에서 짐승들이 쏟아지고 있었음에도, 정작 그 목줄을 쥔 주인은 만나볼 수 없었으니.
아무래도 괴물을 부려 싸우는 놈들이니만큼 제 몸을 숨기고 있는 듯했다.
부우우우웅······!
이용수의 오토바이가 곡예를 부리며 짐승들의 발톱을 벗어났고, 얼추 30분 만에 북쪽 시내 외곽까지 벗어날 수 있었다.
전장으로부터 충분히 멀어진 거리.
주변을 둘러봐도 더 이상 괴물이나 짐승은 보이지 않았다.
덜컹!
먼 길을 가야 하는 만큼, 다른 운송 수단을 출하했고······.
“아, 이거 오랜만이네요.”
이용수가 반색했다.
태평양을 건널 때 사용했던 P-22.
오직 그만이 운전할 수 있는 전투기가 눈앞에 놓였으니까.
.
.
.
두 시간 정도 지났을까?
우리가 착륙한 곳은 무림인들이 적들의 근거지로 추정한, 외몽골로 이어지는 접경지역.
하지만 그 추정 자체가 어림잡은 것이었던데다가, 곳곳이 허허벌판인 탓에 적들의 정확한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웠다.
“일단······ 단서라곤 이게 전부네요.”
이용수가 바닥을 가리켰다.
한 곳에 집중적으로 흩뿌려져 있는 짐승들의 분변.
적들에 대한 정보를 얻고자 하는 심산으로, 아공간에 소식을 전달했다.
몬스터 테이머까지는 아니지만, 우리도 비슷한 인력이 있었으니까.
오래지 않아, 포탈로부터 빠져나온 이는······.
“부르셨습니까?”
드루이드들의 족장, 핀드릭이었다.
대수림의 생물들을 다스리고, 엘븐하임의 고라니들을 사육하던 드루이드들.
자연과 소통하고 동물을 이해하는 그들이라면 뭔가 확인해줄 수 있을 터였다.
몬스터 테이머를 찾고 있다는 말에, 핀드릭이 턱수염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짐승을 길들인다는 것은······ 어떤 방식으로든 그 짐승의 환경과 소통한다는 말이기도 하지요. 먹이와 거처를 주인이 마련해준다는 의미이고, 더 나아가서는 짐승의 생존과 습성에 관련한 무언가를 보장해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남은 건 바로 그런 흔적이겠죠.”
묘한 악취를 풍기는 짐승들의 흔적을 보며, 핀드릭은 신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늑대, 소, 독수리의 분변이 한데 뒤섞여 있군요. 습성도 생활 방식도 각기 다른 생물들인데도 이렇게 뒤섞여 있다는 건······ 둘 중 하나겠군요. 이 모두를 포용할 만큼 아량이 넓은 주인이거나······.”
“아니면 이 모두를 한데 졸라맬 만큼 폭압적인 군주이거나.”
핀드릭은 중얼중얼 단서를 추론하며, 또한 한 가지 덧붙였다,
“그런데 이상하군요. 그 와중에도 거처는 없습니다.”
“거처요?”
“밀짚도, 새장도, 축사도 없군요. 이 짐승들이 어떻게 지내는 것인지 전혀 그림이 그려지지 않아요. 마치 그 자리에서 증발한 것처럼······.”
이 자리에서 노아의 방주라도 떠난 것일까?
하지만 이 까마득하게 넓은 초원 평야에 홍수가 일어날 리도 없었다.
“아, 설마······.”
뭔가 생각이 났다는 듯, 번쩍 고개를 세운 핀드릭이었지만······.
“······이미 온 것 같네요.”
광활한 지평선 너머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남쪽으로 넘어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놈의 모습이 뚜렷해짐에 따라, 쿵쿵 소리와 함께 드넓은 평원의 지축이 서서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핀드릭이 말했다.
“우르족이군요······ 죽이실 겁니까?”
“제압하는 쪽이 좋겠죠? 길을 물어봐야 할 테니.”
“그러면 제가 조금은 도와드릴 수 있겠군요.”
그가 드루이드의 지팡이를 꺼내 들었고, 이용수를 아공간 포탈로 들여보냈다.
쿵! 쿵!
조금씩조금씩 크기를 키워가는 놈의 신형과 함께······.
“우어어어어어어어어어!”
짜릿짜릿한 함성이 파도처럼 온몸을 휩쓸고 지나갔다.
다행히 별다른 효과는 없었지만, 그저 평범한 고함이 아니라는 것쯤은 짐작할 수 있었다.
수 킬로미터 거리에서부터 우리를 향해 질주해오던 녀석의 모습은······.
“······거인?”
온몸에 기다란 천을 둘러맨, 정체불명의 거인이었다.
바로 ‘우르족’이라고 불리는.
그 행동거지 또한 괴이했다.
놈이 가슴 쪽 천을 뒤집자 수십 마리의 까마귀들이 푸드득 하늘로 날아들었고, 배를 까뒤집자 마찬가지로 수십 마리의 변종 늑대가 땅을 밟았다.
등에 멘 보따리에서는 가젤 뿔이 달린 소가, 사타구니를 털어냈을 때에는 온몸에 바늘을 세운 거대 쥐들이 쏟아져 우리를 향해 맹렬히 돌진하기 시작했다.
그것이 ‘몬스터 테이머’의 정체였다.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그냥 걸어 다니는 동물원이잖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쿵! 쿵!
우르족 거인의 발걸음과 함께, 수백 마리의 괴물들이 땅을 흔들었다.
그야말로 군단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모양새였지만, 그마저도 아직 끝이 아니라는 듯, 우르족 거인이 머리에 둘러맨 두건을 풀어헤쳤다.
펄럭!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르는 독수리.
머리가 없이 그 끝에 뾰족한 창살이 달린 녀석으로, 몬스터 웨이브에서 등장했던 녀석이었다.
“······하필 저놈인가.”
쐐애애애액!
몬스터웨이브에서도 놈의 빠른 비행 탓에 적잖이 귀찮았던 터였다.
아니나 다를까 놈이 창날로 된 부리를 겨누며 쏜살같이 날아들었고, 나는 공격에 대비해 포탈을 방패처럼 띄워 핀드릭과 함께 몸을 숨겼다.
양옆으로 성창을 사출할 네 개의 포탈을 띄워져 있었다.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향해 맹렬하게 돌진하던 녀석은······.
푸하하학!
내 성창이 아닌, 낯선 짐승의 등장에 의해 그대로 짓눌려 버렸다.
“······음?”
그대로 온몸이 터져버린 독수리.
어찌나 빨랐던지, 미처 반응할 새도 없었다.
독수리를 처치한 짐승은 그새 훌쩍 뛰어올라 내 팔뚝에 올라타 있었다.
“······뭐야?”
흰색 깃털이 뒤섞인 회갈색의 새.
녀석이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꾸?”
그것이 녀석의 전입신고였다.
초원의 움직이는 둥지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