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39)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39화(139/240)
139화. 초원의 움직이는 둥지 (3)
“꾸우?”
고개를 갸웃거리는 커다란 맹금류.
내 몸통만 한 크기의 매가 동그란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집이라도 되는지, 놈이 내 팔뚝에 고스란히 올라타 있었지만······.
‘되게 무겁네······.’
정작 나로서는 녀석의 가까스로 버티고 있을 따름이었다.
매를 내쫓지도, 팔을 내리지도 않았다.
그것이 뭔가 어마어마한 보물을 얻기 위한, 저렴하게 짝이 없는 비용처럼 느껴졌기에.
뭐라고 딱히 설명하기 어려운, 어렴풋한 직감이었다.
그때, 드루이드 핀드릭이 호들갑을 떨며 내게 다가왔다.
“오! 이 녀석 참 오랜만이군요!”
“뭔가 아시는 게 있으신지······?
“알다마다요. ‘방랑의 매’라고 하는데······ 저 우르족들이 기르기로 유명한 새입니다. 아직 주인을 결정하지 않은 모양이군요. 이렇게 남의 팔뚝에 올라와 있는 걸 보면······.”
섞여 있는 동물들의 분변과 함께 우르족을 알아보았던 핀드릭.
세월과 함께 자연의 경험 쌓아온 드루이드들답게, 이 정체불명의 조류에 대해서도 나름 지식을 가지고 있는 모양이었다.
“주인을 결정하지 않았다라······.”
그의 말대로였다.
방랑의 매는 그 이름과도 같이 실로 자유로워 보였으며 언제든 떠나갈 수 있다는 듯, 다리를 달싹거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나를 향한 그 시선만큼은 절대 거두지 않았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꿰뚫어 보겠다는 듯이, 아니 어쩌면 내가 어떤 ‘곳’인지 둘러보겠다는 듯이.
두두두두두!
멀찍이 땅을 울리며 다가오는 짐승들을 보며, 나는 핀드릭에게 물었다.
“그런데 왜 저죠? 저기 앞에 이미 동물 박사님이 계시는 것 같은데······.”
“저 우르족 거인보다 대표님에게 끌리는 요소가 있는 거겠지요. 이유 없이 행동하는 녀석들은 아니거든요. 정략 결혼의 상대를 정하듯 까다로운 조건을 요구하는 게 특징입니다. 대표적으로 가장 원하는 건 모험과 안전이죠.”
“꾸.”
방랑의 매가 짧은 울음과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그 시선 너머에는 독수리의 공격을 막아내기 위해 세워두었던 포탈이 여전히 열려 있었다.
상자가 그득그득 쌓인 물류센터의 전경을 거울처럼 비추며.
두근거리는 모험을 안전하게 배달하는 것.
어쩌면 그것이 물류센터의 기조일 터였다.
“······조건 두 개가 너무 모순적인 것 아닙니까?”
“그게 방랑의 매의 까탈스러운 점이죠. 그 누구보다도 여행과 방랑을 즐기면서······ 동시에 그 어떤 생물보다도 안전을 추구하니까요. 그래서 우르족들과 단짝으로 붙어 다니기로 유명합니다. 유목에 특화된 데다가······ 매를 지켜줄 만한 힘도 있으니까요. 그건 그렇고, 방랑의 매가 우르족 외에 다른 종족에게 관심을 보이는 건······ 머리 뿔 난 뒤로 처음 보는군요.”
엘프들만큼이나 오랜 수명을 가진 드루이드들.
그런 핀드릭이 머리 뿔 난 이후 처음 본다는 것은 꽤나 이례적이라는 것을 뜻했다.
“아무래도 대표님에게서 이국의 냄새를 맡은 모양입니다. 포탈이 안전해 보이는 것도 한몫했겠지요.”
한국은 물론, 유럽과 베이징의 냄새가 내게 묻어있을 터였다.
더욱이, 그 모두로 통하는 관문인 게이트는 이 세상에서 존재하는 가장 안전한 장소였으니.
매일 지불하는 이용료가 있는 게 흠이긴 했지만, 확실히 ‘방랑의 매’의 역마살을 해소해주기에 이보다 더 좋은 둥지는 없을 터였다.
“얼추 저한테 관심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그래서 이놈 어디다 써먹습니까?”
“꾸······!?”
화들짝 놀란 ‘매’가 삐질삐질 땀을 흘리기 시작했다.
그러곤 내 팔뚝을 잡고 있던 녀석의 다리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기 시작했다.
어쩐지 팔뚝을 뒤집어도 박쥐처럼 곧잘 매달려 있을 것만 같은 느낌.
슬금 눈치를 보는 것이 어쩐지 애처롭기도 했지만, 나로서는 중요한 문제였다.
핀드릭이 대답했다.
“첫째로는 사냥을 잘합니다. 제 몸을 스스로 지킬 만큼 강하기도 하고요.”
이미 한차례 확인한 터였다.
‘방랑의 매’는 내게 공격해오던 독수리를 단번에 도륙 내버렸으니까.
그것뿐만이 아니라는 듯, 핀드릭이 말을 이어 나갔다.
“아직은 새끼라 어렵겠습니다만······ 충분히 성장한다면 타고 다닐 수도 있을 겁니다. 우리족들이 방랑의 매에 아이를 태워 먼 여행을 보낸다는 건 널리 알려진 이야기니까요. 공중에서는 거의 적수가 없다시피 한 녀석이다 보니, 그만큼 안전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렇군요.”
확실히 이 점은 도움이 될 터였다.
지금껏 헬기나 비행기와 같은 정밀한 이동 수단들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취약하다는 단점이 있었으니까.
하지만 방랑의 매가 기동성을 발휘하고, 공중에서 함께 싸워주기까지 한다면 훨씬 더 안전하게 다른 장소로 이동할 수 있을 터였다.
물론 고삐는 이용수가 잡아줘야겠지만.
하지만 안심은 금물이라는 듯, 핀드릭은 신중한 표정으로 뿔을 매만졌다.
건강원에서 많이 보던, 바로 그 사슴뿔이었다.
“그래도 아직 안심하기엔 이릅니다. 아직 확실히 대표님을 주인으로 인정한 건 아니니까요.”
핀드릭의 말에 기운을 차린 방랑의 매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금 나를 저울질하기 시작했다.
좀 더 제대로 확인해보고 싶다는 듯이.
“······뭘 어떻게 하면 되죠?”
“훈련이 필요할 겁니다. 대표님을 안전한 둥지로 인식할 수 있도록 해야 하니까요. 멀리 날려 보냈다가 돌아오는 훈련을 반복하다 보면······ 나중에는 특별한 지시 없이도 알아서 돌아오게 될 겁니다. 아예 사냥을 시키기도 하고요.”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했다.
멀리 날려 보냈다가 돌아왔을 때 고기를 떼어주는 식의 반복적인 보상 훈련.
그 ‘거리’가 익숙해질수록 더더욱 먼 거리로 날려 보내는 식으로, 매의 사냥 범위를 넓히는 훈련이었다.
지금 마침 내 손에 ‘방랑의 매’가 붙들려있는 만큼 당장 훈련을 감행해야 할 시점이었지만······.
두두두두두!
아쉽게도 그리 썩 여유가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멀찍이서 수백 마리의 짐승을 거느린, 동물원장님께서 뛰어오고 계셨으니까.
그래도······.
“딱 좋네요. 먹이도 마련되어 있고.”
“꾸?”
푸드득!
“꾸우!!?”
나는 곧장 방랑의 매를 집어 던졌고, 옆에 있던 포탈이 녀석을 집어삼켰다.
사물이 아닌 생명체인 덕인지 아공간의 수용조건과 무관하게 사람처럼 수용하는 것이 가능했다.
아공간에 진입함에 따라 ‘방랑의 매’가 등록되었을 즈음······.
“출하.”
쐐애애애애애애애액!
“???!!!”
‘방랑의 매’가 도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적진을 향해 전속력으로 날아갔다.
멀뚱멀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던 녀석은 이내 날개를 펼쳐 몸에 속력을 더하기 시작했다.
그러곤······.
-꿰에에엑!
-케행!
곧장 속력을 이용해 변종 늑대들을 짓이겼다.
그다음은······.
“상품회수.”
“????!!!!”
또다시 방랑의 매를 이끄는 미지의 힘.
녀석은 이번에도 역시나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고, 머리가 바닥으로 뒤집힌 채, 맹금류치고는 꽤나 굴욕적인 자세로 또다시 아공간에 입성했다.
“옳지.”
이것이 나의 ‘거리’ 훈련이었다.
핀드릭이 설명해준, 먼 거리까지 새를 날려 보내고 불러들이는 고전적인 훈련 방법.
그 구조상으로는 출하 및 상품회수와 별반 차이가 없었으니.
“출하.”
쐐애애애애액!
“상품회수.”
슈우우우우우욱!
요요처럼 날아가 적진을 헤집었다가, 또다시 쏜살같이 요람으로 돌아오는 방랑의 매.
모험과 안정이 교차하는 지독한 반복 속에서, 녀석은 멀미를 느끼기는커녕 차츰 그 속도감을 즐기기 시작했다.
펄럭!
내 신호에 맞춰 날개를 펴고 접기를 반복하기 시작했으니까.
핀드릭이 흐뭇한 표정으로 사슴뿔을 쓰다듬었다.
흔히 녹용으로 불리는 그것이었다.
“허허······ 다행입니다. 훈련 방법이 썩 마음에 드는 모양이군요.”
방랑의 매는 이제 완전히 나를 주인으로 인식했고,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멀리서 진격해오던 짐승들의 무리는 가까이 다가오기도 전에 절반가량이 도륙이 난 상태였다.
어쩔 줄 모르겠다는 듯, 우르족 거인이 허둥지둥하고 있을 즈음······.
“더 오는 것 같습니다. 조심하십시오. 대표님.”
쿠우웅! 쿠우웅!
아까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강고한 떨림이 지면으로부터 전해져왔다.
더욱이, 이번에는 한 명이 아니었다.
‘둘······ 지금 있던 녀석까지 합하면 셋.’
우두커니 멈춰 서 있던 한 명의 거인 양옆으로, 두 명의 거인이 합류했다.
특히, 그중 한 명은 유독 눈에 띄었다.
다른 둘 보다 배는 많은 천을 몸 주위로 두르고 있는 것은 물론, 천에는 은은한 금색 자수가 들어가 있었으니까.
녀석이 우두머리라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아볼 수 있었다.
“꾸!”
방랑의 매가 내 팔뚝 위로 안착했다.
어느덧 100미터 안쪽 거리까지 가까워진 거인들.
그리고 그때쯤······.
대뜸 우두머리 녀석이 쩍하니 커다란 입을 벌렸다.
“우어어어어어어어!”
슈우우우우욱!
초원을 휩쓸며 불어오는 바람.
특유의 몸집 탓인지, 녀석이 내지른 고성만으로도 풀잎이 세차게 흔들렸다.
“······.”
우르족의 함성은 이미 한 차례 목격했던바.
하지만 졸개의 것과는 차원이 달랐으며, 무엇보다도 주변에 널려있는 다른 짐승들을 다스리기 위한 것도 아니었다.
그 목소리가 부른 대상은······.
“꾸.”
방랑의 매, 단 한 마리였으니까.
“나의 아이야! 대체 거기서 뭘 하는 게냐!”
거인이 울부짖었다.
아무래도 이 매를 자신의 가축으로 삼고 싶었던 모양.
하지만 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것을 보니, 그리 쉽게 풀리지는 않았던 모양이었다.
“꾸훗.”
되레, 방랑의 매는 피식 콧김을 뱉었다.
그러곤 보란 듯이, 우르족들이 보는 앞에서 내 아공간 포탈을 들락날락하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는 우르족 거인들에게 한쪽 눈을 찡긋 감으며, 포탈 속으로 유유히 자취를 감춰버렸다.
“으아아아아아아!”
분에 찬 우르족 거인이 비명을 질렀다.
놈이 쿵쿵 발소리를 울리며 점차 가깝게 다가왔다.
“화가 단단히 난 것 같은데······.”
10미터가 넘는 거구.
우르족 거인이 나를 마주 보고 있었다.
어쩌면 이 타차원의 침략자 놈이 방랑의 매를 돌려달라 땡깡을 부릴지도 모를 일이었지만······.
“방랑자여······ 우르족들은 떠나간 것에 미련을 두지 않는다.”
“오······.”
의외로 진취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었다.
“그보다는 돌아올 것을 상상하고 떠올리지. 네가 ‘매’의 둥지가 된 이상, 내가 너의 둥지가 되어야겠다.”
“······?”
욕심이 과한 것이 문제였지만.
슈우우우욱!
파앙!
놈이 어깨에 묶여 있던 천을 관능적으로 풀어헤쳤다.
기다란 천이 채찍처럼 땅을 때렸고, 그 사이로 수십 마리의 변종 뿔 소가 중심을 잃고 내팽개쳐졌다.
‘저 천에 뭔가 있는 건가.’
기묘한 능력이었다.
녀석들은 몸에 수백 마리의 동물을 거느리고 있었는데, 동물들은 천에 감길 때마다 몸집이 줄어들었다가, 나올 때 다시 몸집이 커지는 식으로 수축과 팽창을 반복했다.
필시 거인의 몸과 아이템을 활용한 독특한 수납방식.
스르륵.
요염한 드레스처럼 한쪽 어깨를 드러낸 우르족 우두머리.
녀석이 뿔소를 털어낸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나는 우르족의 왕세자 바트라고 한다. 너를 내 가축으로 들인다면······ 결국 방랑의 매 또한 나의 것이 되겠지.”
휘리릭!
툭.
녀석이 내 앞으로 길게 천을 집어 던졌다.
눈앞에 떨어진 금실 자수가 박힌 천.
흔히 ‘에반스’ 매듭이라는 이름의 올가미로 나를 초대하고 있었다.
“너희, 작아서 귀여운 맛은 있구나. 내 겨드랑이 틈새에 거처를 허락해주마. 지내기에 나쁘지 않을 거다.”
꾸우우우······.
카아악!
놈의 다른 쪽 겨드랑이에 갇힌 짐승들이 괴롭다는 듯 울음을 내뱉었다.
닭장과도 같은 끔찍한 환경이리라는 점은 불 보듯 뻔한 상황.
옆에 있던 놈의 수하 또한 거들었다.
“겨드랑이는 우르족의 페로몬이 가장 많이 분비되는 곳이다. 인간들은 고귀한 둥지로의 초대를 영광으로 받들라.”
“······.”
방랑의 매가 왜 내게 왔는지 이해가 됐다.
아무렴 아공간이 저 거인족들의 살 틈새보다는 백배는 살기 편할 터.
수백 마리의 짐승들을 몸 안에 거느리는 그 기예가 놀랍기는 했으나, 이러나저러나 내 아공간의 하위호환에 불과했다.
그러니까 여러모로······.
“집이 너무 구리잖아. 변태 새끼들아.”
둥지 실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