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ding a Logistics Center in the Apocalypse RAW novel - Chapter (145)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145화(145/240)
아포칼립스에 물류센터를 숨김 145화
조각난 초대장 (1)
145화. 조각난 초대장 (1)
“꾸르르르륵······.”
뼈를 달그락거리며 다가오던 하일라들이 일제히 멈추어 섰다.
대뜸 사슴뿔을 단 이종족들이 나타나 나뭇가지를 흔들고 있었기 때문.
사사삭.
드루이드들의 손짓에 따라 세계수의 싱싱한 풀잎이 파르르 흔들렸고, 언데드 하일라들의 보랏빛 안광이 그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그 결과······.
츠츠츠······.
주술에 따라 바싹 말라 있던 하일라의 살갗이 서서히 차올랐다.
빠른 속도로 생전의 모습을 되찾아 가는 두꺼비들.
세계수를 흔드는 부족원들을 보며, 나는 핀드릭에게 물었다.
“······원래 저렇게 빠릅니까?”
“의식을 재구성하는 과정이 가장 오래 걸리니까요. 하일라 같이 단순한 생물은 금방 되살릴 수 있습니다. 보아하니······ 죽은 지 그리 오래된 것들도 아니고요.”
아발론 사람들을 되살렸을 때 비해 압도적으로 빠른 속도.
핀드릭은 당연하다는 태도였지만, 흑마법사들로서는 악몽이 아닐 수 없었다.
소수에 불과한 드루이드가 어떻게 바르나울의 천적이 될 수 있었는지 여실히 깨닫게 될 뿐.
한편······.
“무슨······.”
우르족의 왕, 투렌은 당황을 금치 못했다.
텅 빈 벌판 위로 사슴뿔을 단, 수십 명의 드루이드가 쏟아져 나온 참이었으니.
침이 바싹 마른 녀석은 떠듬떠듬 입을 열었다.
“네, 네놈도 둥지였던 게냐? 아니······ 소환술사였어?”
이 드넓은 우주에는 그런 직업들도 존재하는 모양이다.
포탈을 보았음에도, 설마 그것이 나 개인의 전유물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하는 투렌.
아둔하기 짝이 없는 놈이었지만······.
제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는 사실은 용케 알아차렸다.
“갈!!”
녀석이 전력을 다해 함성을 내질렀다.
가축들을 다스리기 위한 우르족들만의 비기.
잔디를 쓸어 넘기는 굉음에, 되살아난 하일라들이 화들짝 놀라 그를 바라보았지만······.
“우쭈쭈쭈쭈!”
“여기보자~ 우르르르쭈쭈쭉쭈르!”
이에 질세라, 드루이드들이 세계수를 흔들었다.
사사삭!
사삭!
사진관 딸랑이처럼 빠르게 흔들리는 세계수.
채 10초도 지나지 않아, 녀석들의 시선은 다시 드루이드들에게 돌아올 뿐이었다.
그리고 그 결과······.
“꾸르르르륵.”
원래 주인이었던 우르족들은 본 체도 하지 않았다.
하일라들은 곧장 드루이드들에게 껑충 뛰어왔고, 충성을 맹세하며 낮게 머리를 내밀었다.
“가아아알!!”
“아아아아악!”
계속되는 거인들의 고성방가.
하지만 두꺼비들은 콧방귀를 뀌었다.
그것이 아무런 힘이 없는, 허전한 공갈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는 듯이.
우르족들은 소유하고 있던 가축들은 물론, 숨기고 있던 마이너스 통장까지 깡그리 털어버릴 수밖에 없었고······.
콰아아아아앙!
그 말로를 예상하는 것 또한 그리 어렵지 않았다.
“일단 한 놈.”
포탈에서 사출된 운철구가 순식간에 쏘아졌다.
투렌의 곁을 지키던 군사인지 뭔지 하던 놈의 머리를 꿰뚫었고, 그것만으로는 모자랐던지 다른 거인 두 명의 팔을 관통했다.
“으아아악!”
“히이익!”
비명을 지르는 거인들.
놈들 입장에서는 쇠구슬 불과한 크기였지만, 위력은 그 이상이었다.
다른 물질에 비해 비약적인 질량을 가지고 있는 운철이었음은 물론, 자그마치 시속 500킬로미터의 속도로 쏘아졌으니.
“처, 천을 펼쳐라!”
“쳐내!”
펄럭!
거인들이 옷을 풀어헤쳤다.
날아드는 공격을 막아내기 위한 마지막 발버둥이었지만······.
“······될 턱이 없지.”
사방에서 날아드는 수십 개의 총알을 막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빈털터리가 된 채, 텅 빈 지갑을 휘두르는 꼴이었다.
“이······ 이익!”
놈들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쇠구슬과 함께 섞여들어 오는 화살에, 속수무책으로 공격을 허용한 거인들은······.
쿠웅!
쿠우웅!
하나둘 무릎을 꿇으며 초원의 그늘을 지웠다.
온몸에 가축을 쑤셔 넣은 채, 드넓은 평야를 호령하던 우르족.
하지만 이제는 텅 빈 몸이 되어 흙으로 돌아갈 준비를 할 뿐이었다.
그리고······.
“······허억! 헉!”
사방에서 날아드는 쇠구슬을 쳐내며, 숨을 헐떡이는 투렌.
이제 남은 우르족은 녀석, 단 하나뿐이었다.
‘단단하네.’
우르족들의 왕답게 다른 거인들보다 높은 위계를 가지고 있는 모양.
하지만 그뿐, 모든 공격 수단을 잃어버린 놈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없었다.
투렌 또한 그 사실을 모르지 않는지······.
탓!
곧장 발돋움했다.
내가 서 있는 위치와는 조금은 떨어진 방향.
‘······그대로는 못 죽겠다 이건가?’
거대한 그늘이 드리운 진흙밭에는 두꺼비들이 떨궈놓은, 수십 개의 유리 상자가 놓여있었다.
죽을 때 죽더라도 상자를 터뜨려 우리를 처리하겠다는 심산이었지만······.
“출하.”
꽈아아아아앙!
녀석이 맞이한 것은 운철구가 일으킨 맹렬한 폭발뿐이었다.
마력이 각인된 두 개의 공.
그 충돌이 투렌을 죽음으로 이끌었다.
휘이이이이이익!
눈이 멀어버릴 듯 맹렬히 타오르는 태양.
휘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초원의 풀잎마저 바싹바싹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
반경을 재는 데 어느 정도 익숙해진 덕이었다.
투렌의 머리를 지워버릴 만큼의 위력이었음에도, 우리는 거센 바람에 넘어졌을 뿐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다만······.
딸칵딸칵딸칵딸칵칵딸······.
‘저건······?’
진흙밭에서 기묘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투렌이 터뜨리고자 달려들었던 바르나울의 유리 상자.
유리 벽면에 굴절된 보랏빛 흑마력이 소리와 함께 세차게 점멸하고 있었으니까.
폭발에 반응하기라도 하는 듯, 불안한 소리가 쭉 이어졌지만······.
쿠우우웅!
목이 사라진 투렌이 털썩 주저앉을 즈음, 다행히 상자는 서서히 잠잠해졌다.
“정말 지독하군요······.”
핀드릭이 혀를 내둘렀다.
투렌의 두꺼운 손에는 그가 기르던 매가 붙잡혀 있었고, 운철구의 폭발에 휘말려 주인과 함께 생을 마감한 채였으니.
죽는 순간까지도 아끼던 장난감을 빼앗기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녀석은 섬기던 주인을 따라 죽는다던 방랑의 매의 습성을 믿지 않았으니까.
매의 고고한 충심을 지워버리는······ 그야말로 혼탁한 사념이었다.
“그럼 이제······.”
남은 것은 정리 정돈이었다.
세계수 딸랑이를 흔들며 하일라와 소통하던 드루이드들.
그들에게는 지금껏 잡아들인 하일라를 관리해달라 부탁했다.
수십 마리나 되기에 조금 버거울 수도 있겠지만······.
‘우르족들에게 잡혀 있던 포로들도 있으니까.’
우르족들의 강요하에 가축들을 돌보던 그들이다.
다른 건 몰라도 가축을 사육하고 관리하는 방법은 알고 있을 터.
똑같은 일을 맡기는 것이 미안하기는 하지만, 하일라는 주인의 말을 듣게끔 설계된 생물이니만큼 아주 어렵지는 않을 것이었다.
“그리고 이건······.”
덩그러니 바닥을 나뒹구는 수십 개의 유리 상자들.
한껏 시끄럽게 울리던 소리는 온데간데없이, 지금은 고요한 장신구가 되어 창백하게 굳어있을 따름이었다.
진흙밭으로 가까이 다가가려는 것을, 엘리가 다가와 제지했다.
“정겸 씨, 위험해요. 만지지 않는 편이 좋겠습니다.”
“안 만질 겁니다. 그래도 확인은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내가 덧붙였다.
“쿠퍼를 데려와야겠습니다.”
.
.
.
10분쯤 지났을까?
아공간을 통해 소식을 전달받은 쿠퍼가 곧장 우르로 넘어왔다.
그러곤 흥미롭다는 듯, 진흙밭에 놓인 유리 상자로 성큼 다가왔다.
“······혹시 모르니까 만지지는 마시고요.”
“아무렴요. 걱정 마시오.”
양 눈을 비벼가며 한참이고 상자를 내려다보던 쿠퍼.
투명한 유리 사이로 들어있던 금속 관을 유심히 살핀 그가 이제야 알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오르골입니다. 이런 식으로 만든 건 나도 처음 보지만······.”
“오르골이요?”
내가 잘못 들은 게 아닌가 싶었다.
태엽을 감아 음악을 재생하는, 단순하면서도 아름다운 기계.
하지만 바르나울이 가져다 놓은 것은 흑마력이 담긴 폭발물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으니까.
쿠퍼가 마저 말을 이었다.
“당연하지만 음악을 담는 장치가 아니외다. 아케인의 마법사들이 주문을 담는 데 쓰는 물건인데······ 보통은 ‘메모라이즈 장치’라고 부르오.”
아케인의 마법사.
실로 오래간만에 듣는 이름이었다.
마법사들의 물건이, 그것도 왜 바르나울에 의해 놓여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럼 마법사들의 오르골이 왜 여기에 있는 겁니까? 핀드릭이 말하기로는······ 이 안에 흑마법이 담겨있다고 하던데요.”
“평범한 오르골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지요. 자세히 보시면······.”
쿠퍼가 유리상자의 내부를 가리켰다.
중심부에는 피아노 현처럼 생긴 수십 개의 선이 있었고, 그 위로는 동그란 점이 곳곳에 찍힌 금속 원통이 자리하고 있었다.
“평범한 오르골이라면 금속판에 양각으로 된 가시가 세워져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순 구멍뿐이네요.”
“맞습니다. 가시가 음계판과 만나 소리를 내는 것이 오르골의 구조인데······ 이대로는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을 거요.”
소리를 낼 수 없는 모순적인 구조.
하지만 그 안에는 까만 점들로 이루어진 ‘주문’이 명확하게 표시되어 있었다.
그에 대한 설명이라는 듯, 쿠퍼가 나지막이 덧붙였다.
“······흑마력을 사용하기 전에는.”
“흑마력······.”
정확한 원리는 알 수 없었다.
나는 흑마법사가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투렌이 분노했을 때, 그리고 운철구가 폭발했을 때 유리상자가 거칠게 공명했던 사실만큼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대체 뭘 만들려고 했던 걸까요? 단순한 폭탄은 아닌 듯한데.”
“그거야 모를 일이요. 흑마법사들의 속내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으니······ 이게 흑마법이라는 건 알아도, 당최 어떤 마법인지까지는 파악하기가 어렵습니다.”
무기로 활용해볼까도 고민했지만 역시나 무리였다.
아공간에 넣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화력이 아주 강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주변을 침식해 들어가는 흑마력은 되레 내게 부담이 될 뿐이었다.
“뭐······ 이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해결할 수 없는 의문이었다.
오래 붙들고 있어봤자, 지금으로서는 좋을 것이 없을 터.
이제는 하일라를 레텔인들에게 전달해줄 차례였다.
아직은 성장할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하일라를 이용한 훈련만큼은 최대한 빨리 시작하는 편이 좋을 테니까.
그렇게 레텔 차원으로 향하는 포탈을 열었을 즈음······.
“음?”
상공회의소로부터, 낯선 메시지가 날아들었다.
띠링!
[상공회의소가 주최하는 차원 박람회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차원 박람회는 차원이 거둔 그간의 성과를 발표할 수 있는 정기 행사로, 각 차원 존재들이 한 데 모이는 전 우주적인 축제의 장입니다.]“차원 박람회······?”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른 지구의 상황이었다.
몬스터 웨이브를 막아내고, 지구에 암세포처럼 자리 잡은 침략자들을 도려내고, 더 나아가 침략자들의 차원에 역으로 쳐들어가기 시작한 시점.
그런 노력을 비웃기라도 하는 듯, 상공회의소는 축제의 장이라는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내뱉고 있었다.
“······불친절한 건 여전하네.”
상공회의소의 메시지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당신은 지구 차원의 대표 중 1인으로 선정되었습니다.] [참가 이력이 없는 지구 차원에는 지금으로부터 7일간, 별도의 준비 기간이 부여될 예정입니다.] [부여된 기간 동안, 다른 대표들과 함께 지구의 박람회 참여 방식을 논의하십시오.]“다른 대표라······.”
지금껏 살아남은 다른 대륙과 국가의 사람들.
중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과 미국까지 헤집고 다닌 나였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을 다 만나고 온 것은 아니었다.
상공회의소가 별도로 선정한 것을 보면, 그들 또한 만만치 않은 실력을 갖추고 있을 터.
지이이잉······.
과연 빈말은 아니었는지, 회의 테이블이 내다보이는 게이트 포탈이 눈앞에 생겨났다.
[참여를 원하시면 회의장으로 입장하십시오.] [주의! 회의장에서는 무력 충돌이 원천적으로 차단됩니다.]모든 사건의 원흉인 상공회의소였지만······ 적어도 메시지를 통해 거짓말을 한 적은 없었다. 회의장으로 들어간다면 뿔뿔이 흩어져 있던 지구의 다른 각성자들을 만나볼 수 있을 터.
“솔직히 차원 박람회니, 뭐니 웃기지도 않지만······.”
좋은 기회였다.
행사는 별개로 치더라도, 지구인들만의 공동전선을 꾸릴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결국······.
“너희도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구나.”
세계가 몰려들고 있었다.
비교적 가까운 지구는 물론, 머나먼 우주 바깥까지.