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4)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4화(14/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 14편
(기울어진 저울 (2))
콰앙!
소식을 들은 내과 과장 진성학이 책상을 내리쳤다.
“이 새끼들이 건방지게···”
이른 아침부터 약무국장이 전해온 소식이었다.
김정겸 일행에게 식량과 잠자리를 제공하는 대신, 이곳의 통제에 따를 것을 주문했다.
하지만 김정겸은 밥이든 잠자리든 니들이나 처먹고 몸 뉘시라며 정중히 제안을 거절했고, 정찰대 활동에도 참여하지 않겠노라 못 박았다.
진성학은 짜증이 확 치밀었다.
“그 새끼들 여기 눌러앉으려던 거 아니었어? 대체 식량은 어떻게 구하려고 그런 똥배짱인 거야?”
“그건 잘··· 오히려 놈들이 간호국 사람들에게 식량을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환자들에게도 조금씩 흘려주고 있는 것 같고요. 그 양이 적지 않습니다.”
“···뭐?”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지난 며칠간 잘 꾸려온 생태계다.
더불어 스스로 그 생태계의 왕이 되었노라 자부했던 진성학이었다.
“이 미친놈들이 대체 식량을 어디서···?”
하지만 이대로라면 균열이 생긴다.
식량만 아니라면 사람들은 그의 명령에 따르지 않을 것이었다.
세뇌되지 않은 각성자들도 정찰대 차출에 거부할 것이며, 진성학의 레벨업을 위한 마석을 모으는 속도도 차츰 더뎌질 것이었다.
‘안돼, 그건······’
순간, 섬뜩한 이미지가 머리를 스쳐 지나갔다.
레벨업을 달성하기도 전에, 김정겸과 세뇌되지 않은 다른 각성자들이 규합해 자신의 목을 노리는 장면이.
그가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과장님? 어디 가십니까?”
그는 대답이 없었다.
흰 가운을 휘날리며 병원장실을 빠져나갈 뿐.
***
저벅저벅.
나는 큰누나와 함께 병실 복도를 지나고 있었다.
간밤에 그녀가 내게 해 준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말인데··· 여기 환자 중에 을지로에서 온 사람이 있어.”
“을지로?”
“어, 이 난리 통에 어떻게 한강 다리까지 건넜는지 모르겠지만··· 모시던 홀어머니가 여기 입원해 계시거든.”
파국적인 상황.
가장 먼저 가족을 떠올린 것은 비단 나뿐만이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의 요점은 그의 가족애적 감동스토리가 아니었다.
을지로.
김씨스터즈 2호, 김솔의 자취방이 거기 있었으니까.
물론 아무리 그가 을지로에서 왔다고 한들, 작은누나의 행방을 알고 있을 리 없었다.
서울 인구가 몇 명인데 그런 소식을 기대하겠는가?
‘하지만 적어도···’
그곳의 대략적인 상황 정도는 알아볼 수 있을 터였다.
거기에 어떤 괴물이 출몰하며, 사람들은 어떻게 대처해나가고 있는지에 관한.
하지만 아쉽게도 그는 질문에 답을 해줄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반쯤 탈진 상태로 도착해서··· 여기서 하루 정도 입원 치료를 했어. 근데 다음 날 되어보니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 있더라.”
그는 초월적인 근력을 자랑하는 신체 능력 각성자였다.
내과 과장 패거리에 의해 가장 먼저 세뇌된 각성자 중 하나였는데, 그게 바로 내가 큰누나와 함께 그의 병실로 향한 이유였다.
[송현구 M/47] [최영자 W/72]그의 이름은 송현구.
그가 한강을 넘어 만나러 온 어머니와 한 병실을 쓰고 있었다.
문에 달린 투명한 창문.
그 너머로 보조 의자에 앉은 송현구와 침상에 누운 그의 어머니가 보였다.
겉으로 보기엔 아무런 이상도 없었다.
그저 나이 든 어머니를 간병하다 잠시 쉬고 있는 중년 남성의 모습,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한들, 내 눈을 피해 갈 순 없었다.
나는 탄식했다.
“사랑이··· 정이··· 없잖아?”
가족사랑.
그것은 다양한 형태로 발현된다.
형제자매끼리 반말을 써재끼고, 혼쭐이 나는 형을 보며 히죽히죽 웃는 동생이라도, 그 모두는 모종의 가족적 유대라는 편안함의 범주에 속해있다.
사 오라는 메로나를 깜빡하고, 컴퓨터 1시간을 두고 쌈박질을 하고, 소등 노예로 부리기 위해 갖은 낚시질을 하는 것도 모두 서로 편하기 때문에 그럴 수 있는 것이다.
나의 가족 지론에 큰누나도 고개를 끄덕였다.
“이새끼 또 시작이네.”
가족적 편안함.
하지만 그의 어머니의 눈에서 전혀 그런 기색이 느껴지지 않았다.
자식을 향한 이질감, 눈치, 어쩌면 더 나아가···
‘공포.’
그의 어머니의 눈에서 읽을 수 있었다.
47세 송현구, 그가 지금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이제 슬슬 결정의 시간이었다.
힘으로 내과 과장 패거리를 치워버릴 수도 있겠지만, 그런다고 세뇌당한 이들이 정상으로 돌아올지는 미지수였다.
더욱이 그 과정에서 세뇌당한 사람들과 싸워야 한다면 이 또한 찝찝한 일이 될 터.
잠시 고민하던 차, 간호국에 식량을 나눠주러 갔던 이용수가 돌아왔다.
터덜터덜 걸어오는 그는 한 손으로 이마를 짚은 채, 표정을 찡그리고 있었다.
내가 물었다.
“용수씨, 어디 아파요?”
“대기실에서 잠시 졸았거든요. 그러다 잠에 깼는데··· 눈앞에 그 내과과장이라는 사람이 있더라고요. 그 이후로 줄곧 머리가 깨질 듯이 아프네요.”
좋지 않은 신호였다.
놈들의 세뇌가 어떤 방식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일 이용수마저 세뇌에 걸린다면 상황이 복잡해질 터.
당장 할 수 있는 조치는 많지 않았다.
내가 대답했다.
“아공간에 들어가 계시죠. 불편하시겠지만··· 잠시 갇혀 계셔야 할 것 같습니다.”
세뇌가 어떤 영향을 끼칠지 모른다.
자칫하다간 아내와 딸도 내팽개쳐 둔 채, 진성학 패거리를 추종하게 될지도 몰랐다.
일단은 그를 물류 창고 한 곳에 가둬놓을 작정이었다.
이용수 본인 또한 상황을 모르지 않았기에,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무래도 그게 낫겠습니다. 부디 큰일은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위잉-
그렇게, 그를 데리고 포털을 넘어간 찰나였다.
대뜸 팍스가 말했다.
[외부로부터 진입이 시도된 정체불명의 에너지를 차단했습니다.] [아공간은 사용자의 독립된 영역이기에, 외부와의 에너지 연결이 불가합니다.]동시에, 이용수가 한결 편안해진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가 사라진 통증을 두고 마임을 하듯, 자신의 이마, 머리 이곳저곳을 손으로 짚어댔다.
“···머리가 안 아프네요?”
“···네?”
우리는 한참 동안 서로를 멀뚱히 바라보았다.
방금 일을 까맣게 잊어버린 건망증 환자들처럼.
전말은 이랬다.
알다시피, 아공간은 외부로부터의 공격에 무적이었다.
하지만 그건 비단 물리 공격에만 그치지 않았다.
그러니까···
“정신 공격까지 막아낸다고···?”
그게 가능했다.
.
.
.
우리는 곧장 포탈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눈에 들어온 것은···
눈앞의 어머니를 잊은 채, 진성학의 꼭두각시가 된 불효자 송현구였다.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해 팍스에게 물었다.
“아공간에 들어온 사람을 내쫓을 수도 있나?”
[가능합니다.] [출하 스킬로 방출하실 수 있습니다.]막상 아공간에 들였다가 세뇌가 풀리지 않으면 어쩔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강퇴 기능이 있었다.
방장이 괜히 방장이 아닌 것이다.
덜컹!
더 이상 망설일 필요 없이, 우리는 훌쩍 병실 문을 열어젖혔다.
“···뭐야, 당신들?”
퀭한 눈의 송현구가 경계하며 몸을 일으켰다.
우리는 대화를 시도하는 척 그와의 거리를 천천히 좁혔고,
“반갑습니다. 송현구 씨.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
화아악!
포탈 속의 이용수가 그를 잡아당겼다.
택배 상자를 나르던 근력으로 기습적으로 잡아당긴 덕에, 아무리 각성자라 해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
그렇게 포탈 안으로 들어온 송현구는···
“···뭐죠?”
벙벙한 표정의 선량한 아저씨로 돌아와 있었다.
.
.
.
예상했던 대로, 그는 어머니를 향한 마음을 되찾았다.
“아이고··· 아이고···”
송현구가 눈물을 흘리며 어머니의 손을 마주 잡았고, 그녀 또한 돌아온 아들의 얼굴을 연신 매만졌다.
나 또한 안심이었다.
그녀의 얼굴에 떠 있던 긴장이 눈 녹듯 사라져 있었으니.
자주 지을 수 있는 표정은 아니지만··· 가족끼리 주고받을 수 있는 표정임에는 분명했다.
우리는 곧장 사람들이 모여 있을 병원 로비로 향했다.
이제 거리낄 것이 없었다.
세뇌된 각성자들을 치료할 가장 쉽고 명확한 방법이 손에 들어왔으니.
그렇게 백여 명의 사람들이 웅성웅성 모여있는 병원 메인 로비에 다다랐을 때···
“이봐, 김정겸씨!”
마침, 내과 과장 진성학이 나를 불렀다.
갑작스런 샤우팅에 돌아보니, 그의 얼굴이 밥솥처럼 달아올라 있었다.
그가 버럭버럭 다음 말을 이어 나갔다.
“알 거 다 알만한 사람이 그러면 안 되지. 단체 생활 몰라? 어디서 배워먹은 버르장머리야?”
왜 갑자기 급발진을 하나 했더니, 정찰대에 참여하지 않겠노라 못 박은 것에 열이 받은 모양이었다.
병원에 계속해서 식량을 뿌려대는 것 또한 그의 심기를 자극하고 있을 터였다.
그가 말했다.
“짧게 이야기하지. 식량도, 묵을 곳도 필요하지 않다면 당장 여기서 나가. 당신 같은 사람 있어봤자 물만 흐릴 뿐이니까. 다들 좋아서 정찰대로 나가는 줄 알아? 다들 목숨 걸고···”
입바른 소리로 궤변을 이어 나가려던 그를 막아세웠다.
“할게. 정찰대.”
“···뭐?”
“대신 너네랑은 같이 안 해. 듣자 하니 마석 삥땅 치는 고약한 사람이 있다고 해서···”
“그게 무슨···!”
그제야 내과과장은 로비를 가득 채운 인파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알 사람들은 알 만한 진실이지만, 이렇게 대놓고 까발리기엔 그도 부담이 있으리라.
“정찰대 활동이라는 게, 식량 구해오면 되는 거지? 내기라도 해볼까? 당신네 정찰대랑 나랑 누가 더 많이 구해오는지 한번 보자고.”
“이 자식이··· 식량 구해오는 게 장난인 줄 알아?”
“젊은 사람들 사이에선 그런 말이 있지. 안 내면···”
“뭐?”
나는 말을 끝맺었다.
“진 거.”
나는 그 말을 끝으로 성큼성큼 로비를 빠져나갔다.
.
.
.
휘릭! 퍽!
깨액!
다가서는 괴물들을 향해 도끼를 던지며 병원 앞을 걸었다.
내기라고는 했으나, 실은 구실에 불과했다.
그 많은 사람 앞에서 면상에 도끼를 꽂을 수는 없는 일이니.
조금 거칠어질 수 있으니 자리를 옮긴 것뿐이었다.
나름대로 확신도 있었다.
야금야금 사람들의 숨통을 죄며 암약하는 놈이다.
외롭게 병원을 빠져나온 나를 은밀하게 죽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물론, 한편으로는···
‘···정말 날 죽이려 들까?’
툭툭 발걸음을 옮기며, 놈들이 따라 나오지 않는 미래도 상상했다.
아무리 세상이 망했다지만, 고작 열흘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니까.
아무리 법도 질서도 없다지만, 거슬린다는 이유로 사람 죽일 결심을 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궁금했다.
놈들이 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는 위인일지.
하지만 그런 나의 인류애적 관점을 비웃듯···
부스럭.
뒤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고개를 돌려보니 내과 과장 진성학과 놈의 오른팔인 약무국장, 그리고 세뇌된 각성자들 무리가 서서히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인원을 끌어모은 것인지, 그 수가 족히 서른 명은 될 듯했다.
진성학이 옅은 웃음을 뱉으며 말했다.
“이봐, 김정겸 씨. 그러게 적당히 까불었어야지. 굴러온 돌이면 얌전히 굴어야 하는 법이야. 아니면 우리 병원이 그렇게 우스워 보였나?”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반대로 내 질문에 대한 대답을 마침 그가 내어준 참이었으니까.
그가 껄렁하게 발을 움직이며, 약무국장을 비롯한 각성자들에게 지시했다.
“준비해.”
그 또한 각성자였는지 약무국장이 몸을 부풀렸고, 다른 각성자들 또한 저마다의 능력을 피워내기 시작했다.
나는 무심히, 포탈을 열었다.
이들에게 소개할 사람이 있었다.
터벅터벅 포탈 밖으로 빠져나오는 송현구.
그를 발견한 약무국장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씨발, 알 게 뭐야! 빨리 쳐!”
쐐애액!
내과과장 진성학의 호통에 세뇌된 각성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하지만 나는 딱히 정면승부를 벌일 생각이 없었다.
송현구를 데리고 포탈로 들어갔고,
쩌엉!
각성자들이 포탈에 가로막혔다.
그러자 아공간 안에서 유정이와 놀아주고 있던 이용수가 다급히 달려왔다.
“···무슨 일입니까?”
“손님들이 좀 와서···”
텅! 텅!
손님들은 격하게 포탈 문을 두드렸다.
“···열어드리려고요.”
“허가해.”
슈우욱!
각성자들이 하나둘 아공간 속으로 들어왔고,
“···?”
“······?”
3초 만에 기억을 잊어버린 금붕어처럼 멍한 눈을 껌뻑였다.
개중 한 사람이 물었다.
“···뭐죠?”
그들의 세뇌가 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