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40화(140/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40화
초원의 움직이는 둥지 (4)
140화. 초원의 움직이는 둥지 (4)
“네 이놈! 이분이 어떤 분이신 줄 아느냐!”
내게 겨드랑이를 열어 보이던 금빛 자수의 거인.
부관쯤 되는지, 놈의 옆을 지키고 있던 다른 거인이 버럭버럭 소리를 질렀다.
“······뭐 어쩌라고?”
뉘신지 알 바가 아니었다.
그래봤자 다른 차원에서 건너온 이종족.
군에서 옆 중대 선임도 아저씨가 되는 마당에, 다른 차원에서 굴러먹던 권력자들에 머리를 굽힐 이유가 전혀 없었으니까.
“이분은 장차 ‘우르’를 이끄실 고결한 피, 바트 칸이시다! 어서 예를 갖추지 못할까!”
그래도 저들 차원에서 왕족쯤은 되는 모양이었다.
그쯤이면 되었다는 듯, ‘바트 칸’께서 부관의 말을 제지하셨다.
“짐승들이 고결한 문명을 어떻게 이해하겠나? 가축과 소통하려 애쓰지 마라, 군사. 위대한 우르의 전사들은 그저 가축들을 다스리고, 놈들의 젖과 고기를 취하면 그만이야.”
스르륵.
놈이 바닥에 떨어진 천을 도로 주워들었다.
그러곤 어깨에 다시 꼼꼼한 매듭을 지어가며 말을 이었다.
“여기서 얼쩡거린 네놈들의 잘못이다. 초원은 광활하고, 그만큼 포식자의 눈에 띄기에 십상이지. 초원에서 단단한 두 발을 딛고 서 있을 수 있는 것은 두려워할 것이 없는 최고의 포식자뿐이다. 더욱이 그렇기 때문에······.”
뿌드득.
힘주어 매듭을 마무리하는 바트 칸.
녀석이 서슬 퍼런 눈빛을 보내며 덧붙였다.
“주제도 모르고 남의 먹이를 가로챈다면······ 더더욱탈이 나는 법이지.”
두두두두!
잠시 멈춰 서 있던 지상 위의 짐승들이 다시금 진격을 시작했다.
반쯤 ‘방랑의 매’가 짓이기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아직 상당수가 남아 있었으니.
초원을 질주하는 변종 괴물들의 발자국이 푸르른 초원을 흙밭으로 뒤바꾸고 있었다.
“다음엔 좀 더 귀여운 동물 친구들이면 좋겠군요. 대표님.”
핀드릭이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비록 주변은 나무 한 그루 세워져 있지 않은 휑한 초원이었지만, 동물들 또한 드루이드의 능력이 미치는 대상이었으니.
핀드릭은 짐승들의 의식을 교란해 발이 접질리도록 하거나, 우르족들에 의해 지배당한 정신을 깨워주어 저들끼리 맞붙게 하는 등 효과적인 싸움을 이어 나갔다.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저하!”
쿠우웅!
‘군사’라고 불리던 다른 거인이 앞으로 치고 나왔다.
녀석은 몸에 천을 두르고 있음에도 별다른 짐승을 거느리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탄탄한 신체 능력을 발휘해 가며 우리를 향해 거대한 발을 내밀었다.
놈의 커다란 몸집 아래, 초원 위로 넓게 퍼져나가던 그림자는······.
투카아앙!
그새 아공간에서 사출된 이용수의 기간트에 의해 거꾸로 뒤집혔다.
콰아아아아아앙!
파릇파릇한 풀잎을 낙엽처럼 흩뿌리며 쓰러진 거인.
“이익······ 웬 놈이냐!”
비록 놈의 허리에도 닿지 못하는 기간트였지만, 이용수는 특유의 컨트롤을 앞세워 거인의 발을 묶기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우두머리, ‘바트 칸’의 경우는······.
쐐애애애애애애액!
타아아앙!
몸에 두른 천을 채찍처럼 휘둘러, 내가 쏘아낸 운철구를 막아냈다.
천을 다루는 능력이 발군인지, 사출된 운철구를 고스란히 받아 돌팔매처럼 되돌려주는 기예를 부리기까지.
짐승들을 수납하던 천의 기능은 공방에서도 그대로 적용됐다.
날아드는 운철의 충격을 최소한으로 축소시키는 한편, 나를 향해 다시 던질 때는 다시금 그 위력이 증대되었으니까.
물론, <상품회수>를 활용하는 만큼 그 공격이 내게 닿는 일은 없었지만······.
‘필드 효과를 아예 몸에 두르고 있구나.’
저 기묘한 천의 원리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대한 거인의 몸을 천으로 감싸는 것.
천은 우르족들의 상징물이었고, 천이 감싸고 있는 것은 거인들의 몸, 다시 말해 하나의 작은 ‘지형’이었다.
후우우웅!
후우웅!
그렇게, 새카만 운철을 주고받으며, 아찔한 굉음이 귓가를 스치고 지나갔을 즈음.
바트 칸이 내게 말했다.
“과연······ 그게 너의 둥지인가.”
녀석은 운철구가 쏟아져 나오는 포탈을 응시하고 있었다.
“알을 집어던지는 둥지라······ 그것참 흥미롭군.”
“그거 깨지면 더 흥미로워.”
사물의 원망을 조심하라던 쿠퍼.
그 미신과도 같은 이야기가 조금은 찜찜하게 걸리기도 했지만······.
‘뭐 이제 와서 새삼······.’
택배 상자를 집어던지는 것이 일상이 된 나로서는 사물의 원망쯤이야 별다른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차라리 물건을 던졌다는 이유로 수취인의 원망을 산다면 모를까?
만약 그렇다 한들 수취인의 대가리도 깨버리면 그만이었다.
쐐애애애애액!
바트 칸의 머리맡.
양쪽에서 열린 포탈에서 각각 마력 회로가 그려진 두 개의 운철구가 출하되었고······.
“무, 무슨!”
지금껏 천을 휘둘러 몸을 보호하던 우르족 왕자는 보란 듯이 머리 위로 빗나가는 공을 보며 허둥댈 뿐이었다.
파삭.
맞부딪힌 두개의 운철구가 계란껍질처럼 으스러졌고······.
꽈아아아아아아아아앙!
강렬한 빛과 함께 거대한 폭발이 초원의 하늘을 덮쳤다.
땅까지는 닿지 않는, 드높은 상공에서 일어난 폭발.
덕분에 나나 이용수, 드루이드 핀드릭은 털끝만큼도 다치지 않았지만······.
“커윽······!”
거인들에게는 그렇지 않았다.
10미터 이상, 작은 아파트 높이의 몸집을 가진 녀석들.
그 상반신 모두가 폭발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으니까.
“어윽······ 어어억······.”
놈들이 쓰고 있던 두건은 물론, 상반신에 걸치고 있던 천 조각을 모조리 불태웠다.
외부로부터의 충격을 상쇄시켜주던 ‘상징물’이 사라진 만큼, 폭발의 충격이 놈들의 두꺼운 피부에 유효한 타격을 준 것 같았다.
쿠웅! 쿵!
하나둘 무릎을 꿇는 우르족 거인들.
다시금 운철구를 꺼내 바트 칸의 머리를 깨부수려던 순간······.
“자, 잠깐 기다려! 날 죽이면 분명 후회할 거다!”
고명하신 바트 ‘칸’께서 애타는 목소리로 말씀하셨다.
나는 그대로 멈추어 섰다.
놈의 구차한 구걸은 아무래도 좋았지만······.
“주군.”
“어, 왔어?”
카멜롯의 망령들이 새 소식을 가지고 돌아왔기 때문에.
몽골 초원에 다다랐을 즈음, 우르족들의 본진을 찾기 위해 망령화된 기사들을 흩어놓았던 참이었으니까.
잿빛 구름처럼 둥둥 뜬 란슬롯이 정찰의 결과를 말해주었다.
“방대한 규모의 축사가 세워져 있어서 찾기가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틈틈이 몬스터 웨이브에서 쏟아진 괴물들을 모으고 있었더군요. 놈들의 게이트도 그쪽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만······ 정작 게이트 핵이 어디에 있는지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음······.”
그때, 란슬롯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바트 칸이 슬며시 끼어들었다.
“좋은 어미일수록 제 둥지와 알은 필사적으로 숨기는 법이지. 너희는 죽었다 깨어나도 게이트 핵의 위치를 찾을 수 없을 게다. 그리고······ 머지않아 우르에서 지원군이 도착할 테고.”
바트 칸은 여전히 자신감에 차 있었다.
자신들을 굴복시켰을지언정, 거대한 우르 차원 전체를 상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심산.
더욱이 놈들이 건너올 저 게이트 포탈을 닫을 방법이 없다는 게, 바트 칸이 품는 자신감의 근원이었다.
“지구는 어떻게든 우르의 가축이 될 거다. 젖이나 고기나 별반 쓸모가 없지만······ 그래도 너희는 몸집도 작고 그럭저럭 머리가 있으니까. 우리가 거느린 생물들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게 되겠지. 뭐, 먹이로도 쓸 수 있고······.”
그것이 우르족들이 생각하는 인간들의 쓸모.
그러니까 지구로부터 취하고자 했던 ‘인적’ 자원이었다.
거대한 몸집 탓에 우르족들은 거느린 가축들을 스스로 돌볼 능력이 없었고, 인간과 같은 다른 지적 존재들을 사로잡아 자신들의 짐승들을 관리하도록 했던 모양.
없는 말은 아니라는 듯, 란슬롯이 내게 덧붙였다.
“잡혀 있던 포로들을 풀어주었는데······ 이미 상당수는 거인들의 품에 담겨 저쪽 차원으로 끌려갔다고 하더군요. 아무래도 지금껏 꾸준히 사람들을 잡아갔던 모양입니다.”
끔찍하기 짝이 없는, 거인들의 겨드랑이로의 초대.
그건 놈들이 지구의 땅을 밟은 이래, 지금껏 계속해서 이어져 오던 일이었다.
바트 칸이 껄껄 웃으며 말했다.
“이제 알겠나? 내 목숨을 끊었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졌을지? 그래도 너희는 운이 좋은 편이다. 아직 선택의 여지가 있으니까.”
본 차원의 힘을 등에 입은 바트 칸은 이제야 제 목숨이 돌아왔다는 듯, 후련한 표정이었다.
그러곤 여전히 분하다는 듯, 찡그린 표정으로 내게 덧붙였다.
“제안을 하나 하지. ‘방랑의 매’를 내놓고 초원에서 꺼져라. 그러면 나 바트 칸의 이름을 걸고 너희만큼은 우르의 가축이 되는 일을 막아줄 테니까. 행여나 우리 우르족들을 막아낼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마라. 그것만큼은······ 너희가 절대 막을 수 없을 테니까.”
“음······ 매를 돌려달라 이거지?”
나는 가만히 아공간 포탈을 열었다.
그러곤 ‘방랑의 매’를 꺼냈다.
잠시 졸고 있었던 것인지, 녀석이 반쯤 감긴 눈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꾸?”
낮게 하늘을 푸드덕거리는 매를 보며, 바트가 밝은 표정을 띄웠다.
“그렇지, 그렇지. 잘 생각했다. 더 큰 포식자에게 엎드리고 불필요한 싸움을 하지 않는 것이 피조물들의 생리다. 너희는 너희다운 선택을 한······.”
녀석이 흡족한 표정으로 중얼중얼 떠들어댔지만······.
“쟤네 게이트 핵 찾아 와.”
“꾸.”
나는 그저 방랑의 매를 하늘 높이 날려 보낼 뿐이었다.
줄곧 우르족들에게 사로잡혀 있던 ‘자유의 새’.
필시 ‘우르’ 차원의 게이트 핵이 숨겨진 진짜 둥지의 위치를 알고 있을 테니까.
“자, 잠깐! 기다려!”
푸드득!
바트 칸의 외침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방랑의 매’는 날개를 펼쳐 점차 멀어져 갔다.
둥지와 알을 숨겨놓는 것이 어미새의 역할이라면, 그런 둥지를 기필코 찾아내는 것 또한 포식자의 역할일 터였다.
명민한 택배기사들이 촘촘하게 늘어선 집들 사이로 배송지를 정확히 찾아내듯이.
과연 오래지 않아······.
“꾸.”
“끗! 끄으읏!”
방랑의 새의 다리에 붙잡힌 채, 온몸을 뒤틀고 있는 계란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눈코입이 뒤죽박죽 뒤섞인 게이트 핵.
다른 차원과의 길을 잇는 상공회의소의 특제 날계란이었다.
“······안 돼! 게이트 핵은······!”
놈의 마지막 희망이었다.
게이트 핵이 파괴된다면, 본 차원인 우르와의 통행로 또한 자취를 감출 터.
상공회의소의 중개를 통해 들어왔던 만큼, 적어도 당분간은 진입이 어려울 터였다.
하지만······.
“걱정 마라. 게이트 핵은 안 부술 테니.”
“뭐?”
띠링!
[대형견 울타리 펜스, 가격은 45,500원입니다.]“끗?”
방랑의 매가 내려놓자마자, 다시 울타리에 가둬진 게이트 핵.
나는 ‘우르’로 향하는 길목을 닫을 생각이 없었다.
“니들이 오기 전에, 우리가 갈 거야.”
바트 칸은 우르족의 왕자였다.
아들이 이런 꼴을 당했으니, 황제께서 노발대발 병력들을 보낼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
그걸 멀뚱히 지켜볼 만큼 인내심이 좋지도 않았을뿐더러, 무엇보다 이 지구를 전장으로 삼을 필요도 없었다.
팍스FC가 ‘사업체’가 된 지금.
우리도 놈들처럼 저 게이트 포탈을 통해 녀석들의 본 차원으로 넘어갈 수 있었으니까.
그렇기 때문에······.
“그리고······ 이러나저러나 니가 집에 못 가는 건 변함이 없다.”
파삭!
내가 부순 것은 게이트 핵이 아닌, 우리를 가축으로 삼으려 했던 거인들의 머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